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에서 배우는 교훈-다섯 번째

투자를 이야기할 때 좋은 물건을 잘 골라서 오래 묻어두라는 말을 흔히 듣는다. 맞는 말이지만 좋은 물건을 잘 골라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붙어 있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만일, 잘못된 물건을 오래 들고 있다면 원하지 않는 장기 투자가 될 것이고 결과는 처참한 실패로 돌아온다.
[GOLF&INVEST] 비자발적 장기 투자의 폐해
투자하고 나서 빨리 돈이 되는 것이 속을 썩는 것보다는 기분이 좋다. 그러나 너무 빨리 돈이 되면 빨리 팔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 큰돈을 벌지 못할 수도 있다. 테마주는 급등하기 때문에 급소에서 잡으면 빨리 큰 수익이 나지만 자칫 매도 타이밍을 놓치거나 상투에서 잘못 잡으면 낭패를 본다. 그러나 오래 묵혀서 큰돈이 된 주식은 절대 급등하지 않는다. 최근 시대에 맞는 성형, 건강, 미용 쪽 주식들을 잘 관찰해보면 오르고 내리기를 끊임없이 반복하면서 지루하리만큼 오래 가기 때문에 어금니를 꽉 깨물고 견디지 못하면 큰 수익을 내지 못하고 팔아버리는 우를 범하게 된다.

반면에 원하지 않는 비자발적인 장기 투자가 생각보다 많다. 장기 투자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일단 여유자금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고 희망을 묻어두고 있으니 기다림이 지루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에 빠져나와야 한다. 주식투자는 언제든지 빠져나올 수가 있으니 시대에 맞지 않고 기다려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주식이라면 빨리 빠져나와야 한다. 손해를 실현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빠른 결단만이 더 큰 손해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다.


우량주의 함정에 빠지는 이유
왜 비자발적 장기 투자의 함정에 빠지는가. 첫째는 과거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과거에 이 회사가 우리나라 경제를 이끌고 가는 기관차였고 세계 최고였다는 생각이다. 우량주의 함정이다. 과거 주가에 대한 환상이 착시 현상을 가져온다. 과거에 얼마까지 갔었는데 너무 싸다고 느껴져서 투자하는 것이다. 투자는 싸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비싸도 미래가 있는 회사 주식에 투자해야 한다.

둘째, 언젠가는 좋아지겠지 하는 막연한 운에 기대는 것이다. 도시 근교나 도심 속 혐오시설 근처에 투자하는 것은 도시가 확장하거나 혐오시설이 없어질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투자하는 것이다. 무엇이나 기대감이 있어야 투자하는 것이지만 막연한 기대감은 금물이다. 가격 경쟁력도 없고 품질도 뛰어나지 못하는 노동집약적인 산업은 이제 후진국에 돌아가야 한다. 어르신들은 경제가 성장만 하던 시대를 살아왔기에 언젠가는 좋아졌던 경험을 많이 가지고 있다. 이것이 판단을 흐리게 하는 것이다.

셋째, 지식이 많고 과거에 힘 좀 쓴 경험이 있는 투자자들은 자신의 판단과 지식이 옳다고 생각하고 주변의 조언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나라가 망하지 않는 한 큰 회사이기 때문에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주식투자는 망하지 않을 회사를 찾는 것이 아니고 지금도 돈을 벌고 있고 앞으로도 돈을 벌 수 있는 기업을 찾는 것인데도 말이다. 주식투자는 평등의 원칙이나 인정이 용납되지 않는 곳이다. 많이 빠졌으니 형평을 맞춰야 하지 않느냐고 반문하는 순간에 땅굴을 파는 것이 주식이다.

