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서 고전하는 LG전자

LG전자는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이다. 2013년 3분기 매출 43조 원 중 국내 매출은 11조 원에 지나지 않았다. 전체 매출의 4분의 3을 해외 시장에서 올렸다. 따라서 해외 시장에서의 고전은 곧 LG전자의 위기로 직결됨을 알 수 있다. 그러나 LG전자는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과 중국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 2005년 완공된 LG 중국 사옥인 '베이징 트윈타워'. LG전자는 지난 20여 년간 야심차게 중국 시장을 공략했으나 중국 후발업체들의 추격으로 고전하고 있다.
지난 2005년 완공된 LG 중국 사옥인 '베이징 트윈타워'. LG전자는 지난 20여 년간 야심차게 중국 시장을 공략했으나 중국 후발업체들의 추격으로 고전하고 있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2012년 LG전자는 옵티머스G로 통쾌한 역전극을 기획했다. 이를 위해서는 북미 시장을 잡는 게 먼저였다. 사활을 걸어야 했다. 구본준 LG전자 부회장은 옵티머스G 출시에 때를 맞춰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목적지는 미국의 주요 통신업체들. 구 부회장은 버라이즌 와이어리스, AT&T, 스프린트, T모바일 등을 방문하는 정성을 보였지만 반응은 시큰둥하기만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AT&T는 애플의 아이폰과 공고한 파트너십을 맺고 있었고, 버라이즌 역시 안드로이드폰 진영과 전략적 제휴를 맺고 있었다. 그들에게 LG전자는 더 이상 매력적인 파트너가 아니었다. 옵티머스G는 결국 AT&T와 스프린트를 통해 북미 시장에 출시했으나, 결과는 기대에 한참 못 미쳤다.

무엇보다 애플, 삼성전자는 물론 화웨이, 레노버에조차 밀린 것은 뼈아프다. 지난해 3분기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에서 LG전자가 받아든 성적표다. 2013년 11월 미국 시장조사 전문 업체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LG의 점유율은 4.7%로 화웨이(5%)와 레노버(4.8%)에 밀린 5위에 머물렀다.


북미 시장 놓친 스마트폰, 세계 시장 다 놓쳤다
“이미 승부는 끝났다.” 익명을 요구한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현재 LG 스마트폰이 처한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는 “글로벌 시장은 삼성과 애플의 양강구도가 굳어진 상태인데다, 레노버, 화웨이와 같은 중국 업체들의 추격세 또한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LG 스마트폰이 이처럼 고전을 면치 못하는 것은 북미 시장에서부터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영향이 크다는 게 업계 지적이다. 실제로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2013년 상반기 LG의 북미 휴대전화 판매법인인 LGEMU(LG Electronics Mobilecomm USA)는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이 증가했음에도 순손실만 16억 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취재 중 만난 복수의 애널리스트들은 이에 대해 “전 세계 휴대전화 시장이 스마트폰 시장으로 넘어가면서 미국 통신사들의 신뢰를 잃은 탓이 크다”고 분석했다. 미국은 국내 시장과 마찬가지로 통신업체를 통해 휴대전화가 판매된다. 피처폰 때만 하더라도 LG는 미국 최대 규모의 통신업체인 버라이즌이라는 든든한 파트너 덕을 볼 수 있었다. 초콜릿폰의 영광 또한 버라이즌에 대규모 물량을 공급하며 발판을 삼았다. 그러나 2007년 애플이 아이폰을 출시하며 AT&T와 독점 계약을 체결했고, 이후 상황은 급변했다. 한 휴대전화 담당 애널리스트는 “당시 애플과 AT&T의 공세에 맞서야 했던 버라이즌은 LG에 구원 요청을 했지만, LG는 아무런 대안을 마련해주지 못했다”며 “실제로 LG는 그때 깨진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꽤 오랜 시간 많은 공을 들였지만 아직까지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북미, 유럽과 같은 선진 시장의 경우 스마트폰 보급률이 70%를 넘어설 만큼 성숙 단계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이는 LG가 더 이상 역전의 기회를 갖기가 쉽지 않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북미 시장의 부진은 중국 등 다른 해외 시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SA의 조사 결과, 중국의 경우 작년 3분기 LG의 휴대전화 시장 점유율은 0.2%에 불과했다.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등의 신흥 시장 공략도 쉽지 않아 보인다.


