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을 열광케 하는 그들만의 콘텐츠_일곱 번째

그저 그렇고 뻔한 로맨스라 할지라도 중년 남성의 가슴 속으로 들어가면 다른 콘텐츠가 된다. 현실의 무게에 짓눌려 사는 그들에게 비록 상상 속에서나마 마음껏 로맨스를 펼치게 하는 영화, ‘어떤 만남’을 만나보시라.
[MEN`S CONTENTS] 중년들의 사랑 대처법, 영화 ‘어떤 만남’
‘한 남자가 있다. 그는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산다. 아리따운 아내와 천사 같은 아이들. 그들에게 굿나이트 키스를 한 뒤 서재에 들어선다. 처리해야 할 업무가 산더미 같지만 그저 창밖을 말없이 바라보며 얼음이 담긴 위스키 잔을 기울인다. 이맘때면 그는 늘 한쪽 가슴이 헛헛하다. 이 풍족한 삶에도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은 무엇일까? 그는 안다. 바로, 가을을 남기고 떠난 그녀 때문이다. 그리고 기억 속에 묻어둔 그녀가 운명처럼 나타난다.’

참 진부한 스토리지만 작가로서 언젠가는 꼭 쓰고 싶은 이야기다. 데뷔작이 스릴러인지라 당분간은 그런 류의 작품으로 먹고살아야 하는데 낙엽 지는 늦가을이면 그 결심은 괜스레 더 오롯해진다. 역시 유달리 가을을 타는 추남(秋男)답다. 그런 필자에게 얼마 전 불을 당긴 영화 한 편이 있다. 바로 소피 마르소 주연의 ‘어떤 만남’이다. 영원한 나의 뮤즈, 40대 남자라면 한번쯤 흠모해봤을 학창시절의 책받침 여신. 이 영화를 보게 된 계기도 세월을 비껴간 그녀를 오랜만에 내 것으로 누리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지금 내게 남은 건 그녀의 미모가 아닌 한 남자의 로맨스다.
[MEN`S CONTENTS] 중년들의 사랑 대처법, 영화 ‘어떤 만남’
유부남의 로맨스가 무죄인 이유
영화에 대해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남다른 필력으로 대중에게 사랑받는 여류 작가 엘자(소피 마르소 분). 그녀는 자신을 위해 마련된 출판기념 파티에서 편집장의 소개로 한 남자와 인사를 나눈다. 그의 이름은 피에르(프랑수아 클뤼제 분). 잘나가는 변호사로 눈웃음이 매력적인 중년 신사다. 호감을 느낀 두 사람은 관객의 예상대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에게 빠져 든다. 그러나 이후의 전개는 기대를 보기 좋게 져버리는데….

파티는 끝나도 그들의 여운은 이어진다. 하지만 피에르는 정중하게 말한다. 서로 연락처를 교환하지 말자고. 대충 둘러대면 그만일 정도로 ‘썸’을 탄 게 고작인데 의아스럽다.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이 유부남이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피에르의 다음 대사가 압권이다. “또다시 만날까 봐 두렵기도 하고 다시는 못 만날 것 같아 두렵기도 합니다.” 이 말 한 마디로 자신의 모든 것을 진솔하게 고백하고 돌아선 피에르. 이때부터 영화는 지극히 유부남의 가슴앓이 영화로 돌변한다.
[MEN`S CONTENTS] 중년들의 사랑 대처법, 영화 ‘어떤 만남’
감정적 일탈을 겪은 뒤 맞이한 일상은 지루하고 남루하기 짝이 없다. 가족의 대화가 꽃피던 식탁에선 아내의 잔소리만 들리는 것 같고, 즐겨 입던 셔츠도 어딘가 영 못마땅하다. 결국 그는 엘자와 사랑을 나누고 만다. 한 가지 재미난 건, 그 사랑이 현실이 아닌 그저 상상 속에 머문다는 점이다. 극장에서의 데이트, 호텔에서의 정사, 그가 저지르는 불륜의 행위들 모두 허구로 처리되는데 이는 피에르의 내재된 욕망을 갈등으로 표출시키는 동시에 관객들의 눈요기를 위한 감독의 서비스다.

영화 이야기로 좀 더 들어가자면, 엘자는 ‘돌싱’이기에 그 어떤 남자와 사랑을 나누어도 무방하다. 그래서 정중하게 돌아선 피에르를 적극적으로 갈구한다. 피에르 역시 그녀와 몇 번의 마주침을 경험한다. 그러나 그때마다 피에르는 가슴이 뜨거워지면서도 행동은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현실을 깨뜨리지 않는 것이 가장으로서의 도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일탈이 결코 일상이 돼선 안 된다며 차마 선을 넘지 못하는 피에르. 감독은 이러한 모습을 통해 청춘들과는 뚜렷이 구분되는 중년들의 사랑 대처법을 그렸다. 그래서 이 영화는 중년의 유부남을 위한 로맨스 영화로 손색이 없다.

물론 정신적 외도도 용서받지 못할 짓이라고 꾸짖는다면 변명할 여지는 없겠지. 그러나 짓눌린 용수철이 다시 솟구치고, 수면에 돌을 던지면 물결이 이는 것처럼 상상속 로맨스만큼은 너그럽게 이해해줬으면 한다. 자극에 대한 본능적 반응으로 말이다. 왜냐하면 중년의 남자들은 현실 무게에 짓눌린 용수철이자 땀과 눈물로 수위를 유지하는 호수이니 휘어져버리거나 메말라버리는 것보다야 낫지 않은가.

노희경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이 말을 되새기며 또다시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옛 시절 첫사랑도 떠올려보고 아내와의 뜨거웠던 시절도 그리워해본다. 그리고 비록 상상 속에서 머물긴 하지만 이상형의 그녀와 아찔한 사랑도 대담하게 즐겨본다. 그것이 바로 내가 이 가을을 즐기는 방법인 동시에 나를 위해 내가 만든 신성불가침의 콘텐츠다.


김상명 시나리오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