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개발 중인 신소재 종류가 워낙 다양하고 10~20년에 걸쳐 진행되는 장기 프로젝트인 만큼 현시점에서 시장규모나 개발 기업의 실적, 주가에 미칠 영향력 등을 가늠하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단기적인 수익률을 노리고 신소재 관련주에 접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신소재 개발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업체들은 섬유 업체를 포함한 석유화학 업체들이다. 전 세계적으로 차세대 에너지 개발 경쟁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석유화학 업체들은 살아남기 위해 20세기 산업 발전을 이끌었던 석유와 실리콘을 넘어서는 차세대 먹을거리를 발굴해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따라서 주요 상장사들은 대규모 투자를 마다하지 않고 있다. ‘폴리케톤’ 상용화에 성공한 효성은 2015년까지 2000억 원을 투자해 연산 5만 톤 규모의 설비를 짓기로 했다. 2020년까지 1조 원가량을 추가로 투자할 계획이다.
SK케미칼은 일본 화학 기업인 데이진과 합작 설립한 이니츠를 통해 ‘폴리페닐렌설파이드(PPS)’ 투자를 확대하기로 했다. 울산 공장에 2015년까지 전용 설비를 준공할 계획이며 추가 설비 증설을 통해 연간 생산량을 2만 톤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SK케미칼은 10월 식물성 원료로 만든 바이오 기반 플라스틱 소재인 ‘스카이트라’를 최초 공개하기도 했다.
이 밖에 코오롱이 슈퍼섬유로 불리는 ‘아라미드’ 개발을 진행하고 있고, 롯데케미칼과 LG화학은 친환경 타이어 소재인 ‘솔루션스타이렌부타디엔러버(SSBR)’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
윤재성 대신증권 화학 담당 연구원은 “정유나 순수 화학 업체를 제외한 대부분의 업체들이 신소재 개발을 진행 중”이라면서 “종류가 워낙 많고 진척 상황도 달라 이를 점검하고 연구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IT 소재 업체들은 ‘그래핀’과 여기서 파생되는 ‘탄소나노튜브’, 디스플레이 소재로 뜨고 있는 ‘퀀텀닷’ 등에 집중하고 있다. 주요 IT 업체들이 잇따라 ‘웨어러블 디바이스(신체에 착용할 수 있는 전자제품)’를 선보이면서 향후 관련 소재의 수요 역시 점차 늘어날 것으로 기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조우형 KDB대우증권 연구원은 “그래핀이 적용될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2차전지 등 IT 산업에서 한국 기업들이 이미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어 원천 소재 개발에도 유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상장 업체들 중에서는 삼성테크윈이 그래핀 생산 기술개발에 성공했고, 포스코와 한화케미칼이 2011년 인수한 XG사이언스를 통해 그래핀 합성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자체 발광(發光) 반도체 결정인 퀀텀닷은 삼성전자, LG디스플레이 등 디스플레이 업체들을 중심으로 해외 업체들과의 파트너십 체결 등을 통해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아직 상용화를 위해서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디스플레이뿐 아니라 바이오, 태양광 등 응용 분야가 넓어 IT 소재 업체들이 거는 기대 역시 크다. 전문가들은 IT 관련 소재 업체들 중 삼성그룹의 소재 사업을 책임지고 있는 제일모직 등을 눈여겨보라고 조언하고 있다. IT 분야에서는 소재 관련 중소형 상장 기업들도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대부분 삼성이나 LG, SK하이닉스에 부품과 소재를 공급하는 밸류체인을 형성하고 있는 만큼 신제품 사양에 맞는 소재 개발 움직임이 활발하기 때문이다. ‘플렉서블(휘어지는) 디스플레이’의 재료인 ‘메탈메시필름’ 최초 상용화에 성공한 미래나노텍이나 관련 소재를 개발한 잉크테크 등을 관련주로 꼽을 수 있다.
