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리 이창길 대표·카레클린트 안오준 대표

30대 중반의 사업가와 20대 중반의 가구 디자이너 겸 사업가, 이 두 ‘젊은 피’가 만나 새롭고 의미 있으며 아름답기까지 한 건축을 탄생시켰다. 이른바 제주 전통 가옥의 복원에서 시작된 토리코티지 프로젝트. 그러니까 이건 세상에 없던 새로운 개념의 건축 얘기다.
토리 이창길 대표. 카레클린트 안오준 대표.
토리 이창길 대표. 카레클린트 안오준 대표.
200년, 7대가 살던 제주의 전통 가옥. 그러나 최근 10여 년간은 버려진 채 방치돼 있던 집 한 채가 있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한 채긴 한 채인데 또 한 채가 아니다. 전형적인 제주 가옥은 세 채가 하나인 까닭이다. 안채, 바깥채, 그리고 그 사이 ‘송애기’라 불리는 외양간 혹은 창고가 있는 식이다. 그러나 뭍에서 멀리 떨어져 그나마 개발로 인한 변화가 더딘 제주에도 세월은 흐르고 흘러 원래 모습을 갖춘 가옥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어차피 집이란 삶을 담아내는 곳이니, 삶의 변화와 함께 달라지는 건 당연할 터. 하지만 그 논리로 모든 걸 정당화할 수는 없다. 아니, ‘정당화’를 떠나 ‘현대화’라는 이름으로 사라져가는 문화유산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 집만큼 사람과 가까운 건축이 또 있던가.
[MORE THAN ARCHITECTURE] 세상에 없던 신개념 건축 탄생 스토리
제주시 애월읍 고내리에 위치한, 버려진 전통 가옥의 복원 프로젝트는 그래서 더 의미가 있었다. ‘토리코티지’라는 힐링 하우스이자 렌탈 하우스로 재탄생한 그곳의 두 번째 의미는 열정과 패기 넘치는, 그러나 그 중심엔 늘 ‘사람’을 염두에 둔 젊은 경영자(CEO)들이 ‘계산’ 이전에 ‘마음’을 맞춰 작업했다는 데 있다. 선한 의도와 참신한 아이디어, 그리고 능력 있는 두 기업의 합작으로 인한 시너지효과까지 더해진 제주 토리코티지의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됐다.
신축동에 들어선 주방 모습. 바깥쪽에 바비큐 시설을 만들고 폴딩 도어를 설치해 안팎의 경계를 없애는 등 이용객들의 편리를 최대한 보장했다.
신축동에 들어선 주방 모습. 바깥쪽에 바비큐 시설을 만들고 폴딩 도어를 설치해 안팎의 경계를 없애는 등 이용객들의 편리를 최대한 보장했다.
첫 번째, 토리 이야기
토리코티지의 시작은 이창길 토리 대표로부터였다. 경영 컨설팅이 본업인 이 대표는 단순히 ‘좋아서’ 숙박 사업을 시작했다. 영국 런던에 거주할 당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해본 경험이 있기도 했지만, 워낙 사람을 좋아하는 그에겐 사람들이 머무는 공간이 특별했다. 그렇게 제주 1세대 게스트하우스인 토리게스트하우스와 서울에 위치한 토리호텔이 문을 열었다. 형태도 지역도 다르지만 지향점은 하나다. ‘스토리(Story)’와 ‘인포메이션(Information)’을 더한 ‘토리(TORi)’라는 이름이 그러하듯, ‘모어 댄 스테이(More Than Stay)’라는 슬로건이 말해주듯, 단순한 숙박 그 이상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 공간 하나하나, 심지어 가구 하나하나를 고를 때도 이 대표가 철저한 고민과 기획을 거치는 건 그런 철학이 반영된 결과다. 그러니 토리코티지에 녹아든 열정과 애정은 오죽했을까. 더구나 개인적으로 추구하는 가치를 넘어 ‘제주 전통 가옥의 복원’이라는 사회적 이슈까지 담고 있는 이번 프로젝트는 만드는 사람들에게도 누리게 될 사람들에게도 또한 제주 향토민들에게도 특별함 그 자체였다. 사실 그에게도 제주는 토리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기 이전부터 낯선 곳이 아니었다.

