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미래를 가질 것인가?’ 펴낸 김홍선 안랩 대표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제대로 해석해야 한다.’ 대한민국 정보기술(IT)의 역사를 관통하며 살아온 김홍선 안랩 대표는 현재 대한민국을 우울하게 만드는 수많은 난제와 지표들이 풀리지 않는 이유로 ‘시대의 변화’를 주목하며 ‘해석’에 방점을 찍었다. 바로 그 ‘해석’에 따라 삶의 방식과 방향은 달라질 터. 김 대표가 ‘IT의 대중화’ 관점에서 시대의 코드를 읽어내는 건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른다.­­
김홍선 대표는… 서울대 전자공학과. 미국 퍼듀대 컴퓨터공학 박사. 텍사스주립대 연구원, 삼성전자 컴퓨터사업부 선임연구원 등을 거쳐 정보보호 전문 벤처기업 시큐어소프트 창업. 2007년 시큐어소프트의 정보보안 사업을 최종 인수한 안랩에서 기술고문, 제품개발연구소장 및 최고기술책임자(CTO)로 일했고, 2008년부터 안랩의 CEO를 역임 중이다.
김홍선 대표는… 서울대 전자공학과. 미국 퍼듀대 컴퓨터공학 박사. 텍사스주립대 연구원, 삼성전자 컴퓨터사업부 선임연구원 등을 거쳐 정보보호 전문 벤처기업 시큐어소프트 창업. 2007년 시큐어소프트의 정보보안 사업을 최종 인수한 안랩에서 기술고문, 제품개발연구소장 및 최고기술책임자(CTO)로 일했고, 2008년부터 안랩의 CEO를 역임 중이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괴리. 이 책에 대한 첫 평은 그렇다. 알고 보면 IT에 둘러싸여 살고 있으면서도, 정작 IT는 어쩐지 어렵게만 느껴지는 이 모순이 가져온 편견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여기에 하나 더. 안철수 안랩 창업자의 표현처럼 “우리나라 IT 인터넷 산업의 초기부터 벤처 열풍으로 뜨거웠던 2000년대 초반을 거쳐 침체기와 제2의 벤처 붐, 그리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급속한 변화의 소용돌이 한가운데를 지나온” 대한민국 IT의 살아 있는 역사로 불리는 김홍선 안랩 최고경영자(CEO)가 기술, 인간, 그리고 미래의 삶에 대해 풀어놓은 책이라니 그 묵직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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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솔직히 말해 걱정 반, 의무감 반으로 읽어 내려간 이 책은 아이러니하게도 지난 세월을 돌아보게 하고, 지금 누리고 있는 삶을 되새기게 하며, 미래의 변화된 모습을 짐작케 하는 힘이 있었다. 더불어, 막연히 어렵다거나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던 IT가 실은 현재 얼마나 깊숙이 우리 삶 속에 들어와 있고 어떤 변화들을 가져왔는지, 하여 실은 우리 모두가 어느 정도는 IT 전문가들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누가 미래를 가질 것인가?’라는 이 딱딱하기 그지없는 문장 안에는 “맞아, 맞아” 혼잣말하며 추억하는 과거의 풍경들부터 살면서 도움이 될 혜안까지 담겨 있으니 재밌게 읽히되 행간이 주는 사색은 깊은 책이라 감히 평해 본다.



IT가 바꾼 라이프스타일, 대중화는 이제부터다

하드웨어(제목)만 보고 소프트웨어(내용)에 대해 잘못 예측했습니다. 다양한 에피소드와 스토리가 등장하는 내용은 의외로(?) 흥미로웠습니다. ‘반전’을 의도한 겁니까.
“스토리가 중요한 시대니까요. 제가 IT 현장에 있으면서 경험한 일들이 많으니 다양한 에피소드가 등장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죠. 다만 이번 책은 그동안 블로그나 카페 등에 썼던 글을 재구성한 결과물이다 보니 오히려 많이 자르고 빼는 작업이 힘들었어요.”


디지털 시대를 살면서 고민하고 논의했던 많은 이야기들의 ‘총집합’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이야기가 이 시점에 왜 필요하다고 생각한 건가요.
“우리나라는 안과 밖에서 보는 두 가지 모습이 있습니다. ‘IT 강국’이니 ‘한류’니 하며 밖에서는 그야말로 ‘잘나가는’ 한국의 모습이 있는 반면, 한쪽에선 일자리가 없고 온통 고시와 공무원 시험에만 줄 서며 정년이 보장되는 일자리를 찾는 게 전부인 ‘이상한’ 모습들이 있어요. 그런데 이런 현상은 노력을 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 같지가 않습니다. 원인을 두고 금융 자본의 문제니, 중국의 문제니 하는데 저는 다른 관점에서 보고 싶었어요. IT의 대중화에서 찾고 싶었죠.”


