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만든 고전들_열여섯 번째 조정래 ‘태백산맥’①

1989년 발간된 ‘태백산맥’은 분명 충격적이었다. 당시 이 소설이 충격적이었던 이유가 아무도 말하지 않았던 역사를 ‘소설’로 이야기한 것에 대한 놀라움이었지만, 지금에 와서 ‘빨치산’의 이야기로만 기억하는 것은 이 소설을 제대로 읽는 방법이 아닐 것이다. 벌교가 배경이지만, 단지 벌교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시절 한국의 처참한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서사다.
[GREAT TEACHING] 1948년 벌교, 그리고 대한민국
올 1월 한 모임에서 ‘대한민국을 만든 고전’에 대해 같이 생각해보자고 한 후 즉석에서 투표를 했다. 사전 모임에서는 후보군을 정하기 위해 조를 임의로 나누어서 5편의 작품을 써내게 했고 그런 다음 표를 많이 얻은 10편의 작품들을 추렸다. 누구나 짐작할 만한 작품들이었지만, 그렇게 10편을 모아놓고 보니 ‘대한민국’의 역사가 어떠했는지 한눈에 짐작이 가서 마음 한편이 저릿해졌다. ‘참으로 고단하게 살아왔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10편의 후보 작품들 중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은 작품이 ‘태백산맥’이었다. 1989년 발간된 조정래의 ‘태백산맥’은 다른 종류의 설문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온 적이 있다. 1994년 한 신문에서 언급하고 있는 바에 따르면 현역 작가와 평론가 50명이 뽑은 ‘한국의 최고 소설’, 독자가 뽑은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 1위, 대학생이 뽑은 ‘가장 감명 깊은 책’ 1위로 기록하고 있다.


말하지 못했던 역사, 알고 싶었던 서사
이 작품은 그간 알려진 것처럼 여순사건이 종결된 1948년부터 1953년 휴전 직후까지의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책이 발간된 직후 ‘태백산맥’에 대한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한 번도 말하지 않았던 대한민국 역사의 뇌관일지도 모른다는 짐작은 책이 발간된 직후 쏟아진 상이한 반응에서 나타났다. 수많은 독자들이 이 이야기에 열광하며 집어삼키듯 읽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이적성 여부를 문제 삼으며 금서 논란을 벌였고 급기야 고발 조치가 이루어졌다. ‘태백산맥’은 분명 충격적이었다. 그것이 누구이든, 또 어느 자리에 있든 말하지 않았던 역사에 대한 이야기였고, 또 이 이야기를 통해 숨결을 틔웠다고 말해지는 소설이었다. 그만큼 알고 싶었던 서사였다.

‘태백산맥’의 이야기는 벌교 지역을 배경으로 한다. 여순사건 이후 지리산으로 잠적한 반란군과 멸공단을 자임하며 이들을 척결하는 무리, 그리고 그 안에 놓인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다. 사건의 발단은 여순사건으로 시작됐지만 한국전쟁과 휴전 결정까지 이어지는 과정을 보면 이 이야기가 단지 벌교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가 아니라 실은 그 시절 한국의 처참한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서사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 속에 이념 대립이 있었다고 말하고자 한다면 굳이 ‘태백산맥’을 읽지 않아도 좋으리라. 이미 대한민국의 역사를 통해 ‘대립’이 ‘분단’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태백산맥’이 만들어내고 다듬어낸 길을 한 걸음 한 걸음 짚어가다 보면 그 안에 놓인 역사가 ‘이념 대립’의 역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책에서 가장 많이 회자된 “나라가 공산당을 만들고 지주가 빨갱이를 만든다”라는 말조차 앞뒤 사정을 따져보면 오히려 토지개혁을 앞둔 농민들의 분통이 포착되는 말일 뿐이다. 이 말의 주인공 문 서방은 일반적인 소작인이다. 사투리가 섞여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자면 ‘뽈갱이와 무관한’ 매일매일 땅만 바라보면 사는 농군이다. 그런데 토지개혁을 앞두고 몇몇 지주들이 보이는 반응을 보노라면 이런 생각이 든다고 토로한다. 어느 지주는 벌써 친척들 이름으로 명의 변경을 시도해 소작인들에게 돌아갈 토지의 지분을 줄였으며, 또 어느 지주는 토지개혁을 피하기 위해 멀쩡한 논을 염전으로 만들려다 적발되기도 했다. 일본인들이 한 짓이 아니다. 같은 민족이라고 ‘만세’를 같이 불렀던 사람들이 한 행동이다. 예산 착복, 갈취, 축재는 빈번하다 못해 일상적인 일이 돼버렸다. 일제강점기 지주들은 해방 이후에도 여전히 지주였고 소작인들은 여전히 소작인이었다. 사정이 더 나아지지도 않았으며 적나라한 배신과 부정으로 분노가 농도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그런데 이 속에 ‘벌교’만 보이는 게 아니라 1948년 대한민국의 또 다른 얼굴이 드러나고 있다.

