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카고대의 한 심리학자는 은퇴 후에도 계속해서 배우고 성장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일컬어 ‘영 올드(Young-old)’라고 이름 붙였다. 나이가 들어서도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며 인생 후반기 자신의 영역을 개척해 나가는 것이야말로 100세 시대를 살아가는 시니어들에게 필요한 자세다. 전 세계 ‘영 올드’들은 어디서 어떤 공부를 할까.
[WEALTH CARE] 100세 시대 ‘영 올드’들은 어디서 어떤 공부를 할까
일본 교토 시니어대학에 입학한 쓰치다(土田) 씨. 그는 올해로 16년째 시니어대학에서 사귄 선후배, 동료들과 활기찬 대학 생활을 하고 있다. 20대에 대학에서 들었던 수업은 전공과목 위주였지만, 지금은 폭넓은 교양 학습으로 어느 때보다 다채로운 인생 후반기를 보내고 있다.

“오전에는 일반 교양강좌를 들으며 정신적으로 풍요로워지는 느낌을 받아요. 오후 수업은 주로 체험형 선택과목들이죠. 그 밖에도 동호회에서 같은 취미를 가진 동료들과 어울리며 매일 충실한 대학 생활을 보내고 있어요.”

현재 교토 시니어대학의 재학생은 150여 명이다. 재학생의 평균 연령은 75세, 이 중 최고령 학생은 100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55세 이상이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고, 교과과정은 대학 4년, 대학원 4년에, 학습 기간에 제한이 없는 연구와 무기년으로 구성돼 있다. 원하면 평생 현역으로 공부할 수 있는 셈이다.

인생의 친구를 만들고 싶은 사람, 즐겁고 여유 있게 공부하고 싶은 사람, 취미의 폭을 넓히고 싶은 사람들에게 교토 시니어대학은 생애학습의 장이다. 매학기 다양한 주제의 강좌가 개설되는데, 수업은 화요일 주 1회로 진행된다. 오전에 듣는 일반 교양과목은 역사, 문학, 자연과학, 의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강사로 나선다. 오후 수업은 서예, 미술, 사적 탐방 세 과목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외부에서 진행되는 동호회는 도예, 사진 촬영, 중국어 회화, 합창, 시 낭송, 여행 중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 한 가지를 정한다.

영국과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대학 외에 좀 더 발전된 형태의 창구들도 생겨나고 있다. 시니어 대상의 유료 강좌를 운영하는 교육기관만 수백 곳에 이른다. 그만큼 배움에 돈을 아끼지 않는 시니어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2006년에 개설된 미국의 ‘원데이 유니버시티(One Day University)’는 아이비리그 대학 교수진들이 강사로 나서 하루 종일 학생들을 가르치고 토론하는 프로그램이다. 50대는 물론이고, 90대 어르신들까지도 이곳에서 얻게 될 ‘지적 자극’을 기대하며 하루 수강비 몇백 달러를 기꺼이 지불한다.

미국의 UBRC(University Based Retirement Com munity)나 일본의 칼리지링크(College-Link)형 시니어 커뮤니티처럼 학습 의지가 높은 시니어들의 특성을 이용한 사업 모델도 점차 늘고 있다. 이들은 대학이 사업 주체가 돼 시니어 커뮤니티를 운영하거나 시니어가 대학이 운영하는 주택에 거주하며 강의를 수강할 수 있도록 중개 역할을 하고 있다. ‘지연(知緣)’으로 생겨난 새로운 형태의 커뮤니티인 셈이다.


죽기 전까지 소멸되는 뇌세포 10%에 불과…방통대 ‘프라임 칼리지’ 등 교육기관 주목
은퇴 후에도 계속해서 배움과 성장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늘고 있다. 미국 시카고대의 심리학자 버니스 뉴가튼은 이런 활동적인 은퇴자들을 ‘영 올드’라고 이름 붙였다. 영 올드는 은퇴 이후에도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며 인생 후반기 자신의 영역을 개척해나간다. “늙은 개에게는 새로운 기술을 가르칠 수 없다”는 서양 속담은 낡은 고정관념에 불과하다. 심리학자들은 배움의 의지와 태도만 갖추고 있다면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계속 배울 수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죽기 전까지 소멸되거나 퇴화되는 뇌세포는 10% 정도라고 한다. 이는 나이가 인간의 지적 능력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인간의 지능은 유아기, 아동기, 청년기를 걸쳐 발달하며, 20세를 정점으로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최근, 지능에는 유동성 지능과 결정성 지능이 있으며, 각 지능이 변하는 모습은 나이가 들면서 차이가 나타나는 것으로 드러났다. 먼저, 유동성 지능은 새로운 것을 기억하거나 문제를 추리하고 해결하는 지능이다. 이를테면 젊은 사람일수록 컴퓨터 조작과 같은 새로운 기술을 더 빨리 배우고 통달한다. 이 유동성 지능은 20세에 정점에 도달한 후 점차 떨어지기 시작한다.

반면, 결정성 지능은 과거에 축적된 지식, 판단력, 기술을 가지고 일상생활에 응용하는 능력이다. 예를 들면, 새로운 환경이나 어려운 문제에 직면했을 때 과거의 경험을 살려 대처하거나 축적한 지혜를 활용해 극복해 나가는 것을 말한다. 결정성 지능은 60세 정도까지 서서히 상승하다가 70~80세에 걸쳐 완만하게 떨어진다. 하지만 이때에도 전반적인 지능 수준은 20대에 가깝게 유지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나이가 들어도 뭐든 배울 수 있으며, 계속해서 자신의 능력을 펼칠 수 있음을 의미한다.
[WEALTH CARE] 100세 시대 ‘영 올드’들은 어디서 어떤 공부를 할까
미국의 연방 대법원 판사들은 유동성 지능을 잘 활용하는 좋은 사례 중 하나다. 이들은 새로운 지식을 배우고, 축적된 경험과 지혜를 활용할 줄 알며, 이를 바탕으로 고도의 판단력을 발휘한다. 어떤 판사들은 80세가 넘어도 명판결문을 쓴다. 이는 미국이 200년 동안 대법관의 종신직을 유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도 평생학습에 대한 관심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지역마다 시민들의 평생학습 욕구를 채워주기 위해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개설하고 있다. 최근 평생교육원, 학점은행제, 사이버대 등이 날로 늘어나 마음만 먹으면 평생학습에 도전할 수 있다. 과거의 학습은 단순히 여가생활을 즐기는 측면이 있었다면, 이제는 보다 나은 삶을 개척하고 배움 자체의 즐거움을 깨닫기 위한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자기계발을 위해, 어린 시절의 꿈을 이루기 위해, 재능기부를 위해 공부를 시작하는 시니어의 모습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지난해 방송통신대에서는 ‘프라임 칼리지’라는 교육기관을 설립했다. 기존 정규 대학의 기능과 평생교육원의 기능을 합쳐 놓은 곳으로 2030세대, 4050세대, 6070세대로 나눠 각 연령대에게 필요한 학습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국가 지원을 받아 저렴한 학비로 누구나 배움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든 교육기관이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일은 두렵지만 도전과 의욕만 있다면 누구든 배움의 길을 선택할 수 있다. 우리가 나이가 들어서도 배움을 계속해야 하는 이유는 변하는 세상을 두려움 없이 살아나가기 위해서다. 우리나라의 많은 시니어들이 생애학습을 통해 계속 성장해 나가며 사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주역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이형종 삼성생명 은퇴연구소 수석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