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애란 G&M글로벌문화재단 이사장

‘For What(무엇을 위해서)?’ 문애란 G&M글로벌문화재단 이사장이 던진 화두는 분명했다. 지금 하고 있는 일과 앞으로 하고자 하는 일의 의미를 보다 명확하게 해주는 이 짧은 문장이 문 이사장의 삶의 방향성을 이끌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이 잘 되는 것, 남을 세워주는 것이 지금의 ‘For What’이라는 문 이사장은 나눔의 출발 또한 바로 거기에 있다고 말했다.
[NOBLESSE OBLIGE] ‘For Me’가 아닌 ‘For You’가 주는 진짜 행복
살다 보면 특정한 누군가를 꼭 ‘한번’ 만나게 될 것 같은 강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기자에게는 문애란 G&M글로벌문화재단 이사장이 그랬다. 그가 광고회사 대표로 있던 시절부터 젊은 층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자 롤 모델이었으니 대다수가 보편적으로 갖는 생각쯤으로 치부될 수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이런 저런 우연과 인연이 쌓이면서 그 ‘한번’에 대한 믿음은 강해졌다.

그 사이 문 이사장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달라졌다. 기자의 입장과 상황이 바뀐 탓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문 이사장의 삶이 다른 방식으로 흘러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첫 번째 스테이지였던 광고계에서 불쑥 두 번째 스테이지로 옮겨갈 때만 해도 전혀 다른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자칭 풀타임 발런티어라고 칭했던 그 두 번째 스테이지가, 그러나 결국 세 번째 스테이지의 브리지였던 셈이었다.

2013년 초, 문 이사장은 미국 그레이스앤머시(Grace&Mercy)재단의 자매 재단인 G&M글로벌문화재단의 대표로서 세 번째 스테이지의 막을 올렸다. 문화를 가꾸어 나가는 이들, 이른바 ‘컬처 가드너(cultural gardener)’들의 활동을 지원하고 함께 성장하는 것을 목표로 한 G&M글로벌문화재단은 배우고(learning), 행하고(doing), 가르치는 것(teaching)을 통해 기본적으로 문화가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지향점을 갖고 출발했다. 문화는 세상을 바꾸는 펀더멘털(기초여건)이니까.

서울 청담동의 재단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밝은 빛을 띠고 있었다. 선한 영향력을 가진 이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그 빛은 우리나라 나이로 60세를 넘긴 문 이사장을 더 예쁘고 우아하고 멋져 보이게 했다. 화려한 이력으로 치면 각종 ‘최초’ 기록을 쏟아냈던 광고인 시절이 갑 중에 갑일 텐데, 문 이사장은 분명 그 시절보다 더 반짝거렸다.


1st stage 인생의 절반, ‘광고쟁이’로 빛나는 삶
광고에 관한 한 그는 ‘쟁이’이자 ‘장이’였다. 누구보다 광고적 감각이 탁월한 사람이었고, 독보적인 실력가였다. 더구나 여성 광고인이 거의 전무했던 시절, 문 이사장은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 가는 사람이기도 했다. 광고와의 인연은 197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공채 1기 카피라이터로 제일기획에 입사하면서다. 당시 언론사 시험에 낙방하고 훗날을 고민하던 그에게 잘 맞을 것 같다며 입사 지원을 제의했던 교수님의 눈은 결과적으로 정확했다. 당시 벼락치기로 공부한 상식시험에서 만점을 받으며 입사 당시부터 ‘상식이 풍부한 신입사원’으로 한 몸에 기대와 관심을 받았던 그는 이후 전설적인 존재가 돼 갔다.

‘문애란’이라는 이름 석 자를 모르는 사람들도 다 아는, 숱한 화제의 광고 카피들이 그 첫 번째 증거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소리 없이 강하다’, ‘미인은 잠꾸러기’, ‘정복할 것인가, 정복당할 것인가’, ‘막 사 입어도 1년 된 듯한 옷, 10년을 입어도 1년 된 듯한 옷’ 등 그의 대표작들은 해당 상품을 가장 적확하게 표현해낸 카피임과 동시에 전 국민의 유행어가 됐을 정도다. 그뿐만 아니라 1988년에는 ‘소리 없이 강하다’는 카피로 유명한 한 자동차 광고로 국내 최초로 칸 국제광고제에서 은사자상을 수상했고, 2006년에는 여성 광고인 최초로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는 등 존재감을 드높였다. 그런가 하면 1987년 박우덕, 김태형 씨 등 광고계 1세대들과 함께 설립한 광고대행사 웰콤의 대표를 맡아 광고계 여성 대표 1호라는 타이틀까지 달았고, 이후 웰콤이 폭풍 성장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이 모든 건 오직 광고가 좋았고, 그래서 모든 열정을 쏟아 부은 결과였다.

