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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 발칸반도에 숨은 작은 나라 슬로베니아. 작고 사랑스러운 도시, 그림 같은 호수, 신비로운 알프스 산맥, 그리고 중세시대의 거리가 어우러져 매력적인 풍경을 빚어낸다. 크로아티아나 체코, 오스트리아 등에 비해선 덜 알려졌지만 그만큼 때 묻지 않은 나라다. 우리가 지금까지 봐오던 유럽과는 또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발칸반도가 숨겨둔 보석, 슬로베니아 류블랴나와 블레드 호수](https://img.hankyung.com/photo/202101/AD.25095330.1.jpg)
“여기 온 김에 슬로베니아에도 가봐야지. 안 가면 후회할 걸. 여기에 다시 온다는 보장도 없잖아. 여행이란 할 수 있을 때 해야 하고 갈 수 있을 때 가야 하는 법이지.”
나도 어쩔 수 없는 귀 얇은 여행자였다. 그날 밤 게스트하우스 거실에 설치된 컴퓨터로 슬로베니아를 검색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며칠 뒤 슬로베니아로 가는 유레일패스를 손에 쥐고 있었다. 인터넷으로 자료를 검색하다 블레드 성의 사진을 본 후 슬로베니아로 가야겠다고 결심했던 것이다.
사랑스럽고 다정한 도시, 류블랴나
먼저 슬로베니아에 대해 잠깐 알아보자. 슬로베니아는 우리에게 그다지 잘 알려진 나라가 아니다. 발칸반도에 숨은 듯 자리하고 있다. 세계지도에서도 슬로베니아를 찾는 일은 쉽지 않다. 오스트리아와 헝가리, 크로아티아, 이탈리아에 둘러싸여 있는 데다 면적도 무척 작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11분의 1. 대략 1000만 ㎢. 딱 전라도 넓이다. 인구는 겨우 200만 명이다.
우리에겐 다소 생소한 나라이지만 슬로베니아를 다녀온 여행자들은 하나같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동유럽의 스위스’, ‘알프스의 양지바른 곳’, ‘전원의 나라’ 등 슬로베니아의 별명만 들어봐도 어떤 나라인지 대충 짐작이 간다. 작고 평화롭고 사랑스러운 나라가 슬로베니아다.?
슬로베니아 여행의 시작은 수도 류블랴나(Ljubljana)다. 발음하기가 약간 까다로운 이 도시는 한 나라의 수도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작다. 슬로베니아에서 가장 큰 도시이자 인구의 14%가 산다고는 하지만, 인구라고 해봐야 28만 명밖에 되지 않는다. 슬로베니아 국내총생산(GDP)의 25%를 생산하지만 산업화된 행정도시라기보다는 작은 소도시에 가깝다. 걸어 다녀도 하루, 아니 한나절이면 이 도시의 구석구석을 돌아볼 수 있다.
![그림 같은 풍경의 블레드 호수.](https://img.hankyung.com/photo/202101/AD.25095331.1.jpg)
류블랴나는 에모나(Emona)라는 로마도시로 출발했다. 그런 까닭인지 시 곳곳에 로마시대의 유산이 많이 남아 있다. 이후 15세기에 합스부르크 왕조가 통치했는데, 이때 흰색의 교회와 저택이 많이 들어섰다. ‘화이트 류블랴나’라는 별명도 그때 얻은 것이다. 1809년부터 1814년까지는 동부 아드리아 해로 진출하려는 나폴레옹이 일시적으로 만든 일리안 주의 수도이기도 했다.
유럽 대부분의 도시가 그러하듯 류블랴나 여행의 시작 역시 한가운데에 자리한 프레셰르노프 광장(Presernov Square)이다. 슬로베니아의 국민 시인 프레세롄을 기념한 동상이 있는 곳이다. 낭만주의의 선두주자였으며, 강렬한 문장으로 유명했던 시인이다. 시인의 시선이 머무르는 곳에는 그가 사랑했던 여인 율리아가 있다. 평생 사랑했지만 신분 차이로 함께 할 수 없었던 그들이었다. 지금은 동상으로나마 서로를 지켜보고 있다고 한다.
광장을 나오면 곧장 류블랴나 시가지다. 바로크 양식과 아르누보 스타일의 건축물이 즐비하다. 산책하듯 느린 걸음으로 돌아다니기 좋다.
류블랴나는 작은 도시라 지도 한 장 달랑 들고 다녀도, 길을 잃어도 조금만 걸으면 지나갔던 그곳으로 다시 되돌아간다. 그러니 길 잃을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 골목을 산책하는 다정해 보이는 부부와 수레 가득 꽃을 담아 팔고 있는 반백의 할아버지. 모퉁이 빵가게에서는 맛있는 냄새가 풍겨 나온다. 거리에는 유독 젊은이들이 많은데, 대부분 류블랴나 대학생이라고 한다. 2만 명이나 된다. 류블랴나의 거리를 걷다 보면 이 도시의 이름이 왜 류블랴나인지 이해가 간다. 슬로베니아어로 류블랴나는 ‘사랑스럽다’는 뜻이다.?
