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기업이 오래 살아남으려면 승계 계획을 세워야 한다. 승계 계획은 가급적 빨리, 그리고 가족 전 구성원의 의견을 모아 수립해야 한다. 가업 승계에 성공한 한 중소기업의 사례를 통해 합리적인 승계 계획의 열쇠를 찾아본다.
[FAMILY BUSINESS CONSULTING] 경영자가 승계를 회피하고 자녀들이 승계를 거부하는 속사정
많은 경영자들이 일주일에 80시간 이상을 회사 일에 매달리지만, 정작 승계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간은 거의 없다. 그러다 보니 체계적인 승계 계획을 가지고 있는 기업 또한 아주 드물다. 더구나 대부분의 경영자나 가족들은 승계 문제 거론 자체를 회피한다. 가족기업연구의 대가 랜스버그 박사는 경영자들이 승계 문제를 회피하는 풍조를 꼬집으며 “만약 승계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면, 가족의 미래는 변호사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에 만족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가족기업의 장기 생존과 관련해 승계 위험이 비즈니스 위험보다 2~3배가량 더 큰 데도 오너 경영자들이 체계적인 승계 계획을 세우지 않는 이유가 대체 무엇일까?


왜 승계 계획을 세우지 않는가?
첫째, 승계 계획은 불편한 가족 문제를 야기한다. 승계 계획을 세우려면 가족들 간의 많은 예민한 문제들을 다뤄야 한다. 즉 누가 후계자가 될 것인가, 누가 소유권을 얼마만큼 가질 것인가 등을 결정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은 가족 갈등을 유발할 수도 있기 때문에 문제에 정면으로 맞서기보다 차라리 불확실한 상태로 미뤄놓는 것이다.

둘째, 승계 계획은 죽음을 상기시킨다. 죽음은 피할 수 없는 문제이지만 누구나 자신의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승계 계획은 경영자의 죽음 이후 유산 상속이나 유언서 작성 등의 문제를 포함하므로 결국 승계 계획 자체도 꺼리게 되는 것이다.

셋째, 지배력을 잃는 것을 두려워한다. 잘 준비된 승계 계획을 따르면, 경영자는 통제권을 점차적으로 포기해야 한다. 또한 승계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외부 전문가 등 다른 사람에게 의존해야 하는데, 경영자들은 통제권을 잃는다거나 다른 사람들과 예민한 정보를 공유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넷째, 일상적인 일들을 해결하느라 너무 바쁘다. 경영자들은 당장 눈앞에 닥친 중요한 회사 업무에 신경을 쏟는다. 그러나 승계 계획을 수립하는 일은 일상적으로 시급한 일들과는 많이 다르다. 승계 계획은 충분한 시간을 갖고 깊이 있게 생각하면서, 다양한 요인들을 반영해야 한다. 승계는 경영자의 가장 중요한 임무 중 하나인데도 일상적인 업무보다 우선순위가 낮게 매겨지는 경향이 있다.

이처럼 경영자가 승계를 회피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그러나 가족기업을 영속해나가고 싶다면, 체계적인 승계 계획을 세우고 후계자를 양성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자기 세대에서 아무리 좋은 성과를 내고 기업을 성장시켰더라도 세대 이전에 실패한다면 이는 결국 가족과 기업, 사회 모두에 큰 손실이다.

경영권을 놓고 자녀들 간 분쟁이 끊이지 않는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은 후계자가 없어 문을 닫는 경우들이 속속 늘고 있다. 국내에서는 보기 드물게 30년 연속 흑자를 내며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우수 중소기업 사례로 소개된 한 기업도 자녀들이 사업에 관심이 없어서 폐업을 했다. 회사를 매도하려고 알아봤지만 사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동일한 업종과 규모의 중소기업을 운영하는데도 어떤 기업은 자녀들이 승계를 원치 않아서 폐업하는가 하면, 어떤 기업은 자녀들이 기업을 이어받아 성공적으로 경영하는 경우도 있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기는 걸까?

