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공학자 데니스 홍 미국 UCLA 기계공학과 교수

세계적인 로봇공학자에게 좀 미안한 말이지만, 데니스 홍 미국 캘리포니아대 로스앤젤레스캠퍼스(UCLA) 기계공학과 교수를 대면한 첫 느낌은 다소 개구지다는 것이었다. 인터뷰 도중 기자의 휴대전화 녹음기에 익살스러운 멘트를 남기는가 하면 사진 촬영을 하자는 말에 “도망가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식이다. 카메라 앞에서는 또 어떤가. 소림사 무술 흉내부터 각종 표정 연기까지 수준급 포즈로 보는 이들을 놀라게 했다. 방한 전 밀린 일을 하느라 일주일째 잠을 못 잤다는 그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아무렴 어떠랴. 이런 아이 같은 천진함과 엉뚱함이 오늘날 그를 ‘로봇계의 레오나르도’로 만든 원동력인 것을.
[CREATOR] “어른들의 눈은 왜 아이처럼 반짝이지 않죠?”
아주 어릴 적 간직했던 꿈을 실현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꿈을 이뤘다 하더라도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한국계 미국인 데니스 홍(한국 이름 홍원서, 43) UCLA 기계공학과 교수는 초등학교 때 공상과학 영화 ‘스타워즈’에 빠진 뒤 ‘로봇을 만드는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실제로 그 꿈을 한시도 잊지 않고 달려와 4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해당 분야 최정상에 우뚝 섰다.

그는 한국항공우주학의 태두인 홍용식 박사의 차남이다. 미국에서 세 살 때 한국으로 돌아와 고려대 3학년에 재학 중 다시 미국으로 유학 가 퍼듀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4년 버지니아공대에 글로벌 로봇 연구의 메카인 ‘로멜라’를 설립해 미국 최초의 휴머노이드(인간의 신체와 유사한 모습을 갖춘 로봇) ‘찰리’와 ‘다윈-OP’ 등을 잇달아 개발했다. 2009년 세계 최초로 선을 보인 시각장애인용 로봇자동차는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당시 미국 일간지 워싱턴포스트(WP)는 이를 1면에 ‘달 착륙에 버금가는 성과’라고 대서특필하기도 했다. 이러한 업적 이면에는 ‘인간 중심’이라는 그의 독특한 철학과 비전이 자리하고 있다.

지난 1월 서울신라호텔에서 열린 ‘서울인문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홍 교수와 만났다. 속사포 랩을 하듯 답변을 ‘퍼부어내는’ 그와의 인터뷰는 여러 측면에서 쉽지 않았지만, 그의 메시지는 평소 창조적 사고와 거리가 있는(?) 기자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요즘 ‘인문학’을 이야기하는 과학자들이 낯설지 않습니다. 데니스 홍 교수님께서도 평소 인문학에 조예가 깊으신가요.
“아뇨, 나는 인문학이 뭔지 잘 모릅니다. 따로 공부를 한 것도 아니고 책을 읽은 적도 없어요. 다만, 내가 로봇을 만드는 일들은 모두 인류를 위한 것이고, 인간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을 최고의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강연에서 이야기한 내용 역시 ‘기술이 어떻게 사람을 이롭게 하느냐’에 관한 것이지요. 학문으로서의 인문학이 아니라 공학자로서의 펀더멘털이 인문학이라는 겁니다. 그게 내가 이곳(서울인문포럼)에 초청된 이유겠지요.”


그러한 가치관을 갖게 된 계기가 있습니까.
“나한테는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영화 ‘스타워즈’를 보며 로봇공학자의 꿈을 키울 때부터 사람들의 생명을 살리고 인류를 구원하는 로봇을 만들고 싶었으니까요. 결정적으로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자동차 ‘데이비드’를 탄생시켰을 때 헤드셋을 쓴 시각장애인이 직접 컴퓨터의 지시를 받아 운전을 한 뒤 감격에 겨워 함박웃음을 짓는 모습을 보고 확신했습니다. ‘내가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구나’ 하고요. 개인적으로 ‘홍익인간(弘益人間)’이라는 말을 좋아하는데, 우리나라 건국이념만큼 멋있는 말을 본 적이 없어요. 사람을 위한 따뜻한 기술을 개발하는 것, 이건 모든 과학자들이 가지고 있어야 할 소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걸 잊어버린 채 돈벌이를 위해 기술을 개발하는 사람들이 많은 게 문제지요.”


