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상속인이 사망한 후 상속인들 간에 재산을 두고 분쟁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 상속에 관한 분쟁이 소송으로까지 번진다면 유족에게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가 된다. 피상속인이 증여나 유증을 할 때 자신의 뜻을 반영하되, 상속인들의 유류분을 침해하지 않도록 배려한다면 보다 원만한 상속이 이뤄질 수 있다.
[MONEY&LAW] 유류분 침해 없는 깨끗한 상속을 위하여
피상속인의 사망으로 상속이 개시되면 일정한 범위의 상속인이 피상속인의 재산 중 일정한 비율을 확보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되는데 이를 유류분권이라고 한다. 유류분권은 우리나라에서 전통적으로 인정돼온 제도는 아니며 1977년 민법 개정 시 도입된 제도다. 유류분이 경제적 능력이 없는 배우자나 미성숙한 자녀들의 부양을 위해서 필요하고, 피상속인의 재산은 오직 피상속인의 것만이 아니라 일종의 가산으로 볼 수 있다는 관념이 유류분 제도가 도입된 배경이라고도 본다. 그러나 민법에 따르면 유류분권을 행사하기 위한 요건으로 유류분권자가 부양을 요하는 상태에 있는지 여부나 상속재산의 형성에 유류분권자가 기여한 바가 있는지 여부 등은 유류분의 침해 여부나 반환 범위를 정하는 데 있어서 고려요소가 아니므로 사안에 따라서는 특정 상속인에게 유류분을 인정하는 것이 정의와 형평의 관념에 반하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 다음과 같은 사례를 생각해보자.


부양 의무 저버린 상속인, 유류분 청구할 수 있을까
슬하에 남매를 둔 A씨는 자녀가 결혼해 분가한 후 부인과 사별했다. 그 후 A씨는 지병이 악화돼 혼자서는 생활할 수 없게 됐다. 외국에 유학을 갔다가 그곳에서 취업해 정착하기를 희망하는 아들 부부는 A씨를 모실 수 없다고 했다. 결국 딸 부부가 A씨를 모시게 됐다. 아들은 딸에게 A씨의 생활비와 치료비 일부를 분담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딸에게 미안한 A씨는 유일한 재산인 고향의 임야를 딸에게 증여했다. A씨는 딸 부부와 10여 년 이상 생활하다가 사망했다. 그러자 A씨의 아들은 A씨의 딸이 A씨 생전에 증여받은 부동산의 일부를 나누어 달라고 요구했다. A씨 아들의 요구는 법적으로 정당한가.

