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이후 ‘제로(0) 금리와 함께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 통화정책의 양대 축으로 추진해왔던 ‘양적완화(QE) 정책’이 10월 Fed 회의를 계기로 종료됐다. 올해 초부터 매 Fed 회의 때마다 100억 달러씩 줄여온 테이퍼링이 10월 Fed 회의를 계기로 마무리된 것이다.


그동안 Fed의 양적완화는 규모가 크지만 시한을 정했던 1차와 2차 일몰조항(sunset clause) 정책과, 규모는 작지만 시한을 두지 않았던 무기한 정책인 3차로 나눠 추진됐다. 테이퍼링은 양적완화 규모가 축소됐다는 의미에서 달리 보는 시각이 있으나, 정책 자금이 공급되는 면에서는 성격이 같아 3차 양적완화의 연장선상의 정책이다.

전적으로 양적완화 정책의 효과로 볼 수 없지만 본래의 목적인 위기 극복과 경기 회복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특정국의 금융위기를 ‘유동성 위기→시스템 위기→실물경기 위기’ 순으로 극복하는 경로로 볼 때 현재 약 8부 능선에 달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금융위기 극복이 8부 능선에 달할 때 가장 우려되는 것은 주가 등 자산 가격은 거품이 우려될 정도로 높으나 실물경기 회복세는 완만해 자산시장과 실물경기가 따로 노는 현상이다.

자산 가격과 실물경기가 따로 놀 때 어디에 우선순위를 놓고 ‘적극적 의미의 출구전략(유동성 환수·정책금리 인상 등과 같은 통화정책 기조를 변경하는 것으로 이하 출구전략은 이 의미)’을 추진하느냐에 따라 이후 경기 상황은 달라진다. 소극적 의미의 출구전략 종료를 의미하는 테이퍼링 종료 이후 출구전략 추진 시 자산시장에 낀 거품 제거에만 우선순위를 둘 경우 실물경기 회복세가 미약한 상황에서는 ‘역자산 효과’까지 가세돼 ‘복합불황’에 처할 수 있다. 하지만 실물경기 회복에만 우선순위를 둘 경우 자산시장에 낀 거품이 더 심화돼 나중에 더 큰 후유증(after crisis)에 봉착할 가능성이 높다.
[MARKET INSIGHT] 테이퍼링 종료와 샌드위치 위기론
이론적으로 양적완화, 제로금리 등 비상대책보다 출구전략을 추진하기가 더 어렵고, 실제로 정책 시기와 수단을 잘못 판단해 경기가 재둔화되고 위기가 재발된 사례가 많다. 앞으로 추진될 출구전략의 벤치마크 국가인 일본도 2006년 이후 출구전략 추진 시 정책 수단을 잘못 선택에 ‘잃어버린 10년’이 ‘잃어버린 20년’으로 장기화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성격은 다소 다르지만 1930년대에도 성급한 출구전략 추진으로 대공황을 야기시킨 당시 Fed 의장의 이름을 딴 ‘에클스의 실수(Eccles’s failure)’를 저지른 경험이 있었다. 테이퍼링 종료 이후 출구전략을 성급하게 추진할 경우 ‘저성장→출구전략 추진→자산 가격 하락→역자산 효과→추가 경기 침체’로 자산시장과 실물경기 간의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복합불황의 우려가 급부상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올해 9월로 금융위기가 발생한 지 꼭 6년이 지났으나 세계경제는 여전히 양적완화를 핵심 수단으로 하는 추가 금융완화책에 의해 지탱해 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10월 이후 국제통화기금(IMF) 등 대부분 예측기관들은 예측 시마다 거품이 우려되는 자산 가격과 관계없이 올해와 내년 세계경제 성장률을 계속해서 하향 수정해온 것이 그 증거다.
[MARKET INSIGHT] 테이퍼링 종료와 샌드위치 위기론
출구전략 점진적인 방식으로 추진될 듯
동일한 맥락에서 최근처럼 세계경기 회복이 완전치 못한 상황에서 성급하게 출구전략을 추진하면 위기 이후 어렵게 마련된 ‘푸른 싹(green shot)’이 ‘풍성한 과일(golden goal)’이 되기도 전에 ‘시든 잡초(yellow weeds)’가 되지 않을 것이냐는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테이퍼링 추진이 결정됐던 지난해 4분기 이후 미국 경제 앞날에 대해 ‘대침체론 혹은 장기 불황론’에 대한 우려가 계속돼 왔던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Fed가 출구전략을 실행하더라도 신중하고 점진적인 방식으로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외부적으로는 집권 2기의 최대 과제인 일자리 창출을 위해 계속해서 부양 정책을 추진할 오바마 정부와 마찰을 빚을 수 있기 때문이다. 출구전략이 본격적으로 추진된다 하더라도 그 규모를 한꺼번에 늘려갈 수 없는 구조적인 한계를 양적완화 정책에 자체적으로 포함하고 있다.

