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국수.’ 파스타를 이 한마디로 정의하기엔 그것이 가진 역사와 맛의 세계가 너무나도 깊고 방대하다. 우리나라에는 1970년대 패스트푸드화된 미국식 파스타가 전해지며 대중화됐다. 국내에 전해진 지 40여 년. 여전히 파스타를 토마토소스와 크림소스만으로 구분하고 흥건한 ‘국물’ 맛으로 즐기는 ‘초보’들이 적지 않은 현실에서, 파스타를 보다 제대로 즐기기 위해 이탈리아 남과 북을 대표하는 메뉴부터 정복했다.
[TALK ABOUT FOOD] 남부 고등어 파스타 VS 북부 타야린 파스타
서울 강남 신사동에 위치한 이탈리안 비스트로‘몰토’는 한양대 경영학부 예종석 교수의 단골집이다. 식당은 골목 안에 자그마하게 위치해 있지만, 소믈리에 출신 오희석 셰프가 선보이는 파스타와 스테이크 등 이탈리안 요리와 와인의 마리아주를 맛보기 위해 들르는 미식가들로 북적인다. “인품이 나쁜 사람의 음식은 먹지 않는다”는 예 교수의 말을 뒤집으면 몰토는 신선한 재료를 그날그날 공수해 ‘정직한 이탈리아의 맛’을 차려내는 곳이다. 이탈리안 북부를 대표하는 피에몬테 주의 타야린 파스타와 남부 해안가 시칠리아 주의 고등어 알리오 올리오 파스타가 차려진 식탁을 앞에 두고 예 교수와 파스타에 관한 수다를 이어나갔다.


남과 북, 전혀 다른 파스타의 향연
이윤경 머니 기자(이하 이 기자) 이탈리아 남북을 대표하는 파스타는 외형부터가 눈에 띄게 다르군요. 타야린 파스타는 달걀노른자 반죽으로 만든 가느다란 면이 독특하고, 손으로 큼직큼직하게 찢어놓은 염장 고등어가 들어간 알리오 올리오 역시 비주얼이 압도적입니다.

예종석 한양대 교수(이하 예 교수) 이탈리아는 1800년대 이전까진 부족국가였어요. “이탈리아에는 이탈리아 요리는 없고 각 부족의 요리만 있다”고 했을 정도로 지역별 음식문화가 크게 다르죠. 삼면이 바다에 둘러싸여 각종 해산물이 풍부하고, 북부는 알프스 산맥과 맞닿아 목축업과 쌀농사가 발달했어요. 파르메산 치즈나 버터, 햄이 많이 생산되다 보니 달걀과 우유로 만든 카르보나라, 미트소스 스파게티 등을 주로 먹죠. 반대로 남쪽 해안 지역은 해산물이 풍부하며 특히 생선을 많이 먹습니다.

이 기자 남부 시칠리아 요리의 4대 요소가 올리브, 토마토, 모차렐라 치즈, 해산물이지요. 여기서는 생선 내장도 버리지 않고 음식에 넣어 먹는데, 갯내가 나지 않도록 조리하는 것이 기술이라고요.

예 교수 나는 오래전에 시칠리아에서 먹었던 바다 냄새 물씬 나는 정어리 파스타의 맛을 지금도 잊지 못해요. 시칠리아 사람들은 근해에서 많이 나는 안초비나 정어리 등을 넣어 파스타를 만들어 먹는데 하나도 비리지 않고 뜻밖의 맛이 일품이었죠. 우리나라에서도 몰토나 그란구스또 같은 이탈리안 식당에서 그 맛을 느낄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이 기자 교수님, 그런데 고등어 알리오 올리오는 그렇다 쳐도 타야린 파스타도 라구소스(고기를 베이스로 한 되직한 소스)가­ 면에 거의 ‘묻어 있는’ 수준이네요. 우리나라에서는 소스 맛으로 파스타를 먹는 사람들이 많고, 저 역시 토종 한국인이라 면에는 소스가 어느 정도는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거든요.

