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모펀드 현주소

일반 사모펀드가 저성장·저금리 시대의 투자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펀드 규모와 수도 2008년 이후 꾸준히 증가해 2013년 10월 현재 134조 원대, 7393개로 늘었다. 자산 시장의 핵으로 떠오른 일반 사모펀드의 종류와 투자 유형, 트렌드를 살펴본다.



국내 펀드 시장은 2003년 10월 ‘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이 제정되고 이듬해 5월 이 법이 시행되면서 본격적인 전성기를 맞는다. 이때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펀드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자금을 모아 운용하는 공모형이었다.

경기 활황 덕에 공모펀드 시장은 거칠 것 없이 질주했다. 초기 공모펀드들은 연평균 40%에 가까운 수익률을 내며 단기간에 주요 투자처로 성장했다. 하지만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 위기 상황에서 펀드 시장은 침체 일로를 걷기 시작했다.

외환위기라는 된서리를 맞은 후 펀드 시장은 한동안 침체를 겪어야 했다. 큰 손실을 본 투자자들이 펀드 투자를 꺼렸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투자 대안으로 떠오른 상품이 사모펀드다.

공모펀드에 비해 규제 적어 고수익 추구 가능
사모(私募)펀드는 소수의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모아 운용되는 상품이다. 은행과 증권사의 프라이빗뱅킹(PB) 센터와 웰스매니지먼트(WM) 센터를 중심으로 결성된 사모펀드는 공모펀드에 비해 자금 운용에 있어 상대적으로 제한이 덜하다. 공모펀드가 자산총액의 10% 이상을 증권에 투자할 수 없고, 동일 종목이나 동일 법인이 발행한 지분증권 총수의 10% 이상을 투자할 수 없는 등 제한이 있는 반면, 사모펀드는 이러한 제한이 없다. 이 같은 장점으로 인해 투자 대상에 따라 100%까지 투자가 가능하다.

현재 국내 사모펀드는 헤지펀드, 사모투자펀드(PEF), 기업재무안정 PEF, 일반 사모펀드 등으로 나뉜다. 헤지펀드, PEF, 기업재무안정 PEF 등이 기관을 대상으로 하는 반면 일반 사모펀드는 금융 회사에서 주로 VIP 고객을 대상으로 펀드를 설정한다.

일반 사모펀드는 ‘나만의’, ‘우리만의’ 투자 방식과 투자 대상을 고민하는 자산가를 위한 맞춤형 펀드인 셈이다. 일반 사모펀드는 다른 투자자와 차별화된 전략과 새로운 투자 기회를 포착해 발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는 장점으로 인해 고액자산가와 기관 투자자에게 훌륭한 투자 대안이 되고 있다.

사모펀드가 본격적으로 결성되기 시작한 시기는 2008년 초반이다. 앞서 2007년 여름은 전 세계적인 증시 활황으로 펀드라는 단어가 본격적으로 주목받은 시기다. 2007년 한 해만 80조 원 이상의 자금이 순유입되며 펀드 대중화가 시작됐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수익률 하락이 지속되고 투자 환경은 급속히 냉각됐다. 이후 글로벌 위기 국면이 완화되고 다시 반등에 성공했지만 개인 투자자들은 여전히 공모펀드 시장을 외면하고 있다.

반면 사모펀드 시장은 상황이 다르다. 2008년 금융 위기 당시 성장세가 잠시 주춤했으나 2013년 10월 현재 설정액 134조 원, 펀드 수 7393개로 꾸준히 몸집을 불리고 있다.
초기 사모펀드는 대부분 주가연계펀드(ELF)였다. 펀드를 통해 주가연계증권(ELS)에 투자하는 ELF는 지금까지도 일반 사모펀드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초기 사모펀드는 대부분 주가연계펀드(ELF)였다.
펀드를 통해 주가연계증권(ELS)에 투자하는 ELF는 지금까지도 일반 사모펀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당시 발행된 ELF는 코스피 200지수, 홍콩 H지수 등을 기초자산으로 운용됐다. 환율이나 원자재 등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사모펀드도 일부 있었지만 규모나 수에서 ELF와 비교가 되지 않았다. 수익률은 5%였던 시중금리를 감안해 15~17%로 높았다.

2008년 초 본격적으로 판매되던 사모펀드는 그해 말 리먼브러더스 사태를 계기로 급격한 내리막길을 걸어야 했다. 당시 설정된 대부분의 ELF는 1년 후 코스피 지수가 설정 당시의 80% 이하로 떨어지지 않을 경우 약속한 수익을 지급하는 방식이었다. 증시가 2100선을 뚫는 상황에서 주가 하락은 상상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안정적으로 15% 이상의 수익을 누릴 수 있는 기회였다. 하지만 리먼 사태 이후 코스피는 끝없이 추락했다. 주가와 함께 투자자들도 나락으로 떨어졌다. 수익은커녕 원금의 30~50%까지 손실을 본 투자자들도 많았다.


고객과 금융기관의 니즈가 부합한 상품
리먼 사태 이후 꾸준히 내리막길을 걷던 사모펀드 시장은 2009년 중반을 넘어서며 조금씩 활기를 되찾는다. 증시에 온기가 돌면서 ELF를 중심으로 사모펀드 결성이 늘기 시작한 것이다. ELF도 그 사이 진화를 거듭해 상·하단 배리어 없이 원금을 보존하거나 변동성을 줄인 상품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웬만한 공모펀드들이 주가지수만큼의 수익률도 어려운 상황에서 ELF들은 변동성은 낮추고 수익률은 공모펀드보다 높다. 고액자산가들이 사모펀드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다.

금융기관 내부 사정도 사모펀드 시장을 키우는 데 한 몫을 하고 있다. 저성장·저금리 상황에서 마땅히 판매할 상품이 없는 데다, 금융기관 간 경쟁으로 일반 상품의 경우 수수료가 많이 떨어졌다. 은행의 한 PB는 “적어도 은행 마진이 100bp(1bp=0.01%) 이상은 돼야 하지만 일반 펀드의 경우 마진이 40bp밖에 안 되는 상품도 있다”며 “사모펀드 상품은 상대적으로 마진율이 높아 금융기관이 의도적으로 권장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물론 사모펀드 시장의 성장에 있어 가장 큰 배경은 세계 경제 회복이다. 한국 경제에 온기가 돌고 미국 증시가 살아나면서 투자 심리가 회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ELF뿐 아니라 금리, 외환, 원자재, 신용 등을 기초로 한 파생결합증권펀드(DLF)가 인기를 끌고 있다.

DLF는 금리, 외환, 원자재, 신용 등 FICC(Fixed Income, Currencies and Commodities)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파생결합증권(DLS)에 투자하는 펀드다. DLS는 2005년 국내에 첫선을 보였지만 ELS에 비해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러다 리먼 사태 이후 급속히 성장해 지금은 규모 면에서 ELS의 50%에 달하는 시장으로 성장했다.

송민우 신한PWM 프리빌리지 서울센터팀장은 “미국 부동산 ETF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DLF, 배당주 펀드 등 다양한 형태의 사모펀드들이 등장하고 있다”며 “고객들의 만족도도 높고 관심이 크다”고 말했다.

송홍선 자본시장연구원 실장은 “사모펀드는 ‘금리+알파(α)’의 수익률, 주식·채권에 대한 헤지 기능, 상황에 따라 민첩하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미국 등 선진국에서도 고액자산가들이 많이 찾는다”며 “한국에서도 사모펀드 시장은 지속적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신규섭 기자 wa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