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대계의 완성, 자녀 교육 왜 중요한가

한 재벌가 사모님은 사석에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로마도 무너졌다. 기업을 지키는 게 너무나 어렵다.” 기업이 됐든 부(富)가 됐든 키우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게 ‘지속 가능성’을 갖추는 일이다. 자산가들이 자녀 교육에 더 적극성을 띠고 매진해야 하는 이유다. 그런데 세상은 복잡해졌고 삶의 가치도 달라졌다. 교육도 마찬가지. ‘맹모삼천지교’로는 부족하다. 지속 가능을 위한 ‘자질’을 갖추는 데는 오랜 시간과 계획, 노력이 필요하다.
[BIG STORY] 지속 가능한 부(富)를 위한 교육의 본질적 가치
500억 원대 매출을 올리는 한 제조 및 유통 관련 중소기업의 자녀 A씨는 올해 부장으로 승진했다. 30대 중반의 나이니 빠른 승진이지만, 사내에서는 이번 인사에 대해 수긍하는 분위기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해외 명문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경영학 석사 학위(MBA) 과정을 수료한 A씨는 20대 후반 회사에 평사원으로 입사, 제조 공장과 물류창고 관리 등 지난 몇 년에 걸쳐 다양한 현장 경험을 쌓았다. 그 과정에서 상사의 혹독한 훈련도 거쳤고, 관계사들과 네트워크도 다지며 후계자로서의 면모를 갖춰 왔다. 무엇보다 A씨는 글로벌 경험을 바탕으로 제품이나 마케팅에 대한 아이디어를 개진하기도 하고, 해외 진출에 대해서도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오너 기업의 다른 2세, 3세들과 프라이빗한 모임을 하며 각종 경제 및 금융 등 사업에 필요한 정보를 얻고 철학, 인문학 등에도 소양이 풍부한 터라 조직원들은 A씨가 이끌게 될 기업의 미래에 기대감을 갖고 있다.


경제 감각·경영 능력보다 중요한 인품과 가치관 교육
좋은 환경에서 나고 자라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경영 능력과 리더십을 키워 가고 있는 A씨 사례는 자산가 2세, 3세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인 모습이다. 창업 1세대들이 이렇다 할 교육을 받지 못한 채 현장에서 직접 부딪치면서 경험을 통한 습득을 해왔다면, 자녀 세대들은 보다 체계적이고 시스템이 갖춰진 환경에서 양질의 교육을 받고 있다. 그 바탕에는 부모 세대가 자녀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한 배경이 있다. 힘들게 일군 부 또는 기업을 자녀 세대 이후로도 꾸준히 지키고 키우기 위해서는 후세에 대한 교육이 필수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건 그 ‘자각’이 일찌감치 이뤄졌지만, 교육의 방법은 시대에 따라 다소 달라져 왔다는 점이다. 과거에 2세 교육은 한마디로 돈에 의지한 ‘황태자’ 방식이었다. 일반인들은 감당이 안 되는 사립학교를 보내고 유학을 통해 글로벌 경험을 쌓고 다양한 눈과 감각을 키우기 위한 여러 사교육이 행해졌다. 나아가 경제와 투자 등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분야에 대해서는 개인 과외를 붙여 집중적으로 가르치기도 했다.

