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의 ‘야구 예찬’

‘야구바보 정운찬의 야생야사 이야기’, 책의 부제는 그렇다. 50여 년간 야구에 대한 애정과 열정을 놓아본 적 없는, 아니 오히려 그 깊이가 더해만 가는 그의 야구 사랑은 그야말로 무조건적이다. 왜일까. 어느 인기 TV 예능 프로그램처럼 그에게 ‘공식 질문’을 던져보았다. “정운찬에게 야구란?”
정운찬 이사장은… 1947년생. 경기고,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미국 마이애미대 경제학 석사. 프린스턴대 경제학 박사. 서울대 경제학부장과 사회과학대학장을 거쳐 2002년 서울대 제23대 총장에 선출돼 4년간 임기를 마치고 다시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로 재직했다. 2009년 제40대 국무총리를 지냈고, 2010년부터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을 거쳐 현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을 맡고 있다.
정운찬 이사장은… 1947년생. 경기고,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미국 마이애미대 경제학 석사. 프린스턴대 경제학 박사. 서울대 경제학부장과 사회과학대학장을 거쳐 2002년 서울대 제23대 총장에 선출돼 4년간 임기를 마치고 다시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로 재직했다. 2009년 제40대 국무총리를 지냈고, 2010년부터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을 거쳐 현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을 맡고 있다.
메이저리그의 전설적인 야구 선수였던 요기 베라는 말했다. “끝날 때까진 끝난 것이 아니다(It ain’t over till it’s over).” 야구를 표현하는 대표적인 명언인 이 말은 야구장 밖 우리의 삶 속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그뿐인가. “야구는 9회 말 투아웃부터 시작된다”, “야구 몰라요” 등 도무지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흥미진진한 야구를 표현하는 말들은 인생을 비유하기에 더없이 좋다. 오죽하면 ‘야구는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했을까.

수많은 이들이 야구에 열광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을 터. 그러나 우리나라 대표 경제학자인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에게 야구는 스포츠를 넘어 삶 그 자체다. 배고픈 어린 시절, 공부에 몰두했던 학창 시절, 낯선 땅에서의 유학 시절, 교수에서 서울대 총장으로, 그리고 국무총리 시절 등 50여 년 이상 삶의 궤적을 따라가며 희로애락의 모든 순간을 함께 한 야구야말로 어쩌면 ‘진짜 정운찬’을 고스란히 투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야구를 통해 보는 누군가의 인생, 그리고 그 인생을 통해 전달되는 메시지’가 ‘야구 예찬’에 대한 ‘한 줄 정리’라면 그 메시지는 이렇게 요약된다. “오늘 이기든 지든 시즌은 계속된다. 마치 우리 인생처럼.”


야구에 얽힌 일생, 지금 내 삶은 ‘7회 초’
경제학자와 경제가 아닌 야구를 주제로 만났던 그날은 코리안시리즈에서 두산이 패배한 여운이 여전히 가시지 않던 즈음이었다. 정 이사장이 두산베어스의 오랜 팬이라는 사실은 익히 알려진 터. 이야기는 자연스레 코리안시리즈로 시작해 올 시즌 야구에 대한 가감 없는 ‘오프 더 레코드’ 평까지 이어졌다.


두산이 패해서 아쉬움이 크시겠어요.
“수많은 두산 팬들의 바람처럼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선수들이 정말 열심히 잘 해줬어요. 5년 만에 코리안시리즈 진출에 성공했으니 그 자체로도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두산베어스에 대한 애정이 깊은 걸로 압니다.
“30년이 넘었지요. 세 가지 이유가 있어요. 첫 번째는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당시 OB베어스가 창단 후 3년간 대전을 홈으로 사용했어요. 제 고향이 충남 공주라서 대전이 홈인 팀을 응원하기 시작했지요. 둘째 이유는 대학 시절 동문회장 장학금을 받았는데 당시 동문회장이 현 두산그룹 박용만 회장의 부친인 박두병 OB맥주 사장이었어요. 셋째, 1982년 그해에 유난히 OB베어스에 재밌는 사람이 많았어요. 박철순, 신경식, 김유동, 김우열 등 선수들의 활약이 OB베어스를 더 매력적이게 했지요.”


처음 야구에 빠진 계기는 무엇입니까.
“어릴 때, 우연히 동네 형들이 하자고 해서 야구를 했는데 첫날 센터 플라이(타자가 쳐서 중견수 쪽에 높이 띄운 공) 두 개를 다 받았어요. 속으로 ‘내가 야구에 소질이 있나 보다’ 했지요. 동네 형들도 잘한다고 부추겼고요. 그렇게 ‘걸려 든’ 이후, 서울로 올라와 외롭고 답답할 때 야구를 하며 외로움을 던져버리고 답답함도 날려버리고 했지요. 저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제 이력만 보고 유복한 환경에서 꽃길을 걸어온 사람으로 오해하는데 꽃길보다 자갈밭이었어요. 그럴 때마다 야구를 하며, 혹은 야구를 보며 한숨도 쉬고 탄성도 지르며 위안과 지혜를 얻었어요.”


