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정림의 스타일이 있는 식탁

앤티크, 우리말로 골동품이라는 단어를 접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래된 것, 비싼 것, 산뜻함과 대조되는 이미지 등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애정을 가지고 보면 앤티크 안에는 유구한 역사를 거쳐 오며 갖게 된 정감 있는 이야기가 들어 있고, 오랜 경험치를 바탕으로 한 우아함과 느긋함이 있음을 알게 된다.
아르데코 시대의 스털링 와인 잔과 크리스털 디너 접시를 매칭한 세팅. 쪽빛 천연염색 충무 누비 러너를 깔아 정갈함과 정성스러움을 더했다.
아르데코 시대의 스털링 와인 잔과 크리스털 디너 접시를 매칭한 세팅. 쪽빛 천연염색 충무 누비 러너를 깔아 정갈함과 정성스러움을 더했다.
필자의 앤티크 사랑은 서른 초반부터 아니 더 거슬러 올라가 나의 어린 시절 엄마가 거실에 테이블 대용으로 가져다 놓은 조선시대 반닫이를 접하면서 시작된 듯싶다. 한국 앤티크 컬렉션으로 시작된 나의 앤티크 사랑은 서양의 앤티크 테이블웨어를 컬렉션하면서 더욱 그 빛을 발했고 더불어 나의 생활 역시 그 깊이를 더해가고 있다.

우리나라 앤티크와 서양의 앤티크 테이블웨어를 컬렉션하면서 그 예쁜 접시들을 사용해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즐겼고, 자연스럽게 집으로 손님 초대를 많이 하게 됐다. 작게는 가족, 친구들의 모임부터 크게는 남편이 속한 크고 작은 단체들의 지인들을 초대했고 나의 컬렉션인 앤티크 테이블웨어를 함께 사용해서 더욱 격조 있는 식사를 대접하게 됐다. 요즘은 이런 저런 이유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손님을 집에 초대하는 일이 극히 드문지라, 이런 품격 있는 테이블 세팅에 차려진 음식을 대접받는 손님들은 정성어린 응대에 매우 감동했다.

얼마 전 우리나라와 다른 나라의 중산층 기준이 화두가 된 적이 있는데 오직 물질적인 기준만 제시한 우리나라에 비해 프랑스는 ‘근사하게 대접할 수 있는 요리 실력’이라는 항목이 있었다. 정말 우리의 식문화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최고의 손님접대와 최고의 가족 행사가 호텔에서의 식사가 돼버린 요즘, 집 안에서 한 지붕 온 가족이 함께 모여 근사하게 식사하는 것이 드물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뮤지컬에 열광하고, 오페라를 테마로 한 해외여행을 떠나며 문화 지향적인 삶을 추구하는 화려한 우리들의 겉모습에 비하면 우리의 식문화는 초라한 감이 없지 않다. 유럽 많은 나라들의 문화가 아름다운 식탁에서 생겨나고 퍼져나갔듯 우리도 이제 근사하게 차린 식탁에서 홈메이드 음식으로 가족들과 함께하는 멋진 식탁을 일주일에 한 번쯤 준비해보는 건 어떨까? 남편의 지인들을 불러 한껏 솜씨를 발휘하며 우리 집만의 문화를 알리는 것 또한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화려하고 복잡한 문양의 서양 식기
필자는 동서양의 앤티크와 현대의 것을 믹스 앤 매치해서 테이블을 세팅하는 걸 즐긴다. 누군가 나에게 내 테이블 세팅의 특징을 묻는다면 나는 믹스 앤 매치와 유저블(usable)이라고 답할 것이다. 나의 테이블 세팅은 시대와 나라에 구애받지 않는다. 가령 1920년대 아르데코 티포트 세트는 우리나라 조선시대의 해주 소반 위에서 너무나 아름답게 빛나며 빅토리안 시대의 디켄터로 시작된 와인 테이블은 1890년에 만들어진 티파니사의 치즈 서버와 아름답게 조우하는 식이다. 앤티크와 현대의 것, 동양과 서양의 것을 어울리게 세팅하면서 느낄 수 있는 것은 시간의 향기를 지니고 있는 오래된 것들은 지역과 문화를 초월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장인의 숨결이 살아 있는 하이엔드 제품끼리는 100년, 200년의 세월을 넘나들며 훌륭한 조화로움을 만들어낼 수 있다. 실제로 250년 전통의 프랑스 크리스털회사인 바카라의 신제품은 1800년대 후반의 자사 디켄터와 거의 비슷한 모양이어서 깜짝 놀랐던 때가 있다. 정말 “모든 현대의 명품은 고전으로부터 온다”라는 말을 증명하듯 그들은 너무나 닮아 있음을 알 수 있다.
19세기 중엽 프랑스 커트러리 세트와 아르데코 오버레이 디너 접시, 조선시대 놋그릇 등 동서양의 앤티크와 현대적인 것을 믹스 매치한 테이블 세팅.
19세기 중엽 프랑스 커트러리 세트와 아르데코 오버레이 디너 접시, 조선시대 놋그릇 등 동서양의 앤티크와 현대적인 것을 믹스 매치한 테이블 세팅.
여자들이 옷을 입은 후 보석이나 화장으로 치장을 마치듯 테이블 세팅은 플레이스 매트, 냅킨 등의 테이블 클로스로 완성된다. 이 경우 리넨이나 레이스가 많은데 나는 좀 더 안정감을 주기 위해 단단한 질감의 누비 매트를 레이어드한다. 천연염색을 통해 다양한 색깔을 취향대로 연출할 수 있는 누비 매트는 테이블 세팅을 보다 정갈하고 정성스럽게 표현할 수 있게 해준다. 가령 소 털색 누비 매트 위에 베이지색 오벌형 프랑스 빈티지 레이스를 매치하거나, 조선시대 교자상에 쪽빛 누비 러너를 깔고 그 위에 벨기에산 앤티크 레이스를 더하는 식이다. 그런 후에 세팅하는 티 테이블은 비록 평범할지라도 정성스러움과 우아함이 배어나오게 마련이다.

