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book): 시대의 거울

가을은 흔히 ‘독서의 계절’로 불린다. 풍부한 결실을 거뒀으니 겨울을 준비하며 마음의 양식도 쌓아야 한다는 의미에서 독서는 가을에 권장할 만한 일로 장려되곤 했다. 독서의 계절에 그림에 담긴 책의 의미를 상기해본다.
‘린다우 복음서’ 표지, 800년경
‘린다우 복음서’ 표지, 800년경
종이책이 보편화되기 전, 책은 일반인이 갖거나 읽기 힘든 귀한 물건이었다. 중세 때 책이라는 개념은 오늘날과 달리 더 넓고 큰 의미를 지녔다. 중세의 신학자들은 세계를 ‘자연의 책’으로 여겼다. 자연, 즉 세계는 하느님의 ‘말씀’으로 창조된 것이기에 그 뜻을 ‘읽을’ 수 있는 텍스트였다. 그리고 성서야말로 신의 말씀을 구체적으로 알리고 행동의 기준을 잡아주는 진정한 책이었다.

성서는 ‘책 중의 책’이라 불리며 보물처럼 소중히 다뤄졌다. 실제로 성서의 표지를 황금, 보석, 상아 등으로 공들여 치장하기도 했는데, 대표적인 예로 9세기 초에 제작된 ‘린다우 복음서’가 있다. 이 책의 표지는 성서의 가치를 황금과 보석이라는 최고의 재물과 숙련된 수공이라는 최대의 노력으로써 표현한 신앙의 산물이다.
주세페 아르킴볼도, ‘사서’, 1566년경
주세페 아르킴볼도, ‘사서’, 1566년경
‘책 중의 책’ 성서에 들인 공
그렇게 귀한 대접을 받던 책은 종이의 대량 생산과 활판인쇄술의 발명으로 르네상스 시대에 획기적인 전환을 맞이한다. 종이책은 훨씬 저렴한 비용으로 복제 생산해 널리 보급할 수 있었다. 더욱이 16세기 전반 종교개혁이 성공하자 책의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마틴 루터의 주장으로 성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성서가 일상 언어로 번역돼 누구나 읽을 수 있게 됐다.

또한 중세 말부터 팽창한 대학 교육은 다양한 읽을거리에 대한 요구를 불러일으켰다. 16세기에 유럽 인구는 두 배 늘어난 데 비해 책 생산은 열 배나 증가했다. 종이책은 학문을 급속히 전파시켰고 책의 대중화를 가져와 일반인에 대한 교육을 확장시켰다. 그러나 이처럼 지식이 확산되는 현상에 대해 보수적인 사람들은 기존 문화에 대한 도전으로 여겨 경계심을 표했다. 책의 품질이 나빠짐을 우려하기도 하고, 무분별한 책 수집을 비판하기도 했다.

1566년경 주세페 아르킴볼도(Giuseppe Arcimboldo)가 그린 흥미로운 그림은 신성로마제국 황제 막시밀리안 2세의 열성적인 서적 수집을 반영한다. 이 그림의 원 제목은 알 수 없으나 황제의 미술품과 도서 수장고를 관리하던 볼프강 라치우스(Wolfgang Lazius)의 초상으로 여겨진다. 오늘날 이 작품은 ‘사서’라는 제목으로 불리며 도서관 종사자를 그린 역사적 작품으로 꼽힌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인물로 보이는 것은 실제 사람이 아니라 온통 책과 그 부속품들로 만든 구축물이다. 인물을 배제하고 보면 이 그림은 초상화가 아니라 그저 쌓아놓은 책 더미를 그린 정물화다. 다양한 종류의 책들이 서적 출판의 활기를 나타내며 그만큼 모든 분야에서 학문이 발달했음을 자축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화가는 어떤 책에도 제목이나 내용을 명시하지 않고 오직 외형에만 신경을 쓰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그림은 책을 읽기보다는 소유하는 데만 관심이 있는 수집가들을 조롱하는 풍자적 성격을 내포한다.
얀 다비드존 데 헤임, ‘서재의 학생’, 1628년
얀 다비드존 데 헤임, ‘서재의 학생’, 1628년
책은 신성한 지혜와 드높은 학식의 상징이며 진리 탐구의 오랜 노력을 의미한다. 그러나 책이 물질적 소유물로 전락하면 덧없는 세속적 탐욕에 대한 알레고리로 변한다. 그뿐만 아니라 책 속에 기록된 인간의 모든 행위, 연구, 업적마저도 언젠가는 소멸할 일시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책의 생산이 증가할수록 인간적 지식에 대한 숭상과 함께 그 무상함을 명상하는 내용 또한 그림에 속속 등장했다.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얀 다비드존 데 헤임(Jan Davidsz. de Heem)은 대학 도시 레이든에 몇 년 동안 거주하며 책을 소재로 한 그림을 여러 점 제작했다. 1577년 설립된 레이든대에는 대형 도서관이 있어 화가들이 책 정물화를 전문적으로 그릴 수 있었다.