50년 넘게 야구 사랑이 대단한데도 37권의 저서 중 야구 이야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서울대 총장을 그만뒀을 때 기자들이 이제 뭐 할 거냐고 물었지요. 그때 계획했던 게 세 가지였어요. 야구에 대한 책, 모두가 읽을 수 있는 아주 쉬운 경제학개론서, 또 좋은 아이디어를 담은 한국경제론을 쓰고 싶었어요. 그 세 가지 중 하나를 이번에 이룬 셈인데, 어떤 경제학 책을 쓴 것보다 더 뿌듯해요. 인생의 큰 숙제를 끝낸 느낌이랄까. 그런데 사실 과정이 녹록지는 않았어요. 마음이 있어도 제 전문 분야가 아니니 전문가들이 보기에 어떨지 걱정도 됐고, 동네 야구 이야기만 논할 수도 없는 문제니까요. 결과적으로 야구와 야구에 얽힌 제 삶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어요.”
어떤 메시지 말인가요.
“하나는 스포츠를 통한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그건 제 삶이 증명하는 바이기도 하고, 실제로 박세리, 박찬호 같은 선수들이 국민에게 많은 희망을 안겨주기도 했었지요. 또 하나는 바로 교육적인 부분입니다. ‘지·덕·체’를 추구하는 우리나라 교육이 ‘지(志)’도 ‘덕(德)’도 ‘체(體)’도 제대로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심지어 ‘체’는 밀리고 밀려 아예 체육시간을 없애거나 자율학습으로 대체하는 학교가 많은 실정이고요. 그런데 지금이 어떤 시대인가요. 창의성이 요구되는 이 시대에 ‘지·덕·체’가 아닌 ‘체’를 가장 우선에 두는 ‘체·덕·지’ 교육을 한번 해보자는 게 제 생각입니다. 창의성을 키우려면 여유가 있어야 해요. 운동도 좀 하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시각에서 사물을 보고 질문도 하고 해야 합니다. 질문은 호기심에서 나오고 호기심은 독서, 여행 등 다양한 삶의 경험이 있어야만 가능하지요. 저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입주 가정교사를 했으니 공부할 시간이 많지 않았는데도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도 동네에서 야구를 했어요. 그게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했는지 모릅니다.”


전문 분야가 아닌 또 다른 분야, 야구에 대해 많이 안다는 게 인생에 어떤 도움이 됩니까.
“영국의 소설가 올더스 헉슬리가 그런 말을 했죠. 어떤 한 분야에 대해서는 전부를 알아야 하고, 나머지 모든 것들에 대해서도 조금씩은 알아야 한다고. 경제학을 빼놓고 아는 것이라곤 야구밖에 없는데 그에 대한 자신감이 큽니다. 사실 메이저리그 야구 경기를 저만큼 많이 본 사람이 없을 겁니다. 유학 시절, 처음엔 공부하느라 정신없었지만, 4~5년 정도는 1년에 100게임씩을 직접 가서 보곤 했으니까요.”


경제학과 야구의 교집합이 있습니까.
“경제학자 중에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요. 그 이유가 ‘분석적’이란 것 때문이죠. 야구만큼 분석 거리가 많은 스포츠는 별로 없어요. 팀 스포츠이니 승패로 좌우되지만 패한 팀에도 좋은 선수가 있고 이긴 팀에도 안 좋은 선수가 있죠. 그건 또 개인 기록 분석을 통해 판단되는 겁니다. 또 하나, 다른 구기 종목은 골대에 공을 넣거나 네트를 넘겨야 하는데, 야구는 몸이 홈 베이스에 들어와야 합니다. 휴머니즘적인 요소가 있지요.”


야구를 인생에 많이들 비유합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야구는 9회 말 투아웃부터 시작한다’는 말도 있지만 야구는 한 마디로 ‘업 앤드 다운(up & down)’입니다. 실력 있는 팀이 조금 덜 지고 조금 더 이길 뿐이에요. 인생도 그런 거 아니겠어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잘 사는 것처럼 보여도 ‘업’ 할 때가 있고 ‘다운’ 할 때도 분명 있지요. 분명한 건 그겁니다. 이기든 지든 시즌은 계속된다는 것.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고요.”


야구를 아는 인생과 모르는 인생,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글쎄요. 야구를 알면 인생을 좀 더 알게 되지 않을까요. 삶이 더 재밌고 풍성해지기도 하고요. 우리 집에도 야구 팬들이 많은데 딸, 아들, 아내까지 모두 대단한 야구광들이죠. 그래서 우리는 모이면 야구 이야기를 많이 하고 함께 경기도 많이 보러 갔어요. 두산베어스의 오랜 팬이다 보니 두산 선수들과도 친분이 쌓여 사람 관계도 넓어졌죠. 그 인연으로 두산 손시현 선수 주례까지 봐줬으니 야구를 통한 특별한 경험 아닌가요.”


정 이사장님의 인생은 야구로 비유하면 어디쯤 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최근 조문을 가면 보통 90세를 넘기신 분들이 대부분이더군요. 그 기준으로 생각해보면 지금 7회 초쯤 되지 않았을까요. 야구에서 보통 8회부터 점수가 많이 나오니 앞으로 더 동반 성장을 위해 매진해야지요. 제가 어려서부터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고 살았기 때문에 사회에 갚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특히 제 경제적, 정신적 지주였던 스코필드 박사님이 남긴 유훈을 따라 살고 싶어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줄이는 일을 하라고 하셨거든요. 제가 동반 성장에 매진하는 것도 그분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동반 성장 문화의 조성과 확산을 위해 매달 관련 포럼도 하고 전국에 강연도 다니고 있는데, 앞으로도 동반 성장의 전도사로서 역할을 많이 해야지요.”


박진영 기자 bluepjy@hankyung.com│사진 김기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