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지애 아리랑국제방송 대표

“네? 미세스 코리아요?” 언론사에 여기자가 드물던 1980년대 초반, 영자 매거진 ‘비즈니스 코리아’에서 근무했던 손지애 기자는 취재원에게 하루에도 수십 번 되물음을 당해야 했다. 뉴욕타임스 서울특파원, CNN 서울지국장을 거쳐 아리랑국제방송 대표에 오르기까지 세상의 편견에 맞서고 견뎌온 세월들이었다. 최근 손 대표가 아시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언론인에 선정됐다는 소식은 그래서 더 반가웠다.
손지애 아리랑국제방송 대표는 얼마 전 싱가포르의 글로벌 매거진 콘텐트 아시아가 선정한 ‘아시아 미디어 산업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32인’에 한국인으론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세계적으로 여성 리더가 손에 꼽힐 정도로 부족한 미디어 업계에서 능력을 인정받았다는 사실은 화제가 되기에 충분했다. 손 대표는 2011년 대표로 취임한 이래 아리랑국제방송을 전 세계 1억 가구 약 3억3000만 명이 수신하는 방송사로 성장시켰다.


30년 넘게 언론인의 길을 걸어온 것에 대한 보람을 느끼시죠.
“경영자의 자리까지 오른 경우는 거의 없지만 과거에도 언론계에 실력과 리더십을 겸비한 여자 선배님들이 많았어요. ‘아시아 미디어 산업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타이틀에 걸맞은 사람이 돼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외국에서 아리랑국제방송를 통해 우리나라를 보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고 생각하니 책임감이 커지네요.”


1997년 2월 케이블에서 첫 방송 이래, 전 세계 방송 수신 1억 가구를 돌파했습니다. 아리랑국제방송의 국제적 위상이 궁금하군요.
“현재 전 세계 188개국에서 아리랑국제방송을 시청합니다. 국제 방송 순위로 보면 10위 안에 들죠. 미국과 같은 선진국은 물론 네팔, 미얀마, 부탄 등 약소국에서도 수요가 높습니다. 자국의 방송 콘텐츠가 적고, 현지에 아리랑국제방송 채널들이 무료로 제공되기 때문이죠.”


취임한 후 지난 2년 동안 아리랑국제방송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습니까.
“생방송 영어 뉴스 횟수를 늘리고 매 시간대 2분 길이의 ‘자막 헤드라인뉴스’를 제공해 세계인들에게 대한민국 관련 소식을 전하고 있지요. 또 한류 열풍에 발맞춰 케이팝(K-POP) 콘텐츠를 많이 선보였어요. 국악과 록 프로그램을 편성해 다이내믹한 우리 속살을 보여주는 데 역점을 둬 호응을 얻었지요.”


듣고 보니 아리랑국제방송이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TV야말로 매일매일 그 사람들의 안방까지 찾아가 생활에 가닿는 부분이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외교보다 더 밀접하다고 할 수 있죠. 우리가 하는 일이 ‘한국의 인상’을 담당하는 막중한 임무예요.”



김일성 사망 등 타전…해외 동포 “손 기자 나오면 심장 떨린다”
외교관 아버지를 따라 어릴 적 미국 생활을 했던 손 대표는 대학 졸업 후 영어를 활용할 수 있는 직업을 찾던 중, 적성을 살려 외신기자가 됐다. 1994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부터 김일성 사망, 2002년 2차 서해교전까지 굵직한 사건사고 현장을 누비며 해외에 뉴스를 생생하게 전했다. 외국인들은 그의 리포팅을 통해 한국을 알아갔다. CNN 서울특파원 당시 해외 동포들은 “손 기자가 TV에 나오면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다”고 했을 정도다.


뉴욕타임스와 CNN 서울지국장, 청와대 대통령실 해외홍보 비서관을 거쳐 현재 언론사 최고경영자(CEO)로 재직 중입니다. 어떤 여정이었나요.
“큰 맥락에서 글로벌 시장과 한국을 연결하는 ‘소식통’으로 살아왔죠. 기자로서 첫 발을 뗐고, 그다음엔 카메라 앞에 섰고 그 이후에는 마이크 뒤에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대변인으로 직접 외신과 만났죠. 지금은 우리나라를 알리는 매체를 경영하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아리랑국제방송의 대표 제안도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었지요.”


어떤 취재가 기억에 남나요.
“저는 북한 관련 취재를 많이 했어요. 김일성 사망 소식 보도를 비롯해 북한 경수로 공사 착공식 등을 취재하러 몇 차례 북한에 갔었습니다. 납북자 송환을 위한 기사도 많이 썼어요. 납북자들이 가족을 만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상당한 보람을 느꼈습니다. CNN 서울지국장을 맡은 뒤 첫 취재였던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도 기억에 남습니다. 아비규환의 현장을 뛰어다니며 가감 없이 보도하기 위해 열과 성을 다했죠.”