Fed 내부적으로 보더라도 성급한 출구전략으로 인해 ‘더블 딥’이 초래될 경우 정책 실패의 책임을 모두 지게 되는 부담도 있다. 1930년대 대공황 당시 Fed의 잘못된 정책 판단이 경기 상황을 크게 악화시켰음을 잘 알고 있는 재닛 옐런 Fed 의장으로서는 정책 판단에 신중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테이퍼링 종료 이후 추진될 출구전략은 과잉 유동성에 따른 자산 부문 거품과 잠재 인플레이션 우려를 불식시키는 곳에 둘 가능성이 높다. 보통 때처럼 경기 과열에 따른 부작용을 방지하는 것이 아닌 만큼 ‘위기 극복과 경기 회복’이라는 가장 큰 목표는 훼손돼서는 안 된다는 배경에서다.

이 때문에 테이퍼링이 종료된 이후 곧바로 적극적 의미의 출구전략을 추진하기보다 아무런 정책을 추진하지 않는 무중력(non policy) 상태로 둘 것으로 예상된다. 출구전략 추진 중이라도 금융시장이 혼란한 국면이 지속되거나 경기가 재침체될 조짐을 보이면 4차 양적완화 등과 추가 금융완화 정책을 언제든지 다시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테이퍼링 종료 이후 적극적 의미의 출구전략을 추진한다 하더라도 ‘복합불황’의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현행 0~0.25%로 운용하는 기준금리는 고용 창출 등 경기가 완전히 제자리를 찾을 때까지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정국의 통화정책에 있어서 기준금리를 변경하는 것은 가장 광범위하고 급진적인 정책에 해당된다. 정책금리를 변경할 경우 경제주체들이 처한 개개의 사정과 책임에 관계없이 경제 전반에 동일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테이퍼링 종료를 가장 반기지 않는 국가가 한국 등 신흥국들이다. 미국 경제가 정상을 되찾아 신흥국의 대미국 수출이 증가하는 좋은 점이 있지만, 제로 금리와 양적완화로 유입됐던 달러 캐리 자금을 비롯한 외국 자금이 이탈되는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이미 테이퍼링 종료가 임박했다는 소식이 알려지기 시작한 9월 중순 이후 한국 등 신흥국에서는 외국 자금이 이탈하고 있다.

더 우려되는 것은 한국 등 신흥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외자 이탈세가 테이퍼링 종료를 계기로 ‘2차 테이퍼 텐트럼 현상’으로 악화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테이퍼 텐트럼’이란 미국 등 중심국의 통화정책으로 인한 작은 변화에도 한국 등 주변국들에는 의외로 큰 타격을 주는 ‘긴급 발작’ 현상으로 ‘나비효과’의 일종을 말한다.

지난해 5월 말 벤 버냉키 당시 Fed 의장이 출구전략 시사 발언 직후 대부분 신흥국에서는 ‘1차 테이퍼 텐트럼 현상’이 발생했다. 특히 외환보유액이 적정 수준을 크게 밑돌았던 ‘취약 5개국(F5: 브라질·인도·인도네시아·터키·남아프리카공화국)’들은 외환위기가 우려될 정도로 금융시장이 심하게 흔들렸다.

외환보유액 등 위기판단지표로 신흥국별 2차 테이퍼 텐트럼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을 점검해보면 외환보유액에 비해 경상 적자와 재정 적자가 심한 아르헨티나, 브라질, 인도네시아, 터키, 남아공은 고위험국으로 나온다. 지난해 취약 5개국으로 분류됐던 인도는 모디노믹스에 대한 기대로 외국 자금이 꾸준히 유입되고 있어 중위험국으로 상향됐다.
[MARKET INSIGHT] 테이퍼링 종료와 샌드위치 위기론
한 가지 의문은 1차 테이퍼 텐트럼 당시 별다른 충격이 없었고 위기판단지표가 양호한 것으로 나오는 한국이 9월 중순 이후에는 외국 자금의 이탈세가 심상치 않다는 점이다. 대부분 증권사들이 외국인 자금 유출입의 가장 보편적인 잣대로 삼고 있는 주가수익비율(PER)로 볼 때 한국은 8배 내외로 신흥국 가운데 가장 저평가돼 있다.