물론 이러한 절차들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한층 업그레이드돼, 어릴 때부터 국제학교를 통해 글로벌 교육을 받게 하고, 해외 유학도 2개 국가 이상을 경험하는 사례가 대다수다. 주거래 은행이나 증권사 프라이빗뱅커(PB) 등을 ‘금융 선생’으로 삼아 개인 수업을 하거나, 기업에서 재무를 총괄 담당하는 임원이나 부서장이 2·3세의 ‘경제 교육’을 맡기도 한다. 이론 수업에만 그치지 않고 학생 시절부터 해외 금융 선진 국가를 방문하는 현장형 수업도 병행되고 있다. 이와 같은 교육을 받은 2·3세들은 자산에 대한 개념, 경영에 대한 감각, 글로벌한 시각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최근 들어 후세 교육에 대한 또 다른 가치관이 생겨났다. 바로 인품을 갖추고 통섭의 마인드를 키우는 등 직접적인 ‘경제 효과’로 드러나지 않지만 본질적으로 중요한 것들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몇 해 전부터 2·3세를 위한 교육 커리큘럼에 인문학이 중요한 분야로 떠오르게 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특히, 금융이나 경제, 투자 등 기초적인 분야는 중·고등학교에서 대학 과정에 이르기까지 기본 소양을 갖추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막상 경영 실전에 돌입한 이후에는 보다 깊이 있는 인문학, 철학 등에 열광하는 경우가 많다. 한 중견기업의 40대 3세 오너도 “오히려 막상 경영에 입문한 뒤에는 인문학 등에 많은 관심을 갖는다”며 “조직원들뿐만 아니라 사업상 관계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읽고 ‘통치’하지 못하면 아무리 뛰어난 인재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스웨덴 발렌베리 가문 등 해외 유명 가문들의 교육법
이런 분위기는 얼마 전 대한항공의 ‘땅콩 회항’ 사건 이후 더욱 심화되는 추세다. 바닥부터 다지지 않고 이른 나이에 임원이 되면서, 자격은 없는데 권력만 주어지는 이들에 대한 비판과 함께 ‘금수저 물고’ 태어난 2·3·4세들이 보다 혹독한 경영 수업을 받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경영 능력만의 문제가 아니라 존경받는 인품을 갖추는 방향으로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는 의견도 쏟아져 나오고 있다. 특히나 향후 기업을 물려받을 후세들이라면 한 기업의 존속 가능성을 넘어 수많은 조직원들과 그 가족들의 삶까지 책임지고 있다는 점에서 뛰어난 인재 이전에 훌륭한 ‘정신’을 갖추는 일이 상당히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다.

그런 면에서 해외 유명 가문들의 사례가 더욱 강하게 다가온다. 대표적으로 스웨덴의 발렌베리 가문을 빼놓을 수 없다. 150년간 5대에 걸쳐 세습 경영을 하고 있는 발렌베리 그룹은 ‘스웨덴을 먹여 살린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경제적 기여와 함께 존경받는 가문의 명예를 유지하고 있다. 발렌베리 그룹은 엄격한 교육으로 유명한데 후계자 후보들이 갖춰야 할 덕목을 보더라도 이 그룹이 왜 오랜 명성을 유지하고 있는지 증명된다. 폭넓은 인맥 네트워크를 형성하게 하고, 명문대와 국제적인 기업에서 넓은 안목을 기르게 하는 건 우리나라와 다를 바 없지만, 이 모든 건 혼자 힘으로 해야 한다는 점에서 엄연히 다르다. 어렸을 때부터 자립심을 키워주는 것으로도 널리 알려진 발렌베리 가문의 교육은 검소한 생활을 가르치고,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지혜를 알려주고,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개념을 갖추게 하는 등 경영자의 자질 함양과 더불어 정신적인 가치의 중요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경제적으로 독립하면서 검소한 생활을 강조한 교육은 해외 명문가들에게서 나타나는 공통점이다. 미국 록펠러 가문 역시 ‘수입-지출=재산’이라는 기본 공식 아래 지출을 줄이는 습관을 들이도록 하는 한편 체계적으로 용돈을 관리하게 한 후 상과 벌을 주는 식으로 자산관리의 기본 개념부터 가르쳤다. 빌 게이츠의 경제 교육도 엄격하기로 유명하다. 게이츠는 자녀들에게 매주 1달러의 용돈만 주었으며, 자녀들이 어려서부터 스스로 용돈을 모으고 그 한도 내에서 규모 있게 소비하도록 가르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워런 버핏도 마찬가지다. 버핏은 ‘부모의 돈은 자녀의 돈이 아니다’라는 원칙하에 재산을 자선 단체에 기부할 것임을 늘 자녀들에게 밝혀 왔다. 그 대신 경제 감각을 키워주는 방식을 택했는데, 버핏은 서재에서 무디스의 평가보고서 등을 읽고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자녀들에게도 관련 자료를 읽고 투자를 판단하는 눈을 기르게 했다. 홍콩의 부호 리카싱 또한 아들들이 일곱 살이 될 때부터 회사 이사회를 참관토록 해 비즈니스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깨닫게 할 뿐만 아니라, 유학 간 자녀에게 용돈을 풍족하게 주지 않고 자전거로 통학하게 하는 등 검소한 생활을 가르쳤다.


박진영 기자 bluep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