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사무라이의 부활 일본

불과 1년 전만 하더라도 일본의 장기 복합 불황에 관한 연구가 유행처럼 번졌다. 1년여가 흐른 지금 일본이 다시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반대의 이유로 주목받고 있다. 일본의 장기 복합 불황 탈출 가능성이 전 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는 것이다.
[COVER STORY] 20년 불황 탈출…가전·통신 ‘첨병’
일본 불황에 대한 학습 열풍은 금융계, 재계, 학계, 언론 등의 분야에서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저성장·저금리, 급속한 고령화, 그리고 국내 부동산 시장까지 침체되면서 혹시 우리도 일본식 장기 복합 불황에 빠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일본 장기 복합 불황 연구의 출발점이었다.

1년여가 흐른 지금 일본이 다시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반대의 이유로 주목받고 있다. 일본의 장기 복합 불황 탈출 가능성이 전 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는 것이다. 장기 하락 터널에서 벗어나고 있는 주식시장이 그에 대한 가장 확실한 증거다. 경제 전반에도 온기가 돌고 있으며 아직 상당히 미약한 수준이긴 하지만 일본 부동산 시장에서의 변화 조짐도 엿보이고 있다.

이제는 일본의 과거가 아닌 미래를 바라봐야 한다. 이제 우리가 일본에서 봐야 할 부분은 더 이상 과거에 국한되지 않는다. 오히려 일본의 미래가 더 중요해졌다. 지난 20년 동안 일본을 짓눌렀던 악재의 연결고리들이 서서히 풀리고 있다면 일본의 과거가 아닌 미래를 보는 것이 옳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시적인 관점이 아닌 보다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일본은 어떤 모습일까.


해소되고 있는 장기 복합 불황의 요인들
일본을 장기 복합 불황에 빠지게 했던 몇 가지 핵심 요인들 중에서 고령화 정도를 제외하고는 이미 그 시효가 만료됐거나 상당 부분 해소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우선, 일본은 강력한 정치적 리더십으로 무장하고 있다. 버블 붕괴 직후 거의 7년 동안이나 일본 정치권이 우왕좌왕했던 모습을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리더십은 경제 분야에서도 강하게 발휘되고 있다. 양적완화와 엔저는 일본 경제 전반에 활기를 찾게 한 가장 큰 요인이다. 이로 인해 일본 기업들은 경쟁력을 회복하고 있으며 이는 다시 주식시장의 강세로 이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일본 경제를 둘러싼 논쟁은 여전히 뜨겁다. 일본 정부의 천문학적인 재정 적자는 어찌할 것인가에서부터 재정 부담이 큰 상태에서 지금의 물가 상승이 가져올 수 있는 향후 파장, 그리고 임금 인상 여부와 그 방법론까지. 올해에 있을 소비세 인상이나 엔화의 방향성, 일본 증시의 단기 고점 논쟁 등도 관심의 대상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쟁들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양적완화 등 일련의 정책들은 일본이 벼랑 끝으로 내몰린 나머지 신중하지 못하게 내놓는 정책들이며 엄청난 경제적 리스크마저 내포하고 있어 결국은 실패할 것이라는 회의적 시각들은 이미 1년 전, 아니 그 이전에도 존재했다.
[COVER STORY] 20년 불황 탈출…가전·통신 ‘첨병’
일본에 대해서 시장이 갖는 의구심들은 미국이나 유럽 등에도 동일하게 품었던 의구심들이다. 또한 정상화라는 큰 그림에서 접근할 경우 일본에 대한 의구심보다는 긍정적인 시각에서의 접근이 바람직하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미국은 이미 글로벌 복합 위기로부터 벗어나 차츰 정상화되고 있다. 유럽 역시 미국식의 정상화 경로를 추종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과 유사한 정책을 구사하고 있는 일본만 예외로 남아 있을 것이라 보기는 어렵다.

또한 엔화의 언더슈팅이나 일본 증시의 오버슈팅, 소비세 인상에 대한 우려들 역시 짚고 넘어가도록 하자. 엔화가 105엔에서 강세로 돌아선 상태고 지난주 발표된 11월 경상수지가 대규모 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일본 증시는 15500선이 무너지기도 했다. 그동안 일본이 내놓은 정책이 별반 효과가 없었던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최근 엔화나 일본 증시의 움직임에 깔려 있는 본질이다.


일본 경제 지난 20년과 다르다
지금 일본 증시를 설명하는 가장 핵심적인 변수는 엔화다. 엔화가 숨 고르기를 할 수는 있다. 실제로 엔화는 얼마 전 105엔대에서 조정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얘기가 달라진다. 현재 시장에서는 엔화가 2014년 중에 110엔을 넘어설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테이퍼링)와 일본의 양적완화 지속’이라는 큰 그림에도 이상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엔화나 일본 증시의 방향성에 대해서는 크게 의심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앞으로 있을 소비세 인상이 1997년처럼 경기 회복의 싹을 제거하지도 않을 전망이다. 시장 일각에서는 경기회복세가 강력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본의 재정건전화 움직임이나 소비세 인상 직전 가수요가 활발하다는 것(11월 대규모 경상적자의 배경) 등은 1997년의 재판으로 보고 있으며 일본이 또다시 지난 1997년의 전철을 답습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 일본 경제가 잃어버린 20년에 돌입하게 됐던 배경은 소비세 인상 이외에도 특별감세 폐지와 진료비 부담 인상 등의 요인이 가중됐기 때문이다. 지금을 지난 1997년과 동일시하는 것은 좀 지나치다.
[COVER STORY] 20년 불황 탈출…가전·통신 ‘첨병’
무엇보다 일본에 대해서는 지난 20년 동안의 악재의 연결고리가 풀리고 있다는 큰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까 한다. ‘지금의 일본이 지난 20년보다 더 나쁜가’라는 단순한 관점에서 생각해보자. 그렇다면 일본 증시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시각에서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은 부활하고 있다.

이 같은 배경을 고려할 때 일본 증시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현재 일본 주식시장에서 유망 종목으로 꼽히는 기업은 다음과 같다. 우리에게 전자기기 생산업체로 잘 알려진 파나소닉, 건설장비 제조업체인 코마츠, 제지업체인 오지홀딩스, 통신부품 및 발전기기 제조업체인 히타치, 유무선 통신업체인 KDDI·규슈전력 등이다. 이상의 종목은 KDB대우증권의 리서치센터의 분석 모델인 DW-GAAM(Daewoo-Global Asset Allocation Model)에 의한 것이다. 단, 엔화가 약세로 흐를 것으로 예상돼 일본 주식 투자에는 환 헤지가 필요해 보인다.


이승우 KDB대우증권 크로스에셋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