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록지 않은 가업승계

한국은 한국전쟁을 겪은 뒤 폐허 속에서 산업을 다시 일으켜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다. 하지만 60여 년이 흐른 현재 신화의 주역인 경제 1, 2세대는 심각한 노령화를 겪고 있고, 엄청난 상속세 부담에 가업 상속을 주저하고 있다. 실타래처럼 꼬인 가업승계의 해법은 요원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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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산업화 역사를 감안하더라도 한국 기업들의 연조는 그리 길지 못하다. 100년 이상 기업 활동을 영위하고 있는 곳은 두산(1896년), 동화약품(1897년), 신한은행(1897년), 우리은행(1899년), 몽고식품(1905년), 광장(1911년), 보진재(1912년) 등 7개사에 불과하다.

일본과 독일의 경우 200년 이상 장수기업이 각각 3113개(43.2%), 1563개(21.7%)로 산업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며 다양한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는 면을 봤을 때 부럽기까지 할 정도다.
미국도 팬시카드로 유명한 홀마크, 세계적인 유통업체 월마트가 가족기업으로서 대를 이어 기업을 경영하고 있으며, 심벌즈 악기를 만드는 질디안 심벌즈라는 회사는 1623년 유럽에서 창업된 이후 미국으로 이민을 와서 현재 14대째 가족경영을 펼치고 있다.

우리나라에 장수기업이 없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혹자는 대기업의 문어발식 확장을 이야기할 것이고, 또 다른 혹자는 이른바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을 거쳐 대기업으로 성장해 가는 산업의 사다리 구조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지적할 것이다. 기업이 커 갈수록 세제 등 혜택이 줄어들어 기업 스스로 성장을 멈추게 하는 ‘피터팬 증후군’이 발생하고 있다는 볼멘소리다.


상속세 폭탄에 가업승계 빨간불
가업승계를 불편하게 하는 데는 세금이라는 걸림돌이 우선 지적되고 있다. 엄청난 세금 부담에 일부에서는 가업승계를 포기하는 일까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상속세 문제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사례가 바로 손톱깎기로 세계 시장을 제패했던 쓰리쎄븐이다. 이 회사는 1975년에 설립된 이후 30여 년간 손톱깎이 분야 한 우물만 파 일가를 이뤘지만 2008년 창업주인 김형규 회장이 세상을 떠난 뒤 150억 원의 상속세 폭탄을 맞게 됐다. 결국 상속세 마련을 위해 지분 매각에 나서게 되고, 전임 회장이 평생을 일군 회사의 경영권까지 넘기게 됐다.

우리나라에서 매출액 3000억 원 이상의 기업을 상속하게 될 경우 65%의 상속세를 내야 하는데 이 같은 상속세율은 전 세계에서도 최상급 수준이다. 물론 정부에서도 가업 상속 문제를 인지하고 장수기업들에 세제 혜택을 부여하고 있는데 문제는 너무나 엄격한 잣대로 실제 혜택을 볼 수 있는 기업들이 손에 꼽을 정도라는 것이다.

우선 매출액 3000억 원 미만의 기업이 대상이며, 공제 한도도 가업경영기간별(10년 이상 200억 원, 15년 이상 300억 원, 20년 이상 500억 원)로 상이하다. 피상속인 요건도 10년 이상 계속 가업 경영을 해야 하며, 10년 이상 계속 최대주주 지분율 50% 이상을 보유해야 한다.

공제 혜택 이후 의무이행 요건도 깐깐해 업종 전환에 제한이 있고, 상속지분이나 정규직 근로자를 일정 비율 이상 유지해야 하는 단서 조항이 있다. 업계에서는 실제로 정부의 가업상속공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기업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그림의 떡’ 수준이라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이 같은 업계의 불만은 명문장수기업 프로젝트가 추진되는 동력이 됐다. 한국중견기업연합회와 중소기업중앙회가 업계의 불만을 고려해 명문장수기업 확인제도를 법 개정을 통해 올해 상반기부터 도입해 시행할 계획을 세웠다. 세대를 이은 지속적인 존속 및 성장이 기대되는 중소·중견기업을 명문장수기업으로 확인해줘 가업상속공제 한도는 기존 500억 원에서 1000억 원, 증여세 특례 한도는 기존 100억 원에서 200억 원으로 확대한다는 구상이었다.