“영국에 살았을 때 영국 사람들이 몇백 년 된 건물을 잘 활용하는 걸 보고 느낀 바가 많았어요. 그때 제주도 생각이 났죠. 부모님이 10여 년 전에 은퇴하고 연고도 없는 제주도에 내려가셨는데, 부모님 집에 귤 창고가 있었거든요. 후에 그걸 어떻게 할까 고민했을 때, 주변 사람들은 하나같이 깨끗하게 밀어버리고 다시 지으라고 했지만, 제 생각은 달랐어요. 제주도에 프로방스풍 집을 지으면 그게 제주도인가요. 가장 제주답게, 하지만 사람을 중심에 두고 다시 지었죠.”

이 대표는 늘 그랬듯 이번에도 사람을 중심에 두고 생각했다. ‘복원’에 대한 생각은 모두 다를 터. 결과물을 두고 이런저런 논란이 있을 수 있다는 점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사람’을 먼저 생각했다. 과거, 그 집에 살았던 사람들, 앞으로 토리코티지에서 제주의 삶을 경험하게 될 사람들을.

“제 생각은 그랬어요. 과거와 현재, 미래가 있다면 현재에서 5분만 지나도 미래잖아요.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건 사람이고, 결국 사람을 중심으로 집을 짓는다면 과거와 미래를 이을 수 있다고, 그게 재창조라고 말이죠. 가령 제주 집은 키가 굉장히 낮았는데 그 이유에는 바람이 세다는 것도 있었지만 사람들 키가 작았기 때문에 굳이 높일 필요가 없었던 거예요. 하지만 지금은 다르죠. 바람을 막을 수 있는 재료가 충분하고 사람들 신장은 커졌어요. 그렇다면 거기에 맞춰 변하는 게 맞겠죠. 다만 우리가 알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선 전혀 건드리지 않았어요. 200년 동안 대를 이어온 집의 필지, 동선, 집과 집 사이, 비례감 등 그런 건 우리가 좋은지 나쁜지 판단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죠.”
토리코티지 내부 인테리어 모습. 모든 가구는 카레클린트의 제품으로 이용객들이 직접 가구를 체험해볼 수 있다.
토리코티지 내부 인테리어 모습. 모든 가구는 카레클린트의 제품으로 이용객들이 직접 가구를 체험해볼 수 있다.
전통 가옥 복원 프로젝트를 계획했을 때 이 대표가 떠올린 얼굴이 있었으니 바로 안오준 카레클린트 대표였다. 이 대표의 생각과 가치를 나눌 수 있고, 더 빛내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은 프로젝트 시작 전 함께 제주 고내리 집을 방문하던 날 확신으로 바뀌었다. 다 쓰러져 가는 집은 비바람까지 배경으로 더해지면서 금방이라도 뭔가 튀어나올 것처럼 공포감을 자극했지만, 일행 중 유일하게 안 대표만 얼굴이 일그러지지 않았다. 안 대표는 오히려 할 수 있다고 힘을 실어줬다. ‘좋은 파트너와의 협업이라!’ 어쩌면 그때부터 이미 성공 예감이 시작됐는지도 모른다.


