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식 시니어 어치브먼트 대표

‘100세 시대 은퇴자들의 참여마당, 시니어 어치브먼트(Senior Achievement, SA)’. 작년 10월 창립총회를 열고 출범한 이 단체의 대표는 강경식(79) 전 경제부총리다. 1980년대 재무부 장관, 대통령 비서실장을 거쳐 3선 국회의원을 지냈고 1997년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을 맡아 외환위기의 파고를 거쳐온 그다. 우리 나이로 팔순을 맞이한 나이에 ‘100세 시대’를 맞이할 오늘의 ‘은퇴자’를 위해 크고 작은 활동을 벌이고 있는 그를 만났다.
[ADVICE FOR SENIOR] ‘함께 또 같이’ 시니어의 성공이 한국의 성공
사회의 속도에 적응하지 못해 강의 상류로부터 떠밀려 하류에 쌓인 모래섬처럼 몰려드는 노년의 모습을 지칭한 ‘퇴적 공간’, 오근재 전 홍익대 교수가 펴낸 ‘퇴적 공간’은 우리나라의 퇴직한 사람들이 마치 효용을 다한 쓰레기처럼 퇴적된 공간에 머문다는 내용을 사회학적으로 접근한 책이다. 은퇴자들의 평생에 걸친 지식과 경험이 퇴직하는 순간 용도 폐기가 돼 사회에서 어떠한 리소스로도 활용되지 못한다는 것은 사회 전체의 손해임이 자명하다.

서울 강남구 동부금융센터빌딩, 팔순을 맞이한 나이에도 ‘100세 시대’를 말하는 전 부총리이자 현 SA 강경식 대표가 은퇴자들을 위한 열린 공간 시니어 어치브먼트를 발족한 계기도 이와 같은 고민의 연장선상에서 시작했다. “불과 1960년대만 해도 평균 수명이 50세 전후였는데 반세기 만에 80세로 수명이 연장됐으며 곧 100세 시대를 목전에 둔 시대가 됐다”면서 그는 “100세 시대를 앞두고 있음에도 우리 사회의 모든 제도와 사고는 정년 60세인 ‘환갑 시대’에 맞춰져 있는 것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사회 전반에 걸친 ‘발상의 전환’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라며 큰 밑그림을 그려보였다.


국가 경제발전의 수장으로 공직에 평생 몸담고 계시다가 공직에서 물러나신 뒤에도 대외 활동과 강연, 세미나 등으로 늘 바쁘게 보내고 계십니다.
“저는 은퇴를 한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습니다. 죽을 때까지 현역으로 지내야겠다는 생각을 늘 갖고 있습니다. 공직에 있을 때나 지금이나 활동하는 내용만 달라졌지 은퇴를 해 일선에서 물러난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습니다.”


은퇴 이후 노년의 삶의 질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는 요즘 SA를 발족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저 또한 은퇴 이후 노년의 삶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에서 시작한 것이 계기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나이 오십부터 노인 행세를 하던 때였지요. 요즘에는 환갑잔치도 안 하는 분위기이지 않습니까. 50년 사이에 급격한 변화를 맞이한 것이지요. 정년퇴직을 하고 나면 평생 일한 시간만큼 죽기 전까지 시간이 비슷하게 남아 있어요. 그 긴 시간 동안 저축해 놓은 돈으로 살아간다는 것도 불가능하고 효심이 강한 자식에게도 자기 먹고 살기 바쁜데 부모 봉양을 꿈꿔서는 안 됩니다. 국가에서 세금만으로 급속하게 빨라지는 고령화 문제를 해결해줄 수도 없는 노릇이지요.”


그렇다면 SA는 어떤 조직인가요.
“한마디로 표현하면 ‘참여마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목마른 사람이 샘을 파는 것처럼 우선 이러한 은퇴 이후 삶에 대해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여보자는 생각에서 출발했어요. 자기 생각을 토로할 수 있는 하나의 장을 만들고 100세 시대에는 이래야 한다는 얘기들이 나오면 여기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여러 일들을 해보는 개방형 장을 만드는 하나의 플랫폼입니다. 여러 사람들의 생각이 모이면 그 안에서 길을 찾고 뜻이 모아지게 돼 있는 것이죠.”


2002년부터 해오신 청소년 경제 교육, JA(Junior Achievement)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오셨다고요.
“미국 뉴욕을 방문했을 때 어린 아이들을 위한 경제 교육 프로그램이 활성화 된 것을 보고 우리나라에도 들여와야겠다는 생각에서 도입한 제도입니다. 어릴 때부터 받은 경제 교육이 근간이 돼 성인으로 성장한 뒤 어떤 일을 하더라도 성공적인 삶에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것을 알기에 바로 시작했습니다. 아주 성공적으로 안착해서 현재는 전국적으로 13만 명 어린이들이 학교에서 이 프로그램을 교육받았고 7000여 명의 대학생이 자원봉사자로 참여했습니다. JA의 모토가 ‘청소년의 성공이 우리 모두의 성공이다’인데 여기서 착안해서 ‘시니어의 성공이 대한민국의 성공이다’라고 따왔습니다.”