![블레드 섬에 자리한 성당](https://img.hankyung.com/photo/202101/AD.25095332.1.jpg)
길을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티볼리 공원에 닿는다. 류블랴나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공원이다. 수많은 조각상과 함께 곳곳에 분수대가 있다. 공원에는 각종 스포츠 시설이 잘 갖춰져 있는데, 슬로베니아의 국가 대표 선수들도 이곳에서 연습한다고 한다.?
류블랴나 여행의 하이라이트이자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명소는 류블랴나 성이다. 9세기에 처음 세워졌다가 1511년 지진으로 파괴된 후 17세기 초에 재건됐다. 류블랴나 성은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어 가장 전망이 좋은 곳으로도 유명하다. 그동안 요새, 감옥, 병원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다가 지금은 각종 전시회와 이벤트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류블랴나 사람들이 결혼식장으로 가장 애용하는 곳이기도 하다.
시장 구경도 빼놓을 수 없다. 세상 곳곳에는 아름다운 시장이 많지만 류블랴나의 시장은 지금까지 봐온 가장 아름다운 시장 중 하나다. 트리플교 옆에 자리하고 있다. 다양한 기념품을 주로 팔지만 먹을거리도 종종 눈에 띈다. 노점이 일렬로 늘어선 곳도 있고 꽃 가게와 청과물 시장도 들어서 있다.
![류블랴나 시내를 흐르는 류블랴니차 강.](https://img.hankyung.com/photo/202101/AD.25095333.1.jpg)
알프스 산은 유럽의 많은 나라가 공유하는 산이다. 알프스 하면 스위스를 떠올리지만 사실 절반 이상을 오스트리아가 가지고 있다.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등도 지분을 갖고 있고 슬로베니아도 발을 걸치고 있다. 줄리안 알프스라고 부르는, 이탈리아와 국경을 맞댄 북서부 산악지대다. 트리글라브 등 2000m 이상 고봉이 줄줄이 이어져 있다. 6월까지도 잔설이 남아 있을 정도다.
블레드 호수는 ‘줄리안 알프스의 진주’라고 불리는 곳이다. 둘레 6km의 작은 호수이지만 전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손꼽힌다. 알프스의 만년설이 녹아 흘러들어 만들어졌다.
호수가 보여주는 풍경은 정말이지 그림 같다. 푸른 물비늘을 일으키며 햇살을 반사하는 호수와 그 호수 위에 떠 있는 작은 섬, 그리고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알프스 산맥은 방금 달력에서 오려낸 듯한 풍경을 보여준다.
![한가로운 풍경의 티볼리 공원.](https://img.hankyung.com/photo/202101/AD.25095334.1.jpg)
배를 타고 10분 정도 가다 보면 블레드 섬에 닿는다. 99개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예쁜 바로크식 교회 ‘성모마리아 승천 성당’이 있다. 1000년도 더 된 교회다. 성당은 결혼식 장소로 애용되는데, 결혼식은 못 올려도 성당 내부에 있는 ‘행복의 종’을 울리는 기회는 누구에게나 주어진다. 종을 울리면 소원을 이뤄준다는 이야기도 전해져 블레드 섬에는 항상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류블랴나 여행의 시작 프레셰르노프 광장.](https://img.hankyung.com/photo/202101/AD.25095335.1.jpg)
성 한쪽에는 블레드 지역에서 발굴된 유물들을 전시하는 작은 박물관이 위치하고 있는데 주로 검과 갑옷 등이 진열돼 있다. 성에서 내려오는 길에 와인을 시음해볼 수도 있다. 옛날 중세 복장을 한 와인 소믈리에가 반갑게 맞아준다. 슬로베니아 동쪽의 와인지대는 고대부터 중요한 와인 공급 지역이었다고 한다.
호숫가에는 옛 유고슬라비아 대통령인 요시프 티토가 사용했던 호숫가 별장 ‘호텔 빌라 블레드’가 있다. 세계 최고 레스토랑과 호텔들을 국가별로 선별한 가이드북 ‘를레 에 & 샤토’ 멤버에도 가입돼 있는 이곳은 고(故) 김일성 북한 주석이 14일 동안이나 머물고 갔을 만큼 멋진 풍광과 아늑함을 자랑한다.
![슬로베니아 전통 공예품을 만들고 있는 장인.](https://img.hankyung.com/photo/202101/AD.25095337.1.jpg)
Plus Info.
![발칸반도가 숨겨둔 보석, 슬로베니아 류블랴나와 블레드 호수](https://img.hankyung.com/photo/202101/AD.25095338.1.jpg)
글·사진 최갑수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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