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에서 로댕까지

전통적으로 말이나 소리를 직접 사용할 수 없는 미술작품에서 손은 추상적 개념이나 인물의 내면을 표현하는 중요한 시각적 도구였다. 특히 종교적인 미술에서 손은 신과 인간이 소통하는 언어와 같은 역할을 한다.
[MOTIF IN ART] 손(Hand), 창조와 소통의 언어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urer)의 ‘기도하는 손’은 신에게 전하는 인간의 마음을 손의 형태로 나타낸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 그림은 본래 ‘헬러 제단화(1507~1509)’를 위한 습작으로, 야고보 성인이 순교하기 직전 기도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인체의 다른 부분은 생략하고 두 손만을 묘사했기 때문에 손의 주인은 특정인이 아니라 누구나가 될 수 있다고 여겨진다. 그 손은 신을 향한 인간의 간절한 소망을 모두 담고 있다.

인간의 손뿐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성령의 활동이나 신의 권능을 나타내고 가르침을 전달하기 위해서도 손의 형상과 동작이 이용된다. 특히 손은 무언가 만들 때 사용하므로 창조 작업과 밀접히 연관된다.

미켈란젤로가 바티칸의 시스티나 예배당에 그린 ‘천지창조’ 중 ‘아담의 창조’는 손의 창조력을 가장 잘 나타낸 회화로 유명하다. 천장 한가운데 있는 이 그림은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는 결정적인 장면을 보여준다. 그림에서 왼쪽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은 인물은 최초의 인간 아담이다. 아담은 형상만 갖췄을 뿐 아직 생명을 얻지 못해 움직일 수가 없다. 그는 무기력한 왼팔을 무릎 위에 받쳐 들고 신의 은총을 기다린다. 이에 비해 하나님은 건강한 노인의 모습으로 천상의 인물들에 둘러싸여 힘차게 날아 내려온다. 신은 오른손을 뻗어 집게손가락으로 아담에게 생명의 기운을 막 넣어주려는 참이다.

그런데 ‘창세기’에는 하나님이 아담을 창조할 때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어 아담이 생명체가 됐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미켈란젤로는 그런 직접적인 동작을 묘사하지 않았다. 그는 왜, 어떻게 성서와 달리 손가락을 통해 생명을 전달한다는 생각을 해낸 것일까?

중세의 필사본이나 성상화에는 신의 오른손이 자주 등장한다. 손 하나만 단독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고, 사람 모습을 한 하나님이 특별한 손짓을 하는 동작을 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독일 고딕 회화 ‘그라보 제단화’ 중 ‘이브의 창조’를 보자. 마이스터 베르트람 폰 민덴(Meister Bertram von Minden)이 그린 이 작품은 하나님이 아담의 갈비뼈로 이브를 창조하는 장면을 나타낸다. 신은 오른손 손가락을 펴 뭔가를 지시하는데, 아마도 이브를 만들고 생명을 주는 행동일 것이다. 하나님이 직접 흙을 주무르거나 코에 숨을 불어넣지 않고 손짓으로 창조 작업을 실행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손동작은 일종의 수화로서 하나님의 말씀이자 성령의 활동을 의미한다. 그것은 생명의 창조가 ‘신의 말씀’인 로고스, 즉 영적 힘에 의해 이루어지며 그 말씀은 정신뿐 아니라 물리적 제작까지도 포함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인본주의적 시대정신을 표현한 미켈란젤로
성령을 창조주로 여기는 사상은 9세기 그레고리안 성가 ‘임하소서 창조자 성령이여(Veni Creator Spiritus)’에서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지금도 가톨릭교회에서 성령강림절이면 애송되는 이 노래는 특히 시스티나 예배당에 교황을 선출하는 추기경들이 입장할 때, 주교를 임명할 때, 첫 영성체 때 등 중요한 의식에 자주 사용된다. 새로운 탄생에 창조자로서 성령이 함께 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미켈란젤로는 창조주 성령에 대한 중세의 신학과 하나님의 오른손에 대한 이미지 전통을 이어받아 인간의 탄생을 거룩하고 실감나는 장면으로 재현해냈다. 성령을 암시해 창조에 내재한 신성한 에너지를 강조하면서 작품이 위치한 예배당의 성격과도 잘 어울리도록 한 것이다.

미켈란젤로의 천재성은 신의 손을 절묘하게 표현한 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하나님의 손에 응답하는 아담의 손, 즉 인간의 손에도 큰 의미를 부여했다. 아담은 무의식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중을 깨닫고 무력하나마 그 손동작을 따라함으로써 적극적으로 창조에 동참하려 한다. 신과 인간의 뜻이 합치되는 순간, 비로소 생명 창조의 기적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MOTIF IN ART] 손(Hand), 창조와 소통의 언어
인간의 의지를 존중하는 이러한 개념은 바로 르네상스의 인본주의적 시대정신을 드러낸다. 신의 손에 조응하는 인간 아담의 손이야말로 ‘천지창조’에서 가장 파격적이고 창의적인 부분이다. 이제 두 손가락이 서로 닿기만 하면 창조의 모든 과정이 완성된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그 손가락들이 맞닿았음을 알고 있다. 하지만 미켈란젤로는 닿기 직전의 모습을 그려 높은 천장 위에 영원히 고정시켜 버렸다. 신의 창조 작업은 완료된 과거의 일이 아니라 여전히 진행 중이며 계속돼야 하는 일로 보인다. 미켈란젤로는 창조 작업을 영원한 미완성으로 정지시킴으로써 오히려 이 그림이 영원히 살아 움직이도록 했다.


신과 인간이 소통하는 로댕의 손
현대의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August Rodin)도 손의 창조 작용을 형상화해 ‘신의 손’이라는 작품을 제작했다. 흰 대리석을 정교하게 조각해 묘사한 커다란 오른손이 있고 그 손에 들린 흙덩이에서 한 쌍의 남녀가 탄생한다. 흙덩이는 다듬지 않은 돌의 질감이 거칠게 살아 있는 반면 두 남녀는 표면이 매끄럽게 다듬어져 반짝반짝 빛이 난다. 창조 이전의 물질상태와 완성된 인간 형상의 차이가 재료를 통해 선명히 대비된다. 여기서 큰 오른손은 창조주의 손으로, 그의 능력을 보여주는 상징적 이미지다. 동시에 그 손은 비정형의 물질에서 형태를 만드는 예술가의 손이다. 로댕의 작품에서 신의 손과 인간의 손은 하나가 된다.

손을 소재로 한 로댕의 많은 조각 중 ‘대성당’은 또 다른 의미에서 탁월한 작품이다. 평범해 보이는 두 손은 뒤러의 ‘기도하는 손’을 연상시키지만, 놀랍게도 한 사람의 손이 아니라 같은 오른손 둘을 맞대어 놓은 것이다. 교차하는 두 손은 고딕 대성당의 아치를 의미한다. 서로를 지지하는 궁륭 기둥들처럼 이 손들은 건물의 구조를 나타낼 뿐 아니라 사람들의 협력체인 교회를 상징한다. 여기서 손은 신과 인간이 만나는 소통의 장소가 된다. 그렇다면 서로 감싸듯 상승하는 그 두 손은 서로 사랑하라는 신의 뜻을 따르며 신에게 다가가려는 인간 의지의 표상이 아닐까.


박은영 미술사가·서울하우스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