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1월호, 기업분석전문가 심층 설문 조사
50대 그룹 오너리스크 평가


한경 머니의 오너리스크 조사를 의뢰받은 기업 평가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곤혹스러워하면서도 “이런 조사는 꼭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그럼 조사 결과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할까. 이번 설문에 응한 강성부 신한금융투자 채권분석팀장은 기업지배구조의 최고 전문가로 통한다. 2005년부터 매년 ‘기업지배구조’ 책자를 내고 있다. 강 팀장에게 조사 결과를 보내고 해설의 글을 받았다. -편집자 주 강성부 신한금융투자 채권분석팀장
[Owner Risk Attack] 전문가의 눈 “경영 성과·지배구조 개선은 양날개”
우리나라 대기업집단은 지금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그러한 도전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볼 수 있다. 하나는 사회적 책임과 투명성 개선에 대한 요구 증대로 대리인 비용 감소와 관련이 있다. 또 하나는 기업의 본래 역할인 경영 성과 개선에 대한 요구다.

위기는 산업 구성의 변화를 낳는다. 외환위기는 우리나라의 노동집약 2차 산업의 붕괴를 가속화시켰고, 금융위기는 자본집약 2차 산업의 붕괴를 요구하고 있다. 산업화의 주역이었던 건설, 조선, 해운, 조선, 철강, 화학 등의 산업이 위기에 빠져 있다. 차별화를 통한 경쟁력 강화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산업 구조가 바뀜에 따라 기업의 사업 포트폴리오와 지배구조도 함께 변해야 한다. 지식집약 2차 산업과 3차 산업으로 빠르게 사업 포트폴리오를 개편하지 않으면 향후 5년 내 다가올 저성장의 덫에서 빠져 나오기가 어려울 전망이다.


대리인 비용 축소에 대한 요구

대기업집단의 절반 이상은 향후 5년 이내에 기존에 해오던 먹을거리의 큰 축을 바꾸거나 차별화하지 못하면 생존에 큰 위기를 맞이할 것이다. 기업 경영을 위임 받은 경영진이 위탁자의 뜻과 다르게 행동하면 명시적으로 혹은 암묵적으로 다양한 비용이 발생하게 된다. 이러한 비용을 대리인 비용(agency cost)이라고 부른다. 대리인 비용이 발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위탁자가 수탁자의 경영 활동을 일일이 관리 감독할 수 없다는 정보 비대칭성 때문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지배구조를 대표하는 아이콘은 ‘소유 경영인’이었다. 그러나 최근 소유 경영 체제가 중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제일 큰 도전은 재벌들에 대한 사회의 법적·윤리적 요구 증대이며, 그다음은 경영 승계다. 후진국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선진국의 문턱까지 성장하는 과정에서 재벌이라고 불리는 대기업집단의 역할이 중요했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소유 경영을 선택한 이유는 전쟁 이후 산업화와 경제개발 초기에 아이디어와 추진력을 갖춘 경영자에게 위험을 무릅쓸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하기 위함이었다. 중층적 지배구조, 순환출자는 자본 부족 시대에 적은 자본으로 최대한 많은 자본을 만들 수 있도록 허용했던 제도였다. 금융과 산업의 결합은 상대적으로 쉽게 자금을 모을 수 있는 금융업을 이용해 손쉽게 산업자본을 육성하기 위함이었다.

국가의 자본을 최대한 기업에 모일 수 있도록 기회를 부여한 것이다. 성장이 빨랐기 때문에 오너의 독단적 경영이나 편법적 부의 축적에 대해 관대했었다. 이제는 자본이 넘치고 성장이 정체돼 기업에 대한 사회적 책임과 분배의 요구가 커졌다. 시간을 두고 천천히 풀어야 할 문제이지만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투명성 개선에 대한 요구가 너무 빨리 증가하고 있다.



이제는 자본이 넘치고 성장이 정체돼 기업에 대한 사회적 책임과 분배의 요구가 커졌다. 시간을 두고 천천히 풀어야 할 문제이지만 성장의 정체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투명성 개선에 대한 요구가 너무 빨리 증가하고 있다.



투명성과 윤리 경영보다 경영 능력에서 점수 차 보여

이번 한경 머니의 오너리스크 조사는 대기업집단에 대한 이러한 요구들을 잘 담고 있다. 설문의 질문 사항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진다. ‘그룹사의 경영 능력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와 ‘지배구조 및 경영 투명성’, 그리고 ‘윤리 경영에 대한 평가’다.

종합 순위는 경영 전문성과 자질 평가에서 갈렸다. 경영 전문성과 자질에서는 1위와 꼴찌의 점수 차가 5점 만점 기준으로 2.51점이나 차이가 났으나 지배구조의 투명성과 책임성 평가에서는 1.42점, 윤리 경영 평가에서는 1.65점으로 차이가 적었다.

대체적으로 경영 성과가 좋았던 기업이 주로 높은 점수를 받았고, 경영 성과가 나빴던 기업들이 주로 하위에 랭크됐다.

기업의 본질적인 사회적 책임이 경쟁력을 강화해 좋은 일자리를 많이 창출하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기업집단들이 투명성, 책임성, 윤리 경영에서는 큰 차이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소위 잘나가는 그룹은 지배구조와 윤리 경영에서 점수를 높여야 하고, 경영 능력이 부진한 그룹에서는 경영 성과에 주력해야 한다는 것을 한경 머니의 조사 결과가 분명하게 말해준다.

경영 전문성과 자질 평가에서 우수한 점수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지배구조와 윤리 경영에서 점수가 낮은 그룹으로 현대차그룹이 눈에 띄고, 경영 성과는 중상위이지만 지배구조와 윤리 경영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기업들 가운데에는 지주회사 구조를 가진 기업집단들이 많이 포진해 있었다. 동양, 웅진, 현대 등 윤리 경영의 하위에 포진한 그룹들은 주로 최근에 오너 일가의 구속과 같은 언론에 이슈가 됐던 기업집단들이었다.

아프리카 속담에 “빨리 가려거든 혼자 가고, 멀리 가려거든 함께 가라”는 말이 있다. 지배구조 개선과 책임 경영 및 윤리 경영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질 수 있는 일들은 아니다. 그런 주제들의 개선이 곧 기업의 성과를 의미하지도 않는다. 다만 장기적으로 기업의 생존을 위해서는 사회와 호흡하고 함께 가려는 노력이 없으면 멀리 갈 수 없다는 믿음에 기초해서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할 기업의 사명과 같은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