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종석 교수 & 이윤경 기자의 ‘식탐’

2월호에 예종석 교수와 동행한 음식점은 서울 중구 북창동에 위치한 일식집 ‘미조리’다. 1960년에 문을 열어 어언 50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한 우리나라 1세대 일식집이다. 미조리에서 예 교수와 생선초밥의 미학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FOOD & STORY] 초밥, 그 아름다움에 관하여
미조리는 예종석 교수에게 식당 이상의 의미가 있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예춘호 전 국회의원) 손을 잡고 드나들던 곳이니 대를 이은 단골집이요, 추억이 깃든 장소다. 미조리는 역대 대통령은 물론 정치인, 재계 총수들 역시 신선한 생선회와 감칠맛 나는 정통 일식을 즐기던 음식점으로 유명하다. 예 교수에 따르면 삼성의 창업주 고(故) 이병철 회장 역시 미조리의 단골손님 중 한 명이었다. 미식가로 소문난 고 이 회장은 이곳 생선회와 초밥을 맛본 뒤 신라호텔 일식당 주방장을 미조리 주방으로 연수를 보냈다고 한다. ‘가서 좀 배워오라’는 뜻이었다. 그 시절 20대 청년이었던 이춘구 주방장은 어느덧 흰머리 성성한 70대가 됐다. 미조리와 더불어 사람도 나이를 먹었지만 손맛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변함이 없어서 여전히 60, 70대 오랜 단골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예 교수와 미조리의 역사를 훑는 사이 고 이 회장의 입맛을 사로잡았던 그 생선초밥이 나왔다. 이야기가 이어지는 동안 이곳의 시그니처 메뉴인 도미 머리 찜과 전복, 소고기, 새우 등을 튀긴 모둠 가라아게가 식탁 위에 차려졌다. 예 교수는 “음식이라기보다 차라리 예술에 가깝다”며 생선초밥을 예찬했고, 기자 역시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손으로 집어 생선에 간장 찍어 먹어야
이윤경 기자(이하 이 기자) 누군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물으면 주저 없이 초밥을 꼽습니다. 저 역시 ‘스시는 하나의 예술품’이라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예종석 교수(이하 예 교수) 초밥이 겉으로 보기에 밥 한 주먹에 고추냉이(와사비) 바르고 그 위에 생선 한 조각 얹어 놓은 것에 불과한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요. 생선의 신선도, 밥의 양과 온도, 고추냉이의 비율 등 미세한 차이에 따라 맛이 하늘과 땅 차이가 날 정도이니.

이 기자 숙련된 장인이 만들어내는 초밥은 명품에 가깝다고 할 수 있지요.

예 교수 지난해 4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했을 때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긴자의 오래된 스시집인 ‘스키야바시 지로’에서 만찬을 준비했죠. 스키야바시 지로는 일본의 유명한 스시 전문점이자 스시 장인인데, 90대인 지금도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그는 초밥 맛을 지키려 본인이 좋아하는 커피도 끊고 ‘조리도구’인 손의 온도를 유지하고자 여름에도 장갑을 끼고 다닐 정도로 철저해요. 그만큼 초밥은 섬세한 음식이에요. 1980년대 이후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퓨전일식집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지만 초밥을 제대로 만드는 집은 드물어요.

이 기자 일본의 수백 년 된 스시 전문점에서는 그 섬세한 수작업을 모두 마스터해 초밥 요리사가 되려면 엄청난 세월이 걸린다고요.

예 교수 생선 종류를 익히고 신선도 여부를 제대로 아는 데만 2~3년, 밥을 식히고 양념을 배합하는 과정이 3~4년 정도 걸려요. 그다음 생선 포 뜨는 것을 2~3년 정도 하고 난 다음 손님 접대하는 법, 그러니까 ‘애티튜드(attitude)’를 배워요. 스시바(bar)에서 손님과 술 대작도 하고. 그래서 옛날엔 스시맨 중에 알코올 중독자도 많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었죠. 스키야바시 스시 장인의 아들이 60세인데 지금도 아버지가 초밥을 못 쥐게 하지. (웃음) 그만큼 제대로 가르치려고 하는 겁니다.

