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능의 최절정, ‘크레이지 호스 파리’ 이병수 대표

공연? 많이 봤다. 저마다 근거를 대며 ‘전에 없던 쇼’라고 내세우는 공연들에 대한 기억도 많다. ‘크레이지 호스 파리(Crazy horse Paris)’ 또한 국내서 이제껏 볼 수 없었던 쇼이긴 하나, 이건 차원이 다른 문제다. ‘프랑스 3대 카바레 쇼’니 ‘아트누드 퍼포먼스’니 하는 설명도 지극히 단편적이다. 여성의 몸을 캔버스 삼아 색색의 빛과 강렬한 음악, 화려한 패션의 조우가 만들어낸 ‘네이키드 쿠튀르(naked couture)’라고 하면 좀 설명이 될라나. 오랜 세월 공들인 쇼로 보수적인 대한민국 땅에서 문화의 변곡점을 만들어보겠노라는 이병수 W엔터테인먼트 대표의 눈빛에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ISSUE MAKER] 프랑스 상류층 사교 문화 카바레 쇼의 한국 입성기
‘언젠가 한국에서도 하게 되겠지.’ 15년 전 파리, 샹젤리제 거리 근처인 조지 5가의 작은 카바레에서 ‘크레이지 호스 파리’ 무대를 처음 경험한 이병수 W엔터테인먼트 대표는 그날 이후 줄곧 오늘을 꿈꿨다. 당시, 이미 50년 역사를 자랑하던 ‘크레이지 호스 파리’는 놀랍도록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그 옛날, 원초적인 여성의 나체에 빛이란 옷을 입히는 파격적인 퍼포먼스를 상상하고 실현했다는 것만으로도 경이로웠다. 물론, 그도 공연을 보기 전까지는 반신반의했다. ‘야하지 않을까’, ‘선정적이지 않을까’. 막상 쇼를 보고 나니 ‘반의’는 사라졌지만, 자신의 감상이 보편적인 것인가에 대한 걱정도 들었다. 이후 ‘크레이지 호스 파리’를 여러 차례 보러 갈 때마다 그는 많은 이들에게 질문을 던졌고, 보수적인 아시아 관객들까지 아름답다는 찬사를 쏟아내는 것을 보며 확신을 얻었다.

그로부터 15년, 이 대표는 꿈에 그리던 ‘크레이지 호스 파리’를 한국 땅에 상륙시키는 데 성공했다. 마음에 품고 지낸 15년이란 세월도 세월이지만, 최근 3년 반은 본격적인 물밑작업과 설득, 그리고 준비 작업이 이뤄지는 등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물랭루주’, ‘리도’와 함께 파리를 대표하는 3대 카바레 쇼이자, 상류층에게만 허락된 문화의 아이콘인 ‘크레이지 호스 파리’는 샤넬이나 루이비통 같은 하나의 브랜드이자 문화유산이고 자부심이다.
4월 27일부터 오픈런으로 워커힐 시어터 무대에 오르는 ‘크레이지 호스 파리’는 6월 30일까지 시즌1이 공연된다.
4월 27일부터 오픈런으로 워커힐 시어터 무대에 오르는 ‘크레이지 호스 파리’는 6월 30일까지 시즌1이 공연된다.
1951년, 여성 찬미가이자 전위예술가인 알랭 베르나댕이 파리의 한 카바레에서 무대에 올린 후 65년간 무려 1500만 명이 관람했고, 살바도르 달리,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 엘비스 프레슬리, 마돈나, 비욘세 등 셀레브리티들로부터 극찬을 받았으며, 크리스찬 루부탱, 칼 라거펠트 등 세계적인 디자이너와의 컬래버레이션으로 여러 번 화제에 오르기도 했다. 그런 쇼이니 한국에서 공연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상당히 의미 있는 일. 이병수라는 제작자도, 한국이란 마켓의 가능성도 알 리 없던 ‘크레이지 호스 파리’ 측을 설득, 라스베이거스와 싱가포르에 이어 세 번째 상설 공연을 유치하게 된 데는 공연기획 및 제작자로서 이 대표가 쌓아 온 포트폴리오와 케이팝(K-pop) 등으로 높아진 서울의 인지도가 한 몫 했다.


