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훈 한미글로벌 회장의 ‘건축 기행 그리고 인생’(11)

런던 테이트모던 미술관(Tate Modern Gallery in London)
런던 템스 강 남쪽 지역에 거의 버려져 있다시피 했던 뱅크사이드 화력발전소를 재건축한 테이트모던 미술관은 21세기 영국의 화려한 부활을 알린 ‘밀레니엄 프로젝트’의 백미로 꼽힌다. 2000년 개장한 이래 연간 약 400만 명의 관람객을 불러 모으며 런던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는 테이트모던 미술관. 20년 이상 방치돼 있던 낡은 화력발전소는 어떻게 영국 런던의 상징이 됐을까.
런던 테이트모던 미술관 전경
런던 테이트모던 미술관 전경
19세기 산업혁명을 선도하며 전 세계 정치와 경제의 중심에 있었던 영국, 영원할 것만 같던 대영제국은 20세기 중반 이후 극심한 노동운동과 과도한 복지정책으로 경기 침체의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Margaret Thatcher) 영국 총리는 국영기업들을 민영화하고, 경쟁력 없는 산업들을 구조조정 하는 등‘ 영국병’을 고치기 위해 철퇴를 휘둘렀다. 이러한 개혁의 바통을 이어받은 이가 바로 존 메이어(John Mayer) 총리였다. 그는 21세기 영국의 화려한 부활을 꿈꾸며 1995년 세부 계획이 담긴 ‘밀레니엄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그리니치빌리지에 건설한 밀레니엄돔, 세계 최대의 회전 그네인 런던아이, 템스 강의 보행자전용 다리인 밀레니엄 브리지, 낙후된 템스 강 남부지역에 지하철 주빌리 라인 건설 등이 이 프로젝트의 주요 사업이며, 그중 백미는 화려한 성공을 거둔 테이트모던 미술관의 개관이었다.


발전소 외관은 그대로, 내부만 미술관으로 전환
영국 정부는 밀레니엄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템스 강 남쪽, 뱅크사이드 화력발전소가 폐쇄된 후 20년 이상 방치돼 있던 자리에 현대미술관을 짓기로 결정했다. 1994년 열린 테이트모던 미술관 국제현상공모전에는 전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건축가 148개 팀이 참가했다. 여기에는 프랑스 파리의 퐁피두센터를 설계한 이탈리아 출신 렌조 피아노(Renzo Piano)나 일본의 안도 다다오(Ando Tadao)와 같은 세계적인 건축 거장들도 포함돼 있었다. 대다수 건축가들은 흉물이 된 발전소를 헐고 이 자리에 새 건물을 지을 것을 제안했다. 하지만 유일하게 발전소 건물을 리모델링하자는 안을 낸 스위스 출신의 젊은 건축가 두 사람, 헤르조그(Herzog)와 드 므롱(de Meuron)이 이 공모전에서 당선의 영예를 안았다. 옛 것을 함부로 부수지 않고 잘 보존하는 걸 중요하게 여기는 영국인들의 국민성을 잘 파악한 현명한 선택이었다.

1950년생으로 어린시절부터 절친한 친구였던 두 건축가는 공모전에 당선됐을 당시만 해도 크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테이트모던 미술관을 설계함으로써 일약 세계적인 건축가 반열에 올랐다. 이들은 미술관이 개장한 다음 해인 2001년‘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 상을 거머쥐기도 했다.

테이트모던 미술관 측은 당초 연 평균 180만 명 정도의 관람객이 방문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실제 오픈 이후 첫해에만 525만 명이 몰렸다. 그 이후 안정기에 접어든 지금까지 매년 400만 명 정도 꾸준히 찾고 있다. 이에 테이트모던 미술관은 2016년 완공을 목표로 11층 높이의 뉴 테이트모던 미술관을 증축하고 있다.
새롭게 증축되고 있는 테이트모던 미술관 조감도. 본관과 같이 헤르조그와 드 므롱의 설계다.
새롭게 증축되고 있는 테이트모던 미술관 조감도. 본관과 같이 헤르조그와 드 므롱의 설계다.
테이트모던 미술관은 어떻게 세계적인 명소가 됐을까. 기존 건축물을 최대한 활용하면서도 그것을 새로운 감각과 조화시켜 시대에 맞는 미술관으로 변신을 꾀한 것이 주효했다. 붉은 외벽에 99m 높이의 굴뚝까지 발전소의 겉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지만 내부로 들어가면 전혀 다른 공간이 나온다. 발전소의 터빈을 돌리던 터빈홀은 드라마틱한 전시 공간으로 재해석됐다. 발전소의 천장을 걷어낸 자리에는 유리지붕을 얹었는데, 낮에는 반투명한 유리를 통해 자연채광이 들어온다.