두 번째, 카레클린트 이야기
처음엔 카레클린트의 소비자로 만났던 이 대표가 두 번째 만남에서 제주 프로젝트 제안을 했을 때 안 대표는 반가웠고 설레었고 신선했다. 어쩌면 이미 재료만 다를 뿐 사람을 중심에 둔 작업을 하고 있다는 점이 그들을 통하게 했는지도 몰랐다. 한 마디로 이건 기회였다. 카레클린트는 제조업 기반이고, 새로운 뭔가를 만들어내려면 누군가와 ‘섞여야’ 한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던 터였다. 국내 최초로 영국 왕실이 품질을 공인한 해리스 트위드(Harris Tweed)와의 컬래버레이션(협업)을 비롯해 최근 알루미늄 소재 전문 가구 브랜드와의 협업까지, 혁신과 도전은 카레클린트의 존재 이유이자 브랜드 가치이기도 했다.
신축동 옆으로 풀장을 만들어 ‘프라이빗’한 휴식을 제공한다. 풀장 옆쪽 돌담은 살짝 높여 시선을 차단하는 센스도 발휘.
신축동 옆으로 풀장을 만들어 ‘프라이빗’한 휴식을 제공한다. 풀장 옆쪽 돌담은 살짝 높여 시선을 차단하는 센스도 발휘.
카레클린트를 파트너로 선택한 이 대표의 생각은 탁월했다. 카레클린트가 요즘 가장 핫한 가구 브랜드라는 점도 간과할 수는 없겠지만, 카레클린트라는 브랜드의 탄생과 운영 방식, 브랜드를 이끌고 있는 세 명의 젊은 남자 CEO들의 스토리를 알고 보면 더욱 그렇다. 100% 수제작 원목가구 브랜드인 카레클린트는 정재엽, 탁의성, 안오준 등 홍익대 목조형가구학과 동기인 세 명의 청년 가구 디자이너가 공동 대표다. 4년 전인 2010년 12월 국내 가구 업계에 고품질 합리적 가격대의 수제작 원목가구를 제공하겠다는 생각으로 재학 중 창업한 이들은 디자인에서부터 제작, 판매에 이르기까지 직접 도맡았고, 유통 마진을 없앤 가격으로 국내에 원목가구의 대중화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자, 여기까지였다면 똘똘한 세 청년의 성공 창업쯤으로 끝났을 이야기지만, 카레클린트의 특별함은 그 이후에 있다.

“학생 시절에 사업을 시작하다 보니 경영에 대해선 전혀 몰랐어요. 우리 셋 모두 디자인만 자신 있었고 잘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어요. 유통마진에 대한 개념이 아예 없었죠. 조금씩 입소문이 나면서 백화점 등에서 입점 제의가 왔을 때 ‘가격의 차이’를 깨달았어요. 그래서 방법을 고민했죠.”
토리코티지는 흰색 외벽의 새로 지은 동과 ‘기역(ㄱ)’자로 배치된 리모델링 두 동 등 세 채가 하나의 구조를 이루는 제주 전통 가옥의 배치를 그대로 따랐다.
토리코티지는 흰색 외벽의 새로 지은 동과 ‘기역(ㄱ)’자로 배치된 리모델링 두 동 등 세 채가 하나의 구조를 이루는 제주 전통 가옥의 배치를 그대로 따랐다.
퍼니처 카페의 탄생은 그렇게 시작됐다. 가구 쇼룸을 카페 형태로 운영하는 것. 구매에 대한 부담 없이 차 한 잔 마시러 가서 가구를 구경하고 체험해볼 수 있는 곳, 그러다 좋으면 견적까지 한 자리에서 받을 수 있는 곳이 바로 카레클린트 카페다. 3년 전 첫 오픈한 서울 청담동 본점이 핫 플레이스로 자리 잡자 이후 카페 운영에 대한 문의가 쇄도했고, 카페 성격이 더 강화된 ‘카레클린트 더 카페’가 곳곳에 문을 열었다. 현재 서울 홍대점과 경기도 김포점, 수원점, 분당수지점 등에서 운영 중인 ‘더 카페’는 그 방식도 독특하다. 카페 매출은 100% 점주의 몫이되, 카페에 비치된 가구가 판매될 경우 약간의 수수료를 주는 식이다. 대리점은 분명 아닌데 대리점 역할은 충분히 하는 데다 그 자체로 입소문을 타고 있으니 일석이조.

이처럼 ‘가구는 경험해봐야 한다’는 카레클린트 CEO들의 생각이 제주 프로젝트와 맞아떨어졌던 것이다. 이 대표의 ‘덧말’처럼 가구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했다. 마음껏 써보라고 당당히 내놓을 수 있는 자신감.

“카페보다 더 진화된 개념이 바로 머물고 잠자고 써보는 거잖아요. 사실 제주는 지역적 특성 때문에 쇼룸을 내기가 쉽지 않은데, 우리 가구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셈이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죠. 또 하나, 카레클린트를 지켜봐주는 사람들로 하여금 ‘뭔가 또 일 냈네’라는 말을 듣고 싶었어요. 기존의 라인업들을 계속 가져가되 늘 새로운 시도를 통해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소비자들에게도 브랜드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고 싶거든요.”


