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을 열광케 하는 그들만의 콘텐츠_여섯 번째

딱 봐도 ‘남자’보다는 ‘여자’ 콘텐츠에 가까워 보이는 영화라니, 고개를 갸우뚱하는 독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실제로 극장에 가보면, 동행 없이 혼자 와선 영화가 끝나도 자리를 뜨지 못하는 남성들이 많다는 사실.

‘보통 남자’의 감성만으로 충분히 열광할 그 무엇들을 지닌 보석 같은 영화가 ‘비긴 어게인’이다.
[MEN`S CONTENTS] 멜로디에 담긴 치유의 마법, 영화 ‘비긴 어게인’
필자는 그다지 음악에 대한 조예가 깊지 않은 데다 명곡은 시대와 세대를 초월한다는 귀차니즘적 고집 덕분에 10년 넘도록 퀸, 비틀스, 아바의 히트곡 모음 앨범을 오디오 속에 끼워 넣고는 골라 듣는다. 그런데 얼마 전 새로운 음반을 하나 사서 넣었다. 영화 ‘비긴 어게인’의 OST 앨범이다.

영화 ‘비긴 어게인’에 대한 소개는 4글자면 족하다. 음악영화. 하지만 그 영화가 가진 매력에 대해 언급하자면 허락된 지면을 모두 할애해도 모자랄 작품이다. 유독 많은 대작들이 쏟아진 올여름 극장가에서 관객의 입소문만으로 한 달 가까이 순항 중인 영화라는 게 그 반증. ‘원스’를 통해 음악영화의 저력을 보여준 존 카니 감독의 후속 작이며 그 덕분에 200만 관객을 가뿐히 넘긴 ‘명량’급의 화제작이다(200만 관객이 뭐 대단하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거대 배급사가 아닌 점, 그리고 상영 횟수를 감안하면 가히 신드롬에 가깝다).

스토리는 간단하다. 상실감에 빠진 싱어송라이터와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된 프로듀서가 서로 의기투합해 멋지게 재기한다는 내용으로 제목이 지닌 의미를 사전적으로 해석해도 무방하다. 서로에게 다시금 시작할 수 있는 계기가 된 두 사람. 그들의 만남은 각자가 인생 최악의 순간에 처해졌을 때 이루어진다. 물론 이후의 스토리는 누구나 예상 가능하다. 하지만 평범하다면 입소문이 만들어졌겠는가. 감독은 필 충만한 음악을 이용해 뻔한 스토리에 숨을 불어넣고, 멜로디가 덧입혀진 이야기 속에서 두 주인공은 잃어버린 가치를 되찾기 시작한다. 그래서 절로 흐뭇해진다. 마치 내가 보유한 주식이 바닥을 치고 반등할 때처럼 말이다.
[MEN`S CONTENTS] 멜로디에 담긴 치유의 마법, 영화 ‘비긴 어게인’
나와 너, 그리고 우리의 존재 가치
애인의 변심으로 음악에 대한 회의마저 들기 시작한 싱어송라이터 ‘그레타’. 친구의 권유로 오른 무대에서 그녀는 이별의 아픔을 노래로 털어낸다. 기교랄 것도 없는 통기타 반주에 지극히 사적이고 솔직한 가사. 그 때문에 무대를 바라보던 청중들은 그녀의 노래에 귀를 기울이기보단 자신들의 대화에 열을 올린다. 하지만 타인의 반응은 그녀에게 중요치 않다. 스타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노래를 만드는 그 자체가 좋았기 때문이다. 그녀의 진심은 남자 주인공 ‘댄’과의 첫 만남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예쁘장한 미모까지 겸비했으니 스타성이 다분하다는 댄에게 음악은 귀로 듣는 것이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며 쏘아붙일 정도니까. 다행히 생면부지의 타인을 내 편으로 만드는 진심의 마법은 댄에게도 있었다. 비록 이혼남에다 자신이 설립한 회사에서마저 쫓겨난 술주정뱅이지만 그녀의 노래를 세상에 알리고픈 그의 진심은 미련 없이 고향으로 돌아가려던 그녀를 뉴욕에 머무르게 만든다. 그렇게 둘은 서로의 진심을 확인하며 앨범을 만들고 그러한 과정을 영상에 담은 것이 이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필자가 생각하는 이 영화의 미덕은 노래만이 아니다. 앞서 밝힌 바대로 음악에 대해선 다소 무지한 탓도 있겠지만 내 가슴을 관통한 것은 노래보다도 그들의 행동이었다. 노래하는 그레타도, 그녀의 노래를 앨범에 담는 댄도 서로의 가치관이나 기준에 대해 섣불리 침범하지 않는다. 이유를 따져 묻지도 않는다. 공동의 목표인 앨범을 위해 서로가 내놓은 의견을 어떻게 하면 잘 살릴 수 있을지 고민하고 토론한다. 내가 택한 파트너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부정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의 마인드는 대사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일례로 그레타의 음악적 성향이 궁금하던 댄은 대뜸 그녀에게 즐겨 듣는 곡을 들려달라고 청한다. 그리고는 스마트폰에 담긴 그녀의 애청곡을 함께 들으며 뉴욕의 밤거리를 누빈다.
[MEN`S CONTENTS] 멜로디에 담긴 치유의 마법, 영화 ‘비긴 어게인’
이쯤해서 떠오르는 질문. ‘반면 우리는 어떠한가?’ 공동 작업을 하게 되면 파트너십보다는 주종관계나 갑을논리가 자연스레 끼어든다. 상대가 지닌 효용가치보다 내가 가진 알량한 실력을 먼저 생각하기 마련이고 나이나 경력으로 선후배가 정해지기라도 하면 조언이란 미명하에 상대의 의견을 내 입맛에 맞춰 재단한다. 남자라면 한번쯤 느껴봤을 비애가 댄과 그레타 사이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영화가 만든 환상이지만 그들이 만든 하모니를 차에서 듣는 그 순간만큼은 진심과 배려가 통하는 유토피아가 반복, 재생된다.

물론, 자신의 신념을 저버리지 않은 댄이 결국 멋지게 재기의 시작을 알리는 것도 통쾌함의 하나.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 수 없는 게 우리네 현실이지만, 뭐 영화에선 좀 그래도 괜찮지 않나. 지극히 현실적인 불편한 진실보다는 적당히 포장된 현실이 더 매력적이니까.


김상명 시나리오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