“제 캐릭터가 광고와 아주 잘 맞아요. 별명이 ‘시베리안 허스키’인데, 달릴 때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본다고 해서 붙여졌을 정도죠(웃음). 스트레스가 많은 직업이긴 하지만, 한번도 ‘어제’가 없잖아요. 늘 새로운 제품이 나오면 써보고 거기서 많은 걸 얻죠. 심지어 ‘내가 아는 지식은 광고를 통해 얻었다’고 할 정도로 말이에요. 그렇게 광고를 정말 좋아했는데….”

다른 사람들이 ‘하이라이트’라고 하던 그 시기, 아이러니하게도 문 이사장은 가장 힘든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한 가지 놓치고 있었던 부분, 그걸 찾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왜 이 일을 하는지를 생각하지 않았던 거예요. 지금도 제가 ‘For What’을 주제로 강의를 하곤 하는데, 광고 일을 할 때 정작 제가 그 가치를 몰랐던 겁니다. 그러니, 남들이 성공했다고 하면 할수록 제 자신은 ‘내가 왜 사람들에게 이걸 사라, 저걸 사라 하고 있을까’ 고민했고, 그러는 동안 심한 우울감이 들었어요. 돈도 원치 않았고, 명예욕도 없었고, 그러다 보니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삶이 됐었죠. 그게 가장 힘들었어요.”

문 이사장은 아일랜드 출신의 록 그룹 유투(U2)의 보컬 보노를 예로 들었다. 노래할 때의 목적이 보이스가 없는 이들을 위해 보이스가 돼주는 것(아마도 반전과 구호 활동을 두고 하는 말인 듯했다)이라는 보노는 그렇기 때문에 어떤 콘서트에서든 실패할 일이 없는 거라며. 그렇듯 목적이 있는 삶과 없는 삶은 차이가 분명해 보였다.


2nd stage 컴패션에서 발견한 삶의 가치
[NOBLESSE OBLIGE] ‘For Me’가 아닌 ‘For You’가 주는 진짜 행복
그렇게 가장 빛나는 시기를 보내고 있었던 40대 후반부터 문 이사장은 다음에 펼쳐질 인생에 대해 고민했다. 그 고민에는 주변 사람들의 ‘추락’도 한 몫 했다.

“사람들이 추해지는 모습을 많이 봤어요. 권력을 놓고 아들과 싸우는 회장, 아들 장가보낼 때까지 기업의 높은 자리에서 버티고 있는 사람들, 끝없이 높은 곳을 향해 있는 정치인들, 제가 ‘유명한 사람들은 형무소 돌담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 같다’고 표현할 정도였죠. 많은 걸 가진 사람들의 불행도 많이 목격했어요. 진짜가 뭘까, 무엇 때문에 사는 걸까 혼란스러웠고, 나는 그렇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인생의 나머지 하프 타임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에 대한 기도를 많이 했어요.”

그 즈음 문 이사장은 컴패션을 만났다. 국제적인 구호단체인 컴패션의 비전 트립(vision trip: 후원자가 현지에 가서 후원 아동을 만나는 것)을 통해 아이들을 만난 뒤 그는 보이지 않던 세계를 보게 됐고, 삶의 새로운 가치에 눈을 뜨게 됐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광고 일을 하는 데 적합했던, 가령 파티를 하고 사람을 모으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도 후원자를 모집하는 역할을 하는 데 꼭 들어맞았다.

2007년, 그는 32년을 헌신했던 광고계를 떠나 그렇게 ‘풀타임 발런티어’라는 새로운 길을 택했다. 하던 일을 그대로 유지한 채로도 충분히 양립할 수 있었을 테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노라고 했다. 마음이 시키는 대로 따른 것이었다.

그 시기, 문 이사장은 스스로도 많이 변했고, 무엇보다 주변 사람들이 많이 변해가는 것을 보면서 엄청난 희열과 보람을 느꼈다.

“아프리카, 아시아, 아이티 등 수많은 나라로 비전 트립을 다니며 정말로 어려운 사람들을 많이 봤어요. 인도에서 3~4대째 노예로 팔려간 사람들도 있었고, 일주일에 다섯 끼를 먹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그런데 말이죠, 그토록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평화롭기 그지없고, 진짜 행복한 얼굴들을 많이 보았어요. 그걸 통해 사람에겐 상황이 중요한 게 아니라 마음의 부유함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무엇보다 제가 진정 보람을 느낀 건 같이 간 분들의 변화였어요. 어떤 재벌가의 가족도 함께 갔었고, 정신과 치료를 받던 친구도 있었는데, 그들의 삶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달라졌죠.”

결국 또 ‘For What’이었다. 사람들은 자기 삶의 목적을 찾았고, 다른 이들이 변하는 것을 보면서 그 역시 삶의 목적이 더 분명해졌다.


3rd stage 좋은 걸 나누고 셰어하는 문화를 위해
세 번째 스테이지는 그래서 두 번째의 연장선이자 보다 더 근본적인 접근이다. 내가 좋은 것을 남과 나누는 것, 그래서 남을 세워주고 그 사람이 잘 되도록 이끄는 과정에서 자신도 잘 되는 것, 즉 서로가 서로에게 긍정적이고 선한 에너지가 돼주는 일이다. 문화는 그걸 이끌어내는 방법인 셈이다.

