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손자까지 대물림 하려면 상속 전략 이렇게 짜라

상속 재산을 둘러싼 불필요한 분쟁을 없애기 위해 선택하게 되는 유언과 신탁.
하지만 제대로 된 방법을 모른다면 오히려 분쟁의 불씨만 키우는 꼴이 된다. 자손들에게 분쟁이 아닌 희망을 대물림해주기 위한 현명한 선택은 무엇일까.
[BIG STORY] 유언장과 신탁, 당신의 선택은
일반인들도 유언장에 대해서 기본적인 지식은 갖고 있지만 사실 제대로 된 정보를 알고 있느냐고 물으면 10명 중 7명 정도는 주저할 것이다. 더구나 신탁은 개념 자체를 명확히 아는 사람조차 드물다.

쉽게 말해 유언은 죽어야 효력이 생기는 행위이고 신탁은 살아서도 효력이 발생하는 계약이다. 유언을 남겼더라도 죽기 전에 마음이 바뀌어 수정을 한다면 이전 유언은 효력을 잃는다. 또 유언의 경우는 민법에 의해 상세한 규정을 정하고 있어 유언으로 상속 재산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남겼더라도 모두 다 효력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법적으로 구속력이 있는 문구 외에 내용은 후손에게 남기는 일종의 ‘가훈’에 불과하다.

서울 강남에서 대형 식당을 운영하는 A씨가 배우자와 자녀들을 위해 유언장을 남겼다고 하자. 그는 유언장에 ‘30년 동안 상속 재산은 배우자가 사용하고 이후 자녀들에게 그 재산을 넘기라’는 유지를 남겼다고 할 때 이 유언은 무효다. 유언은 재산의 처분에 대해 후세에까지 영향력을 미칠 수가 없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유언은 법에 정해진 5가지(자필증서, 녹음, 공정증서, 비밀증서, 구수증서) 방법이 있는데 그 요건이 엄격해 자필증서의 경우 유언장의 작성 연·월·일과 유언자의 주소 또는 생활 근거지, 유언자의 이름, 도장 또는 지장이 꼭 포함돼야 한다. 주소는 유언자의 주민등록상 주소지일 필요는 없으며 생활 근거지도 가능하다.

글자를 모르는 사람이거나 거동이 불편할 경우 녹음에 의한 유언을 할 수 있다. 이 경우는 녹음을 한 날짜, 유언자의 이름, 증인의 녹음이 필요하다. 공정증서에는 2명 이상의 증인과 함께 필요한 서류를 구비해 공증인사무소에서 유언의 내용을 유언자가 직접 공증인 앞에서 이야기해야 한다. 이때 공증인은 유언자와 증인에게 작성한 내용을 확인하게 되며 마지막으로 유언자가 서명 및 날인을 하면 마무리된다.

유언서의 존재는 명확히 해 두되 유언의 내용을 비밀로 하고 싶은 경우 유언 내용을 작성해 봉투에 밀봉하는 방식으로 비밀증서를 남길 수 있다. 비밀증서는 유언의 내용과 유언자의 이름, 유언서를 밀봉한 후 그 부분에 도장, 2명 이상의 증인, 5일 이내의 확정일자가 반드시 포함돼 있어야 한다. 급박한 사정에 의해 다른 방식으로 유언을 하는 것이 불가능할 때 예외적으로 구수증서를 남길 수도 있다. 단, 구수증서에는 2명 이상의 증인이 필요하고 급박한 사유가 종료한 날로부터 7일 이내에 법원에 검인 신청을 해야 한다.

분쟁을 방지하기 위해 유언집행자나 임의후견계약을 준비하는 것도 팁이다. 박민정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상속인인 자녀는 아무래도 이해당사자이기 때문에 거간꾼 역할을 할 유언집행자를 미리 정한다면 상속 분쟁을 어느 정도 방지할 수 있다”며 “임종 무렵 판단력이 흐려지는 것에 대비해 후견인을 정하는 임의후견계약도 필요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유언의 5가지 방법은
유언장과 신탁을 구별 짓는 차이점은 크게 3가지로 볼 수 있다. 우선 신탁의 경우 유언장과 달리 세대 간 연속적인 상속 설계가 가능하다. 유언장은 최초 상속인 지정만 가능하지만 신탁의 경우 할아버지가 자식 세대를 거쳐서 손자에게, 남편이 배우자를 거쳐 자식들에게 유산을 물려주는 연속 상속이 가능한 것이다.