그럼에도 이 참상을 엿보기 전에 이 속에 그 삶을 견디게 해준 인물들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 두어도 좋을 듯하다. 우선 벌교 지역의 무당, 소화를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 그녀는 열일곱에 어머니 월녀로부터 대물림을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로 잠입하려는 정하섭을 도우면서 그를 사랑하게 된다. 정하섭은 중학 시절 굿하는 소화의 모습을 본 뒤 그녀를 마음에 두고 있었던 인물이다. 그러던 차에 소화와 하섭은 인연을 맺게 된다. 여기까지는 다른 사랑과 그리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이렇게 인연을 맺은 후 소화가 이 인연을 이어가는 과정은 예사스럽지 않다. 그녀는 뱃속의 아이조차 신령을 모시듯 숭엄하게 지켜낸다. 실은 그녀가 사랑한 정하섭까지도 소화는 신령님 모시듯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켜낸다. 소화에게 이념이나 명분은 없지만, 믿음이 있다. 그녀에게 이념은 사람을 믿는 것, 지켜내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무당집에서 쫓겨나 산속으로까지 들어가게 되지만 그렇게 만든 것이 투철한 이념이 아니라 지켜야 할 사람들을 지켜내기 위한 숭고함이다. 어느 누구도 소화처럼 하지 못하지만 소화가 해내는 모습은 ‘있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대한민국의 역사, 그 속에서 빛나는 인물들
또 이 책의 주인공 김범우의 아버지 김사용도 마찬가지다. 소설 1부에서 염상진이나 김범우가 문제적 인물로 부각되지 않는 데 비해 김사용은 나오는 대목마다 감동이요 교훈이다. 아들 김범우가 좌익세력 소탕이 절차를 무시한 채 잔혹하게 처리되는 것을 막으려다가 결국 감옥에 갇히게 된다. 김범우는 매일 아침 보자기에 싼 작은 밥상을 받는다. 그 밥은 예상과 달리 늙은 아버지가 매일 들고 오는 밥상이다. 마을의 오래된 지주이자 양반이지만 체통을 생각하지 않고 밥상을 직접 나른다. 그리고 아들이 그 밥을 먹고 나면 빈 쟁반을 다시 들고 집에 오기를 반복한다. 아들 김범우를 키워내는 아버지 김사용의 마음이 전쟁의 한복판에서 쩡쩡하게 빛난다.

그뿐이 아니다. 염상진의 청년 시절 일이다(염상진은 후에 빨치산 대장으로 활동하는 이 책의 또 다른 주인공이기도 하다). 하루는 그가 김사용을 찾아와서 땅을 빌려달라고 한다. 소작 붙이는 땅이 아니라 박토로 말이다. 그 대신 박토를 개간해서 돌려드리겠다고 한다. 이때 김사용은 흔쾌히 수락하며 같이 땅을 보려가자고 하는데, 염상진 앞에 드러난 땅은 박토가 아니다. 김사용이 가난한 청년에게 준 것은 박토가 아니라 제대로 농사지을 기회의 땅이었다. 염상진이 김사용을 ‘마음 속 어른’으로 지켜내려고 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 김사용은 지주였지만 소작인과 대립하지 않았던 지주였고, 양반이지만 명령하지 않았던 양반이었다. 그가 격동의 대한민국 역사 한복판에서 보여준 모습은 청년들의 마음 속 어른이었다.

대한민국의 역사, 그 속에 놓여 있는 빛나는 인물들이 많았다. 저마다의 빛으로 반짝였던 사람들. 적어도 자신들이 믿고 의지했던 사람들을 등지지 않았던 사람들. ‘태백산맥’의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되리라.


박숙자 서강대 인문과학연구소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