조기경보체제 구축해야
외국 자금 이탈의 근거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지금 이탈되는 외국 자금의 실체부터 파악해봐야 한다. 1년 전 외국 자금이 대거 유입될 때 대부분 증권사들은 PER가 10배 이내로 저평가된 점을 꼽았다. PER로는 지금이 더 낮아 한국 증시가 더 매력적이다. 하지만 이 요인은 외국 자금 유출입을 설명할 때 충분한 이유가 되지 못한 점을 지적한 적이 있다.

오히려 1년 전처럼 정책이나 경기(혹은 중심권), 투자자 성향 면에서 ‘대전환기’에 놓여 있을 때 글로벌 자금 흐름에서 가장 중시하는 기준은 어느 한편으로 방향이 잡힐 때까지 자금을 일시적으로 넣어둘 수 있는 ‘피난처(shelter)’ 기능이다. ‘S’자형 투자 이론으로 볼 때 한국은 선진국과 신흥국 간의 중간 단계다. 투자국 지위로 볼 때도 파이낸셜타임스스톡익스체인지(FTSE) 지수로는 선진국,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지수로는 신흥국이다. 준선진국인 셈이다.

‘선진국과 신흥국 간의 대립 구조’로 특징짓는 21세기 세계경제질서에서 두 권역의 특성을 동시에 갖고 있는 한국과 같은 국가들은 대전환기에 대기성 자금을 넣어둘 수 있는 최적 국가로 분류된다. 신흥국으로 양적완화 추진 과정에서 매력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선진국으로 테이퍼링 혹은 출구전략 추진에 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기준이 ‘현금흐름(cash flow)’이다. 크게 두 가지, 즉 재정과 외화 건전성이다. 국제기준(중앙과 지방정부의 이미 발생한 채무)으로 한국은 소득 대비 국가 채무 비율이 34% 내외로 재정 건전국으로 분류된다. 신흥국의 위험 수준인 70%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MARKET INSIGHT] 테이퍼링 종료와 샌드위치 위기론
외화는 재정수지보다 더 건전하다. 우리 외환보유액은 스톡 면에서 직접적으로 갖고 있는 제1선 자금과 간접적으로 확보한 제2선 자금을 합하면 4000억 달러가 넘는다. 가장 넓은 개념으로 추정된 적정 외환보유액인 3700억 달러보다 많다. 흐름 면에서 지난해 경상수지 흑자가 700억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됐고, 실제로는 799억 달러에 달했다.

하지만 펀더멘털 측면에서는 지난해 우리 경제성장률은 ‘디플레이션 갭’이 발생할 만큼 완전치 못했다. 올해도 이 국면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재정수지도 건전하지만 빠른 속도로 악화되고 있어 언제든지 다른 평가가 나올 수 있다. 외화 건전성도 삼성그룹과 현대자동차그룹의 의존도가 높아 질적으로 건전치 못하다.

이 때문에 정책이나 경기, 투자자 성향이 어느 한쪽 방향으로 잡힐 때 한국에 외국 자금이 계속해서 들어올 것인가 하는 의문은 1년 전부터 제기됐었다. 오히려 한국이 성장통을 개선하지 못하면 이탈 속도가 더 빠르고 규모가 커질 가능성이 높았다. 9월 중순 이후 통화정책의 가닥이 잡히는 영국과 미국계 자금이 외자 이탈을 주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한국과 같은 중간자 위치에 있는 국가들은 최근처럼 정책이나 경기 등에서 양면성을 갖고 있는 대전환기에는 사람과 돈이 몰려든다. 일종의 ‘샌드위치상의 대기 혹은 도피성 매력’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한편으로 방향이 잡혀갈 때에는 들어왔던 사람과 돈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면서 큰 어려움이 닥친다. 이른바 ‘샌드위치 위기론’이다.

그런 만큼 1년 전 정책과 경기·시장 면에서 대전환기에 대거 유입됐던 외국 자금이 테이퍼링 종료를 갑작스럽게 이탈하는 현상에 대비해 놓아야 한다. 우리와 같은 준선진국 위치에 있는 국가에서 외국 자금이 유입되다가 갑작스럽게 이탈되면 수출기업뿐만 아니라 개인투자자도 환율 급등 등으로 환차손과 같은 커다란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외화 확충 등 기존의 사후적인 방안과는 별도로 외국 자금이 본격적으로 이탈하기 전에 미리 그 징후를 포착할 수 있다면 모든 경제주체들이 사전에 준비가 가능하고 위기가 발생하더라도 경제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여러 가지 사전적인 방안 가운데 ‘신호등에 의한 조기경보체제’는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개별 기업과 금융사도 구축해 놓아야 한다.


한상춘 한국경제 객원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