A씨의 아들은 A씨의 딸과 함께 1순위 공동상속인으로서 유류분권을 가진다. 그리고 유류분 산정의 대상이 되는 재산에는 A씨가 생전에 딸에게 증여한 재산도 포함된다. A씨의 아들과 딸은 균등한 법정상속분에 의해 상속받는다. 따라서 아들의 법정상속분은 2분의 1이며 유류분 비율은 법정상속분의 2분의 1이므로 아들은 딸이 증여받은 임야의 4분의 1에 대해 유류분권을 주장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병든 아버지를 외면하고 A씨의 딸에게 아버지의 부양을 떠넘긴 A씨의 아들에게 유류분권을 행사해 A씨의 딸이 생전에 증여받은 임야의 일부를 가져가게 하는 것은 매우 부당하다는 느낌을 준다. 그러나 민법상 A씨 아들의 유류분권을 박탈하거나 제한하는 직접적인 규정은 없다. 다만 하급심 판례 중에는 이와 비슷한 사례에서 피상속인에 대한 부양 의무를 저버린 상속인의 유류분청구권의 행사를 신의칙(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한다는 이유로 허용하지 않은 사례가 있다. 따라서 A씨의 딸로서는 병든 아버지를 외면하고 부양 의무를 저버린 A씨 아들의 유류분권 행사가 신의칙에 반한다는 이유로 A씨 아들의 유류분반환청구를 다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신의칙의 법리에 의한 권리의 제한은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 판례이므로 단순히 피상속인과 상속인의 사이가 불화로 소원하다거나 상속인이 부모인 피상속인의 기대와 뜻에 맞지 않는 생활을 하고 있다는 등의 사정만으로는 신의칙을 적용해 유류분권이 제한되지는 않는다. 또한 이 사례에서 A씨의 딸이 증여받은 임야가 증여 당시에 이미 재산적 가치가 매우 커서 A씨의 딸이 아버지를 모신 것을 감안하더라도 이를 딸에게 모두 귀속시키는 것이 형평에 지나치게 반한다면 신의칙에 의한 유류분권 행사 제한이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MONEY&LAW] 유류분 침해 없는 깨끗한 상속을 위하여
피상속인, 생전에 유류분 고려한 증여해야
앞과 같이 신의칙에 의해 상속인의 유류분권 행사를 제한하는 것이 정당화되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상속인은 적어도 유류분 비율만큼 유류분권을 행사할 수 있으므로 피상속인의 특정 상속인 또는 제3자에 대한 증여나 유증이 나머지 상속인의 유류분권을 침해하는 경우에는 피상속인의 사후에 유산을 둘러싼 법적 분쟁이 생길 수 있다. 따라서 피상속인은 생전에 상속인들의 유류분을 고려해 증여나 유증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례 하나를 더 살펴보자. 부인과 사별한 B씨는 두 딸이 결혼한 후 이혼녀 C씨와 재혼해 10여 년 이상을 함께 살고 있는데 췌장암이 발병해 앞으로 1년 정도만 더 살 수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C씨는 B씨가 사망한 후에도 B씨와 함께 살고 있는 집을 상속받기를 원하고 있고 적어도 현재 살고 있는 집에서 여생 동안 거주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C씨에게는 전남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가 있고, B씨의 두 딸과 재혼한 C씨의 사이는 좋지 않다. B씨가 C씨의 희망대로 현재 거주 중인 집을 C씨에게 전부 증여하게 되면 B씨의 딸들은 B씨의 사망 후에 C씨를 상대로 유류분 반환 청구를 해 B씨의 딸들과 C씨 간에 분쟁이 발생할 수 있다. 그리고 B씨의 딸들과 C씨는 법적으로 혈족이 아니므로 C씨가 사망하면 C씨의 재산은 전부 C씨와 그 전남편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가 상속하게 되는데, 이는 재산 중 일부라도 자신의 딸들에게 물려주었으면 하는 B씨의 바람과 맞지 않는다.

그래서 B씨는 C씨에게 거주하는 집을 유증하되 C씨가 사망 시 집의 일정 지분을 B씨의 딸들에게 유증하는 것을 조건으로 삼는 것을 고려했으나, C씨가 사망하면 C씨와 전남편 사이에서 난 자녀와 B씨의 딸들 간에 분쟁이 생길 우려가 있는 데다가 C씨가 B씨의 딸들에게 집의 일정 지분을 유증하기로 했다가 C씨의 의사에 따라 얼마든지 이를 바꿀 수 있다는 문제가 있었다. 결국 B씨는 거주하는 집 중 딸들의 유류분을 넘어서는 비율의 지분을 두 딸에게 유증하고 나머지는 C씨에게 유증하되 B씨의 딸들이 C씨의 여생 동안 주택을 사용수익하게 하도록 하는 내용의 유증을 했다.

B씨가 최종적으로 결정한 방법은 C씨의 입장이나 B씨 딸들의 입장에서는 다소 불만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자신의 뜻과 C씨의 희망과 두 딸의 입장을 고루 반영한 것이며, 특히 B씨 딸들의 유류분이 침해되지 않아 B씨 딸들과 C씨 간에 소송이 제기될 가능성이 매우 낮으므로 꽤 현명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피상속인이 사망한 후 상속인들 간에 상속재산을 두고 분쟁이 생기면 유족에게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남길 수 있다. 따라서 피상속인이 증여나 유증을 할 때 자신의 뜻을 반영하되 상속인들의 유류분을 침해하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명호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