또 유언장은 미성년자라 하더라도 상속 집행이 이뤄지면 통상 상속인인 미성년자에게 소유권이 이전되지만 이 경우 부모가 없다면 후견인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반면 신탁은 미성년자에게 재산을 상속하되 여러 가지 옵션을 통해 관리가 가능하다는 것이 차별점이다. 예를 들어 30세까지 신탁에서 관리하다가 그 이후 이전하라는 별도의 주문을 걸어 둘 수 있다는 거다. 더불어 신탁의 경우 금융기관에서 유언집행자 역할을 수행할 수 있어 상대적으로 집행의 투명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도 유언과 구분을 지을 수 있는 요소다.

대전에 사는 60대 초반의 A부부에게 20대 초반의 아들 2명이 있다고 하자. 현재 부부는 10억 원 이상의 자산을 가지고 있는 데다 안정적인 수입이 있어 걱정할 것이 없지만 아직 20대 초반밖에 안 된 아들들이 늘 고민거리다. 이에 부부는 유언장을 작성하기로 하고 변호사를 만나 상담을 했는데 유언으로는 5년을 넘지 않는 기간 내에서 상속 재산의 분할을 금지할 수 있을 뿐 그 이후까지 상속 재산에 대해 제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들은 고민 끝에 유언대용신탁을 결정했고 이를 통해 생전에는 자신들의 뜻대로 사용하다가 사후 자녀들이 35세가 될 때까지는 생활비, 학비, 주거비 등 필수 비용만 사용하도록 하고, 35세 이후에는 은행에 맡겼던 신탁원금을 찾아갈 수 있도록 했다. 더구나 이 경우 사업과 관련해 채권자들이 생겼을 때도 자녀들에게 상속될 재산에 대해서는 압류할 수 없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강성유 하나은행 신탁부 변호사는 “신탁이 유언장과 구별되는 차이점 중에 하나가 바로 이 같은 재무적 후견인역할을 금융기관 등에서 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부모가 사망한 후라도 미성년자인 자녀들이 재산에 대해 권리행사를 하려면 복잡한 절차가 필요한데 신탁을 활용하면 은행에서 재무적 후견인으로서 일괄적으로 절차를 진행해줘 그만큼 분쟁의 소지도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신탁은 자산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부동산 문제를 처리할 때도 효과적이다. 부모로부터 100억 원의 부동산을 갑자기 물려받게 된 B씨는 폐차장으로 쓰던 나대지를 개발하려다가 난관에 봉착했다. 기존 임차인에게 계약이 끝나 비워줄 것을 요구하자 그동안 세금 신고도 하지 않고 임대료를 현금으로 받아 온 사실을 세무당국에 신고하겠다고 어깃장을 놔 명도소송으로 번진 것인데 소송이 길어지면 자산이 대부분 부동산으로 돼 있어 상속세를 내지 못하게 될 상황에 봉착하게 된다. 여차 하면 다른 멀쩡한 상가를 과세당국에 대물로 납부해야 할지도 모르게 된 것이다. 만약 유언대용신탁을 통해 관리했다면 이런 곤란한 상황을 피할 수 있다.
[BIG STORY] 유언장과 신탁, 당신의 선택은
안도영 하나은행 신탁부 과장은 “신탁을 했다면 은행 명의로 임대 내역이나 부동산 관리가 되니까 임차인과의 분쟁이 사전에 차단될 수 있다”며 “더불어 폐차장 터에 건물을 설계해 신축하는 등의 서비스도 신탁을 통해 가능하다”고 전했다.


한용섭 기자 poem197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