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을 열광케 하는 그들만의 콘텐츠_열세 번째

가문의 이름으로 검을 휘두르는 사람들. 그들에게 혈통의 긍지는 갑옷이며 가문의 존속은 곧 삶의 신념이다. 가업을 잇기는커녕 가훈조차 사라져 버린 요즘의 시각에선 가문의 존엄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판타지를 주는 작품, 미드 ‘왕좌의 게임’이다.
[MEN`S CONTENTS] 유전자에 각인된 통치 권력의 욕망, 미드 ‘왕좌의 게임’
필자는 매달 이 칼럼을 쓰기 전에 스스로 꽤 많은 ‘타당성’을 검토한다. 언급하려는 콘텐츠가 남성들의 취향을 충족시키는지, 인기의 요인이나 추천할 만한 매력은 무엇이며 화제성은 지녔는지, 시의적으로도 적합한지 나름 정수기보다도 깐깐한 필터링을 거친다. 그런데 이번 달에는 굳이 몇 겹의 필터를 거치지 않아도 될 1등급 원수(原水)를 선보일 수 있게 됐다. 그것은 바로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이다.

나도 모르게 극찬의 말로 시작한 탓인가, 잠시 자기 검열을 동원해본다. 하지만 다시금 생각해보아도 자격은 충분하다. 첫째, 타이밍이 좋다. 이미 지난 시즌들이 메가 히트한 데다 이제 막 다섯 번째 시즌이 오랜 기다림 속에 선보이기 시작했다(한국에서도 동시 방영 중이다). 그러니 이 드라마를 봤든 안 봤든, 주말을 이용해 정주행을 감행해볼 만하다. 둘째, 이 드라마는 장르적 편식이 심한 필자조차 매료시킨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허구에 뿌리를 둔 판타지보다는 역사적 사실이나 실제에서 충분히 일어날 법한 이야기를 선호한다. 따라서 영화 ‘반지의 제왕’도 필자에겐 그저 작가적 식견을 넓혀줄 참고용 레퍼런스에 그칠 뿐 가슴 뛰게 한 명작이 되지는 못했다. 그런데 웬걸, 비슷한 세계관을 배경으로 하는 ‘왕좌의 게임’만큼은 예외로 둔다. 유일하게도.
[MEN`S CONTENTS] 유전자에 각인된 통치 권력의 욕망, 미드 ‘왕좌의 게임’
‘왕좌의 게임’을 소개하자면 배경 설명부터 하는 것이 순서겠다. 원작자인 조지 R. R. 마틴은 소설을 통해 두 개의 대륙, 여러 개의 민족과 가문을 창조해 놓았는데 네 시즌을 거치는 동안 드라마는 서쪽 대륙을 주 무대로 한다. 서쪽 대륙은 일곱 개의 가문이 영주가 돼 분할통치를 하고 있으며 이들은 타르가르옌 가문을 왕족으로 받들고 따랐다. 그러나 오랜 지배의 역사가 반역으로 무너져 버린다. 바라테온 가문의 영주가 타르가르옌 가문을 멸족시킨 뒤 스스로 왕위에 오른 것이다.


실존 역사보다 더욱 사실적인 서사적 판타지
이야기의 시작이라 할 시즌 1은 반란이 벌어진 몇 년 후를 배경으로 한다. 무력을 통해 왕좌에 오른 로버트 바라테온. 그런데 반정으로 세운 왕권은 모래성과도 같았으니, 그는 오늘날 국무총리 격에 해당하는 자신의 오른팔이 의문의 죽음을 당하자, 오랜 친구이자 북쪽 지방을 다스리는 스타크가(家)의 에다드(숀 빈)에게 공석을 메꿔줄 것을 권하며 자신을 도와 달라 청한다. 하지만 그것이 가문의 영광일 리 없다. 권력암투의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니 자칫하면 가문이 몰락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에다드 스타크는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예언 같은 가언(家言)이 현실화되자 이를 운명으로 받들고 따른다.
[MEN`S CONTENTS] 유전자에 각인된 통치 권력의 욕망, 미드 ‘왕좌의 게임’
물론 가시밭길이다. 왕비를 배출한 외척세력인 라니스터 가문도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중이며 야만족의 땅으로 쫓겨난 타르가르옌의 유일한 후손 역시 하나뿐인 여동생을 야만족의 우두머리에게 바치면서까지 복권을 노리는데 이들 모두 가문의 이름으로 검을 휘두른다. 그들에게 혈통의 긍지는 갑옷이며 가문의 존속은 곧 삶의 신념이다. 따라서 선과 악의 잣대로 가늠하기 힘든 묘한 서사적 구조를 지닌다. 그래서일까. 가업을 잇기는커녕 가훈조차 사라져 버린 요즘의 시각에선 가문의 존엄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판타지스럽다.

극적인 긴장감은 치밀한 설정으로 더욱 빛을 발한다. 각각의 가문들이 왜 그렇게 합종연횡을 해야만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 때문에 부나방처럼 왕권 쟁탈에 뛰어드는지 흠잡을 데 없다. 그런 식으로 시즌 4를 내달려 왔으니 방대하고도 치밀한 스토리는 ‘삼국지’나 ‘조선왕조실록’에 비견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그러나 초심자라 해도 미리 겁먹을 필요는 없다. 단언컨대 눈을 부릅뜨고 보지 않아도 인물 간의 관계나 방대한 세계관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그렇기에 ‘대서사시’라는 수식어를 단 하나의 작품에만 써야 한다면 필자는 주저 없이 이 작품에 바치련다.



김상명 시나리오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