또 작년에 개정이 추진된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는 기업상속공제 세제 혜택 대상 기업을 매출액 3000억 원 미만에서 5000억 원 미만으로 확대하고, 30년 이상 경영한 기업에 대한 가업상속공제 한도를 500억 원에서 1000억 원으로 확대하는 쪽으로 법을 개정하기로 했는데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되며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담배 값과 주민세 인상, 연말정산에 대한 불만이 사회적 이슈로 부각된 이후 기업들에 대한 세제 혜택이 ‘부자감세’라는 역풍을 정면으로 맞게 된 것이다. 최수정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부자감세 논란이 거세지며 상속·증여세법 개정이 국회에서 무산됐는데 최근의 분위기를 봐서는 국회통과를 낙관하기 쉽지 않다”며 “가업승계에 대한 애로사항은 이해하지만 합의를 통해 적정한 세제 혜택 기준을 마련한다는 게 녹록하지 않다”고 밝혔다.

법 개정을 낙관하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현실적인 대비책을 제시하는 주장도 있다. 박상철 신한은행 미래설계센터 세무전문가는 “현실적으로 경영자가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은 채 갑자기 세상을 떠날 경우 상속세 부담은 엄청날 수밖에 없으며, 비상장 주식의 경우는 상속세 납부를 위한 현금화도 쉽지 않다”며 “주가가 저평가됐는데 주식을 현금화해 사전증여를 하는 방법으로 세금 부담을 미리미리 줄여 나갈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정부의 가업승계에 대한 과도한 상속세 부과가 오히려 세수 확보에는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김상훈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독일에서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가업승계에 상속세를 매겨서 한번에 걷는 것보다 해당 기업이 10년간 경영을 영위하며 낸 법인세와 근로자들의 소득세가 훨씬 많았다”며 “일부에서는 상속세를 낼 돈이 없어 기업을 팔아 버리거나 정리하는 경우도 있는데 마치 황금알을 얻기 위해 ‘황금알을 낳는 오리’의 배를 가르는 우를 정부에서 하는 것은 아닌지 곱씹어봐야 할 것이다”라고 꼬집었다.











몽고간장에서 성심당까지 대 잇는 장수기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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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중앙회 산하 가업승계지원센터는 매년 가업승계 사례집에 세대를 이어 회사를 키워온 우수 중소기업들을 소개하고 있다. 사례집에 나온 몇 곳의 기업을 소개해본다.

간장으로 유명한 몽고식품은 100년의 역사를 지닌 몇 안 되는 기업 중 하나다. 1905년 창립된 몽고식품은 창업주 고(故) 김홍구 회장과 2대 사업주 김만식 회장에 이어 3대 사업주인 김현승 대표이사가 회사를 맡고 있다. 김현승 대표이사는 특별한 승계 교육을 받진 않았지만 밑바닥부터 하나씩 배우며 10년의 시간을 거쳤고, 시작은 영업직이었다고 한다. 김 대표는 성공적인 승계 방법과 관련 외부 전문가의 조언을 받아 10~20년의 장기적인 계획으로 일을 추진하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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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설립돼 한국 내화 금고의 역사를 쓰고 있는 범일금고는 조방기 회장에 의해 창업됐다. 조방기 회장의 아들인 조계원 대표이사가 1984년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올랐는데 무려 입사 27년 만의 일이었다. 그만큼 승계 과정이 건실하고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국내 최초의 구두약인 말표 구두약을 선보인 말표산업은 지난 1955년 창립된 이후 2대에 걸쳐 오직 광택제라는 단일 업종에 승부를 걸고 있다. 창업주는 고 정두화 회장으로 군납업을 하는 태양사를 1955년에 세우면서 말표의 역사는 시작됐다. 1967년 태양사의 자체 기술로 구두약을 내놓는 데 성공했으며, 이후 말표라는 상표로 소비자들에게 소개돼 큰 인기를 끌었다. 1988년부터는 정연수 대표가 승계를 받아 기업을 일구고 있는데 이후 정 대표의 아들인 정홍교 씨에게 물려줘 3대를 이어갈 계획이다.

대전역 인근 58년 역사를 자랑하는 빵집 성심당은 직원 수만 280명, 연 매출이 270억 원에 달해 이미 동네 빵집 수준을 넘어섰다. 2011년에는 세계적인 맛 집 가이드 ‘미슐랭 가이드 그린’에 국내 빵집으로는 최초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이곳은 2대를 넘어 3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는데 1대 창업주 임길순 회장, 2대 임영진 대표에 이어 3대 임대혁 대리가 현재 제빵과 매장관리 등 운영에 필요한 전반적인 업무를 배워 가고 있다.


한용섭 기자 poem197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