미술관은 서쪽에서 템스 강을 따라 걸어온 보행자들이 내부로 자연스럽게 들어오도록 별도의 주출입구를 만들어 강변 산책로와 연결하고 있다. 내부 산책로가 된 테이트모던의 터빈홀은 누구나 편하게 쉴 수 있는 휴식 공간의 역할을 한다. 내부 공간이면서 외부 공간처럼 느껴지는 터빈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모습 중 하나는 관람객이나 견학 온 어린이들이 도시락을 먹고 휴식을 취하거나, 산책 나온 시민들이 담소를 나누고 책을 보는 것이다. 전시물로 빼곡히 채워진 기존 미술관과 비교해보면 이 공간의 가치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테이트모던 미술관은 터빈홀을 활용해 1년 단위로 대규모 설치조각을 전시한다. 이는 전 세계 어느 미술관에서도 볼 수 없는 광경이다. 지난 2006년에는 독일의 설치조각가 카르스텐 휠러가 제작한 5층 규모의 대형 미끄럼틀이 설치됐는데,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이 미끄럼틀을 타기 위해 줄을 서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2006년 터빈홀에 전시된 카르스텐 휠러의 설치미술품, 초대형 미끄럼틀.
2006년 터빈홀에 전시된 카르스텐 휠러의 설치미술품, 초대형 미끄럼틀.
다국적기업 유니레버의 후원 아래 터빈홀을 전시 공간으로 활용한 ‘터빈홀 프로젝트(TurbineHallproject)’는 공전의 히트를 치며 미술관이 단기간에 세계적 명성을 쌓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현대자동차는 2015년부터 11년간 테이트모던 미술관 터빈홀 프로젝트의 후원을 맡게 된다.

여느 미술관과 달리 테마가 있는 전시 방식도 새롭다. 테이트 모던 컬렉션의 대부분은 테이트 브리튼 미술관에서 옮겨온 것으로 미술관은 190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현대미술, 실험미술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 2000년 개관 당시부터 소장하고 있던 작품들을 ‘정물-오브제 실제의 삶’, ‘풍경-사건·환경’, ‘인체-행위·몸’, ‘역사-기억·사회’로 나누어 각각의 작품들이 역사적 맥락 속에서 어떻게 변형이 이뤄졌는지를 보여주는 식이다. 방금 이혼한 사람들을 위한 전시회, 노란색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전시회 등 기발하면서도 파격적인 전시회도 기획된다. 예술작품 중심이 아닌 사람 중심의 미술관이다. 풍부한 콘텐츠, 쉴 수 있는 넓은 공간이 있는 데다 무료이니 영국 사람들은 물론 런던 방문객들이 이곳을 찾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 같은 테이트모던 미술관의 성공 뒤에는 니콜러스 세로타(Nicholas Serota) 총관장이 있다. 세계 미술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꼽히는 그는 무려 27년째 테이트모던 미술관의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는 2016년 미술관 증축에 필요한 자금 3500억 원을 기업 후원 등 민간 모금으로 해결하겠다고 큰소리쳤는데, 현재 85% 모금이 완료됐다고 한다.


우리는 화신백화점을 꼭 허물어야 했나
원래 화력발전소의 터빈홀. 지금은 왼쪽과 같이 개조됐다.
원래 화력발전소의 터빈홀. 지금은 왼쪽과 같이 개조됐다.
테이트모던 미술관은 우리에게 ‘ 부수지 않아도 새로워질 수 있다’는 교훈을 던진다. 화력발전소를 미술관으로 리모델링하는 데 한화로 약 2700억 원이 들어갔다고 한다. 신축하는 것과 비교해 결코 적지 않은 액수다. 역사와 전통을 그대로 보존하고 그 위에서 새로운 비전을 그리려는 영국 정부와 국민의 의지와 염원이 들어가 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영국을 비롯한 유럽 대다수의 국가들은 오래된 건축물을 쉽게 허물고 다시 짓지 않으며, 국민들도 그 점에 자긍심을 느낀다. 아파트건 공공시설이건 낡은 건축물은 무조건 부수고 새롭게 짓는 우리 나라의 재건축 풍토도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허물고 짓는다고 하면 제대로 지어야 하는데 재건축하는 건물이 인간 친화적이지도 않고 도시 미관을 고려하지 않은 채 건물을 짓는 경우가 많아 `재건축을 다시 재건축`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할까 두렵다. 필자가 보기에 ‘제대로’라는 측면에서 많은 부분 미달이다.

또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일제강점기에 건립된 중앙청 건물(옛 조선총독부 건물)이나 한국 최초의 근대 백화점인 화신백화점의 철거다. 이들은 정치적 이슈나 철거 논리를 떠나 잘 지어진 건축물이자 엄연한 우리의 역사적인 유산이다. 부끄러운 역사를 간직한 건축물을 징비록(懲毖錄)으로 삼을 수는 없었던 것인지, 테이트모던 미술관을 둘러보면서 더욱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건축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철학이 달라져야 할 필요가 있다. 빨리빨리 지은 뒤 몇십 년 후 헐고 재건축할 일이 아니다. 하나라도 제대로 지어 100년, 1000년 건축으로 보존하고 그것을 제대로 후세에 남기는 시대정신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정리 이윤경 기자 ramji@hankyung.com│사진 김종훈 회장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