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규의 패션 코드

남자들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가설을 세우고 그에 맞는 답을 찾는 놀이를 즐긴다. “전지현이랑 김태희가 사귀자고 하면 둘 중 누구랑 사귈 거야?” 또는 “평생 단 하나의 음식만 먹어야 한다면?” 따위의 질문이 그런 것이다. 얼마 전 한 구두 수입업체의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필자는 또 그 물음을 던졌다. “대표님께서는 평생 단 하나의 구두만 신을 수 있다면 어떤 구두를 신으실 건가요?” 대답은 ‘에드워드 그린의 202 라스트 첼시’ 모델이었다. 필자 역시 그렇다. 이유는 간단하다. 가장 다양한 차림에 어울리는 좋은 구두이기 때문이다. 기획 양정원 기자│글·사진 김창규 패션칼럼니스트
블랙 스트레이트 팁 슈즈를 신은 노신사.
블랙 스트레이트 팁 슈즈를 신은 노신사.
취향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평생 단 하나의 구두만 신어야 한다면 ‘에드워드 그린의 202 라스트 첼시’를 선택하라. 좋은 구두가 만들어지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구두의 기본이 되는 ‘라스트’다. 발 모양을 토대로 만들어진 구두 골을 뜻하는 라스트는 구두의 실루엣을 결정짓는다. 즉, 라스트가 같으면 구두의 디자인이 달라도 실루엣은 동일하다.


전통적인 영국 구두, 에드워드 그린
영국을 대표하는 하이엔드 슈메이커 중 하나인 에드워드 그린의 202 라스트는 브랜드의 근간을 이루는 마스터 라스트다. 게다가 구두 애호가들이 꼽은 가장 영국적인 라스트이기도 하다. 이 라스트로 만든 첼시는 비즈니스맨을 위한 단 하나의 구두로 손색없다. 왜냐하면 클래식한 스트레이트 캡 토 구두이기 때문이다. 발끝에 가죽을 덧씌운 스트레이트 캡 토는 가장 정중한 타입의 구두로 슈트에 매우 잘 어울린다. 물론 더 포멀한 단계의 구두로 아무 장식이 없는 옥스퍼드 플레인 토 구두가 있긴 하지만, 그건 지나치게 포멀해서 캐주얼 차림을 소화할 수 없다. 또 같은 스트레이트 캡 토라고 해도 존 롭의 시티 II 모델은 매우 날렵한 인상을 줘 슈트에만 어울린다. 가치아노 앤 걸링이나 조지 클레버리 같은 영국 하이엔드 브랜드의 구두를 살펴봐도 대부분 날렵하다.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구두는 날렵하다 못해 뾰족한 인상을 주고, 미국 구두는 둥글다 못해 투박한 인상이다. 물론 각자의 매력이 넘치는 구두들이지만, 에드워드 그린의 첼시만큼 중용의 미를 살린 구두는 없다고 생각한다.
비즈니스맨을 위한 완벽한 선택. 유니페어에서 판매하는 202 라스트로 만든 에드워드 그린의 첼시는 139만9000원.
비즈니스맨을 위한 완벽한 선택. 유니페어에서 판매하는 202 라스트로 만든 에드워드 그린의 첼시는 139만9000원.
140만 원에 가까운 에드워드 그린의 첼시 가격은 부담스러울 수 있다. 따라서 대안을 찾자면 처치스의 콘솔 모델로 귀결된다. 처치스 역시 구두에 관심 있는 사람이면 한 번씩은 꼭 경험하는 구두가 아닌가 한다. 콘솔을 만들 때 사용하는 라스트는 시대 흐름에 따라 바뀌어 옛것과 현재의 것에 미묘한 차이가 있다. 하지만 콘솔이 훌륭한 밸런스를 가진 영국 구두의 상징임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슈트나 캐주얼 차림에 모두 잘 어울리며, 가격 또한 80만 원대로 첼시의 절반 수준이다. 하지만 최근 생산 모델은 10~20년 전에 생산했던 모델들에 비해 품질이 떨어진다는 것이 흠이라면 흠일 수 있다.
에드워드 그린 첼시의 가장 좋은 대안, 처치스의 콘솔은 80만 원대.
에드워드 그린 첼시의 가장 좋은 대안, 처치스의 콘솔은 80만 원대.
어떤 모델을 구입할지 정했다면 이제 컬러를 선택할 차례다. 이 역시 평생 단 하나의 구두만을 신는다는 가정하에 고른다면 절대적으로 블랙이다. 알다시피, 블랙이 가장 포멀한 컬러임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미 갖고 있을 것이 분명한 블랙 벨트나 브리프케이스 등과도 잘 어울리고, 어두운 색상의 모든 슈트와 잘 맞는다. 간혹 브라운이 멋스러워 보여 더 끌릴 수도 있겠지만, 앞서 말했듯이 이건 어디까지 ‘단 하나의 구두’라는 주제하에 고른 것이기 때문에 블랙이 정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