그리고, 토리코티지 × 카레클린트 이야기
두 달이 넘는 회의 기간 동안 치열한 고민과 토론이 이뤄졌다. 건축가와 실내 인테리어 디자이너까지, 분야가 다른 이들이 만나 말하고 표현하고 또 각자 말한 것들이 구현돼 가는 과정은 그 자체로 즐거움이었다.

두 달 여의 공사 기간을 거쳐 탄생한 토리코티지는 전형적인 제주 가옥의 모습을 간직하면서도 현대적인 요소들이 가미돼 최적의 생활공간으로 거듭났다. 신축이 불가능할 정도로 무너져 있었던 바깥채는 신축을 했고 나머지 두 채는 리모델링을 통해 ‘프라이빗 렌탈하우스’로서 미적·기능적 요소를 모두 갖췄다. 819m²(247.75평) 대지 공간에 들어선 세 채의 공간은 8~10명의 한 가족이 행복한 제주를 온몸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각각 독립된 침실 공간을 갖췄으면서도 가족들이 다 함께 모일 수 있는 키친 동을 만들어 2대 이상의 대가족이 함께 머물 때도 전혀 불편함이 없도록 했다.

신축 건물에 들어선 주방 바로 앞에 바비큐 시설을 만들고 폴딩 도어를 설치해 우천 시 안으로 이동이 가능하거나 또는 밖에서도 창문을 통해 집 안에 있는 아이들을 보살필 수 있도록 하는 등 세심한 배려를 잊지 않았다. 안쪽에 마련된 풀장, 집 안에서도 제주 밤하늘의 별을 볼 수 있는 공간 등 제주의 자연과 정취를 감상할 수 있는 건 덤이다.

이처럼 ‘가족 중심’의 공간 탄생은 이 대표의 섬세한 아이디어 덕분이었다. 두 아이의 아빠인 그가 생활 속에서 터득한 경험적 아이디어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대표의 역할은 회의 과정까지였다. 이후 디자인 감각적인 문제는 안 대표와 다른 파트너들에게 일임됐다. 그게 이 대표가 일하는 방식이었다.

“그런 면에서 이 대표님의 배려에 감동했어요. 숙박업을 해오며 아는 게 정말 많고 마케팅 부분도 저희보다 프로인데도 늘 인정해주고 믿고 맡겨주었죠. 우린 인테리어 사업도 하고 있지만, 건축이나 디자인을 할 때 클라이언트가 끼면 경직되고 방향이 원치 않는 곳으로 흘러가는 경우도 많거든요. 비즈니스를 하는 자세가 굉장히 섬세해요. 토리코티지가 완성된 후 사진을 찍으러 갔었는데 홈페이지에 올릴 와인오프너 사진까지 촬영하시더라고요. 고객들이 원하는 바를 정확히 알고 있는 거죠. 배울 게 정말 많은 작업이었어요.”(안오준 대표)

“안 대표는 정말 열정적인 사람이라 실제로 작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선 제가 이래라 저래라 할 필요가 없었어요. 사업가적 기질도 뛰어나고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도 깊고 결정이 필요할 땐 또 판단도 빨랐죠. 안 대표가 제 첫 번째 협업의 상대였다는 게 참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성공적으로 잘 끝나서 자신감이 생겼거든요.”(이창길 대표)

오픈한 지 한 달이 갓 지난 토리코티지는 예상했던 대로 이슈의 중심에 섰다. ‘복원’이라는 프로젝트가 갖는 의미와 전에 없던 개념의 건축물이 탄생했다는 점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 하나는 고내리 지역 주민에게도 일정 부분 기여하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별장’ 느낌을 주기 위해 전체 동을 무인 시스템으로 운영하는 토리코티지의 관리를 고내리 주민에게 맡겨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는가 하면, 토리코티지의 수익금 중 일부로 고내리 주민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 준공 즈음, 이 대표와 안 대표가 뜻을 같이 한 ‘책임 있는 관광(responsible tour)’이 하나둘 실천돼 가고 있는 것이다.


박진영 기자 bluepjy@hankyung.com│사진 이승재 기자·토리코티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