휴머노이드의 개발은 세계적으로 엄청난 성과입니다. 하지만 로봇이 반드시 인간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만은 아니죠. 로봇을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서 갈등도 많았을 것 같은데요.
“우리가 개발하는 로봇이 의도하지 않은 방법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가령, 재난 방지를 위해 만든 ‘사파이어 로봇’에는 소화기를 조작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이것을 계량해 소화기 대신 총을 넣어 전쟁에 사용합니다. 사람을 이롭게 하기 위해 만든 로봇인데, 원하지 않아도 사람을 해치는 데 사용될 수 있다는 거죠. 하지만 분명한 건 내가 아니라도 누군가는 만들 것이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조금이라도 내가 옳은 방향으로 끌고 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못을 박는 도구로 망치를 만들었지만 누군가 이것으로 사람을 때려죽였다고 합시다. 망치를 만든 사람의 잘못이기보다는 망치를 다른 방법으로 사용한 사람의 잘못이지요. 많은 과학자들이 이 점으로 인해 괴로워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이 개발한 상대성 이론은 훗날 핵폭탄 만드는 데 이용됐고, 노벨의 다이너마이트는 사람을 죽이는 데 쓰이기도 했습니다. 그들 모두 괴로워했죠. 하지만 노벨은 번 돈을 사회에 환원해 노벨평화상을 만들었고, 아인슈타인은 반핵운동에 나섰죠. 나는 돈이 많은 사람도 아니고 훌륭한 사람도 아니니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이 많습니다.(웃음) 공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우리가 개발하는 기술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고려해보는 자세, 인간과 로봇이 공존하는 행복한 세상에 대해 가르쳐주고 싶어요.”
[CREATOR] “어른들의 눈은 왜 아이처럼 반짝이지 않죠?”
로봇으로 인해 미래 세상은 분명 편리해질 것입니다. 그러나 로봇이 인간의 일을 대신하게 되면서 일자리가 줄어드는 등 사회적 문제 역시 나타날 텐데, 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로봇들이 일자리를 가지고 갈 것은 확실합니다. 산업혁명 이후 이미 기계들은 사람의 일자리를 앗아가고 있지요. 자동차도 공장에서 로봇들이 조립하고 있고요. 하지만 제 생각엔 로봇들이 가지고 가는 일자리의 수보다 로봇으로 인해 새로 생겨날 일자리가 더 많아질 거라고 봅니다. 가령, 자동차가 생기기 전에는 주유소, 정비소, 자동차보험 등과 같은 일자리는 존재하지 않았거든요. 이런 식으로 로봇들이 일상에 사용되면서 아직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일자리들이 생길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미래에 로봇들이 대신할 일자리에 대해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 거예요. ‘아니, 옛날엔 이런 일들을 사람이 했단 말이야? 과거 사람들은 정말 비인간적이었네!’”


로봇의 아버지, 요리와 마술은 또 다른 삶의 樂
홍 교수의 열정과 에너지는 뉴스나 책으로 접했던 것 이상이었다. 1초를 쪼개 쓴다는 그는 ‘하루가 24시간이라는 게 인생 최대 난제’라고 했다. 대학원 시절부터 오후 5~6시에 퇴근해 직접 요리를 만들어 가족들과 식사를 하고, 9~10시 식구들이 잠들면 다시 연구실로 돌아가 새벽 4시까지 일한 후 4시부터 취침해 8시에 일어나는 일을 십수 년간 반복해왔다. 어릴 적부터 ‘마술광’이었던 그는 지금도 학생들을 상대로 ‘데니스 홍의 마술쇼’ 특강을 펼치며, 놀이동산에 가는 것을 좋아해 새로운 롤러코스터가 생기면 개장하는 첫날 그 놀이기구를 타야 직성이 풀린다. 이번에도 비행기에서 밀린 업무를 처리하느라 한숨도 자지 못한 채 한국에 와 강연과 인터뷰 강행군을 소화하고도 “내일은 불금을 즐기러 가야 한다”고 배시시 웃었다.
세계 최초 시각장애인용 자동차 데이비드. 2011년 미국 플로리다주 데이토나 국제 자동차 경기장에서 운전자 마크 리코보노(왼쪽)의 시운전으로 데니스 홍의 도전이 성공했음을 입증했다.
세계 최초 시각장애인용 자동차 데이비드. 2011년 미국 플로리다주 데이토나 국제 자동차 경기장에서 운전자 마크 리코보노(왼쪽)의 시운전으로 데니스 홍의 도전이 성공했음을 입증했다.
엄청난 열정이 느껴집니다. 그 지치지 않는 에너지는 어디에서 나오나요.
“모르셨어요? 저는 사실 로봇입니다. 하하하. 농담이고요, 저는 태어나기 전부터 열정인자가 넘쳐났어요.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발길질을 그렇게 해댔대요. 아버지께서는 ‘이 녀석이 태어나면 틀림없이 장난꾸러기일 거야’라고 하시면서 당시에 인기 만화 ‘개구쟁이 데니스’의 주인공 이름을 본떠 제 이름을 지어주셨죠. 그 덕분인지 초등학교 때도 못 말리는 장난꾸러기였어요. 저의 독특한 상상력도 어릴 적 흙장난을 하거나 놀이터에서 놀다가 생긴 것 같아요. 어린이는 스트레스 받지 않고 뛰어놀 특권을 지닌 존재들인데, 요즘 우리나라 어린이들은 학원에 치여서 사는 것 같아 너무 안쓰러워요.”