이 기자 정말 놀랍습니다. 생선초밥은 밥(샤리)와 생선(네타), 고추냉이(와사비)가 삼위일체를 이뤄야 최상의 맛을 만들어내지요. 그중에서도 밥은 생선초밥 맛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초밥을 제대로 즐기는 사람들이 스시바에 앉는 이유도 스시맨과 교감하며, 갓 만든 초밥을 먹기 위함이지요. 운반하는 동안 초밥의 온도가 떨어질까 봐요.

예 교수 그렇지. 그리고 사실 초밥은 젓가락보다는 체온을 간직한 손으로 먹는 게 맞아요. 손가락으로 집어 들어서 밥이 아닌 생선 쪽에 살짝 간장을 찍어야 풍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지. 과거, 날생선의 소독용으로 사용됐던 고추냉이도 초밥 맛을 좌우해. 좋은 일식집에 가면 생와시비를 냉장고에서 꺼내 그 자리에서 상어껍데기 강판에 갈아줘요.

이 기자 일본의 한 스시 전문점엘 갔더니 입구에 수건이 걸려 있더군요. 손으로 스시를 먹고 난 후 닦고 나가라는 뜻인데, 이 수건이 더러울수록 장사가 잘 된다는 방증이라고 해서 재밌었습니다.

예 교수 옛날에는 소바나 스시 전문점의 장인이 자기 수제자들에게 ‘노렌’이라고 하는 음식점 출입구에 붙여놓는 수건을 하나씩 떼어서 건네주었지요. 이것을 받아 나간 수제자들이 ‘나는 어느 집, 어느 스승에서 배웠다’ 이런 것을 공유하고 자부심으로 여기기도 했지.

이 기자 교수님, 생선초밥의 기원을 추적해볼까요. 인류는 언제부터 스시를 먹기 시작했나요.

예 교수 생선초밥은 원래 삭혀서 먹는 음식이었어요. 원형은 ‘후나즈시(붕어초밥)’인데, 소금에 절인 붕어를 밥에 묻어 발효시킨 생선 절임이죠. 그 이후에 1820년대 요리사 하나야 요헤이가 지금의 모습과 비슷한 주먹 초밥인 ‘니기리스시’를 만들어 주목받았죠.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인해 도쿄 요리사들이 일본 전역으로 흩어지면서 니기리스시는 전국을 넘어 세계에 퍼지게 돼요. 이후 냉장고가 등장하면서 참치회 등 신선한 재료로 만든 생선초밥이 더욱 다양하게 선을 보였죠.

이 기자 일본보다 먼저 우리나라에서 생선초밥을 먹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예 교수 우리나라에는 기원전 5세기경에 가자미식해가 있었지. 민물 생선인 가자미에 조밥을 넣어서 발효시켜 먹었어요. 이걸 스시의 시초로 보기도 하는데, 지금의 모습을 갖춘 일본식 생선초밥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건 일제강점기 때예요. 당시 지금 충무로 일대에 일본 음식점들이 무척 많았거든. 그게 오늘날까지 내려온 거예요.
예종석 교수가 이찬구 미조리 주방장이 건네는 스시를 시식하는 모습.
예종석 교수가 이찬구 미조리 주방장이 건네는 스시를 시식하는 모습.
발효시킨 생선 절임이 시초, 美·中서도 ‘고급 요리’로 우뚝
이 기자 전 세계적으로 볼 땐 생선초밥을 먹는 나라가 많지는 않지요. 서양에서도 예로부터 날생선을 먹지 않았다요.

예 교수 1970년대 중반 내가 미국에서 공부할 때만 해도 친구들한테 스시 먹으러 가자고 하면 기겁을 했다고.(웃음) 지금은 미국에서 스시가 프랑스 요리보다 더 고급 음식으로 인정받죠. 그 인식이 달라진 데는 일본 천재 요리사 노부 마쓰히사의 영향이 커. 노부 요리사는 20대 때 일본 신주쿠에서 초밥을 배우다가 남미로 갔어요. 칠레, 아르헨티나 등에 머물며 소고기, 해산물 등 풍부한 현지 재료를 일본 음식에 접목해요. 그리고 1980년대에 미국으로 건너와 로스앤젤레스(LA) 비벌리힐스 근처 유명한 음식 거리에 초밥집을 개업해. 당시 이 집 단골이던 영화배우 로버트 드니로가 와서 동업을 제안했고, 투자자를 등에 업은 노부 요리사는 일약 세계적인 퓨전 일식 요리사가 됐지. 그가 일식 세계화에 혁혁한 공을 세웠대도 과언이 아니에요. 중국 역시 과거 역사서를 보면 공자가 잉어회를 먹었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후대에 나라에 큰 역병이 돈 것을 계기로 자연스럽게 날생선을 먹지 않는 문화가 생겼어요. 아이러니한 것이 중국도 10여 년 전부터 생선회나 초밥을 아주 진귀한 음식으로 여기고 있어요. 고급 음식점에 가면 어김없이 회를 내옵니다.