예 교수 국물에 면을 푹 적셔 먹는 파스타는 우리나라에 잘못 전해진 이탈리아 식문화 중 하나예요. 강남의 일류 레스토랑에 갔는데도 국물이 흥건한 파스타가 나오더군요. 손님들이 “소스가 왜 이렇게 적으냐”고 항의하니까 셰프들도 그들의 입맛에 맞출 수밖에 없는 거죠. 실제로는 어떤 파스타건 적당량의 소스에 ‘버무려진’ 면을 먹는 것이 이탈리안 식이에요. 그래서 이탈리아에서는 다 먹은 파스타 접시가 깨끗하지요.

이 기자 비슷하게 잘못된 상식 중에 하나가 파스타 면을 푹 삶아 퍼진 채로 먹는 식문화잖아요. 실제로 이탈리언들은 건면의 겉은 익고 심은 약간 남아 있는 ‘알덴테’ 상태로 먹는 파스타를 최고로 치더군요. 실제로 식감도 좋고요.

예 교수 맞아요. 나도 알덴테를 좋아하는데, 푹 퍼진 면은 미국식이에요. 미국은 파스타를 패스트푸드화하면서 짧은 시간 안에 많이 팔아야 하니까 미리 면을 삶아 놓고 손님들이 오면 소스만 끼얹어 줬죠. 그러니 퍼질 수밖에. 이탈리언들은 그런 미국식 파스타를 아주 혐오하지요. 또 파스타 먹을 때 재밌는 것 중에 하나가 포크를 접시에 대고 돌돌 돌리는 것인데, 이건 일본 친구들이 많이 하는 스타일이에요. 이탈리아에선 아이가 이렇게 했다간 엄마한테 손등을 맞기 일쑤라고 하더라고.


로컬 재료로 만든 파스타, 다양성 추구
예 교수 그런데 이 기자는 어떤 파스타를 좋아하시나.
이 기자 저는 향긋한 향기가 입 안 가득 퍼지는 바질 페스토가 좋더라고요. 최근에는 트렌디한 이탈리언 레스토랑에 가면 주꾸미 파스타, 단호박 크림스파게티처럼 색다른 파스타들이 다양하게 선을 보이고 있어 소비자 입장에서는 선택의 폭이 넓어졌습니다.

예 교수 이탈리아는 식재료의 맛을 그대로 살린 음식이 발달한 나라예요. 최상급 엑스트라버진 올리브오일(부가적인 열이나 혼합 없이 올리브에서 처음 깐 것으로 산도의 조건·질·향·맛에서 최고인 올리브오일)로 만든 파스타는 시간이 지나도 신선하고, 섬유질이 풍부한 토마토로 만든 소스는 정말 맛있죠. 리치한 달걀 노른자와 우유로 만든 카르보나라는 진한 풍미가 제대로고요. 그런데 우리나라에 오면 본토의 재료들이 아니기 때문에 그 맛이 구현될 수가 없어요. 신선한 로컬 재료를 활용하는 레스토랑이 많아지는 건 반가운 일입니다. 미국 출신의 세계적인 셰프 마리오 바탈리 역시 일찍이 글로벌 메뉴를 로컬 재료로 만들어 최상의 맛을 내는 것으로 유명하죠.

이 기자 ‘몰토’의 파스타도 정어리 대신 고등어를, 이탈리아 소고기 대신 한우를 사용했으니 제대로 ‘로컬화’했네요. 그런데 예 교수님은 이탈리아 음식 맛있게 즐기는 비법이 있으세요.
예 교수 몇 년 전 이탈리아에서 어느 미식가와 식사를 하는데 그 양반이 4시간에 걸쳐 요리 하나 하나를 주방장과 논의를 하더이다. 그날 가장 좋은 식재료를 추천받아 메뉴를 고르고 와인 역시 음식에 매칭하는 거죠. 맞춤복처럼 음식도 내 입맛에 맞춘 ‘DIY’가 가장 맛있게 먹는 법이 아닐까요.
[TALK ABOUT FOOD] 남부 고등어 파스타 VS 북부 타야린 파스타
이윤경 기자 ramji@hankyung.com│사진 이승재 기자
촬영 협조 몰토(02-511-0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