‘믿는 구석’ 가전, 중국발 위기 오나
올해 1월 7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의 가전전시회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 2014’. 하이얼, 하이센스, TCL 등 중국의 주요 가전업체들은 일제히 65인치 곡면 발광다이오드(LED) TV를 선보였다. 지난해 9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가전박람회(IFA)에서 국내 전자업체들이 세계 최초로 선보인 기술이었다. 중국과 우리의 기술 격차가 1년도 채 안 될 만큼 줄어든 것이다.

중국은 세계 가전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시장이다. 지난해 중국의 가전 시장 규모는 약 250조 원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중국 국민들의 소득 수준이 증가하면서 해마다 10% 이상 성장하고 있다. 특히 중국은 베트남, 필리핀 등 동남아 공략의 거점이나 다름없다. LG가 1993년 중국 진출에 나서던 해부터 ‘중국에 뿌리내리는 글로벌 기업이 되겠다’고 목표를 분명히 한 데에는 이 같은 배경이 깔려 있다. 그러나 이같은 목표는 갈수록 요원해지고 있다. 1990년대까지 냉장고, 세탁기 등 주요 제품은 시장점유율 20%를 거뜬히 상회했지만 현재는 중국 현지 업체들의 파상공세에 맥을 못 추고 있다. TV 시장 또한 마찬가지다. 지난해 3분기 중국 시장에서 LG의 TV 시장 점유율은 1.74%에 머물렀다.

이경숙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해외 업체인 LG로서는 판매는 물론 사후관리(AS)까지 거미줄 유통망을 갖추고 중국 곳곳을 파고드는 현지 업체들과 경쟁하기엔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판매가 지지부진하다 보니 LG의 해외 생산 법인들도 고전하고 있다. 톈진(天津)에 있는 생산법인인 LG ETL의 2012년 순이익은 1억8300만 원에 불과했다. 2011년에는 9300만 원의 순손실을 봤다. 중국 난징(南京) 지역 생산법인인 LG EPN도 2011년 당기순이익 201억2500만 원에서 2012년 131억9000만 원으로 떨어졌다.

LG의 내부 사정에 정통한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이미 난징 세탁기 공장도 적자로 전환하며 가동률이 축소됐고, 시스템에어컨 등을 생산하는 톈진공장 매각도 고려중”이라며 “톈진 공장은 시정부가 매각을 반대하고 있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이에 대해 LG 관계자는 “그런 적 없다”고 부인했다.

이 연구위원은 “궁지에 몰릴수록 LG는 기술경쟁력에 더욱 집중적으로 투자하게 되고, 그럴수록 비슷한 기능에 값이 싼 제품을 찾는 중국 소비자들의 눈높이와는 더욱 멀어지는 딜레마에 빠져있다”고 꼬집었다.


VC사업부, 위기의 LG 구할까?
올 1월 8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CES 2014’ 현장. 구본준 LG전자 부회장이 찾은 곳은 가전업체가 아닌 자동차업체 부스였다. 이우종 VC사업본부장 등이 구 부회장을 수행했다. 최근 자동차산업에 대한 구 부회장의 높은 관심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스마트폰과 가전에서 사면초가에 놓인 LG는 ‘자동차’에서 새로운 희망을 기대하고 있다.

LG는 지난해 LG CNS로부터 자동차 엔지니어링 설계회사인 V-ENS를 흡수, 합병한 뒤 VC(Vehicle Components)사업본부를 신설했다. 인천 경서동에 전기자동차 부품 연구개발센터도 세웠다. VC사업본부를 통해 LG가 그리는 그림은 명확하다. VC사업본부는 차량용 인포테인먼트와 전기차 모터, 인버터 등 자동차 부품을 주력으로 하고 있다. 전기차 시장의 경우 친환경 차량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향후 2020년까지 약 23.2%의 연평균 성장을 이어갈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그러나 VC사업본부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렸다. 박강호 대신증권 연구원은 “배터리에서는 LG화학, 디스플레이에서는 LG디스플레이 등 계열사들과 유기적 협력을 맺을 수 있기 때문에 유리한 사업일 수 있다”고 밝혔다. 반면 또 다른 애널리스트는 “VC 사업 분야는 당장 커다란 성과를 내기 힘든 만큼 장기적으로 막대한 투자가 필요한 분야”라며 “스마트폰과 가전에서 고전이 계속된다면 VC와 같은 신사업에 막대한 투자비용을 충당할 여력이 없어 보인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정흔 기자 verd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