좀 더 쉬운 설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저는 IT를 산업이라고 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과거에는 산업이었지만 지금은 사회적 현상이 됐죠. 즉 IT가 먹고 살고 그 밖의 라이프스타일에 어떤 영향을 끼쳤고 뭐가 바뀌었는지를 짚어보고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당연시하는 스마트폰만 해도 불과 얼마 전까지 익숙한 물건이 아니었잖아요. 지금은 산업혁명 이후 더 큰 혁명이 일어나는 중이에요. 그렇다면 일자리 문제도 다른 혁명에서 바라봐야 하는 겁니다. 우리가 현재 쓰고 있는 다양한 프레임들은 불변의 것이 아니에요. 수명도 은퇴도 지금 젊은이들의 기준으로 보면 다 달라져야죠. 그런 부분에서 자기 스스로를 한번 돌아보자고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물론 IT 문화가 가져온 부작용들도 많죠. 사이버 테러도 염려되고, 세대차이도 심해졌어요. 하지만 그것도 받아들여야 할 문화라고 생각합니다. IT에 우리의 과거와 삶을 담아야 하는 거죠.”


IT의 대중화가 비단 꼭 현재 상황의 얘기만은 아니지 않나요.
­­­“PC의 대중화, 인터넷의 대중화, 스마트폰의 대중화는 있었지만 그건 여전히 기계였어요. 사용법을 배운 사람들만 할 수 있었죠. 그런데 이젠 일반인들도 컴퓨터를 전혀 몰라도 스마트폰 등을 통해 누구나 인터넷을 할 수 있게 됐어요. 웹은 정보와 컴퓨터를 분리시켰고 그로 인해 기술을 분리하고 정보만 보게 됐으니 진정으로 대중화됐다고 할 수 있는 겁니다. 또 다른 포인트는 사람들은 새로운 패러다임이 나오면 거기에 익숙해지는데, 디지털화라는 건 그간 익숙해지는 단계였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는 편리해지는 차원이었다면 이제부턴 우리의 삶에서 의미 있는 데이터 같은 것들이 나올 수 있는 시대가 됐다고 봐요.”


예를 들면 어떤 것들일까요.
“책 속에 소개된 에피소드이기도 한데 제가 이사할 집을 알아보면서 부동산중개소의 연락처도 이름도 모르고 그저 대충의 위치만으로 전화번호를 찾아낸 경험이 있어요. 스마트폰에 설치된 ‘지도 앱’의 로드뷰 기능으로 부동산중개소 간판에 크게 적힌 전화번호를 얻을 수 있었죠. 멀리 떨어진 공간에 담긴 아날로그 정보가 스마트폰을 통해 내 손에 들어오는 체험은 IT 업계에 있는 사람으로서 정말 짜릿했어요. 그건 기술적인 부분이 아니에요. 과거에 쓸 수 없었던 것을 지금은 쓸 수 있게 됐다는 걸 의미하죠. 누군가는 기술과 인문학의 결합이라고 거창하게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우리가 수돗물을 먹듯 자연스럽게 쓰이게 됐으니 삶과 결착된 IT의 대중화라고 생각합니다. 그 때문에 이제부터가 진정한 대중화가 아닌가라는 거죠.”


그 자연스러운 변화, IT 기술이 발전하고 세상이 변하는 속도감을 생각하면 무섭다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그런 점도 있겠지만, 그래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구글은 과학적인 기술을 발명하고 애플은 인간 친화적인 기술을 발명하는데 어쨌든 지금은 테크놀로지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어요. 그게 어떤 건 섬뜩한 기술도 있죠. 하지만 그 또한 우리가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기술은 결코 뒤로 가지 않아요. 산업혁명 때만 해도 다 ‘망조’라고 했어요. 농촌은 황폐화되고 밤에도 낮처럼 일해야 하고, 그래서 인간다움을 잃었다고 했는데 결국은 그게 정착이 됐죠. 문명국이 되는 과정에서 혼선이 있긴 했지만 그에 따른 법과 제도, 문화가 생긴 겁니다. 디지털 문명도 결국 그렇게 될 수밖에 없어요. 문제는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받아들이느냐 하는 겁니다. 양면성을 갖고 있다면 나쁜 쪽은 컨트롤하면서 좋은 쪽을 키워가야죠.”



