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면 병 되고, 터뜨리면 죄 되고, 알아차리면 사라진다

인류역사상 스님들의 인기가 요즘처럼 뜨거웠던 때가 있었던가. 치유법회에 수천 명의 인파가 몰리고 스님들이 쓴 책은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내려올 줄 모른다. 종교를 떠나 그만큼 힐링이 간절한 현대인이 많다는 방증일 터다. 요즘 불교계 ‘스타 멘토’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히는 마가 스님(54·동국대 정각원 교법사)은 ‘자비명상’으로 대중의 아픈 마음을 어루만진다. 젊은 날 자살로 생을 마감하려 했던 그를 지금의 힐링 전도사로 바꿔 놓은 깨달음, 그것이라면 위태로운 오늘을 살아가야 하는 현대인들에게 위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THE NEW YEAR INTERVIEW] ‘자비명상’ 전도사 마가 스님
“살아 있으니 뭔가 해야 합니다. 기왕 하는 거 신나게 해보십시다.”

2013년 12월 4일 동국대 정각원 교법사실 문틈으로 웃음소리가 새어나왔다. 세밑을 맞아 ‘국민행복 힐링콘서트’ 전국투어를 앞두고 있는 마가 스님이 보살들과 함께 한창 기획 회의 중이었다. 스님의 스케줄 보드에는 12월 일정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얼마 전에 발간한 저서 ‘알고 보면 괜찮은’과 관련한 강연 요청도 줄을 잇고 있다고 한다. 그는 “내가 이렇게 돌아다니는 것은 세상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아직 많다는 뜻 아니겠느냐”며 “사람들이 물질만능주의에 찌들어 인간성을 상실했지만, 이제라도 회복하려 발버둥치는 건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연말연시라 더 바쁘시죠.
“지구별에서 쓰임새 있는 존재임을 고맙게 생각합니다. 나를 필요로 하는 손길이 있으니 기쁜 마음으로 다니고 있어요. 학생들을 가르치지 않는 방학 때 부지런히 세상 사람들을 치유하러 가야죠. ‘힐링콘서트’를 준비 중인데 화병이나 암환자 등 청중 맞춤형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포교 중에 만난 요즘 사람들은 주로 무엇 때문에 힘들어하나요.
“참으면 병이 됩니다. 헌데 한국인은 체면을 중시하는 데다 인내하고 사는 데 익숙하다 보니 무언가 속에 켜켜이 쌓아 둡니다. 썩고 곪은 것들이 한계에 다다라 아픔으로 다가옵니다. 토해내야 하는데, 제대로 토하는 법도 잘 몰라요. 엉뚱하게 다른 사람에게 불똥이 튀어 가족, 직장 동료 간 불화나 ‘묻지마 범죄’가 생깁니다. 또 하나는 자기 자신을 바로 볼 줄 모르는 데서 오는 병입니다. 스스로를 직시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비교하고 남을 의식해요. 내면을 다듬지 못한 채 겉만 화려하게 치장하는 것과 같아요. 이 두 가지가 오늘날 사람들의 마음을 괴롭히는 가장 큰 문제예요.”


그러다 보니 ‘힐링’의 계기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이제라도 심각성을 깨닫고 치유에 나서는 것은 다행이에요. 안타깝게도 한국 사회는 근대화가 빠르게 이뤄지면서 성장 위주의 정책이 사람들을 극한의 경쟁으로 내몰았어요. 도시화, 핵가족화 과정에서 인간성을 상실했지요. 한때는 먹고 살기 위해 발을 동동거렸는데, 돈 많이 벌고 지위를 얻었음에도 마음은 평온하지 않습니다. 특히 많이 배우고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일수록 의식이 무의식을 누르는 힘이 강해 스트레스를 잘 표현하지 못해요. 최고경영자(CEO)나 의사, 교수 등 지식인들 가운데 암 환자가 유독 많은 것도 비슷한 이유고요.”


