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의 절대적 힘

2015년 새해, 여러분은 어떤 목표, 어떤 계획을 세우셨나요.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계획이 계획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 새해 벽두부터 열심히 달려가시겠지요. 한 해를 마무리하며 뭐 하나 해낸 것도 없다는 허무함이 지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아마도 2015년은 더 강한 다짐을 했을 겁니다. 그런데 이런 계획은 어떻습니까. 1년 365일 잘 놀기 위한 계획 말이죠. ‘잘 노는 사람이 일도 잘 한다’는 말은 괜한 말이 아닙니다. 뇌과학적으로도 잘 놀아야 성공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해서, 2015년 한 해 동안은 놀이를 통한 진짜 힐링을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노는 법을 모르는 여러분을 위한 친절한 놀이법 가이드 정도가 되겠네요. 전혀 거창한 놀이가 아니니 걱정은 붙들어 매시고, 그저 잘 따라만 오시면 분명 삶에 큰 변화, 강력한 에너지를 얻게 될 겁니다. -편집자 주
[HOW TO ENJOY LIFE] 일보다 더 큰 능력 ‘취미력’을 키워라
열심히 살다가 지쳐서 필자를 찾아온 분들에게 “스트레스 관리는 어떻게 하시느냐”라고 물으면 우물쭈물 대답하지 못하는 분들이 훨씬 많다. 고민 고민 끝에 “전 술도 못 마십니다”라고 답하는 남자들이 있는 걸 보면, 남자들에게 술이 스트레스 관리의 대명사쯤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 필자는 말을 바꿔 다시 묻는다. “어떤 취미를 갖고 계시나요” 그러면 대답하는 사람들이 정말 없다.

‘취미’란 말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물어 보면, 젊은이들은 소개팅 할 때나 묻는 말이라고 하고, 앞만 보고 살기 바쁜 직장인들은 팔자 좋은 소리라고 이야기한다. 또는 시간적, 경제적 여유만 있으면 언제든지 할 수 있는 활동이라고도 한다. 과연 그럴까? 열심히 살아서 경제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여유가 있는, 그야말로 ‘팔자 좋은’ 분들도 취미를 물으면 없다고 말하는 게 태반이다. 즉, 취미라는 게 ‘좋은 팔자’와 별 연관성이 없다는 얘기다.


일하는 뇌 vs 노는 뇌 vs 욕망하는 뇌
삶의 목표의 반은 취미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취미는 어떤 활동 이전에 하나의 능력이다. 취미의 사전적 의미는 세상에서 아름다움을 취하는 능력이다. 집에 비싼 홈시어터를 설치하지 않아도 문화 콘텐츠에 대한 ‘취미력’이 개발만 돼 있다면 우리는 쉽게 문화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취미력 즉, 뇌 안의 노는 시스템이 잘 개발돼 있지 않으면 수많은 놀 거리에 둘러싸여 있어도 우리 뇌는 잘 놀 수가 없다. 일하는 것보다 노는 것이 더 어렵게 된 것이 현대인의 뇌 상태이기 때문이다.

인생의 반이 성취를 위해 열심히 달리는 것이라면 나머지 반은 취미여야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열심히 달릴 때 뇌의 에너지는 방전된다. 그래서 뇌에 에너지를 다시 충전시켜야 한다. 운동에 지친 근육세포는 가만히 두면 회복되지만 뇌는 가만히 보관한다고 해서 잘 충전되지 않는다. 뇌의 충전은 뇌를 즐겁게 해주는 것이다. 세상에 있는 아름다움에 뇌가 즐겁게 반응하도록 트레이닝하는 것이 취미라는 파워를 증대시키는 일이다.

그런데 취미를 담당하는 우리 뇌 안의 노는 시스템을 잘 작동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우리 뇌 안에 있는 일하는 시스템이다. 뇌를 이완시키고 즐겁게 하려 하면 불안을 증가시킨다. ‘네가 이럴 때냐’, ‘이래서 어디 성공하겠느냐’고 말이다.

