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등 유엔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과 독일(주요 6개국)이 이란과의 핵 협상을 통해 잠정타결안에 합의함으로써 국제 사회의 최대 현안 중 하나인 이란의 핵 개발을 중단시킬 수 있는 돌파구가 마련됐다. 하지만 미국과 이란이 잠정타결안을 놓고 서로 다른 해석을 하는 등 오는 6월 말로 예정된 최종 합의가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GLOBAL MONITOR] 美·이란, 핵 협상 타결 페르시아에 봄은 왔나
미국 의회를 장악하고 있는 공화당은 물론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가 잠정타결안에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어 앞으로 최종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진행될 이란 핵 협상이 난항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주요

6개국과 이란이 지난 4월 2일 스위스 로잔에서 타결한 핵 협상의 잠정합의안을 보면 이란은 현재 가동 중인 1만9000개의 원심분리기를 감축해 1세대형 초기 모델인 6104개만 남기기로 했다. 이 가운데 5060기는 나탄즈에서 10년간 상업용으로, 나머지 1044기는 포르도 지하 핵시설에서 연구용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핵무기 제조를 결심한 시점부터 핵물질을 확보하는 데 걸리는 시간인 브레이크아웃 타임(breakout time)을 종전 2~3개월에서 1년으로 늘릴 수 있게 됐다. 이란은 또 15년간 저농축 우라늄(LEU) 재고를 현재의 1만 kg에서 3.67% 수준인 300kg으로 감축하고 3.67% 이상의 LEU를 생산하지 않는 것은 물론 우라늄 농축을 목적으로 하는 신규 시설도 건설하지 않기로 했다. 이란은 아라크 중수로를 무기급 플루토늄을 생산하지 못하도록 재설계하고 사용 후 핵연료를 국외로 반출하며 재처리 연구·개발(R&D)을 무기한 수행하지 않기로 했다. 이란은 이와 함께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25년간 이란의 모든 핵 시설을 정기적으로 사찰하면서 핵 개발 활동을 감시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이에 대가로 IAEA가 이란의 합의사항 이행을 검증하면 미국과 유럽연합(EU) 및 유엔안보리의 이란 경제제재를 모두 해제하기로 했다.


12년 만의 협상 타결, 양측의 노림수는
양측이 핵 협상을 타결한 것은 2002년 8월 이란의 비밀 우라늄 농축 시설의 존재가 폭로되면서 촉발된 이란 핵 위기 이후 12년 만이다. 따라서 양측이 잠정타결안에 합의한 것은 역사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미국은 이란이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을 막거나 감시하는 실질적 수단을 갖추게 된 것은 물론 이란 제재를 영구적으로 해제하지 않는 성과를 거뒀다. 이란은 조건부이긴 하지만 서방의 고강도 제재를 해제해 경제적 실리를 챙기면서도 평화적 목적의 우라늄 저농축 활동은 보장받는 ‘제한적 핵 주권’을 지켰다고 말할 수 있다. 이란 핵 협상 잠정타결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오바마 미 대통령은 그동안 이란 핵 문제를 군사적 해법보다는 외교적 대화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미국은 이란 핵 협상이 잘 마무리될 경우 이란과의 관계 정상화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과 이란은 지난 1979년 이란에서 이슬람 혁명이 발생하고 테헤란 주재 미국 대사관 점거 및 인질 사건으로 인해 지금까지 단교해 왔다.

하지만 이번 잠정타결안의 핵심인 제재 해제와 사찰을 둘러싸고 양측이 벌써부터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란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지난 4월 9일 핵 협상 잠정타결안에 대한 공식 입장을 밝혔다. 하메네이는 “이란의 국익과 존엄을 훼손하는 협상은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최종 합의와 함께 모든 제재 조치가 해제돼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또 군사기지는 국제 사회의 사찰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하메네이는 그동안 미국과의 핵 협상을 지지하기는 했지만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을 중심으로 하는 중도 개혁 노선에 동조하지는 않았다. 하메네이가 로하니 이란 대통령이 추진해 온 핵 협상을 지지한 것은 경제제재로 경제가 최악의 상황에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이란은 세계 4위의 산유국이지만 경제제재 탓에 수출을 제대로 못해 지난 2012년부터 3년 연속 마이너스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국제유가 하락도 이란 경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이 때문에 하메네이로선 국민의 불만이 갈수록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강경 노선에서 어느 정도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지지 세력인 혁명수비대 등 강경파가 이번 잠정타결안은 자국에 불리하다면서 강력하게 비판을 제기하자 기존의 강경한 입장을 천명한 것이다.

반면 미국의 입장도 강경하다. 미국은 IAEA의 사찰을 통해 이란의 합의 준수 여부가 확인돼야 제재가 단계적으로 해제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벤 로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부보좌관은 “사찰 결과에 따라 제재 완화가 단계적으로 이뤄지게 된다는 점은 매우 분명한 사실”이라면서 “오바마 미 대통령은 세부 사항이 확정되지 않으면 합의를 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강조했다. 로즈 부보좌관은 “IAEA가 의심스러운 장소에 대해선 그곳이 어디든 간에 사찰할 권한을 가져야 한다”고 밝혔다. 애슈턴 카터 미 국방장관도 “IAEA 사찰 대상엔 이란의 군사시설이 무조건 포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은 그동안 이란의 핵 활동이 군사시설에서 비밀리에 이뤄졌던 만큼 군사시설이 IAEA의 사찰 대상이 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양국은 앞으로 6월 말까지 최종 합의 내용을 놓고 줄다리기를 할 것이 분명하다. 오바마 미 대통령조차 “악마는 디테일 안에 있고, 우리는 앞으로 두세 달 동안 매우 힘든 협상을 해야 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미국 의회의 다수당인 공화당은 노골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공화당은 과거 북한이 핵 합의를 파기하고 IAEA 사찰단을 추방한 뒤 핵 시설을 재가동했던 사례를 들면서 이란도 그런 전철을 밟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상원은 공화당 소속인 밥 코커 외교위원장 주도로 이란 핵 합의 의회승인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행정부가 이란 핵시설 폐기의 대가로 제재 해제 합의 사항을 모두 의회에 보고하고, 의회가 이란 제재 해제를 30일간 심사하고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등의 내용으로 돼 있다.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는 최종 협상에서 타결안이 도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적극적인 로비에 나서고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핵 협상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합의를 파기하려는 것”이라면서 “이란의 저농축 우라늄 생산 권리를 인정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생존을 위협한다”고 비판했다. 이스라엘은 이란이 저농축 우라늄을 생산한다면 앞으로 비밀리에 핵 개발을 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수니파 종주국인 사우디는 시아파의 맹주인 이란의 핵 개발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다. 이럴 경우 수니파 대 시아파 간의 치열한 다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가 이란에 미사일 방어 시스템인 S-300 수출금지령을 해제해 향후 핵 협상 타결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앞으로 이란 핵 협상의 복잡한 함수관계를 고려할 때 ‘페르시아에 봄이 왔다’고 말하는 것은 너무 성급한 듯하다.
[GLOBAL MONITOR] 美·이란, 핵 협상 타결 페르시아에 봄은 왔나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