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에 숨어 있는 진화론적·사회학적 의미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이다. 젊은이에게 12월은 들뜨고 흥분되고 설레는 파티 타임이지만 중년 이후의 세대에겐 마음 한구석 쓸쓸함이 느껴지는 달이다. 노화하고 있음을, 정확히는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마음이 느끼기 때문이다. 물론 나이를 막론하고 자신의 노화를 바라보는 것은 모두에게 서글픈 일일 터. 그러나 ‘노화’에 숨어 있는 진화론적, 사회학적 의미를 알고 보면 슬퍼할 일만도 아니다.
20세기 이후 과학 기술의 발전은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더 많이 알게 해주었고 생존 측면에서도 더 건강하고 오래 살도록 긍정적 변화를 일으켰지만 우리는 여전히 인류가 어디서 시작했는지, 왜 죽어야만 하는지, 그리고 사후에는 어떤 세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러나 인간에게 죽음만큼 필연적이며 명확한 사실은 없다.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껄끄럽지만 인간 심리 반응에 중요한 부분이다.

우리는 언젠가 생명을 마감하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존재다. 그러나 그 시기를 아는 이는 아무도 없다. 그래서 죽음에 대한 심리 반응이 골치 아프다. 죽음이 멀리 있다고 느껴지는 젊은 시절엔 아무도 죽음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다. 스스로를 평생 죽지 않을 존재로 여기며 삶을 흘려보내기 쉽다. 반면 죽음에 가까워질수록 그 죽음에 대해 너그러이 받아들일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렇지가 못하다. 삶에 대한 애착이 더 강하게 증가하는 것을 어르신들의 심리에서 보게 된다.

임상 경험을 통해 노화 과정 중 심리 변화에 대해 깨달은 것이 몇 개 있다. 먼저 당사자 입장에서 호상(好喪)은 없다는 것이다. 망자를 떠나보내는 가족들이 스스로를 위로하고자 호상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지 본인이 “아, 호상이다”라며 눈을 감는 이는 없다. 나이가 들수록 삶에 대한 애착이 거꾸로 커져만 간다. 삶이 소중해지는 것이다. “살 만큼 살았다”라는 어르신들의 말은 진실이 아니다. 80세 어르신께 얼마나 더 사시고 싶으신지 여쭈면 “뭘 더 살아”라고 하신다. 그래도 또 여쭈면 “남들 사는 만큼 살고 싶다”고 대답한다. 그래서 그게 몇 세인지 캐물으면 요즘 “120세”를 부르는 분들이 적지 않다.

또 다른 변화는 순순한 가치에 대한 열망이 더 커진다는 것이다. 성공하신 70세 어르신들, 불면증 같은 스트레스 증상을 치료해 드리고 나면 “이제 불면증은 치료됐으니 진짜 내 마음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오”라고 이야기한다. 그게 무엇인지 되물으면 “나 요즘 너무 사랑을 하고 싶어”란다. 노망들었다 생각되는가. 그렇지 않다. 사랑은 젊은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70세 넘어 만난 남녀 어르신들이 때론 젊은이보다 더 열렬히 사랑한다. ‘죽어도 좋아’라는 제목의 노년의 사랑을 담은 영화도 있지 않은가. 영어 제목이 더 강렬하다 ‘Too young to die!’


중년의 삶이 가지는 가치
우리가 성공을 위해 열심히 사는 본질적인 동기가 무엇일까. 나를 근사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다. 왜 근사한 사람이 되고 싶을까. 더 사랑받는 존재가 되고픈 무의식의 욕구가 강력히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죽음에 가까워질수록 그 본질의 욕구가 더 강렬히 작동된다.

삶에 대한 애착과 순수한 가치에 대한 열망이 커지는 심리 변화, 그 자체는 긍정적으로 보인다. 삶을 더 잘 즐길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실제 어르신들을 보면 분노반응이 증가하고 쉽게 슬픔에 잠긴다. 왜 그럴까. 진짜 마음과 가짜 마음을 구분하는 감성 판별 능력이 더 예민하게 발달하기 때문이다.

작년과 똑같이 부모님께 명절 때 효심을 보였는데 “왜 나를 진짜로 공경하지 않느냐”고 역정을 내시니 자녀들은 황당하다. 사랑받고 싶은 욕구는 커진 반면 상대방이 보여주는 애정의 진실성에 대한 예민도는 증가하기에 분노하는 것이다. 이 예민도는 점점 증가하고 치매가 돼도 사라지지 않는다. 중증 치매가 돼 며느리인지 딸인지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뇌 기능이 상실한 상황에서도 자기 주변의 사람 중 누가 가장 나를 진심으로 위하는지 정확히 안다. 그 사람하고만 있으려 한다. 사랑의 욕구는 커지나 진짜 사랑이 아니면 감동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젊은이에게 12월은 즐거운 파티 타임이지만 중년 이후의 세대에겐 송년회로 바삐 보내는 마음 한구석이 쓸쓸해지는 달이다. 노화하고 있음을, 정확히는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마음이 느끼기 때문이다. 자신의 노화를 바라보는 것은 모두에게 서글픈 일이다. 인간만큼 오래 시간 노화를 경험하는 영장류는 없다. 왜 이런 긴 노화의 과정을 가지도록 설계된 것일까.


벗겨진 머리와 뱃살은 문화 계승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에 부합하는 생물학적 변화라고 생각하고 웃으며 받아들이자.


15세기 이탈리아 미학자 알베르티는 “인간은 불면의 신 같은 지혜와 이성과 기억을 가지고 있는데 중년인이 없었다면 그런 건 결코 없었을 것이다”라고 이야기했다. 40세 이후 노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중년인이 인류 문화와 역사 창조의 주역이란 이야기인데 다른 영장류보다 훨씬 긴 노화의 과정을 겪는 사람의 특징이 다른 영장류에겐 없는 문화를 창조, 계승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한다는 것일까.

중년의 진화심리학적 정체성을 분석한 미국의 동물학자, 베인브리지의 의견이 흥미롭다. 중년에 머리가 빠지고 배가 나오며 성기능이 약화되고 폐경이 오는 것이 젊은이들과 섹스를 놓고 경쟁하는 것이 아닌 중년인의 역할을 충실히 하기 위한 변화라는 것이다. 즉 문화에 대한 몰입과 그 문화를 젊은 세대에 대물림하는 것에 더 많은 에너지를 투입하도록 하는 진화론적 결과물이란 이야기다.

진화가 오직 생식에만 집중해 있는 다른 영장류와 달리 사람은 생식과 별도로 문화의 창조와 계승이라는 본능의 욕구에 충실하도록 진화했다는 것이다. 기억력 같은 인지 기능은 떨어져도 감성 시스템의 예민도는 증가하는 것도 문화에 대한 몰입을 증가시키기 위한 노년의 변화인 것이다.

한 해가 가는 12월이다. 세월이 흘러 망가지는 피부와 늘어지는 뱃살에 너무 한탄하지 말자. 젊은 몸매를 가지리라, 무모한 새해 다이어트 계획도 세우지 말자. 벗겨진 머리와 뱃살이 문화 계승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에 부합하는 생물학적 변화라고 웃으며 받아들이자. 내 감성을 포근하게 위로하고 행복을 줄 문화 콘텐츠를 즐기는 겨울을 보내보자.


글·사진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