본질에 충실하면 미래가 달라진다

IT의 한가운데를 지나왔지만 아날로그 시절에 대한 향수도 있지 않나요.
“7080세대니 당연히 있죠. 그런데 거기까집니다. 잠시 추억에 잠기는 정도일 뿐 몰입하고 싶지는 않아요. 아무래도 제가 디지털에 더 익숙해서 그럴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이민 간 세대니까요. 이민을 가도 적응을 못하는 세대가 있는 반면 저는 디지털에 더 익숙해진 세대죠. 다만, 아날로그의 생활을 너무 빨리 잊어버리는 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은 있어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지하철에서 대부분 스마트폰을 보는데 영국에 가서 보면 대부분 책을 읽더군요. 사람들은 와이파이(Wi-Fi)가 안 되기 때문이라고도 하지만 아마도 그 나라 사람들은 환경이 된다고 해도 책을 읽을 겁니다. 그런 ‘깊이’는 디지털 시대에 너무 매몰돼 있으면 놓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디지털 시대에는 낭만이 없다고 하는 분들도 많아요.
“개인적인 경험인데 몇 해 전 TV 프로그램에서 ‘쎄시봉 특집’ 방송을 보면서 정말 찌릿했어요. 그 시절 음악이 주는 감동도 감동이었지만 방송을 보는 내내 트위터를 통해 나눈 이야기들 덕분에 감동은 배가 됐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공간에서 기술 장벽이 사라지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직접적인 소통이 이루어지는 세상이 됐으니 이 얼마나 인간적인 느낌을 줍니까. 공간이 바뀐 것일 뿐 그게 우리 삶의 문화인 겁니다. 낭만을 논하기엔 그동안 디지털 기술 자체가 어려웠고 소프트웨어가 어려웠어요. 하지만 이제는 인간 친화적인 디바이스가 됐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낭만을 줄 수 있고 인간다움을 실현해줄 수 있는 디지털 환경이 된 겁니다.”
[BOOK WE ATTENTION] IT 빅뱅, 그 안에‘기회’가 있다
환경 변화와 함께 인재상에 대한 이야기들도 거론되고 있습니다. 김 대표님이 생각하는 ‘이 시대에 필요한 인재상’은 현실과는 어느 정도 괴리가 있어 보입니다.
“산업화 시대에서는 관료와 엘리트가 중심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트렌드였죠. 그들에게 결정권이 있었고 그로 인해 조직이 움직였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세상이 확 바뀌었습니다. 개인의 정보력이 많아졌고 발휘할 수 있는 공간도 많아졌죠. 이젠 ‘나를 따르라’ 하는 게 리더의 상은 아닌 시대라고 생각해요. 우리 회사의 핵심 가치 중 하나가 ‘현장에 있는 사람이 리더’라는 겁니다. 우린 그런 문화가 정착돼 있어요. 물론 문화를 바꾸기가 쉽진 않죠. 특히 우리나라는 제조업 기반이다 보니 더 그럴 겁니다. 하지만 생각을 달리하면 시대가 바뀌었으니 리더에 대한 생각도 달라져야 하지 않겠어요. 젊은 층들도 자신을 돌아봐야 해요. 급변하는 환경에서 스스로를 지켜야 하는데, 각자 좋아하는 건 다르면서 왜 똑같이 고시를 보려고 하는지 말입니다. 본질적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해요. 과거엔 하고 싶어도 할 수 있는 여건 자체가 안 됐지만 지금은 다르지 않습니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나 환경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스스로 도전하겠다는 의지를 가졌으면 좋겠어요.”


안철수 전 대표가 김 대표님에 대해 “IT 리더로 성장하기 좋은 시대를 살았다”고 표현했습니다. 지금은 벤처 하면 그야말로 ‘모험’이라고 생각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물론 거품도 많았지만 저 때는 벤처하기 좋은 시대였던 것을 인정합니다. 궁극적으로 벤처의 큰 장점 중 하나는 집중하고 몰입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게 이노베이션을 만드는 것 같아요. 미국에서는 IT의 길이 두 가지로 나뉩니다. 안정적으로 갈 것이냐 모험을 하면서 갈 것이냐. 벤처를 키워서 대기업에 팔기도 하죠. 우리나라는 그런 포트폴리오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문젭니다. 우리나라가 벤처 붐이 인 게 1999년부터인데 너무 배가 불렀어요. 저도 그랬죠. 당시 제가 마흔 살이 좀 넘었을 때인데 지금 생각하면 후회스러워요. 테크놀로지에 집중했어야 하는데 그땐 ‘이렇게 하면 돈 벌 수 있다’는 등 유혹이 많았죠. 그런데 본질에 집중하지 못하면 벤처는 의미가 없어요. 분위기가 많이 바뀌긴 했지만 좀 더 테크놀로지 중심으로 바뀌고 그 가치를 인정해주는 사회 분위기가 된다면 좋겠습니다.”


끝으로, 다시 책 제목으로 돌아가면 그래서 ‘누가’ 미래를 갖게 될까요?
“모든 사람이 미래를 갖고 있죠. 다만 IT 빅뱅이라고나 할까요. 모두에게 전체적 사회 변화가 일어날 것이기 때문에 각자 위치에서 그 변화에 어떻게 적응할 것인지에 따라 미래가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례로 미국에서는 오디오북이 트렌드가 되면서 갈 곳 없던 브로드웨이의 배우들이 새로운 일자리를 얻었다고 합니다. 하고 싶은 일에 몰입하다 보니 의외의 곳에서 기회가 온 것입니다. IT의 대중화가 가져온 지금의 시대 흐름을 보면 나에게 어떤 기회가 올 수 있는 거지요. 그러니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는 게 제일 중요합니다. 스스로 중심을 잡고 있다면 IT 변화 속에서 자신의 가치를 발휘할 수 있는 미래가 분명 있을 겁니다.”


박진영 기자 bluepjy@hankyung.com│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