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 조절 프로그램이 유행이다. 분노 반응은 본능적인 것이지만, 그대로 표출했다가는 반사회적인 인물로 낙인찍히는 세상이다. 심리적 이완을 하고 근원이 된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분노 조절의 좋은 방법. 그러나 문제는 분노 조절을 하다 보면 더 큰 분노가 쌓일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가끔은 용기가 필요하다. 까칠해지는 용기 말이다.
[HEALING MESSAGE] 분노 조절의 아이러니, 가끔은 까칠해져라
분노 반응은 나와 내 가족을 지키기 위한 공격적 방어 본능이다. 그래서 분노 반응 자체는 매우 정상적인 것이다. 과거 수렵 시대에는 공격성이 강한 남자가 생존력도 강했다. 적과 야수와의 전투, 즉 실제로 신체적 위협이 있는 상황에서 싸워서 이겨야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지금 세상은 분노 반응을 본능대로 표출했다가는 사회에서 아웃, 퇴출이다. 타인에게 해를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윤리, 상식, 그리고 법 같은 사회 시스템이 분노 반응을 규제하고 있다.

현대의 분노 반응은 과거처럼 실제적인 생물학적 생존의 위협에 의해 일어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심리사회적 원인에 의한 것이 대부분이다. 직장 내 스트레스로 인한 분노 반응의 흔한 예를 들어볼까. 열심히 기획해서 A안을 올렸는데 상사가 아니라며 B안을 지시한다. 마음으로 수긍은 안 되지만 지시에 따라 열심히 B안을 시행했으나, 결과가 좋지 않다. 상사는 자기가 지시한 일인데 오히려 야단을 치니 적반하장의 분노 반응이 끓어오르지만 표현은 할 수 없다. B안이 좋은 안이었는데 잘못 수행해 죄송하다 상사에게 사과까지 해야 한다.

이런 심리 상태를 인지 부조화 상태라고 한다. 자신의 행동과 그 행동에 대한 태도 사이에 부조화 상태에 빠지는 것이다. 사람은 이 부조화의 심리를 잘 견디지 못한다. 분노를 ‘쾅’ 터트리지 못한다면 자기 합리화라는 기술을 무의식적으로 활용하게 된다.
[HEALING MESSAGE] 분노 조절의 아이러니, 가끔은 까칠해져라
‘B안이 좋은 기획이었는데 시장 동향보다 너무 앞섰던 것뿐이야’ 이런 식으로. 다른 예를 들어보면 충동구매로 물건을 샀는데 그 행동에 대해 후회하는 마음이 들 때, 인터넷 등을 통해 그 물건의 긍정적인 면에 대해 정보를 찾아 뇌에 입력하는 행동을 하게 된다. 인지 부조화에 따른 자기 합리화 과정의 한 예다. 좋은 물건을 잘 샀다고 스스로 합리화하는 것이다.

영화에 종종 나오는 이야기다. 젊은 여인이 복수를 위해 중년 남자를 유혹하며 사랑의 행동을 보이는데 여성의 마음에 인지 부조화의 불편함이 찾아온다. 거짓 사랑을 하고 있으니까. 자기도 모르게 그 남자를 사랑해야 하는 이유를 찾기 시작하고 어느 순간 보니 복수를 위해 유혹한 그 남자를 사랑하고 있는 듯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자기 합리화의 함정에 빠진 것이다. ‘상대방을 잘 이해하는 사람이다, 사회성이 좋다’라는 평가가 사실은 인지 부조화를 극복하기 위한 자기 합리화의 결과물일 수 있다. 그런데 분노의 감정은 에너지이기에 분출하지 않으면 쌓이게 되고 그러다 보면 엉뚱한 곳에서 터지게 된다.


분노는 정상적 감정, 통제만이 ‘정답’ 아니다
분노 조절 프로그램이 유행이다. 책으로도 다양한 분노 조절 전략들이 소개되고 있고 회사에서도 업무 소통에 장애가 되는 분노 감정을 줄이기 위해 분노 조절 프로그램을 직원들에게 강의하고 있다. 분노 조절 프로그램은 ‘don’t get angry’, 화를 내지 말자는 것이다. 즉각적인 분노 반응은 사회생활에 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화를 내지 말자는 이유다. 수렵 시대에는 전쟁이나 사냥에 유리한, 원초적인 공격성이 강한 사람이 출세했지만 현대사회에서는 화 잘 내는 사람은 ‘반사회적 인물’로 여겨진다. 출세도 힘들다. 그렇지 않다고? 우리 사장님은 화 잘 낸다고? 사장님은 화를 잘 낼지 모르지만 그 사장님도 화 잘 내는 직원은 싫어하실 것이 분명하다. 분노를 잘 조절하지 못하면 살기 어려운 세상이다.

분노 조절 전략의 대표적인 것을 소개하면 먼저 이완요법이다. 마음에서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 몸의 생물학적 공격 반응을 이완하기 위해 깊은 심호흡을 한다거나 조용히 산책하거나 걷기를 하며 즉각적인 분노 반응이 터져 나오는 것을 지연시키는 방법이다.

인지의 재구성이라는 것도 있다. 모든 사람에게 다 아킬레스건이 있기에 저 사람은 나에게 꼭 나쁜 뜻으로 한 이야기가 아닌데 내가 그것을 예민하게 받아들인 것은 아닌가, 분노 감정을 일으킨 사고의 흐름, 인지 과정을 재구성해 보는 것이다. 같은 단어도 사람들은 다 다르게 해석하기에 분노 반응을 객관화해 생각해 보는 것 또한 도움이 된다.

문제 해결 전략도 있다. 분노는 감정 반응이고 실제 분노를 일으킨 근원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분석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원인이 되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분노 반응 대신 에너지를 쏟는 것. 원인이 없어지면 화를 더 낼 일도 없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적극성 기르기 훈련도 있다. 즉각적인 분노를 표현하지 않고 그 대신 상대방이 기분 나쁘지 않게 합리적으로 자기 의견을 전달하는 소통 기술을 훈련하는 것이다. 자신의 의견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적극성을 키우는 것이라 하겠다.

아마도 우리 모두 이 전략들을 쓰면서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지 않고는 수시로 생기는 분노 반응을 조절하기 어려우니 말이다. 그냥 꾹 화를 누르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분노 조절 프로그램이 분노를 일으킬 수도 있다. 감정은 특성상 한 번 터져 나오면 물 흐르듯 흘러 나와야 하는데 이것을 계속 통제만 하면 속에 억눌린 화가 늘어날 수 있는 것이다. 말은 친절하고 부드럽게 이야기하는데 듣다 보면 내 속을 긁는 사람들이 있다. 대놓고 화내는 사람보다 더 짜증나는 경우인데 속의 분노가 부드러운 말투에 스며들어 와 공격성을 띠고 있는 것이다. 조직에 이런 소통이 많아지면 조직 안에 분노가 공감 소통에 동맥경화를 일으킨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모습만 보이려는 걸 탓할 수 없으나 분노 자체가 매우 정상적인 감정 반응이고 본능인 것을 감안하면 오히려 부자연스러운 노력일 수도 있다. 가끔은 까칠해지는 용기도 필요하지 않을까.


글·사진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