현대중공업의 예를 들어보자. 세계 1등, 국내 1등 대표 조선사 현대중공업은 절대 우량주에 속한다. 그런 주식이 6분의 1 토막이 나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금융위기 때도 아니고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주가가 사상 최고가 근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증시가 2000포인트 근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60만 원 근처까지 갔던 주가가 10만 원이 깨졌다. 보통은 30만 원 정도 하면 40만 원 정도는 가지 않을까 생각하고 낙폭 과대주로 접근한다. 그러나 주가는 조금 오르는 듯하다가 속수무책으로 하락해서 손절매 타이밍을 놓치고 거기서 3분의 1 토막이 나고 만다.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고 버틸 일이 아니다. 이제는 10만 원이 깨졌으니 관에 넣고 가겠다고 오기로 버티는 사람이 많다. 주가는 알 수 없다고 하지만 이미 중국과 경쟁을 하고 있고 중국이 좋아져서 혜택을 보기는커녕 중국 업체와 싸워야 하는 기업이기에 가망이 없어 보인다. 더군다나 셰일가스 혁명으로 싼 에너지가 넘치는데 누가 바다를 뚫어서 기름을 꺼내고 정제하는 해양 플랜트 사업을 하겠는가.


때에 따라선 내려놓는 지혜가 필요
골퍼들의 소원은 할 수 있다면 골프를 치다가 죽는 거라고 한다. 기왕이면 에이지슈터(age shooter: 본인 나이에 맞는 스코어를 치는 것)라도 한번 해본다면 원이 없을 것이다. 예를 들면, 78세에 78타 이내를 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젊었을 때도 힘든 데 말이다. 필드에서 죽겠다는 사람은 돈도 있고, 같이 할 수 있는 친구도 있고, 어느 정도 건강해야 하기 때문에 행운이다. 아무리 좋은 것도 즐기되 길게 탐하지 말라고 했다. 지나간 모든 순간들과 기꺼이 작별하고 내려놓아야 할 때가 있다. 법정스님은 그의 책 ‘아름다운 동행’에서 “삶은 순간순간이 아름다운 마무리이자 새로운 시작이어야 한다”라고 기술했다.

필자의 고객들은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지만 나이 든 분이 많기 때문에 골프는 자연스런 주제다. 한번은 어느 고객이 아버님을 모시고 가는데 동행하자고 해서 골프에 동행했는데 아버님께서는 연세에 비해서 많이 연로하셨고 숨도 헉헉 대셨다. 좀 무리가 아닌가 싶었다. 아들은 티도 꽂아주고 공도 찾아서 좋은 데로 놓아드리면서 함께 라운드를 했다. 이야기를 하면서 함께하기가 어려우니 라운드라고 보기 힘들었다. 언뜻 보면 아버님께서 원하시는 걸 하게 해드리니 효도이고 행복한 동행같이 보였지만 필자 생각에는 아버님께서 비움과 내려놓을 때를 놓치신 것 같아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골프가 많은 체력을 소모하는 운동이 아닌 것은 사실이지만, 골프라는 운동도 아무리 즐기려고 해도 스코어라는 것이 있고 경쟁이 있는 한 스트레스가 없다고 볼 수 없다. 스트레스를 넘어 심지어는 골절을 당하기도 하고 돈 1000원을 가지고 싸우고 헤어지는 경우도 많다.

필자가 다니는 스포츠센터에는 80세 전후 되신 어르신들이 많은데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의외로 ‘거리’ 이야기다. 물론 거리가 옛날보다 적게 나가니까 짜증은 나겠지만 그 나이에 거리를 늘린다는 것이 가당치가 않다. 원리를 설명하기도 그렇고 “어르신 그냥 받아들이세요” 했으면 좋겠는데 서운해할까 봐 한참을 망설인 적이 있다. 그 연세까지 골프를 했으면 쇼트게임은 잘할 것이고 3온에 2퍼트면 굿이고 붙여서 파를 하면 베리 굿 아닌가. 나이 먹어서 하는 골프는 많이 걷고 유쾌하게 웃는 것이 목표이어야 하는 데 말이다.

주식도 오래한다고 좋은 거 아니고 아무리 잘나가고 있는 종목도 내려놔야 할 때가 있다. 골프가 아무리 무리하지 않은 운동이라지만 자식이 티를 꽂아주고 볼을 찾아줄 때까지 하는 것은 좋은 그림이 아닌 거 같다.


도덕재 한국투자증권 상무·WPGA 티칭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