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chair): 소유자의 초상

의자는 사람이 걸터앉기 위해 만든 실용적 도구지만 그 자체만으로 중요한 상징이 되기도 한다. 의자는 그곳에 앉은 인물의 권위를 높여준다. 앉아 있는 사람을 서 있는 사람과 대비시켜 계급이나 신분의 차이를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임자가 있는 의자는 주인이 없을 때도 그를 상기시킨다.
1 ‘투탕카멘 왕의 옥좌’, 기원전 1333~1323년2 ‘투탕카멘 왕의 옥좌’ 세부
1 ‘투탕카멘 왕의 옥좌’, 기원전 1333~1323년2 ‘투탕카멘 왕의 옥좌’ 세부
이집트 투탕카멘 왕의 무덤에서 발견된 옥좌는 나무를 조각해 안락의자 형태로 만들었는데 금은판과 준보석, 색유리 등으로 휘황하게 장식했다. 이집트에서 옥좌는 모성과 마술의 여신 이시스의 상징이다. 그 의자에 앉을 수 있는 자는 이시스의 아들인 하늘의 신 호루스뿐이다. 파라오가 옥좌에 앉는다는 것은 그가 이시스의 무릎에 앉은 호루스와 동일한 존재임을 의미한다. 이집트에서는 파라오를 호루스의 화신으로 여겨 신성시했는데, 호루스의 상징인 맹금류의 날개와 사자의 머리를 새긴 파라오의 옥좌는 이 같은 절대 왕권에 대한 당시의 가치관을 엿보게 한다.


고대 이집트의 세계관을 응축한 투탕카멘의 옥좌
투탕카멘의 옥좌는 등받이에 새겨진 그림이 특히 눈길을 끈다. 그 그림은 젊은 투탕카멘과 왕비 안케세나멘을 묘사한 것이다. 왕은 편안히 의자에 앉아 왕비를 마주보고 있고, 왕비는 그의 어깨에 향유를 발라준다. 다정한 부부의 정을 느끼게 하는 이 장면은 권위적인 옥좌의 엄중한 무게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볍고 감상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일상생활의 한 장면이 아니라 신성한 의식을 위한 행동으로 볼 수 있다.

이집트인들은 향유를 신에게 바치기도 했고 무엇보다 미라를 만들 때 방부제로 사용했다. 왕의 몸에 향유를 바르는 것은 그가 신과 같은 인물이며 영생불멸한다는 것을 뜻한다. 왕의 머리 위로 태양을 상징하는 원반이 빛을 내리고 있는데, 왕은 그 빛을 받아 백성에게 전하는 특별한 존재인 것이다. 투탕카멘은 9세에 왕이 돼 9년 만에 사망했지만 그의 거창한 옥좌는 어린 왕의 비극적 생애를 뒤로 한 채 파라오의 황금빛 영광을 발산한다. 주인이 떠나간 그 의자는 개인을 넘어 고대 이집트의 역사와 세계관을 응축한 기념비적 유물로 남아 있다.

