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국, 러시아 등 강대국들이 인도에 열렬한 ‘구애작전’을 벌이고 있는 이유는 뭘까. 강대국들이 앞다퉈 인도를 방문해 선물보따리를 경쟁적으로 풀어놓고 있다. 세계 2위 인구 대국인 인도에 접근하는 각국의 속셈을 알아봤다.
[GLOBAL MONITOR] 인도에 ‘구애’보내는 강대국들의 속셈
전 세계에서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강대국들과 각각 합동 군사훈련을 개별적으로 하고 있는 국가는 어디일까. 다자간 협력이 중요한 21세기 국제질서에서 강대국들이 주재하는 각종 국제회의에 항상 초대받는 국가는 어디일까. 바로 인도다. 인도가 말 그대로 상종가를 치고 있다. 강대국들이 앞다투어 인도의 환심을 사려고 애쓰고 있기 때문이다. 인구가 세계에서 둘째로 많지만 국민 대다수가 가난하게 살고 있는 인도가 이처럼 인기를 누리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강대국들이 인도에 열렬한 ‘구애작전’을 벌이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경제력이 급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는 2014년 구매력평가(PPP) 환산 국내총생산(GDP)에서 미국, 중국에 이어 세계 3위를 기록했다. 인도의 국력은 인구에서도 나오고 있다.

인도는 전 세계에서 가장 젊은 나라 중 하나로 꼽힌다. 전체 인구의 평균 연령이 25.9세다. 젊은 노동인구의 생산력 증가는 소비 증가로 이어지고 있으며, 중산층도 늘어나고 있다. 인도의 중산층은 2008년 2억 명을 넘었고, 2015년은 3억 명이 될 전망이다. 군사력도 일취월장하고 있다. 인도는 전 세계에서 여섯째로 핵잠수함 보유국이다. 또 핵무기를 탑재한 사거리 5000km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보유하고 있다. 사거리 5000km 이상의 ICBM을 가진 나라는 미국, 중국, 러시아, 영국밖에 없다. 지정학적으로 볼 때도 유라시아 대륙과 인도양을 접하고 있으며, 중동과 동남아시아를 연결하는 전략요충지다. 특히 인도가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과 어떤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국제질서의 향배가 달라질 수 있다.

2015년 새해 벽두부터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인도를 자국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뉴델리를 방문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오는 1월 26일 인도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인 ‘공화국의 날’에 주빈으로 참석한다. 인도는 공화국 정체를 규정한 헌법이 발효한 1950년 1월 26일을 제헌절에 해당하는 ‘공화국의 날’로 정해 해마다 성대하게 기념하고 있다. 미국 대통령이 인도의 공화국의 날에 초청을 받아 참석하는 것은 사상 처음이다. 미국 정부는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2014년 5월 취임한 이래 양국 관계를 강화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핵심 외교정책인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 전략을 적극 추진하고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려면 최근까지 껄끄러웠던 인도와의 관계를 정상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오바마 대통령은 2014년 9월 모디 총리를 백악관으로 공식 초청해 첫 정상회담을 가진 바 있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마틴 루터 킹 주니어 기념관 방문 때도 동행하는 등 모두 세 차례 회동함으로써 외국 정상으로서는 모디 총리를 이례적으로 환대했었다.

또 인도 주재 신임 미국대사에 사상 처음으로 인도계인 리처드 베르마 전 국무부 법무담당 차관보를 임명했다. 베르마 대사는 2008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 당시 오바마 상원의원의 선거 캠프에서 활동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자신과 막역한 베르마 대사를 인도에 보낸 것은 모디 총리와의 서먹한 관계를 회복하려는 의도에서다. 미국 정부는 2005년 모디 총리가 구자라트 주총리로 있을 때 힌두교도와 무슬림 간의 유혈 충돌을 방관했다며 미국 입국비자를 거절한 바 있다. 양국 관계는 또 2013년 12월 가정부를 학대한 혐의로 뉴욕 주재 인도 부총영사가 체포된 사건으로 갈등이 빚어지기도 했었다.

미국과 인도는 오바마 대통령 방문을 계기로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더욱 강화할 것이 분명하다. 양국은 군사와 경제 분야에서 교류와 협력을 더욱 확대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미국은 보잉사의 아파치 헬기와 치누크 헬기를 인도에 판매하는 등 무기와 군사 장비를 대거 수출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인도는 앞으로 5년간 300억 달러를 들여 최첨단 무기를 구매할 계획이다. 인도는 또 최근 인도양에서 미국과 합동 군사훈련을 실시한 것을 비롯해 군사 협력도 확대하고 있다. 미국은 이와 함께 원전 등에서도 자국 기업의 인도 진출이 가속화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인도 입장에서는 미국과의 협력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가장 좋은 전략이라고 보고 있다. 인도는 독립 이후 지금까지 중국과 영토분쟁을 벌여왔다.


미국, 중국 견제 위해 인도에 구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2014년 12월 11일 뉴델리를 방문, 모디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졌다. 양국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사항 중 가장 주목되는 것은 러시아가 인도에 앞으로 20년간 원자력발전소 12기를 건설하기로 한 것이다. 러시아는 인도 남부 타밀나두주 쿠단쿨람에 1000㎿급 원전 2기를 건설했고 현재 1000㎿ 원전 2기를 건설하고 있다. 인도는 만성적인 전력 부족으로 경제발전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따라서 러시아가 추가로 최소 12기의 원전을 건설하기로 한 것은 인도의 입장에서 볼 때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하다. 원전 12기 수출액은 400억 달러에 달한다. 현재 인도 원전 시장을 놓고 각국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데, 러시아가 이번 합의로 가장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 셈이다.