‘자비명상’ 설파로 유명하시지요. 스님이 말하는 ‘자비명상’은 무엇입니까.
“세계 각국의 명상 프로그램을 둘러보고 한국인에게 가장 잘 맞는 명상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한국인들의 ‘막힌 가슴’을 열어주는 일이 급선무였요. 한국인이 머리 좋기로 세계 최고 수준이 된 건 가슴이 막혀 있기 때문입니다. 머리로만 옳다, 그르다를 판별하는 인간이 과연 행복하겠습니까.”
[THE NEW YEAR INTERVIEW] ‘자비명상’ 전도사 마가 스님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명상은 지금 이 순간, 깨어 있는 채로 내가 나를 바로 보는 일입니다. 한 마디로 경기장에서 아나운서가 선수들이 뛰는 것을 중계하듯, 자기 스스로를 보면서 이야기하는 것이지요. ‘나는 말하고 있구나’, ‘화를 내고 있구나’, ‘걷고 있구나’ 처럼 객관적으로 보는 연습을 하면 내가 누군지 알게 되고 나아가 나를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행복을 위한 제1의 조건이 나를 사랑하는 일이거든요. 불가에서는 ‘참으면 병이 되고, 터뜨리면 죄가 되고, 알아차리면 사라진다’고 합니다. 이게 명상의 첫걸음이죠.”


나를 바로 보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아 보이는데요.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주신다면요.
“이게 훈련으로 가능해집니다. 처음엔 무조건 긍정해보세요. ‘내 두 눈이 있는 게 너무 행복해’, ‘내 열 손가락, 두 다리가 있어 정말 든든하구나’라는 식으로 주문을 외는 겁니다. 칭찬 거리를 적어도 보고 거울을 보면서 공주병에 심취해보세요. 자기를 부정하고 비하하는 사람에게는 아무리 좋은 명상도 부질없어요. 일회성에 그치면 안 되고 끊임없이 수련해야 합니다. 집 청소도 한 번 한다고 깨끗해지는 게 아니잖아요. 꾸준한 자비명상은 ‘마음의 방’을 환하게 밝혀줍니다. 이 불빛이 밖으로 새어나가 더 큰 사랑과 자비를 만들어냅니다.”



패륜아로 살던 시절, 10년 걸려 아버지 용서하니 새 세상 보였다
마가 스님은 거침없고 재치 넘치는 입담으로 유명하다. 미얀마 선원에서 받은 산스크리트어 법명 마가(Magga)는 ‘걸림 없이 길을 가는 자’라는 뜻이니, 그의 시원시원한 성격과 닮았다. 이에 공주 마곡사는 ‘템플스테이 1번지’로 자리매김했고, 중앙대 ‘내 마음 바로보기’ 강좌는 1초 만에 수강 신청이 마감되는 인기 수업이다. 스님의 따뜻하고 소탈한 성격 덕분이기도 하지만, 대중은 자신과 같이 방황했고, 아픔을 겪은 ‘수행자’의 인간적인 면모에 공감대를 느낀다. 그는 태어나기도 전에 가족을 버린 자신의 아버지를 원망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복수심에 불타 인생을 낭비하며 살았으며 결국 자살 시도라는 극단적인 선택까지 했다.


저서에 젊은 날 방황을 담담하게 고백해 화제가 됐습니다.
“저 역시 힘들었던 시절이 있었지요. 그것이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던 계기가 됐습니다. 어려서는 학교에서 국어책도 읽지 못할 정도로 부끄러움을 많이 탔고, 남과 어울리기보단 혼자 놀기를 좋아했어요. 나와 우리 가족을 버린 아버지를 지독하게 원망하면서 못된 행동들을 일삼았죠. 그래도 교회는 열심히 다녔어요. 종교를 만나지 못했다면 아마 깡패가 돼 교도소를 들락거리는 위태로운 삶을 살았을 것 같습니다.”


명상은 지금 이 순간, 깨어 있는 채로 내가 나를 바로 보는 일입니다.
‘나는 말하고 있구나’, ‘화를 내고 있구나’처럼 객관적으로 보는 연습을 하면 내가 누군지 알게 되고 나아가 나를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교회를 열심히 다녔는데 스님이 되다니 아이러니한대요.
“아버지를 평생 후회하게 하겠다는 생각으로 수면제를 먹고 강원도 오대산에서 자살을 기도했어요. 눈을 떠보니 오대산 월정사였습니다. 한 스님이 저를 구해주셨는데, 사흘 만에 깨어난 제게 ‘자네는 부처님 가피(加被)로 다시 태어났으니 여생은 부처님에게 바치게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뜻하지 않게 출가하게 됐어요. 끊임없이 나를 찾아 헤맨 시간들이었지요.”