대부분의 경영자들이 자녀들이 어릴 때에는 기업을 키우고 자리 잡느라 승계를 미처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사업 초기에는 미래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한 경영자는 “아이들에게 제가 겪었던 힘든 일을 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각자가 원하는 대로 살게 하고, 회사를 맡아야 한다는 얘기는 한 번도 하지 않았다”라고 했다. 그들은 자녀들이 고생하지 않고 좋은 직업을 얻어 편하게 살도록 최대한 지원한다. 그 덕분에 자녀들은 유학을 가서 현지에서 좋은 직장을 얻기도 하고, 귀국해서 원하는 일을 하게 된다. 기업이 성장하고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들어 은퇴 시기가 가까워져서야 승계 문제를 고민하게 된다. 그러나 자녀들은 이미 각자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회사에는 관심이 없다. 자녀가 승계 의지가 없는 기업들은 대부분 이러한 패턴을 보인다. ‘나중에 어떻게 되겠지’라고 손 놓고 있다가 은퇴 직전에 어려움을 겪는 것이다. 이는 단지 중소기업만의 얘기가 아니라 승계 단계에 있는 많은 기업들이 겪는 문제다.


승계는 자녀가 어릴 때부터 시작해야
성공적으로 기업을 승계한 가족들은 이와 다르다. 자녀들은 어린 시절부터 회사 이야기를 듣고 자라거나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등 직간접적으로 회사를 경험하며 자란다. 이들은 누가 굳이 부담을 주지 않더라도 스스로 승계를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해외의 장수 가족기업들은 후손을 위한 회사 견학 프로그램과 인턴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하고 기업의 역사를 들려주면서 회사에 대해 자긍심을 갖게 한다. 우리나라 중소기업 오너의 자녀들은 해외유학을 통해 외국어 실력과 국제 감각을 갖춘 경우가 많다. 만약 이러한 자녀가 기업을 승계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현실적으로 중소기업에서 자녀보다 더 우수한 인적 자원을 구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중소기업 중에는 자녀가 경영한 뒤로 한 단계 도약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 3대째 성공적으로 가업승계를 진행하고 있는 한 유리 회사 경영자는 자신의 승계 과정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아들이 어렸을 때는 사실 회사 일에 정신없어서 승계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회사가 자리 잡아가면서 나중에 아들이 맡아줬으면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들에게 직접적으로 승계 얘기를 하지는 않았지만 고등학교 때부터 회사 얘기를 자주 나누었지요. 아들이 대학에 진학할 무렵 승계를 염두에 두고 신소재공학을 전공하라고 권했는데 아들이 흔쾌히 따라줬습니다. 대학 졸업 후에는 3년 정도 다른 회사에서 경력을 쌓았어요. 그리고 미국에 유학 가서 품질 분야의 경영학 석사 학위(MBA)를 취득했지요. 제가 항상 품질을 강조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리고 회사에 돌아와 4년 정도 사무실과 공장에서 일을 했습니다. 공장에서 직원들에게 자신이 미국에서 배운 유리 가공기술과 품질을 직접 가르쳤는데 이 때문에 직원들 의식도 높아지고 생산성도 좋아지더군요. 지난해 아들에게 부사장직을 맡으면 어떻겠냐고 의견을 물어보니 아직 현장에서 1년 정도는 더 일하는 게 좋겠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아들의 의견에 따라 1년이 지난 올해 부사장으로 승진을 시켰지요. 우리 아들은 유리와 관련해서는 우리나라 최고일 겁니다. 아들이 다른 일을 한다면 지금보다 덜 고생하고 더 좋은 조건에서 일할 수 있는데, 가업을 위해 밤샘도 마다하지 않고 공장에서 직원들과 일하는 것을 보면 늘 고맙고 미안한 생각이 듭니다.”

부모가 고생하든 말든 자기 갈 길을 가는 자녀, 경영권을 물려받으려고 형제자매간 소송도 불사하는 자녀, 이 모든 결과는 부모가 자녀와 어떤 관계를 형성하며, 어떻게 교육하는지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실제로 외부에 더 좋은 기회가 있음에도 기꺼이 기업을 계승해 헌신하는 자녀들이 더 많다. 그러므로 경영자는 자녀들이 어린 시절부터 승계를 염두에 두고 경영을 해야 한다. 만약 자녀에게 승계할 계획이 없거나 자녀가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면, 외부에서 후계자를 영입할 것인지 회사를 매각할 것인지에 따라 미리부터 준비해야 한다.
[FAMILY BUSINESS CONSULTING] 경영자가 승계를 회피하고 자녀들이 승계를 거부하는 속사정
김선화 한국가족기업연구소 대표

경영학 박사. 가족기업 컨설턴트.
‘100년 기업을 위한 승계 전략’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