러시아는 또 인도에 향후 10년간 매년 20만 배럴의 원유를 공급한다는 계약도 체결했다. 러시아 최대 국영 석유기업인 로스네프트는 2015년부터 향후 10년간 매년 20만 배럴의 원유를 인도 에사르그룹에 공급한다. 2014년 원유 수입에 1430억 달러(158조 원)를 쓴 인도는 러시아로부터 원유 수입을 늘리면서 공급처를 다양화할 수 있게 됐다. 인도로선 상대적으로 비중이 미미했던 러시아산 원유가 대안이 될 수 있다. 현재 인도는 석유 수입량에서 러시아산이 0.5% 미만을 차지하고 천연가스는 아예 수입하지 않고 있지만, 앞으로는 점차 비중이 높아질 전망이다. 인도 국영 석유기업인 ONGC는 사할린에서 생산되는 가스를 액화천연가스(LNG)로 수입하는 사업에 참여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왼쪽(큰 사진)부터 시계 방향으로 모디 인도 총리, 오바마 미국 대통령, 푸틴 러시아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왼쪽(큰 사진)부터 시계 방향으로 모디 인도 총리, 오바마 미국 대통령, 푸틴 러시아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양국은 무기 합작 생산에도 합의했다. 인도는 1992년부터 2013년까지 전체 무기 수입액의 73%에 해당하는 320억 달러(35조 원)의 무기를 러시아에서 수입했다. 러시아로서도 인도는 최대 무기 수출 시장이다. 인도는 이미 러시아제 Su-30 전투기와 T-90 탱크를 자국에서 면허 생산하고 있다. 양국은 또 차세대 스텔스 전투기도 공동 개발하고 있다. 양국이 협력을 강화하고 있는 것은 서로 전략적인 의도가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무엇보다 미국 등 서방의 경제제재를 돌파하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인도는 지금까지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에 동참하지 않고 있다. 푸틴 대통령의 또 다른 의도는 전략적 에너지 협력 관계를 구축해 유럽 의존도를 낮추려는 것이다. 러시아로선 인도에 에너지를 장기적으로 공급하는 계약을 맺음으로써 유가 하락에 대비할 수도 있다. 모디 총리로서도 러시아의 적극적인 접근에 상당히 호의적인 입장을 보일 수밖에 없다.

인도도 경제적, 지정학적 이유로 러시아와의 협력을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선 러시아와의 관계가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특히 인도는 서남아시아로 군사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중국에 맞대응하려면 러시아와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게다가 인도는 에너지 확보가 중요한 만큼 러시아와의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서로의 전략적 관계가 맞아 떨어지는 만큼 양국의 밀월관계는 상당 기간 계속될 것이 분명하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는 항상 인도의 가까운 친구였으며, 앞으로 관계를 더욱 발전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3세계 맹주로서 ‘실리외교’ 구사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2014년 9월 인도를 국빈 방문했다. 시 주석은 국빈 방문할 경우 상대국의 수도를 먼저 찾는 외교 관례를 깨고 모디 총리의 고향인 구자라트주부터 들렀다. 당시 시 주석이 방문한 날은 모디 총리의 생일이었다. 시 주석이 모디 총리에게 상당한 성의를 보인 것은 인도를 적극적으로 포용해 자국 편으로 끌어들이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은 미국이 인도를 끌어들여 자국을 포위하려는 전략을 깨뜨리기 위해선 인도와의 관계를 강화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라고 보고 있다. 시 주석은 모디 총리에게 인도의 철도 건설과 산업단지 조성 등에 5년간 200억 달러(20조8900억 원)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중국은 경제협력을 통해 인도가 자국과의 관계를 악화시키지 않도록 일종의 적절한 관리 정책을 구사하고 있다. 인도는 중국의 대규모 자본을 유치해 경제 발전에 사용하면서도 영토분쟁 등에서 중국에 절대 양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세계 1위와 2위 인구 대국인 중국과 인도는 현재 경제 대국으로 부상하면서 21세기강대국이 되려는 야심을 갖고 있다. 양국은 군사 등 모든 분야에서 경쟁하면서도 사안별로는 협력 관계도 강화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기후변화에 따른 지구온난화 문제다. 양국은 선진국들의 개도국들에 대한 온실가스 배출 의무화 압력에 대해 공동 대응하고 있다. 양국은 또 브릭스(BRICs)의 일원으로서 미국과 서방 국가들을 견제하고 있다. 이런 점들을 볼 때 양국은 국익 차원에서 사안별로 협력 관계를 유지하되 서로 강대국이 되려고 치열하게 경쟁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인도는 과거부터 제3세계 맹주로서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실리외교’전략을 구사해왔다. 인도는 앞으로 30년 내 미국과 중국을 제외한 세계 3위의 경제 대국이 될 것이란 예측이 지배적이다. 인도는 자체적으로 항공모함을 건조하는 등 군사력 강화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모디 총리는 취임 이후 경제성장 정책을 추진하면서 강대국으로 도약하려는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른바 ‘모디노믹스(Modinomics)’라고 부르는 모디 총리의 경제정책 핵심은 기업과 시장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모디 총리는 이를 위해 제조업을 강화하고 외국인직접투자(FDI)를 확대하는 등 강대국들과의 협력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 때문에 모디 총리는 강대국들과 협상에서 자국 경제에 도움이 되는 방안에 대해선 협력을 강화할 것이 분명하다. 인도의 전략은 각국이 제시한 조건들 중 철저하게 자국에 유리한 것만 수용한다는 것이다. 국제사회의 주요 현안에서도 인도는 어느 한편을 일방적으로 지지하지 않고 있다. 인도는 초등학생이 19단을 외우는 국가답게 국익을 위한 계산을 철저히 하고 있는 셈이다.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