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미년(乙未年) 진웅섭 체제의 금융감독원을 바라보는 금융권의 시각은 기대 반 우려 반이다. 그간 금감원이 시장의 갑(甲) 중에 갑(甲)으로 군림하며 오히려 시장 발전을 더디게 한다는 불만이 있었기 때문이다. 과연 새 수장을 맞은 금감원이 시장의 건전성을 지켜줄 검(劍)으로 거듭날지 주목된다.
일러스트 허라미
일러스트 허라미
금감원은 금융시장의 건전성을 지키는 감시자라기보다는 두려운 ‘갑’이었다. 지난해 KB금융그룹의 내분 사태 때는 행정고시 25기 동기였던 최수현 원장과 최종구 수석부원장이 중징계와 경징계를 두고 오락가락하는 행보를 보이며 오히려 금융사의 혼란만 가중시켰고, KT ENS 협력업체 대출사기 사건에서는 금감원 간부가 연루된 것이 밝혀져 물의를 일으켰다.

금융사고가 터질 때마다 금감원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졌으며, 이를 반영하듯 최수현 전 금감원장을 비롯해 9명의 역대 원장 중 3년의 임기를 채운 사람은 5대 윤증현 원장과 7대 김종창 원장뿐이었다. 김종창 원장의 경우 지난 2011년 부산저축은행 비리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고 최근 3년 만에 무죄 확정 판결을 받기까지 상당한 마음고생을 해야 했다.


금융규제 완화 러브콜…시장은 일단 냉랭
진 원장은 올해 초 신년사를 통해 “견고한 금융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 금융의 미래 성장 기반을 확충하는 일, 금융소비자를 두텁게 보호하는 일 이 세 가지야말로 우리가 국민과 맺은 가장 존귀한 약속이다”라고 밝혔다. 그는 이 ‘약속’을 기반으로 올해 금융감독 방향을 잡겠다고 제시했다. 진 원장이 가장 먼저 언급한 것은 금융시장의 안정이다. 가계부채 구조 악화, 기업 신용위험 등 불안요인에 대해서 과감하게 검을 뽑아 시장을 지켜내겠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감독·검사 방식을 금융회사의 자율과 창의, 그리고 경쟁을 최대한 존중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겠다고 약속했다. 금융회사의 자율 시정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지원하고 이를 통해 절감된 감독 자원은 신규 감독 수요에 재분배해 감독의 생산성을 제고하겠다는 복안이다. 더불어 금융규제 개혁을 진정성 있게 추진해 금융의 활력을 저해하는 낡은 금융규제와 금융감독 관행을 일소(一掃)하겠다며 금융권에 러브콜을 보냈다.

실제 금감원은 올해부터 종합검사를 연간 45회 안팎에서 20회 내외로 줄이고 경미한 위반 또는 자율적으로 시정할 수 있는 사항은 금융회사 자율에 맡길 예정이다. 그동안 금융회사에 대해 지적 위주의 고압적인 검사를 진행했다면 앞으로는 금융사에 상당 부분 자율권을 준 뒤 위험 및 취약 부분에 대한 검사에만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KB금융에 대한 징계 때 말이 많았던 제재심의 경우는 20명 안팎의 민간위원 풀(pool)을 구성하고 금융회사 및 임직원 징계 관련 제재심위원 발언을 속기록 요약본으로 제공하는 방안을 고민 중이다.

이 같은 시장친화적인 금감원의 달콤한 약속이 순조롭게 지켜질 지에 대해 시장의 반응은 반신반의다. 금감원 내부에서조차 검사·제재 권한의 지나친 축소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시중은행의 한 부행장은 최근 신중해진 금감원의 변화와 관련해 “새로 원장이 온 뒤 시장을 존중하고 최대한 시장 지향적인 모습을 보이려고 해 상당히 호감을 가지고 있다”면서도 “과거처럼 의례적인 말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구체화돼서 시장의 피감기관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는 “그동안 금감원에 사사건건 보고를 하고 상품심사에 있어서도 다소 과도한 부분이 있었다. 물론 소비자 보호는 살리되 그것이 시장의 자율성을 해쳐서는 안 된다”며 “아무래도 금감원 윗선의 생각이 하부조직까지 흐르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전했다.

한 증권사의 고위 임원은 “금감원은 서비스 기관임에도 시장에서는 ‘갑’과 같은 존재였는데 원장이 문제가 아니고 조직 문화가 그렇다”며 “금감원은 검찰이나 교도소가 아니라 금융산업의 아픈 곳을 진단해 치유법을 알려주는 병원이나 의사, 시장의 건전성을 지켜주는 검(劍)과 같은 역할을 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용섭 기자 poem197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