제일모직·미래나노텍 등 유망
해외 증시에서는 신소재 관련 IT 기업들의 주가가 각광을 받고 있다. 그래핀 합성에 성공한 미국 반도체 소재 업체 텍사스인스트루먼트의 주가는 주당 30달러대에서 42달러(11월 14일 기준)로 올 들어서만 38% 급등했다. 그래핀을 이용한 반도체 생산을 추진하고 있는 일본 후지쓰 주가도 27%에 달하는 주가 상승률을 기록 중이다.
올 초 다우케미칼과 IT용 퀀텀닷 독점 판매권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한 영국계 반도체 소재 기업 나노코의 경우 작년 말 88파운드였던 주당 가격이 149파운드로 1년도 안 돼 70% 가까이 급등했다. 7월 결산인 이 회사의 올해 매출은 392만 파운드로 294만 파운드였던 전년 대비 30% 넘게 늘었다. 하지만 매년 연구·개발(R&D)에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고 있는 탓에 2년째 영업적자를 이어가고 있다. 벌어들이는 만큼 이익을 내진 못하고 있지만 그만큼 투자자들은 현재 가치보다 미래 가치에 더 큰 기대를 걸고 있다는 의미다.
국내 증시에서도 신소재 관련주들은 이슈가 생길 때마다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지만 아직은 테마주의 양상을 띠는 데 그치고 있다. 특히 기술개발을 주도하고 있는 대기업 외에 협력 업체들의 주가도 덩달아 높은 변동성을 나타내고 있다.
일례로 삼성그룹의 플렉서블 반도체 연구 협력 업체인 아이컴포넌트는 삼성전자가 그래핀 관련 기술개발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작년 초 주가가 1만5750원까지 치솟았지만 이후 8000원대로 곤두박질친 뒤 지금은 1만 원대 전후에서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그래핀을 적용한 전자 재료 관련 특허를 출원하는 등 관련 분야에서 한때 투자자들의 관심을 받았던 SSCP는 지난해 부도로 상장이 폐지되면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산업 측면에서 신소재들이 향후 혁신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기반을 마련해줄 것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투자자 입장에서는 적극적으로 투자하기엔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산업 측면에서 신소재들이 향후 혁신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기반을 마련해줄 것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투자자 입장에서는 적극적으로 투자하기엔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단기 수익률을 쫓기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향후 산업 변화의 트렌드를 점검하고, 그 변화에 필요한 핵심 기술과 소재가 무엇인지를 파악해 관련 기업들의 장기 성장성을 따져보는 세밀한 전략이 필요한 이유다.
박재철 KB투자증권 선임연구원은 “신소재 개발은 장기적으로는 화학 업체들의 차별화된 성장 전략으로 부각될 수 있지만 단기적으로 실적이나 주가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는 아니다”라면서 “효성의 경우도 ‘폴리케톤’의 개발이 전체 기업 가치를 설명하는 데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미미하다”고 지적했다.
조우형 연구원도 “하드웨어를 생산하는 IT 업체들이 전시회 등에서 제품 일부를 선보이고는 있지만 아직 자신감을 보일 정도로 완성품 개발이 진행되지 않고 있어 소재 관련 기업들이 주목받기는 시기상조”라고 지적했다. 신소재로 만들어진 반도체 칩 등 상용화와 제품화에 성공한 이후 투자해도 늦지 않다는 조언이다.
주식시장에서 신소재 관련 기업들이 단기적으로 관심을 받기 힘든 이유 중 하나로 과거 ‘바이오 열풍’에서 얻은 ‘학습효과’를 지적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과거 코스닥 시장을 중심으로 상장한 제약 업체들의 주가는 신약 개발에 성공했다는 소식만으로 급등했다가 임상실험을 거쳐 제품이 상용화되는데 5~10년가량이 소요되면서 오히려 급락을 반복하는 사례가 많았다.
오성진 현대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한때 기대를 모았던 능동형 유기발광다이오드(AMOLED)도 저조한 수익성 때문에 관련 기업들이 사업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지적하며 “최근 투자자들이 투자를 늘린다거나 신소재 개발에 성공했다는 뉴스에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강지연 한국경제 기자 sere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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