얼떨결에 스님이 됐으니 속세에서의 번뇌를 씻기가 쉽지 않았을 듯합니다.
“내면의 나를 발견하는 데 꼬박 10년의 시간이 걸렸어요. 전남 곡성 태안사에서 수행하면서 아버지를 마음의 감옥에 가두는 대신 감옥에서 탈출시키는 명상을 지속했어요. 아버지에 대한 응어리가 감사함으로 바뀌는 순간 입에서 ‘고맙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하염없이 눈물이 나오더군요. 그 순간 살아 있음이 진실로 행복했습니다. 큰 스님(청화 스님)이 저에게 보내준 따뜻한 자비의 마음 덕분이었습니다. 그때 결심했습니다.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자. 이렇게 산에서 불경만 외고 있을 것이 아니라 죽기 전에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다 알려주자. 모든 것을 줘버리고 가자. 이번 생애에 진 빚을 다 갚고 홀가분하게 세상을 떠나자고 결심했지요.”


아버지에 대한 기억 때문에 화목한 가정을 만드는 일에 더 몰두하시는군요. 마곡사 템플스테이는 2002년 시작한 이래 많은 가정에 사랑의 힘을 불어넣고 있다는 평을 받지요.
“물론입니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 꼭 맞는 말이에요. 그릇된 인간 행동의 원인을 찾아가면 거기엔 온전치 못한 가정이 있어요. 내가 체험해봤기에 누구보다 잘 알죠. 부자로 살고 싶으면 아버지와의 관계를 푸세요. 사람들과 인간관계를 잘 하고 싶으면 어머니와의 문제를 풀고 자식들이 잘 되기를 바라면 배우자와의 관계를 푸세요. 지금 증오하는 사람이 있다면 먼저 마음의 상흔을 바로 봐야 합니다. 상처를 마음속에 단단히 가두려고 하면 응어리를 풀 수 없어요. 상흔 자리를 살펴본 뒤에야 마음의 상처가 진주 보석처럼 빛나는 법이지요.”


그렇다면 새해에 우리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할까요.
“책 이름을 ‘알고 보면 괜찮은’으로 지은 것도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알고 보면 정말로 괜찮은 사람이에요. 자기 자신을 바로 보지 못하고 잘 모르니까 별거 없어 보이는 거죠. 하찮은 나, 세상에 부적응자였던 나도 이렇게 할 수 있는 일이 있잖습니까. 또 하나,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합니다. 우리는 죽을 때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하지만 자기가 지은 복은 가지고 간다고 불경에서는 이야기합니다. 복 짓는 삶을 살아야겠지요. 아주 쉬워요. 돈으로 환산해볼게요. 내 곁에 오는 사람 손 한 번 잡아주면 1억 원치의 복이 됩니다. 싱긋 미소 한 번 지어주면 10억 원, 축복의 말 한 마디는 1000억 원어치의 복이에요. 지금 이 순간 내 곁에 온 사람을 복 있게 대하세요. 지금 깨어서 최선을 다해 주인공의 인생을 사십시오.”


화를 풀어주는 명상
[THE NEW YEAR INTERVIEW] ‘자비명상’ 전도사 마가 스님
1. 명상에 들어가기 전 2~3분 동안 선 자세로 상체에 힘을 빼고 목과 어깨, 팔다리를 가볍게 흔들어준다. 옷을 털듯 온몸의 힘을 빼고 자리에 앉는다. 허리는 곧게 세우고 가슴은 펴고 혀는 입천장에 살짝 붙인다. 양손을 힘차게 쥐었다가 풀었다 하기를 열 번 반복한다.

2. 천천히 숨을 쉰다. 눈을 감고 앉아 있는 몸 전체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느껴본다. 정수리, 머리카락, 이마, 눈, 코, 입, 목, 아랫배, 허리, 골반, 양다리, 발가락을 순서대로 상상하면서 그 부위들이 부드럽게 이완되는 것을 느낀다. 온몸을 다 느낀 뒤 가슴 한가운데 마음을 둔다. 천천히 호흡하면서 가슴으로 신선한 공기가 들어왔다 나가는 것을 느껴본다.

3. 잔잔한 물결 위에 앉아있다고 생각한다. 사이사이 잡념이 찾아오면 가슴이라고 되뇌이면서 다시 가슴 한가운데로 마음을 모은다. 호흡이 다시 안정되면 수평선 너머 환한 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상상한다.


이윤경 기자 ramji@hankyung.com│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