이 기자 교수님께서는 특별히 선호하는 생선 부위가 있으세요.

예 교수 지방이 많은 생선 뱃살이 맛있긴 하지. 그렇지만 기름진 것을 너무 많이 먹으면 건강엔 안 좋아. 단골집에 가면 오마카세(‘맡긴다’는 뜻으로, 그날그날 음식 재료의 상태나 분위기 등에 따라 주방장이 알아서 메뉴를 서비스해주는 코스)를 즐겨요. 일식은 특히나 주방장과 손님의 교감이 중요한데, 오래된 집에 가면 말하지 않아도 내 취향을 고려해 메뉴를 선택해주니 그 점이 가장 좋아요.

이 기자 저도 전어와 같은 등푸른 생선이나 흰살 생선의 뱃살 부위를 좋아하는데요, 살짝 간장을 찍어서 오래도록 씹으면서 고소한 맛을 음미하다 보면 말 그대로 ‘힐링’되는 느낌을 받습니다.(웃음)

예 교수 어느 나라 음식이든 원재료의 맛을 잘 살린 요리가 가장 높은 수준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보면 가공이 거의 없고 원재료를 그대로 먹는 초밥은 가장 높은 경지의 음식이 아닐까.
가라아게
가라아게
이 기자 여기 가라아게가 있지만 일본 음식을 이야기 할 때 튀김(덴푸라)도 빼놓을 수 없죠.

예 교수 일본 사람들, 튀김을 기가 막히게 좋아해요. 유명한 튀김 전문점에 가보면 코스로 1인분이 3만5000엔(40만 원) 정도 하죠. 메이지유신을 계기로 일본에 엄청난 서양 음식들이 들어옵니다. 튀김은 당시에 포르투갈의 선교사들이 일본으로 가지고 왔어요. 지금은 고기, 채소, 장어 뼈 심지어 아이스크림까지 예술로 튀겨낼 정도니까 어마어마하지. ‘미조리’의 가라아게는 튀김가루를 안 입히고 튀겨낸 것인데,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메뉴죠. 튀김옷이 얇으니 신선한 재료 맛이 그대로 살아 있어. 백문(白文)이 불여일미(不如一味), 한 번 들어보라구!



예 교수 초밥의 생명은 신선한 재료가 좌우한다. 미조리는 매일 수산시장에서 장을 본 신선한 횟감에 50년 경력 주방장의 손맛이 더해져 깔끔하고 담백한 초밥 맛을 볼 수 있다. 특히 놓치지 않아야 할 것이 계란(다시마키) 초밥이다. 까다로운 사람이라면 일식집의 다시마키만 먹어봐도 그 가게의 수준을 안다. 많이 달지는 않지만 부드럽고 촉촉하다.
도미머리조림
도미머리조림
이 기자 미조리의 초밥은 밥의 양에 비해 생선이 큼직했다. 전복과 소고기, 새우 등을 튀김가루 없이 튀긴 가라아게는 기름지지 않아 자꾸 손이 갔다. 특히 속초산 총알 오징어 튀김은 내용물이 오징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부드러웠다. 이가 약한 사람들도 좋아할 듯. 부드러운 도미머리를 우엉, 무 등 채소와 함께 조려낸 생선조림은 짭조름하면서도 달짝지근한 맛이 일품. 미조리에 간다면 반드시 먹어보길 추천한다.
[FOOD & STORY] 초밥, 그 아름다움에 관하여
예종석 교수는…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이자 아름다운재단 이사장. 풍부한 음식 경험과 탁월한 미각을 소유한 음식문화평론가.

이윤경 기자는…
한경 머니 기자. 맛있고 건강한 음식을 찾아나서는 맛 탐험가. 레스토랑과 푸드 기사를 쓰는 칼럼니스트.


이윤경 기자 ramji@hankyung.com│사진 이승재 기자│촬영 협조 미조리(02-778-1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