서양의 그릇은 우리의 그릇에 비해 화려하고 문양이 때로 복잡할 때가 많다. ‘과유불급’이라고 지나친 화려함은 때론 손님들로 하여금 편안한 느낌을 방해할 때가 있다. 이럴 때 서양 앤티크 테이블웨어를 우리나라 조선시대 소박하고 정갈한 교자상 위에 펼쳐 놓으면 감탄할 정도의 조화로움과 편안함을 엿볼 수 있다. 이렇듯 테이블 세팅의 데커레이션도 강약 조절이 필수다. 메인 접시의 색깔이나 문양이 화려할 때에는 그 위에 얹는 샐러드 접시나 수프 볼(soup bowl) 등은 단순한 패턴의 것으로 해 강약을 조절해주고 색깔에 있어서도 메인 색을 정하고 두 개 정도의 아이템은 색을 일치시키는 게 좋다. 그린 트리밍 접시 위에 그린 톤의 샐러드 접시를 얹는 식이다. 티 테이블 세팅을 하다 보면 티 잔이 매우 화려하고 복잡한 문양을 한 경우가 더러 있는데 이런 경우 나는 심플한 라인의 아르데코 티포트를 매치하곤 한다.
조선 후기 교자상에 조선시대 놋그릇, 백자 와인 잔, 아르데코 시대의 실버 트리밍 디너 접시가 어우러져 품격을 더한다.
조선 후기 교자상에 조선시대 놋그릇, 백자 와인 잔, 아르데코 시대의 실버 트리밍 디너 접시가 어우러져 품격을 더한다.
앤티크를 통한 시간여행의 묘미
우리나라와 서양의 앤티크를 모으면서 필자가 관철하고 있는 하나의 원칙은 컬렉션들을 되도록 실생활에 직접 사용해보자는 것이다. 고가의 럭셔리한 해외여행에서나 하게 되는 고성에서의 숙박이나 식사가 누구나 꿈꾸는 로망이라면 100년을 훌쩍 뛰어넘어 유구한 세월을 견디고 내 앞에 오게 된 앤티크 그릇들에 직접 음식을 담아 사용해보는 것은 정말 황홀한 시간여행일 것이다. 수납의 사명을 갖고 태어난 조선시대 관복장이나 벼루함을 이용해 앤티크 커트러리나 그릇을 수납한다면 그 물건들은 더욱 빛나고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
조선시대의 서탁 위에 빅토리안 시대 와인 잔과 티 캐디, 아르데코 시대의 커피포트와 티 스트레이너를 세팅한 모습은 우아하다.
조선시대의 서탁 위에 빅토리안 시대 와인 잔과 티 캐디, 아르데코 시대의 커피포트와 티 스트레이너를 세팅한 모습은 우아하다.
테이블 세팅은 보기에 아름답고 또 그것을 즐기는 사람들이 편안하게 대접받는 느낌이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릇의 원래 용도에 구애받지 않고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재미있게 용도를 변경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가령 정찬 코스가 길어서 식사량이 많아질 때에는 작은 수프 볼을 사용한다. 애프터눈 티파티를 할 때에도 티푸드만 고집하지 않는다. 출출한 게스트를 위해 따뜻한 수프를 대접하고 싶다면 정식 수프 볼 대신 작은 볼에 수프를 담고 스푼은 정식 수프 스푼이 아닌 아이스크림 스푼을 내기도 한다. 티파티 때 정식 수프 볼이나 스푼이 다소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서양 그릇에 우리의 음식을 담아내기도 하는데 의외로 잘 어울려서 만족스러울 때가 많다. 예를 들어 더운 여름철에 양념이 덜 들어간 백김치나 물김치 등을 실버가 오버레이된 빈티지 유리 볼에 담아낸다. 실버와 유리가 주는 시원함이 아삭한 백김치의 질감과 근사하게 어울린다. 이처럼 그릇의 원래 용도에서 조금 벗어난 재미있는 해석은 식탁에 앉았을 때 우리의 즐거움을 더욱 크게 해준다.


기획 박진영 기자 | 글 백정림 이고 갤러리 대표 | 사진 서범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