G&M글로벌문화재단 이사장을 맡게 된 것도 어느 날 ‘찾아든’ 일이었다. 그레이스앤머시재단 설립자가 한국에서 여러 지원 활동들을 하고 싶어 했고,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인 문 이사장이 브리지 역할을 하면서 자연스레 한국 재단을 맡게 된 것. ‘문화’라는 코드도 재단 설립자와 함께 고민한 결과였다. 배우고, 행동하고, 가르치고 나누는 문화를 지속함으로써 성장하고, 다시 그걸 다음 세대에게까지 물려줌으로써 보다 좋은 세상을 만드는 의미 있는 일을 지속하는 것이 G&M글로벌문화재단의 방향성이다.

“우리가 사는 라이프스타일을 이루고 있는 게 문화잖아요. 예술뿐만 아니라 직장 문화도 있고, 음식도 문화고, 커뮤니케이션도 문화죠. 문화적으로 접근하되 다만 우리는 뭔가를 직접 하려고 하지 않고 지원하는 기관이에요. 펀딩을 통한 지원도 하지만, 그간 제가 많이 받은 네트워크라는 혜택을 나눌 수 있다는 기쁨이 큽니다.”

설립 2년째, 아직은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단계지만, 재단이 자체적으로 실행하고 있는 ‘저스트 쇼 업(Just Show Up)’ 북클럽 활동은 가장 활발하게 진행 중인 사업 가운데 하나다. 문화를 바꾸려면 배우는 게 중요하고, 그 배움의 핵심이 책이라고 생각해 북클럽 활성화 방안을 찾아낸 것. 그 방법은 다름 아닌 오디오북이었다.

“재단 설립자의 개인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해요. 본인이 책을 읽기조차 힘든 시기에 오디오북에 많이 의지했대요. 더구나 듣기와 읽기를 함께 하면 그 효과가 너무 좋다는 것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오디오북을 만들어 북클럽들을 지원하기로 했죠. ‘저스트 쇼 업’이란 명칭도 오기만 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누군가는 점심시간을 활용하고 누군가는 퇴근 후를 활용해 모이고 있는데 효과가 대단히 좋아요. 처음엔 종교 서적만 하다가 지금은 인문학, 아동, 음악, 미술 분야로 점점 넓혀가고 있지요. 진짜 좋은 문화가 나타나려면 배워야 한다는 운동을 그런 식으로 펼치고 있는 겁니다. 지금은 시작이지만 천천히 쌓여 나가면 분명 좋은 문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 거라고 믿으면서 말이죠.”


and then 다음 세대를 위한 하나의 맥락
돌이켜보니 문 이사장의 삶은 전혀 다른 듯 보였지만 결국 같은 맥락 안에 있었다. 재단 이사장을 맡게 된 것도 컴패션에서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덜 실수할 수 있었다”고 말하는 그다.

“컴패션을 통해 가난이 뭔지 보았고 해결하는 길이 무엇인지 보았죠. 비정부기구(NGO)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옆에서 보면서, 사람들이 모이는 건 다른 게 아닌 비전 때문이란 것도 알았고요. 또 기업보다 더 투명해야 한다는 점도 깨달았죠. 컴패션에서 8년간 풀타임 발런티어를 하면서 참 많은 걸 배웠습니다. 그렇게 중간 완충지대를 지난 덕분에 재단 이사장을 맡는 데도 큰 도움이 됐죠.”

그런가 하면 광고계에 몸담으며 만났던 수많은 관계들, 나이를 잊어버리고 새롭고 트렌디한 것에 열광하며 살았던 세월들, 젊은 친구들과의 불편함 없는 소통 등은 또 다른 방식으로 세 번째 스테이지와 엮이며 시너지를 내고 있다. 그가 특히 ‘넥스트 제너레이션’에 관심이 많은 것도 어쩌면 같은 맥락이다.

“반목하지 않고 사람이 사람답게 숨을 쉴 수 있는 사회로 만드는 문제는 결국 ‘넥스트 제너레이션’에 답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사람들이 잘 되는 게 좋지만, 특히 젊은이들이 꿈을 찾는 것, 꿈을 이루는 것을 도와주는 사람이고 싶어요. 거기에서 큰 기쁨을 느끼죠. 그래서 재단을 통해 굉장히 작은 씨앗이지만 잘 뿌리고 있고, 서서히 좋은 열매를 맺게 될 거라고 믿어요.”
문 이사장은 ‘봉사’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뭔가를 희생해야 하는 느낌의 ‘봉사’가 아니라 상대방이, 내 옆 사람이 좋아하는 것, 행복해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게 진짜 나눔이기 때문이다.

“‘나’를 위한 나눔이 아닌, ‘너’를 위한 나눔이 돼야 합니다. 어렵지 않아요. 힘든 친구에게 그 친구가 좋아하는 향초를 켜주는 것부터 해보세요. 친구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 자신이 더 행복해지는 걸 느끼게 될 테니까요.”


박진영 기자 bluepjy@hankyung.com│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