1980년대 ‘여기자’에 대한 편견이 적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극복하셨습니까.
“외신으로 옮기면서는 조금 덜했지만 ‘여기자’에 대한 편견은 늘 존재했죠. 그럴수록 자기계발을 무던히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더 나아질까’에 대한 고민과 해답을 찾는 일을 않고선 더 높이 올라설 수 없죠. 영자 매거진 기자 시절엔 외국인 에디터에게 묻고 수정하고 쓰는 과정을 계속 반복하며 ‘다음에는 절대 실수하지 말아야지’ 다짐했어요. 방송사로 와서는 기사를 어떻게 방송용으로 바꿀 것인지 공부도 했습니다. 둘째 아이를 낳고 15일 만에 다시 일터로 달려가 리포팅을 할 정도였죠. 일터에선 뼈를 깎는 노력을 해도 아프지 않았어요. 이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손지애 대표는… 1963년 서울 출생. 이화여고,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연세대 언론대학원 석사. 뉴욕타임스 서울사무소 취재기자, CNN 서울지국장, 서울 G20 정상회의 준비위원회 대변인. 청와대 대통령실 해외홍보 비서관.현 국제방송교류재단(아리랑국제방송) 대표.
손지애 대표는… 1963년 서울 출생. 이화여고,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연세대 언론대학원 석사. 뉴욕타임스 서울사무소 취재기자, CNN 서울지국장, 서울 G20 정상회의 준비위원회 대변인. 청와대 대통령실 해외홍보 비서관.현 국제방송교류재단(아리랑국제방송) 대표.
출산 후 쉬지도 못하고 일을 하다니 대단한 열정이군요.
“둘째 아이를 1999년 11월에 낳았어요. 그해 겨울 2000년을 앞두고 밀레니엄 분위기가 전 세계를 휩쓸었죠. 지구촌의 새해맞이 모습을 보여주는 기획이었는데 제가 취재하지 않으면 한국은 건너뛰게 되는 거예요. 그럴 순 없었죠. 몸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하고 현장으로 나와 야간 생방송을 진행했습니다. 돌이켜보니 욕심이 좀 과했다는 생각도 들어요.(웃음)”


이 시대의 수많은 워킹맘들을 위한 조언을 부탁합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습니다. 누구든 도와줄 사람을 붙잡아야 해요. 그게 부모님이 됐든, 도우미 아주머니가 됐든 돈을 들여서라도 도움을 받으세요. 가족과 일 모두 포기할 수 없다면 그 외에 다른 것들은 놓아버릴 줄 아는 지혜도 필요합니다. 저는 아이들의 공부를 봐준다든지 비오는 날 우산을 들고 학교 앞에 서있는 일은 하지 못했지만, 아이들에게 자율권을 주고 그에 따른 책임감도 같이 부여했습니다. 그 대신 애들의 의견을 많이 수용해주는 편이었고요. 아이들이 엄마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요. 행운이죠.”



둘째 낳고 보름 만에 일터 향한 ‘열성파’…은퇴 후엔 북 카페 열고파
손 대표는 요즘 어딜 가든 ‘멘토’로 통한다. 우리 사회의 여성 리더로서 많은 후배들에게 롤 모델이 되고 있고, 엄마들 사이에서는 육아 전도사 역할도 한다. 경영인들이 모인 자리에 가면 몇 명은 꼭 영어 잘하는 법을 물어온다. 그는 자신의 노하우를 최대한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과거 성공한 여자 선배들이 자기 홍보에 지나치게 소극적어서 아쉬웠던 부분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여성가족부 여성 대표 멘토로도 선정되셨지요.
“한창 사회생활을 할 때 조언을 구할 만한 여자 선배들이 없어 깜깜한 방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요즘 주위를 보면 능력 있는 여성 후배들이 무척이나 많아요. 그들이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하지 않고 살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멘토를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지요. ‘날 봐라. 나도 해내지 않았느냐’라고 말해주는 거죠.”


완벽한 영어 구사로 CEO들 사이에서 부러움의 대상이라고 하던데요.
“뭐든지 시작하는 게 중요해요. 지금이라도 가정교사를 두고서라도 집중해 공부한다면 못할 것이 없지요. 다만 그 마음이 간절하지 않은 겁니다. 영어는 필요한 만큼만 하면 돼요. 국제회의 때 보면 인도나 싱가포르 사람들의 영어가 완벽하지 않거든요. 그 나라 고유의 악센트도 나오고요. 완벽한 영어를 구사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려야 합니다. 글로벌 무대에서 영어를 할 수 있다면 네트워크도 두세 배 늘어요. 읽을 수 있는 콘텐츠도 많아지고요. 삶의 영역이 풍부해지죠.”


앞으로 아리랑국제방송을 어떻게 이끌고자 하십니까.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주목받는 나라가 된 만큼 우리의 모습을 외국 사람들에게 보다 정확히 알리고 또 좋은 인식을 심어줄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민간 영역의 외교관’ 역할을 충실히 해야죠. 아울러 정부의 지원을 이끌어내고 법적 지위를 갖추는 데도 집중할 생각이에요.”



손 대표는 인터뷰 말미에 “환갑에는 조용한 동네 어귀에 북 카페를 열고 ‘책 읽어주는 할머니’로 살고 싶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책을 무척 좋아했는데 딸 부잣집에서 자라다 보니 조용히 독서할 수 있는 곳이 화장실밖에 없었단다. 사건사고 현장을 누비는 기자로, 대변인으로, 그리고 경영자로 반평생을 화려하게 살아왔으니 그다음 단계는 보다 근본으로 돌아가는 게 맞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상상해보니 돋보기안경을 반쯤 내리고 아이들에게 조근 조근 책을 읽어주는 그의 모습도 꽤 어울렸다.


이윤경 기자 ramji@hankyung.com│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