근사한 하룻밤의 경험 “한번쯤은 미쳐라”
공연 프로듀서로서 이 대표의 히스토리는 23년간 축적된 결과물이다. SK그룹(옛 선경그룹) 공채로 입사해 쉐라톤워커힐에서 업무를 시작한 이 대표는 1992년부터 공연 프로듀싱을 시작, 200여 편의 제작과 3만5000회의 공연, 그리고 130만 명에 달하는 관객과 함께 호흡해왔다. 국내 유명 가수의 공연은 물론이고, 최초의 풀 사이드 파티 콘서트, 최초의 심야 스탠딩 콘서트, 최초의 플라멩코, 최초의 레뷰쇼 등 조금 다른 방식, 다른 공연에 대한 갈망을 늘 현실화해 온 그다. 그렇듯 항상 모험을 감당하게 하는 데는 ‘사람들이 나의 쇼를 통해 삶을 축제처럼 즐기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자리하고 있었다. ‘크레이지 호스 인 서울’의 시작도 바로 거기였다. 이 쇼를 통해 뭔가 다른 라이프스타일을 창조해내고 싶었다고 할까.
[ISSUE MAKER] 프랑스 상류층 사교 문화 카바레 쇼의 한국 입성기
이번 공연 유치에 엄청난 공을 들이셨다죠.
“‘크레이지 호스 파리’는 전 세계에서 유치 경쟁을 벌이는 작품이에요. 파리 외 상설 공연되고 있는 곳이 라스베이거스와 싱가포르밖에 없을 정도로 ‘조건’도 까다롭습니다. 그들에게 ‘크레이지 호스 파리’는 돈을 목적으로 한 공연이 아니라 하나의 브랜드이자 문화유산이에요. 65년의 역사가 말해주듯 이건 650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을 ‘클래식’이죠. 따라서 흠이 나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죠. 오랜 시간 공들여 드디어 서울에서 세 번째로 상설 공연을 올리게 됐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의미 있는 일입니다.”


‘크레이지 호스 파리’가 ‘물랭루주’, ‘리도’ 등 다른 파리 3대 쇼와 어떻게 차별화되나요.
“‘물랭루주’와 ‘리도’는 130년의 역사를 갖고 있죠. 그에 비하면 ‘크레이지 호스 파리’는 그 절반의 역사예요. 셋 중 가장 뒤늦게 탄생한 공연답게 표현 방식이나 내용도 완전히 다릅니다. ‘물랭루주’와 ‘리도’가 옴니버스 형식의 버라이어티 쇼라면 ‘크레이지 호스 파리’는 패션 퍼포먼스 같은 성격을 띱니다. 여성성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공연의 시작부터 끝까지 스토리가 이어지죠. 여자의 당당함, 부끄러움, 강인함, 순수함 등을 여러 가지로 표현하고 있고 버전도 발전해 왔지만 궁극의 아이덴티티는 같아요. 패션이 새로운 텍스타일이 개발되고 다른 컬러 패턴이 나오는 것과 같은 이치죠. ‘크레이지 호스 파리’는 ‘네이키드’와 ‘쿠튀르’가 합쳐지면서 하나의 작품이 되는 겁니다.”
[ISSUE MAKER] 프랑스 상류층 사교 문화 카바레 쇼의 한국 입성기
서울 공연은 파리에서 공연 중인 버전과는 조금 다르다죠.
“월드투어 버전으로 공연되는데, 파리에서 하고 있는 공연과 70%는 같아요. 월드투어 버전은 지난 65년간의 레퍼토리 중 더 좋은 장면들을 세계에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베스트 컬렉션 30분이 추가된 버전입니다. 규모도 크죠. 파리에서는 아직도 처음 탄생한 바로 그 카바레 극장에서 공연이 이뤄지고 있거든요.”


출연진도 아주 까다롭게 고른다고 들었어요(‘키는 168~172cm, 비율은 얼굴 대비 다리 길이가 3분의 1~3분의 2, 젖꼭지 간 거리는 21cm, 배꼽에서 치골까지 거리는 13cm’가 ‘크레이지 호스 파리’ 공연단 댄서들에게 적용되는 사항이다).
“모두 발레리나 출신들이고 알랭 베르나댕이 처음부터 설정한 엄격한 신체적 조건을 만족해야 하죠. 어렵게 댄서로 선발되고 나면 일주일에 한 번씩 몸무게를 재고, 문신이나 성형도 금지돼요. 무용수들의 신분은 모두 비밀이고 저마다 예명으로 불리죠. 이번 한국 공연에 서는 배우들도 파리 오리지널 팀 그대로죠. 제작진 면모도 화려해요. 프랑스가 낳은 세계적인 연출가로 ‘태양의 서커스’ 안무가이자 알베르빌 동계올림픽 개막식을 연출한 필립 드쿠플레가 연출을 맡고, 마돈나와 ‘빌리진’, 비지스 등의 음악을 만든 작곡가가 ‘크레이지 호스 파리’만을 위한 음악을 만들었죠. 또 장 폴 고티에, 크리스찬 루부탱 등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의 패션 아이템들이 더해지면서 화려함의 극치를 이룹니다. ‘크레이지 호스 파리’가 의상이 없는 것 같아도, 아이템 하나하나가 디테일하고 수천만 원에 달하는 것들도 있어요. 파리에서 실제로 여성 관객이 70% 정도로 많은 이유가 아름다운 배우들이 표현해내는 화려하고도 섹시한 아름다움 때문이죠. 서울 공연에서도 많은 여성 관객들에게 어필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ISSUE MAKER] 프랑스 상류층 사교 문화 카바레 쇼의 한국 입성기
보수적인 우리나라에서 19금 아트 누드쇼를 올리는 데에 대한 부담도 분명 있었을 텐데요.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누드티(nudity)가 들어간 소설이건 퍼포먼스건 공연이건 상당히 터부시되고 저급한 것으로 인식이 됐었잖아요. 그런데 그게 아주 소수의 상업적인 목적으로 성을 이용했던 사례가 뇌리에 강하게 남아 있어 그랬던 게 아닐까요. 모든 예술은 인간의 육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보편적이잖아요. ‘비너스’의 탄생에 대해선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으면서 왜 다른 데는 외설이니 뭐니, 이중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걸까요. 적어도 그런 면에서 이번 공연은 한국 문화의 변곡점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누드티지만 전혀 천박하지 않고, 예술성이 있으면서도 원초적인 아름다움과 유머가 있는 무대로 팍팍한 삶에 신선한 자극이 될 겁니다.”