지위가 높은 인물을 대신하는 의자는 이처럼 관례적이고 공적인 성격을 띤다. 반대로 의자가 평범한 개인과 동일시돼 보다 내면적이고 사적인 의미를 전달하는 경우도 있다. 수많은 회화 작품에서 빈 의자는 부재하는 주인의 존재를 환기시키기 위해 자주 등장했다. 그중 주목되는 예로 빈센트 반 고흐가 그린 한 쌍의 그림 ‘빈센트의 의자’와 ‘고갱의 의자’가 있다. 이 두 작품은 1888년 반 고흐가 아를에서 고갱과 함께 지내던 시기에 그린 것이다.
3 빈센트 반 고흐, ‘빈센트의 의자’, 1888년4 빈센트 반 고흐, ‘고갱의 의자’, 1888년
3 빈센트 반 고흐, ‘빈센트의 의자’, 1888년4 빈센트 반 고흐, ‘고갱의 의자’, 1888년
‘빈센트의 의자’는 화가 자신의 의자로, 농촌에서 흔히 쓰는 소박한 의자를 표현했다. 대개 참나무와 골풀을 엮어 만든 이런 의자는 전원풍을 나타내며 시골집의 부엌이나 농부의 노동을 환기시킨다. 반 고흐는 농부에게 남다른 애착이 있었고 일하는 농부를 그리는 것이야말로 회화가 나아갈 바라고 말하기도 했다. 자신의 의자를 이렇게 그린 것은 가장 낮은 자로 자기를 낮추는 겸손한 태도로 기독교 신앙의 표현이기도 하다. 의자 위에는 그가 평소 즐기던 담배쌈지와 파이프가 놓여 있다. 담배는 반 고흐의 분신, 또는 신체의 일부와 같은 것으로 그곳에 있음으로써 부재하는 주인을 대신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고갱의 의자’는 곡선으로 한껏 멋을 부린 도회풍의 흔들의자처럼 보인다. 그 위에는 지식을 뜻하는 책 두 권과 불 켜진 양초가 놓여 있다. 바닥에는 평범한 타일이 아니라 화려한 무늬의 카펫이 깔려 있고 시간도 육체노동을 하는 낮이 아니라 책을 읽기 좋은 밤으로 묘사됐다. ‘빈센트의 의자’가 투박한 시골 농부의 초상이라면 ‘고갱의 의자’는 세련된 도시 지식인의 초상이다. 이처럼 반 고흐는 고갱을 자신과 상반된 개성을 지닌 인물로 표현했다. ‘고갱의 의자’에는 현대적 지성과 창의성을 지닌 고갱에게 반 고흐가 보내는 존경심이 담겨 있다. 그런데 그 그림은 의자 다리가 화면에서 잘릴 정도로 형태가 비좁게 꽉 들어차고 빨강과 초록이 강한 보색 대비를 이뤄 어딘가 불안정한 느낌을 준다. 이는 두 사람 사이에 있었던 잦은 갈등의 반영이며 고갱이 떠날 것을 우려한 불안감의 표출로 여겨지기도 한다. 반 고흐는 고갱에게 지나칠 만큼 집착했기 때문에 이 의자 그림이 동성애의 표현이 아닌지 의심되기도 한다.


두 개 의자에 투영된 반 고흐의 내면
사실 ‘고갱의 의자’는 남자의 의자인데도 곡선이 많고 화려해 여성적인 성격이 강하며 요람처럼 생긴 형태가 어머니를 상기시키기도 한다.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보면 어머니는 어린아이에게 최초의 애정의 대상이자 돌이킬 수 없는 상실을 안겨주는 존재로서 인간의 끊임없는 욕망의 대상이다.

그런데 어머니는 남근이 없기 때문에 남자 아이에게 자신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거세공포를 불러일으키는 무서운 존재이기도 하다. 그래서 남자 아이는 남근을 가진 어머니에 대한 환상을 갖게 되는데, ‘고갱의 의자’에 놓인 촛불이 바로 그 ‘어머니의 남근’에 해당된다. 따라서 이 그림은 반 고흐가 동료인 고갱을 양성적인 어머니, 즉 사랑하면서도 두렵고 증오하는 어머니와 결부시킨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림의 동성애적 성격은 고갱이라는 개인에 대한 반 고흐의 애증의 표현을 넘어, 이와 같은 보다 근원적인 본능과 연결해 설명해야 한다.

여하튼 이 두 의자를 그리면서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은 바로 반 고흐 자신이다. 그는 고갱이 떠난 후에도 이 그림들에 덧칠을 해 나중에 완성했다. 그는 원근법을 왜곡시키는 등 개인적 관점을 첨가함으로써 그림의 주관적 특징을 강조했다. 반 고흐에게 ‘빈센트의 의자’는 스스로를 객관화시켜 바라본 화가의 자화상이다. 그리고 ‘고갱의 의자’는 고갱의 초상을 표방하지만 그것을 그린 화가 자신의 내면을 가득 담고 있다. 오늘날에도 이 두 의자에 대한 관심과 논의가 식지 않는 것은 단지 의자 주인들에 대한 일화 때문만이 아니라 우리도 그 속에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기 때문이 아닐까?


박은영 미술사가·서울하우스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