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정급여(DB)형 퇴직연금은 금리 인하의 무풍지대다. 금리가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상황에서도 DB형 퇴직연금의 원리금 보장 상품 비중은 증가하고 있다. 금리 움직임과 반대 극단으로 행진하는 DB형 퇴직연금에 과연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
[PENSION PLAN] 금리 인하와 반대로 가는 DB형 퇴직연금
지난 10월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2.0%로 인하했다. 기준금리뿐이 아니다. 다른 금리도 덩달아 떨어져 왔다. 대표적인 금리지표 중 하나인 은행의 정기예금(1년) 금리는 2012년 1월 4.05%에서 2014년 9월에는 2.36%까지 떨어졌으며, 최근에는 1%대 상품까지 등장하고 있다. 퇴직연금에서 제공하는 원리금 보장 상품의 금리 역시 떨어지긴 마찬가지다. 2012년 1월 4.82%를 기록했던 퇴직연금의 원리금 보장 상품 금리는 2014년 11월 2.79%로 약 3년 만에 40% 이상 하락했다.

국내외 경제 여건을 감안할 때 초저금리 시대는 쉽사리 저물 것 같지 않다. 하지만 예외 없는 법칙이 없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금리 인하의 무풍지대가 존재한다. 바로 DB형 퇴직연금이다. 금리가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상황에서도 DB형 퇴직연금의 원리금 보장 상품 비중은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DB형 퇴직연금의 원리금 보장 상품 비중은 2007년 77.7%에서 2014년 6월에는 98.1%까지 치솟았다. 그 사이에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럽의 재정위기 등이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도가 지나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금리는 ‘제로(0)’를 향해 다가서고 있는데, DB형의 원리금 보장 상품 비중은 100%를 향해 쉼 없이 행진하고 있는 형국이다. 그 원인을 파악하고 정확한 대책을 수립하는 것은 퇴직연금의 건전한 발전과 나아가 근로자의 노후 소득 보장에 매우 중요하다. 잘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퇴직연금의 수익률이 임금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하면 퇴직연금의 재정건전성은 악화되기 마련이다. 그러면 기업은 추가적인 부담금을 납부해야 하고, DB형에 대한 신뢰도는 추락하게 된다.

이런 우려가 현실이 될 가능성은 있을까. 필자의 생각으로 그 가능성은 아주 높아 보인다. 2008년부터 2013년까지 300인 이상 기업의 연평균 임금상승률은 3.11%였다. DB형 퇴직연금의 원리금 보장 상품 금리는 2014년 4월에 3.11%를 기록한 뒤 계속 떨어져 11월에는 2.79%까지 하락했다. 이는 DB형 퇴직연금을 운영하고 있는 기업 중 상당수는 이미 퇴직연금 수익률이 퇴직급여 부채 증가율을 밑돌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 마디로 역마진에 빠진 DB형 퇴직연금이 많아지고 있다는 뜻이다. 그만큼 기업은 추가로 부담금을 납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DB형의 사외적립비율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미래에셋은퇴연구소에서 우리나라의 대표 기업들인 코스피200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DB형의 사외적립비율이 법에서 요구하고 있는 수준을 밑돌고 있는 기업이 3분의 1이나 된다는 것은 금리 인하를 비웃듯 원리금 보장 상품에만 매달리고 있는 현실이 반영된 결과라 하겠다.

현장의 목소리를 듣다 보면 기업에서도 이런 상황과 논리를 잘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리금 보장 상품만 찾는 것은 대체 무엇 때문일까.

이와 관련한 내용은 2014년 4~5월에 기업의 퇴직연금 담당자를 대상으로 미래에셋은퇴연구소에서 실시한 설문조사 속에 잘 나타나 있다. 이 연구소에서는 금리 인하에 역행하는 DB형 퇴직연금의 행태를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이유로 설명하고 있다.


금리 인하에 역행하는 DB형 퇴직연금의 세 가지 이유
첫째, DB형에 적합한 운용 목표가 없다는 점이다. DB형 담당자 중 절반 정도가 목표수익률 설정 이유를 묻는 질문에 ‘원리금 보장 상품의 금리 수준’이라 답했다고 한다. 이는 곧 원리금 보장 상품의 금리 예측이 목표수익률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에 의무적립비율이나 임금상승률을 감안해 목표수익률을 수립한다는 응답은 21.7%에 불과했다. 퇴직연금의 기본 취지가 ‘근로자들에게 지급할 퇴직급여 재원을 미리 적립하도록 의무화해 근로자들의 수급권을 보장하는 것’임을 감안할 때 목표 없는 퇴직연금 운용 전략은 퇴직연금의 취지를 무색케 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둘째, DB형 운용에 필요한 장기적 관점이 없다는 점이다. 단기 금융상품으로 운용 중인 기업의 자금 운용 방침에 따라 DB형 적립금을 운용한다는 것이다.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금융자산은 주로 영업 활동과 관련된 지급 행위나 고정자산 투자를 위한 대기자금 성격이 강한 단기 자산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DB형 적립금은 장기 부채인 퇴직연금 급여를 지급하기 위한 자금으로 일반 기업 자금과는 그 성격이 다르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게다가 DB형 퇴직연금은 최소 적립 기준에 미달할 경우 과태료 등 법적 제재는 물론 추가 부담금을 납입해야 하는 위험을 관리해야 하며, 원칙적으로 퇴직급여 지급이나 제도 운영과 관련된 이유를 제외하고는 인출할 수 없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런 특성들을 무시한 채 기존의 기업 자금 운용 패턴을 답습할 경우 생각지 못한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셋째, DB형 운용에 요구되는 지배구조가 없다는 점이다. DB형 퇴직연금의 취지에 맞게 운용하기 위해 필요한 투자위원회와 투자정책서를 모두 인지하고 있는 DB형 담당자는 15%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더욱이 투자위원회 및 투자정책서를 실제 적용하고 있다는 응답은 각각 4.8%와 13.8%에 불과했다. 이처럼 지배구조가 갖추어져 있지 못하다 보니 DB형 담당자들은 ‘수익률이 나쁘거나 손실이 발생하면 책임을 져야(60.2%)’ 하지만 ‘성과가 좋아도 적절한 보상을 기대할 수 없다(93.8%)’고 생각하는 것이다. 만일 DB형의 운용 목표와 관련 정책, 전략, 제한 사항 등을 수립해 문서화한 투자정책서를 갖고 있다면, 그리고 이를 책임지고 운영하는 주체인 투자위원회가 원활하게 작동하고 있다면 이런 결과가 나올 리 만무하다. 이런 현실을 감안할 때, DB형 퇴직연금을 운용 중인 100인 이상 기업에 투자위원회 및 투자정책서의 의무화 등을 담고 있는 정부의 ‘사적연금 활성화 종합대책’은 올바른 진단의 결과라 하겠다. 문제는 그 대책의 실효성이다. 남은 일은 명약관화하다. 어떻게 하면 투자위원회 및 투자정책서가 현실에서 제대로 작동될 수 있도록 할 것인가 고민하고,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우리에게 남은 과제가 아닐까.


손성동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