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을 열광케 하는 그들만의 콘텐츠_열 번째

먹고 사는 일이 세상 어떤 일보다 우선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가치지만, ‘먹는’ 행위 자체에 대한 의미 부여는 좀 달라졌다. 생존을 위한 기본적 행위에서 ‘관계’를 위한 사회적 시간으로 변모했다고나 할까.

그런데 여기, 먹는 것 자체에 집중한 이색 드라마가 있다.
[MEN`S CONTENTS] 삶의 허기를 달래는 1인용 만찬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로 유명한 김난도 교수는 매년 트렌드에 관한 예측을 내놓는다. 올해에도 그는 어김없이 ‘트렌드 코리아 2015’를 선보였는데 그중에서 눈길을 끄는 키워드가 있다. 그건 바로 ‘햄릿 증후군’이다. ‘햄릿증후군’이란 쉽게 말해 결정장애를 뜻한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던 햄릿처럼 이거냐 저거냐를 놓고 단호히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남들에게 의존하는 성향이 강한 시대라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물건을 구매하거나 여행지를 고를 때면 검색창을 뒤지거나 블로그부터 살피는 세상이니까. 먼 데서 찾을 것도 없이 우린 매일 소소하게 햄릿증후군을 앓는다. 점심시간마다 메뉴를 정하지 못해 고민하는 일이 부지기수니 말이다.
[MEN`S CONTENTS] 삶의 허기를 달래는 1인용 만찬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
드라마로 진화한 ‘스낵 컬처’
다행히 추천 메뉴로 무장한 ‘배달 앱’ 같은 콘텐츠가 하나 있다. 이름하여 ‘고독한 미식가’. ‘먹방’의 즐거움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일본 드라마다. 아니, 예능도 아니고 먹는 행위 자체가 어떻게 드라마의 소재가 된다는 것인지 의문이 들 것이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고독한 미식가’는 먹방 그 자체로 승부수를 던진 별난 드라마다.

비단 소재만이 아니다. ‘고독한 미식가’는 구성도 특이하다. 수입 잡화상을 운영하는 중년의 세일즈맨을 빼면 전부 엑스트라다. 형식적으로 보기 드문 1인 드라마의 형태를 띤다. 스토리랄 것도 딱히 없어서 주인공인 ‘고로’가 영업을 위해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다 눈에 띄는 식당을 찾아 그 가게의 별미를 맛보는 것이 고작이다.
[MEN`S CONTENTS] 삶의 허기를 달래는 1인용 만찬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밌다. 허기를 달랠 식당을 찾아 작은 골목길을 누비고 다닐 때면 마치 여행 프로그램을 보는 듯하고, 각종 음식들을 먹으며 감탄을 토해낼 때엔 웬만한 맛집 소개 프로그램보다 리얼하다. 그러니 달랑 주인공 혼자 출연해 별다른 스토리 없이 흘러가도 결코 지루하지가 않다. 무엇보다 꼬박꼬박 회 차대로 챙겨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이 드라마의 장점! 입맛대로 메뉴판에서 고르듯 띄엄띄엄 보고 싶은 에피소드만 골라 봐도 무방하다. 게다가 한 회가 30분이 채 되질 않으니 짬짬이 들여다보며 즐길 수 있다. 그야말로 요즘 대세로 자리 잡은 ‘스낵 컬처’의 결정판인 셈이다.

이 드라마의 미덕은 단순히 간편함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식사만큼은 철저히 ‘나 홀로 족(族)’을 자처하는 주인공 고로. 그는 점심시간이야말로 현대인에게 평등하게 주어진 최고의 힐링 타임이라고 믿고 있다. 그래서 그 어떤 누구와도 식당 문을 함께 들어서지 않는다. 그러니 자연히 메뉴 하나를 고르는 것도 유별날 수밖에 없는데 마치 스스로에게 선물을 하듯 신중하면서도 지극히 개인적이다. 애써 격식을 차리지도 않는다. 눈치 보지 않고 식욕이 당기는 대로 주문하고 그러다 보니 언제나 홀로 마주한 밥상은 만찬이 된다.

특히 맛을 음미하며 날리는 독백은 이 드라마의 백미. 그 매력이 어찌나 대단한지 보는 이로 하여금 군침을 돌게 만드는 것은 물론이요, 삶에 대한 짤막한 깨달음까지 곁들여 음식의 풍미를 묘사할 때면 여느 드라마 못지않은 카타르시스가 밀려온다.
[MEN`S CONTENTS] 삶의 허기를 달래는 1인용 만찬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
흥미로운 건 유독 이 드라마를 볼 때에 주인공과 나를 동일시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유를 곰곰이 따져보니 그가 중년의 남성인 탓도 있겠지만 진짜 이유는 바로, 음식들을 대할 때마다 어머니 손맛에 대한 향수가 짙게 깔려 있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만만치 않은 담배 값에 더 이상 한 모금의 연기로 시름을 달래기도 힘들어진 세상. 퇴근길에 들러 홀짝이던 선술집의 소주잔 대신 든든한 한 끼 식사로 힐링해볼 것을 권해본다. 옛말에도 있지 않은가. 먹는 것이 남는 것이라고.


김상명 시나리오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