바쁜 가운데 손수 요리까지 한다고요. 수준급 요리사인 것으로 정평이 나있더군요.
“음, 어머니에게는 좀 미안한 이야기인데요, 저는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는데 어머니의 요리 솜씨가 영 꽝이었어요.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부엌에 들어가 직접 음식을 만들었습니다. 세계적인 요리 경연 프로그램인 ‘마스터 셰프 USA’에도 출전했지요. 스타 셰프 고든 램지(Gordon Ramsay)가 제 요리를 먹어보고 ‘데니스, 유아 브릴리언트(Dennis, You are brilliant)!’라고 감탄했어요. 결과적으론 탈락하고 말았지만.(웃음) 저는 장을 보러 가서 그날 가장 신선한 재료를 사다가 즉흥적으로 어떤 음식을 만들지 생각하고 그 자리에서 새로운 작품들을 표현해냅니다. 테이블 세팅까지 손수 준비해서 솜씨를 뽐내죠. 제게 부엌은 창의력을 발현할 수 있는 또 다른 장인 셈이지요.”


세상은 당신을 로봇공학 분야 최고의 크리에이터로 꼽습니다. 홍 교수님께서 생각하는 창의력이란 무엇입니까.
“전혀 다른 분야의 것들을 서로 연결시키는 능력이죠. ‘스트라이더’와 ‘찰리’가 바로 그 예입니다. 스트라이더는 공원에서 한 아주머니가 어떤 여자 아이의 머리를 땋아주는 모습을 보고 영감을 얻어 만든 로봇이에요. 머리 땋는 모양에서 착안해 다리 3개를 이용해 걷는 스트라이더를 발명한 것처럼 창의력은 전혀 다른 분야의 것들을 서로 연결시키는 데서 시작됩니다. 자연사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선사시대 사슴의 무릎 관절을 보고 휴머노이드 로봇 찰리의 2중 4절 링크 기구 다리를 생각해낸 것도 마찬가지고요.”
데니스 홍이 설립한 꿈의 공장, 로멜라 연구소에서 팀원들과 함께.
데니스 홍이 설립한 꿈의 공장, 로멜라 연구소에서 팀원들과 함께.
그러한 시각을 견지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나요.
“관계없는 것들을 연결시키는 능력이라면 그것들을 연결시킬 기억들이 많아야 합니다. 여행, 음식, 미술 등 자기와 다른 분야에 있는 사람들과 소통하기를 좋아하면 도움이 됩니다. 또 호기심은 창의력의 시작이에요. 모든 어린이의 눈은 반짝입니다. 어른이 되면서 그 반짝이는 눈빛을 잃어가죠. 제 경우는 호기심을 잃지 않는 것이 비결이라면 비결입니다. 아이디어는 세상을 바꾸는 행동의 시작이에요. 세상을 바꾸려는 의지가 새로운 생각을 탄생시키는 원동력이죠.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말렸던 시각장애인을 위한 자동차 개발을 성공시킨 건 시각장애인들에게 자유, 독립을 주려는 저의 미션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아이디어는 생각나면 바로 노트에 스케치해서 적습니다. 최근에도 와인을 마시다 촛불에서 촛농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윤활유 아이디어가 생각났습니다. 새 프로젝트에 대한 연구 제안서를 쓸 일이 생기면 아이디어 노트를 살펴보죠.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이제 일상이 돼버렸습니다.”


아무리 유쾌한 성격이라고 해도 엄청난 업무량을 소화하려면 스트레스 받지 않으세요.
“저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원래 긍정적이기도 한데, 스트레스 받을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굉장히 단순하게 생각하기 때문이죠. 어떤 일이 생겼을 때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다면 스트레스를 안 받아요. 노력해서 해결하면 되니까요. 반대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저스트 렛 잇 비(Just Let it be)’ 그냥 내버려둡니다. 어차피 안 될 것이라면 받아들이는 게 마음이 편하니까요. 제가 늘 유쾌하고 신날 수 있는 비결인 것 같아요.”
휴머노이드 다윈.
휴머노이드 다윈.
당신의 꿈은 뭡니까.
“대학에서 돈 한 푼 안 줘도 저는 죽을 때까지 로봇을 연구할 거예요. 은퇴하기 싫습니다. 저에게 연구는 일이라기보다 즐거움이니까요. 한국에 교육재단을 세우는 것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에서는 이공계 기피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엔지니어의 활약상을 알리고 중요성을 인식시킬 수 있는 교육재단으로, 이르면 3월께 설립을 마무리할 예정이에요. 테드(TED) 형식의 프로그램을 도입해 열정 넘치는 젊은 엔지니어를 발굴해 이들을 대중 앞에 소개함으로써 엔지니어들이 세상을 어떻게 바꾸는지 보여줄 겁니다. 먼 훗날엔 뉴욕 첼시의 자그마한 레스토랑의 오픈 키친에서 요리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저는 늘 어디로 튈지 모르는 엉뚱한 사람이니까. 하하하.”


이윤경 기자 ramji@hankyung.com | 사진 김기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