우리 뇌 안에는 세 가지 공장(system)이 서로 상호작용을 하며 돌아가고 있다. 내 뇌 안에 자회사가 3개 있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공장이 일하는 뇌다. 스트레스 시스템이라고 한다. 스트레스 하면 나쁘다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스트레스 공장은 나의 생존과 성취를 담당한다. 적정 스트레스 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적당히 스트레스를 받아야 최상의 효율성이 뇌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스트레스 공장은 불안이라는 시그널을 사용한다. 마음을 불안케 만들어 나로 하여금 앞으로 뛰게 한다. 시험이 전혀 불안하지 않은 학생이 시험을 잘 볼 수는 없다. 스트레스 공장, 즉 일하는 뇌는 마음을 편치 않게는 하나, 나를 생존케 하고 성취하게 한다. 고마운 녀석이다.

문제는 일하는 뇌만 너무 작동하고 노는 뇌인 따뜻한 충전(soothing) 공장이 거의 멈춰 서 버렸다는 데 있다. 현대 철학자들이 이야기하는 피로 사회, 불안 사회, 그리고 리스크 사회는 스트레스 시스템을 지나치게 작동시키고 있는 현대사회의 특징을 반영한다. 적당히 스트레스를 받아야 효율이 오르는데 그 적정치를 넘어가 과작동을 하다 보니 오히려 효율이 떨어지고 과다한 에너지의 소비로 뇌가 방전 상태에 빠지게 됐다는 것이다. 힐링이란 단어가 유행하는 것은 그만큼 뇌가 지쳐 있다는 것이다. 뇌가 충전과 케어를 바라기에 그 단어에 감성적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잘 놀지 못하는 사람들의 안타까운 ‘최후’
성추행 등을 비롯해 요즘 성공한 사람들의 비윤리적 행동에 대한 기사가 하루가 멀다 하고 끝없이 나오고 있다. ‘다 정신병자들 아니야’라고 쉽게 이야기하지만 나라고 안심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크게 보면 모두 일하는 뇌만 과도하게 작동한 데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왜일까. 일하는 뇌만 너무 작동하다 보면 뇌가 지치게 되고 뇌는 감성적 보상을 요구하게 된다. 마음의 에너지는 은행과 같다. 내 성취를 위해 일하는 뇌에 계속 에너지를 공급해주다가 어느 정도 성취에 이르면 에너지 공급 파이프를 끊고 보상을 요구한다. 채권 회수에 들어가는 것이다. 성취 후 찾아오는 공허감은 성취가 공허해서가 아니라 내 마음의 은행이 채권 회수에 들어갔다는 시그널이다. 마음 은행이 따뜻한 감성 에너지의 공급을 차단했기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때 평소 노는 뇌, 즉 충전공장이 잘 훈련돼 있지 않으면 뇌의 공허감을 해결하기 위해 욕망하는 뇌가 작동하게 된다. 욕망은 사람의 생존 아이템과 연결돼 있어 강력하다. 평소 윤리적이고 자기 통제가 강한 사람도 욕망이 ‘마음먹고’ 작동하면 의지로 이길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잘 놀지 못하는 문제는 인생이 재미없는 수준을 넘어 내 윤리성마저 약화시키고, 결과적으로 내 인생을 이상한 쪽으로 흘러가게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노는 뇌가 잘 작동하도록 훈련하는 것은 마음의 행복, 윤리적인 면을 넘어 성공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과거엔 일하는 뇌만 잘 작동해도 성공했다. 강력한 파워로 밀어붙이면 됐던 것. 그러나 미래 리더십의 키워드는 공감과 창조인데 이 두 요소와 상관있는 뇌의 공장이 일하는 뇌가 아닌 노는 뇌라는 것이 뇌과학의 연구 결과다. 그래서 노는 것과는 별 상관없는 경영학 잡지에 ‘직원의 뇌를 놀게 하라’는 글이 실리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잘 놀 수 있을까. 논다는 것 자체가 익숙하지 않은 대다수 독자 여러분을 위해 2015년 올 한 해 본 칼럼은 노는 법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담을 계획이다.


글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