워커힐 시어터의 입지가 제약이 되지 않을까요.
“시내에서 좀 멀리 떨어져 있긴 하지만 이번 공연을 올리기엔 너무 완벽한 공연장입니다. 특히 오리지널 작품을 안정적으로 하려면 숙련된 기술 스태프들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도 무대 메커니즘이 아주 좋아요. 또 워커힐 시어터가 다른 공연장들과 달리 샴페인을 마시면서 관람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다는 점도 궁합이 잘 맞는 요소죠. ‘크레이지 호스 인 서울’은 제공된 샴페인을 마시면서 축제처럼 즐기는 공연이거든요. 그뿐만 아니라 관객 수요 측면에서도 카지노와 면세점, 호텔 등을 갖추고 있어서 국내 관객은 물론 외국인 관객까지 유치할 수 있는 장점이 있죠.”


가격이 만만치 않던데요. 파리에서처럼 ‘상류층의 문화’가 되는 건가요.
“물론 저렴한 가격은 아니죠. VIP박스가 550만 원이니, 그 가격만 보는 사람들은 저한테 ‘미친놈’이라고 하지 않겠어요? 저는 이 공연을 문화적, 라이스타일적으로 접근하고 싶었어요. 그간 수없이 많은 공연을 해 왔지만, ‘크레이지 호스 파리’를 통해 하나의 라이프스타일을 만들겠다는 열망이 있었던 거죠. 그래서 하이엔드를 위한 좌석이나 VIP박스 등 럭셔리 라이프스타일에서부터 일반 관람석까지 다양하게 구성한 겁니다. 실제로 S석은 11만 원, 26세 이하 관람객을 위한 S석 가장자리 좌석은 7만7000원으로 그리 비싸지 않아요. R석(16만5000원)은 ‘모엣&샹동’이나 ‘뒤발 르로이’ 반병이 제공되고, VIP석(22만 원)은 ‘바롱 드 로트칠드’ 또는 ‘도츠’ 반병이, VIP부스석(2인 110만 원)에는 세계적인 샴페인인 ‘돔 페리뇽’이나 ‘팜므’ 한 병이 제공되죠. 15~30명이 함께 관람할 수 있는 VIP박스(550만 원)는 공연장과 유리벽으로 차단돼 있어 각종 론칭 행사 등으로 활용될 수도 있어요.”


우리가 ‘크레이지 호스 파리’를 꼭 봐야 할 이유를 말씀해 주신다면.
“‘당신 삶에서 가장 문화적인 순간, 예술적인 기회가 어떤 것이었느냐’라고 묻는다면 누구나 하나쯤은 있을 거라고 봅니다. 그게 꼭 ‘부유층의 전유물’은 아니죠. 아름다움을 느끼는 인간의 DNA는 본능적이고 보편적인 것이니까요. ‘크레이지 호스 파리’가 바로 그 본능적인 아름다움을 깨워줄 공연이 될 겁니다. 서울을 떠나 파리에 간 것처럼, 상상치 못한 무대를 통해 근사한 하룻밤의 경험으로 남았으면 좋겠어요. 더불어, 여러분 모두가 창의적인 관객이라면 좋겠습니다. 직원들과 함께 하는 최고경영자(CEO), 성인 자녀를 동반한 부모, 결혼을 앞둔 커플 등 창의적이고 열린 관객들이 온다면 더없이 근사할 거예요. 우리, 한번쯤은 미쳐도 되잖아요.”


박진영 기자 bluepjy@hankyung.com│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