SA가 ‘참여마당’이라는 콘셉트이고,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개방성이 신선했습니다.
“맞습니다. 이 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가입할 수 있습니다. 연령 제한도 없고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마음 맞는 이들과 함께 토론하고 모임을 만들어 활동하는 것입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사회적 교육협동조합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미국 매사추세츠에 있는 한 학교는 네 살 먹은 아이부터 열아홉 살 아이들까지 한 교실에 모여 다 같이 다닙니다. 선생님 강의도 없고 학년도 나뉘어 있지 않아요. 그 대신 나이와 상관없이 서로서로 배우고 비슷한 관심사를 찾아 그것을 열정적으로 파고들면서 지식보다 더 큰 것을 배운다고 합니다. 이런 교육의 새로운 발상이 얼마나 큰 가치를 만들어내는지 알고 있기에 SA의 참여마당에 거는 기대도 큽니다. 다양한 의견이 개진되고 그 안에서 오랜 시간 동안 지속적인 발전이 가능한 활동이 나오리라 믿습니다. ‘톱다운(top down) 방식’이 아니라 ‘바텀 업(bottom up) 방식’으로 자유로운 의견이 오가고 수렴이 되도록 진행하고 있습니다.”


SA의 모토가 ‘Alone Together(홀로 또 같이)’입니다.
“시니어들이 젊은이들이나 나라에 의존하자는 생각을 버리자는 의미입니다. 인생은 홀로서기를 기본으로 하자는 거지요. 투게더는 ‘더불어 사는 세상’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우리 세대는 집에서 잠만 자고 나와 하루 종일 직장에서 일만 하며 평생을 지냈잖아요. 그러다 정년퇴직 후 할 게 없습니다. 할 줄 아는 것도 없고요. 그래서 우리 세대가 함께 힘을 합쳐보자는 의미입니다. 그동안 일했던 것, 관심사 등을 떠올려 지역사회, 시민사회 등 다양한 층위에서 우리 몫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일도 물론 연장해서 할 수 있는 것도 있거니와 취미나 여행, 봉사 활동도 함께 어울려 하면 훨씬 가치가 있다는 것에서 착안했습니다.”


그렇다면 SA의 구체적 활동에는 무엇이 있나요.
“누구든 의견을 제안하고 개진할 수 있어요. 제가 내놓은 의견은 도시에서도 상자텃밭을 만들어 어린 아이들과 시니어들이 함께 가꾸는 아이디어를 구상 중입니다. 요즘 도시에서도 작은 자투리 공간을 활용해 베란다나 옥상에 식물들을 키울 수 있잖아요. 요즘 어린이들이 과도하게 공부만 하느라 놓칠 수 있는 정서적 교감이나 인성교육을 시니어들이 함께 참여하면서 효과가 더 높아지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다른 준비위원은 은퇴 전 전공을 살려 창업이나 벤처기업의 출발을 도와주는 어드바이저 역할을 생각 중입니다. 중소기업 컨설팅을 돕기도 하고 결손아동에게 멘토 활동을 하는 등 시니어들이 사회적으로 보탬이 될 수 있는 아이디어들이 아주 다양합니다. 또한 매주 수요일 아침 7시부터 9시까지 조찬 모임을 하며 사회 현안에 대해 토론하고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ADVICE FOR SENIOR] ‘함께 또 같이’ 시니어의 성공이 한국의 성공
노인 빈곤율이 50%를 육박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습니다. 노인 복지정책을 비롯해 타개할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우선 사회 전체의 틀이 바뀌지 않는 한 불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현재 우리 사회는 어릴 때 교육을 받고 그것을 기본으로 성인이 돼서 사회에서 일을 하고 은퇴 이후 일 없이 살다가 죽는 3등분된 인생입니다. 이 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 3가지로 나뉜 인생 전반을 오늘을 사는 하루 안에 다 넣는다고 합시다. 배우고 일하면서 쉬는 모든 행위를 하루 안에 평생에 걸쳐 하는 겁니다. 그러려면 교육, 사회 모든 제도가 개방적 시스템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일류대를 나와서 평생 한 직업을 갖고 살아가는 것은 이제 옛이야기가 된 것입니다. 익숙하고 당연한 것들을 달리 생각할 줄 아는 접근법이 필요하지요. 그런 움직임이 사회 전반에서 일어나야 노인 빈곤을 비롯한 여러 문제들이 사라질 것입니다. 100세 시대에 수명과 건강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방식, 일하는 방식에 대한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청년실업률은 작년 10%에 육박했고 저성장으로 일자리는 여전히 부족합니다. 복지와 일자리 등을 놓고 자칫 노년층을 포함한 기성세대와 청년층 간 세대 갈등이 빚어질 수도 있는 상황인데 이에 대한 해법은 있을까요.
“우리가 문제를 해결할 때 가장 피해야 하는 것은 바로 제로섬입니다. 하나를 놓고 여러 편이 싸우자는 발상을 피해야 합니다. 구글이나 페이스북, 애플 기업이 어떻게 생겨났습니까. 우리도 이런 식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자꾸 받아들이고 새로운 걸 만들 생각을 해야 합니다. 접근 방식을 달리하면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는 겁니다. 노인 문제도 이런 식의 접근을 통해 다 같이 발전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은퇴하는 분들을 위해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대신 어려운 문제는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과 함께 풀어나가자는 것이지요. SA에 가입하면 됩니다. (웃음) 소통하면서 함께 가치 있는 일을 생각해내고 활동하면서 우리의 소임을 다할 수 있습니다.”


기획 박진영 기자│글 이지혜 객원기자│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