보이는 대로 믿지 않고 믿는 대로 보던 어린 시절을 기억해내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오늘의 동화는 ‘황금거위’입니다.
[Tale] 오답 인생도 제법 괜찮더라
“옛날에 한 농부가 있었다. 농부는 아침마다 헛간에 있는 거위 알을 가지러 갔는데, 하루는 거위 옆에 황금알이 놓여 있었다. 처음에는 누군가가 장난을 친다고 생각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확인해봤다가 진짜 금인 것을 알게 됐다. 농부는 그것을 팔아 큰 잔치를 열었다. 다음 날 아침에도 평소처럼 헛간으로 갔는데 황금알이 또 놓여 있었다. 며칠이 그렇게 흘렀다. 물론 거위는 매일매일 황금알을 낳아주었다. 탐욕스러워진 농부는 거위의 뱃속에 황금이 많이 들어 있을 거라 생각하고 거위의 배를 갈라버렸다. 하지만 거위의 뱃속엔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았다. 농부는 그제야 때늦은 후회를 했다.”


우리가 흔히 ‘황금거위’라고 알고 있는 동화의 줄거리입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 무슨 교훈이 떠오르나요? 대부분 과욕에 대해 떠올리실 겁니다. 그런데 ‘황금거위’는 정말 과욕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일까요?

어렸던 저는 이 동화를 볼 때마다 거위에 대한 강한 동정심이 들었습니다. 매일같이 황금알을 낳아주었는데도 죽임을 당한 거위가 너무 불쌍했기 때문이었죠. 그런데 어느 날 깨달았습니다. 헛간에 있는 거위들은 모두 언젠가는 그렇게 죽임을 당할 운명이라는 것을요. 결국 어느 거위에게나 죽음은 시간 문제였던 겁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황금거위에 대한 연민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왜일까,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니, 황금거위는 사실 생명을 낳지 못하는 거위였던 거예요. 거위에게 황금은 아무 쓸모도 없는 돌멩이일 뿐인데, 그런 거위에게 주인은 날마다 황금알을 보채기까지 합니다. 그 거위의 삶은 얼마나 무료하고 끔찍했을까요? 결국 제가 동정했던 건 거위의 죽음이 아니었습니다. 하고 싶은 걸 하지 못한 채, 남들이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거위의 삶에 연민을 느꼈던 겁니다. 어느 순간 저는 그 거위의 삶에 저를 투영하고 있었던 거죠. 그래서 저에게 있어서만큼은 황금거위가 과욕이 아닌 연민이고, 슬픔이었습니다.

저는 지금 호주에 살고 있습니다. 대학교 때 건축을 전공했는데, 미래에 대한 생각들이 많은 시기라 생각도 정리할 겸 호주로 넘어왔죠. 잠시 쉬러 온 거였는데, 지금은 이곳이 너무 좋아 계속 머물고 있습니다. 전공했던 건축도 과감히 포기하고, 요리사가 됐어요. 그때, 주변에 참 많은 분들이 충고해주셨습니다. 학교는 졸업하고 오라는 분도 계셨고, 호주에서 삶은 추억으로 끝내라는 분도 계셨어요. 아마도 제 결정이 정답이 아니라고 여기셨던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고집이 아주 셉니다. 그 덕에 대학교도 끝마치지 못했고, 비자 때문에 여러 문제들을 겪고 있습니다만, 중요한 건 지금 제가 행복하다는 거예요. 직장에선 제가 좋아하는 요리들을 배우고, 집에 와선 하루의 생각들을 적습니다. 영광스럽게도, 그런 저의 글들을 엮어 책을 출간하기도 했어요. 만약 제가 황금알을 따랐다면 지금의 이런 삶은 불가능했겠지요. 제가 동정하던 황금거위의 삶을 살고 있었을 겁니다. 정답이 아니어도 괜찮아요. 정답을 따르지 않아도, 우리 인생은 그렇게 쉽게 낙오되지 않습니다. 직접 살아 보니 오답 인생도 제법 괜찮더군요.

사회는 우리들에게 많은 정답들을 강요하곤 합니다. 사람들의 그 모든 다양성들을 수용해줄 수 없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까지 스스로의 생각을 제한하고 관리할 필요가 있을까요? 어쩌면 거위가 황금알을 낳기 시작한 건 신기한 일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조금씩 천천히, 스스로가 생명을 잉태하길 포기했기 때문일지도 몰라요. 마치 어느 순간부터 날지 못하게 된 닭들처럼 말이죠. 생명을 잉태하는 거위가 되길 바랍니다. 하고 싶은 일들, 이루고 싶은 꿈들을 미루다 보면, 어느 날 갑자기 우리는 황금알만을 낳게 될지도 모릅니다. 무엇을 품을 것인지, 모두의 정답이 아닌 각자 스스로의 답을 찾길 바랍니다.


기획 박진영 기자│글 김남규(‘아는 동화 모르는 이야기’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