1628년 작품 ‘서재의 학생’은 책상에 흩어져 있는 책과 그 옆에 앉아 있는 한 인물을 보여준다. 책들은 가장자리가 말리거나 닳았으며 표지가 떨어져 나간 것도 있어 수없이 읽혔음을 알 수 있다. 책상에 팔을 괴고 기대어 앉은 학생은 세상에서 전개되는 산더미 같은 지식 앞에서 멜랑콜리한 자세로 먼 곳을 응시하고 있다. 그가 열심히 읽었을 모든 책의 내용은 뒷벽에 걸린 거울이 반영하듯 허상에 불과한 것일까? 진리는 책 속이 아니라 그 너머에 있음을 말하듯 그는 책들을 외면한다. 하지만 그의 몸이 여전히 책상에 붙어 책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것은 책을 읽지 않고는 진리를 명상할 수도 없음을 방증하는 것이 아닐까?
빈센트 반 고흐, ‘펼친 성서, 촛대, 책이 있는 정물’, 1885년
빈센트 반 고흐, ‘펼친 성서, 촛대, 책이 있는 정물’, 1885년
반 고흐의 그림 속 책은 가족의 초상
19세기 말,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는 네덜란드 정물화를 계승해 개인적 상징으로 변화시켰다. 그는 서점을 운영했던 삼촌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책과 친밀했다. 1885년 작 ‘펼친 성서, 촛대, 책이 있는 정물’은 테이블 위에 펼친 성경책과 촛대가 있고 그 앞에 작은 책이 놓인 단순한 그림이다. 화면을 압도하는 두꺼운 성서와 어두운 배경, 꺼진 촛불로 미루어 이 그림은 몇 달 전 사망한 반 고흐의 아버지와 관련지을 수 있다. 성경책은 오랜 지혜와 전통, 아버지의 힘과 권위를 상징한다. 반면 작은 책은 에밀 졸라의 소설 ‘삶의 기쁨’으로 현대 생활의 단면을 나타낸다. 반 고흐는 성경책을 목사였던 아버지와, 소설책을 자신과 동일시하고 두 책을 대조시켜 부자간의 갈등을 표현했다. 촛불은 꺼졌고 인생은 끝났어도 아버지의 유산은 닫히지 않고 묵직하게 남아 있다. 이에 비해 작은 책은 왜소하고 볼품없지만 더 활발하고 노란색으로 밝게 빛난다. 책은 반 고흐의 그림에서 가족의 초상이자 자화상이 됐다.

미디어 이론가 마셜 맥루한(Marshall McLuhan)은 “인쇄가 새로운 테크놀로지로 등장했을 때 중세는 예술의 형태로 받아들여진다”고 말했다. 전자책이 새 테크놀로지로 등장한 지금 종이책은 어떤 형태로 공존할 것인가? 저 그림들 속에서가 아닌 현실에서 종이책은 또 다른 예술로, 아니면 다른 그 무엇으로 변모할지도 모른다.


박은영 미술사가·서울하우스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