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 시골에 내려가 ‘유유자적’ 살아볼까 혹은 ‘농사나’ 지어볼까 생각한다면 먼저 꿈을 깨시라. 홀로서기 하기에 더 없이 좋지만, 시골은 결코 로맨틱하지만은 않으니까.
[HOW TO ENJOY LIFE] 귀농·귀촌을 꿈꾸는 이들에게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
도시 직장인들 중에 은퇴 후 시골에 내려가 살겠다는 분들을 자주 보게 된다. 얼마 전에 대기업 임원을 대상으로 강의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스마트폰과 관련한 연구·개발(R&D)로 치열한 삶을 보내고 있는 한 분이 “나는 10년 후 서울을 떠나 한적한 농촌 생활을 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동료들이 “와” 하며 부러움의 탄성을 질렀다.

일부만의 생각이 아닌 것이 실제 설문조사를 한 통계 자료를 봐도 적게는 20%, 많게는 50%까지 귀농, 귀촌을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여기서 귀농은 농업 활동까지 하는 것을 이야기하고, 귀촌은 농업 활동은 하지 않고 시골에서 삶을 사는 것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달아오르고 있는 탈도시 감성에 찬물을 끼얹는 사람이 있으니 일본 작가, 마루야마 겐지다. 문단에서 상을 주어도 “명예는 작가 정신을 병들게 한다”며 거부하는 칠순의 까칠한 작가다. 이분이 쓴 에세이 제목도 ‘나는 길들지 않는다’,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이니 대충 어떤 사람인지 느낌이 온다. 이런 작가가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라는 책을 내서 공격적으로 도시인의 시골행을 막고 있는데, 본인이 실제 47년째 시골 생활을 하고 있다 보니 그냥 흘려들어지지가 않는다.


마루야마 겐지의 도시 탈출 반대론과 그 이면
이 책을 읽다 보면 도시인의 시골 생활을 너무 혹독하게 그려서 과장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자기만 시골 생활의 재미를 느끼려고 타인들이 못 내려오게 막는 것은 아닌지 의심마저 든다. 그러나 실제 시골 생활을 하는 분들이 이 책을 읽고 나서는 대부분의 내용이 일치한다는 반응이다. 귀촌 생활을 하고 있는 방송인 허수경 씨를 프로그램 녹화 때 만나 이 책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내가 쓰고픈 이야기를 이 작가가 다 써주었다”라고 평할 정도였다.

이 책의 내용을 살펴보면, 기존에 수백 년을 함께 살아온 주민들과 한 가족으로 섞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므로 항상 자신은 이방인이란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다. 또 아파도 금방 병원 가기가 쉽지 않고, 편의시설이 부족하기에 혼자서 해야 하는 기본적인 생활과 관련된 일들이 굉장히 많아지는데 하루 종일 일을 해도 부족하다고 한다. 그리고 농사나 지을까 하는 낭만적인 생각으로 귀농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은데, 농사란 모름지기 농사로 잔뼈가 굵어진 사람도 하기 어려운 일인 것을 웬 낭만 타령이냐는 독설이다. “농촌 생활이 그렇게 쉽고 좋다면 왜 젊은 사람이 농촌을 떠나겠느냐”고 작가는 이야기한다. 어렵게 고생해 농사가 잘 돼도 그 수확물을 내다 파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라는 것이다.

허 씨도 처음에는 귀농을 해 귤 농사를 지었는데 다행히 대풍이었지만 파는 것이 너무 어려워 지금은 귀농에서 귀촌으로 전환한 상태라 이야기해주었다. “돈은 서울에서 벌고 삶은 제주도에서 산다”라며 심플하게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정의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귀촌 생각이 없어진다. 필자도 노년이 되면 막연하게 바닷가에 집을 짓고 살 생각을 했는데 이 책을 읽고 ‘도시에 붙어 있어야겠구나’ 하고 생각을 바꾸었다.

귀촌을 하려는 마음엔 삭막한 도시 생활을 떠나 자연으로 돌아가려는 마음이 존재한다. 내 영혼을 자유롭게 만들고 싶고 또 나를 따뜻하게 반겨줄 자연과 이웃이 있는 그곳을 기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 기대는 현실이 아닌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이렇게 좋지 않은 시골 생활을 마루야마 작가는 왜 하고 있는 것일까. 그의 이야기는 고생을 통해 홀로서기를 하고 싶다면 시골 생활을 추천한다는 요지다. 도시가 주는 허상의 포장에서 벗어나, 자연 앞에 벌거벗겨진 채 자신의 한계와 약함을 강하게 느낄 수 있기에, 시골이 도시보다 홀로서기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그 한계 안에서 역설적으로 자연의 한 부분인 나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인데, 이 책은 도시 탈출을 막는 내용 같지만 사실은 어떻게 인생을 살 것인가 하는 철학적 질문을 던져준다.


노년에 어떤 놀이로 홀로서기 할 것인가
저자는 은퇴하고 나서 무엇을 할까 고민하는 것은 홀로서기가 전혀 되지 않은 삶이라 주장한다. 책의 내용을 빌리자면 은퇴하고 나서 여유롭게 문화 아카데미도 다니고 여행도 다니면서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살 것인지 고민하는 인생은 전혀 홀로서기 준비가 돼 있지 않은 삶이란 얘기. 은퇴를 했을 때 이미 준비해놓은, 내가 하고 싶은 뜨거운 무엇인가가 명확하게 존재해야 홀로서기가 준비된 삶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에 그것이 귀농이고 귀촌이면 더없이 좋다는 결론이다. 더불어 정말 귀농을 생각한다면 틈틈이 시골에 내려가 그 생활에도 익숙해지고 농사에도 제대로 참가해보며 그렇게 10년을 준비한 후 내려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여기가 답답하다는 이유로, 막연히 좋아 보이는 저곳으로 무작정 떠나는 것은 불행의 시작이라고도 덧붙인다.

남자의 평균 수명도 80세에 가까워지고 있고 여성은 이미 85세 근처까지 가 있다. 변화의 추이를 볼 때 90세 넘어 산다는 것이 특별한 사람만의 상황은 아니다. 인생의 후반전에 있어 홀로서기가 더 중요해지는 이유다.

조기 은퇴를 해서 멋진 석양을 볼 수 있는 아파트 발코니에서의 칵테일 한 잔, 근사해 보인다. 실제 미국에서 조기 은퇴 붐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삶이 행복하다는 과학적 근거는 전혀 없다. 앞의 이미지는 미국의 부동산개발사들이 마케팅을 위해 만든 것이었다. 매일 해가 지는 것을 보며 마시는 칵테일이 무에 그리 맛이 있겠는가.

우리의 생각은 항상 쉬고 싶지만 진짜 아이러니한 게 우리 감성은 어렵지만 무언가에 몰입할 때 만족감을 느낀다고 한다. 그래서 경제적 홀로서기와 더불어 노년에 어떤 놀이로 홀로서기를 할 것인가는 곧 내가 누구인가 하는 정체성의 문제와 직결된다. 놀이가 즐거우면 돈이 좀 적어도 더 행복할 수 있다. 무엇을 하며 놀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글·사진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