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네이도’, 마이애미 디자인페어, 마이애미, 2007년](https://img.hankyung.com/photo/202101/AD.25095911.1.jpg)
![‘워터블록’, 광학 유리 의자, 2002년](https://img.hankyung.com/photo/202101/AD.25095912.1.jpg)
요시오카의 디자인적 감각은 현대 패션디자인의 거장 미야케의 실험정신과 일본의 정신이 담긴 현대 디자인을 세계에 알리고 형식적인 모더니즘 디자인에 ‘시적 언어’라는 새로운 가치를 부여한 구라마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구라마타의 대표작 ‘미스 블랑슈’는 투명한 아크릴에 붉은 플라스틱 장미를 넣어 만든 투명 의자로 아크릴의 미적 감성을 극대화 작품이다. 요시오카의 아크릴과 물성에 대한 탐구는 스승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다. 구라마타 디자인의 목표는 물성과 물성의 경계점을 표현해 가구가 오브제의 한계점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구라마타의 ‘루미니어스(Luminous)’ 시리즈는 오브제가 곧 빛이 되기를 원했고, ‘글라스 체어(Glass Chair)’는 존재하는 오브제가 ‘없음’의 상태처럼 보이길 원했다. 철망으로 만든 의자 ‘하우 하이 더 문(How high the Moon)’에서는 오브제의 경계가 희미해 배경으로 사라지는 듯 비워 보이고 육중한 부피와는 달리 철망 사이로 바람이 스쳐지나가는 그 가벼움이 곧 공기가 돼 의자 위에 앉은 사람이 허공으로 붕 떠서 중력에 자유롭게 보이도록 했다. 이러한 ‘없음’과 ‘비움’은 요시오카 디자인의 중요한 개념이 됐다.
![‘허니 팝’, 종이로 만든 벌집 구조 의자, 2000년](https://img.hankyung.com/photo/202101/AD.25095914.1.jpg)
![‘비에 사라지는 의자’, 롯폰기 힐스 공공 프로젝트, 도쿄, 2002년](https://img.hankyung.com/photo/202101/AD.25095916.1.jpg)
![‘워터폴’, 광학 유리 테이블(일부), 2005년](https://img.hankyung.com/photo/202101/AD.25095918.1.jpg)
요시오카는 디자인을 위한 디자인이 아니라 미적 가치와 예술적 가치를 인식하고 확장시키는 도구로서의 디자인을 한다. 여기에는 감성과 물성이 동시에 묻어나야 되고 나아가 자본이 수반돼야 한다. 자본은 자본을 재생산한다. 디자인이 개인의 역량으로 만들어지던 전근대적 방식에서 산업화와 대량 소비재 사회로 접어들면서 디자인은 제품화됐다. 우리가 오늘날 일상에서 쓰고 있는 모든 것은 디자인된 제품들이다. 어떤 것은 다듬어지고 어떤 것은 좀 더 세련돼졌지만 거칠고 아름답고의 차이이지 모두 디자인된 것은 틀림없다. 문제는 그 디자인을 알아보는 안목의 차이다. 세상에서 세련만 아름답다면 세상은 삭막할 것이다. 모자라고 못생겨도 아름답다. 미(美)와 추(醜)는 같은 아름다움이다. 둥글고 멋진 젊은 돌멩이보다 늙고 구멍이 숭숭 뚫린 수석이 때로는 더 아름다운 이치가 그런 것이다. 여기에 자본이 들어가 재료의 고급과 제작 공정의 정밀은 디자인 제품의 품격을 엄청나게 화장시킨다. 대표적인 예가 보석과 시계, 자동차다. 세상 모두 공감하는 사실이지만 상식적인 인식은 ‘비싸니까 명품이다’라는 것이다. 그 속에는 감추어진 비밀이 있다. 최고의 재료, 최고의 장인 기술, 그리고 최고의 디자인이 숨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 결과 단 한 개의 제품부터 몇 개, 소수, 희소성, 특이한 디자인 등등 가치를 동반하는 상업 전략이 탄생했다. 디자인은 예술과 상업의 경계에서 독수리의 발톱처럼 날카롭고 결정적이다. 그래서 디자인이 어렵다.
![‘워터블록(일부)’, 광학 유리 의자, 2002년](https://img.hankyung.com/photo/202101/AD.25095920.1.jpg)
![오르세 미술관, 파리, 2008년(choisunho)](https://img.hankyung.com/photo/202101/AD.25095921.1.jpg)
몇 해 전 요시오카의 서울 전시에서 처음 대면한 설치 작업 ‘토네이도(Tornado)’는 하나의 경이로움이었다. ‘토네이도’는 수만 개 아니 수십만 개의 투명 플라스틱 빨대를 쌓아올려 거친 폭풍우 구름을 연상시키는 형태로 만들었다. 이 작업은 2007년 마이애미 디자인페어에서 ‘올해의 디자이너상’을 수상하며 설치한 작품이다. 백색의 빨대가 빛을 받으면서 보는 각도에 따라 각각 다르게 보이는 광대무변한 응용은 전시장을 넘어 폭풍우가 하얗게 몰아칠 기세다. 환상적이고 숭고하지만 단순한 빨대들의 조합이다. 절대적인 아름다움에 직면하게 될 때 사람들은 감동을 넘어 환호한다. 무언은 지극한 감동의 다른 표현이다. ‘토네이도’를 마주할 때는 무언 이외에는 다른 표현이 없다. 디자인의 영역이 아니라 순수예술의 감동으로 마무리한다. 디자인과 순수예술의 경계가 사라지는 순간이다. 눈 맛이 다가가면 마음은 움직인다.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레인보 처치’, 크리스털 프리즘, 비욘드 뮤지엄, 서울, 2010년](https://img.hankyung.com/photo/202101/AD.25095924.1.jpg)
요시오카는 2002년 ‘허니 팝(Honey-Pop)’ 의자를 선보인다. ‘허니 팝’은 실용성과는 거리가 먼 개념 예술이다. 납작하게 접힌 180장의 종이를 의자의 단면 형태로 자른 다음 옆으로 펼치면 벌집 구조의 공간이 촘촘하게 생기고 의자의 형태가 된다. 벌집 구조의 견고한 형태는 체중을 충분히 견디어 낼 수 있다. 의자는 종잇장으로 이루어져 당연히 가볍다. 순백의 색상은 그가 지향하는 공간과 형태의 사라짐에 적극적이다. 의자의 완성은 그 자신이 그 의자에 않아 종이가 몸무게에 의해 자연스럽게 내려앉아 엉덩이의 형태가 살아날 때 비로소 완성된다. 실용 의자는 그다음이다. 시간은 언제나 미래지향적이다. 요시오카의 감성으로 만든 ‘허니 팝’은 그해 ‘도쿄 팝(Tokyo-pop)’으로 화려하게 변신했다. 강화 플라스틱 재질로 대량 생산된 이 의자는 요시오카의 백색과 ‘허니 팝’의 유연한 곡선이 여전하게 살아 있는 의자다. 실내에서도 아름답지만 야외에서 비바람에도 견딜 수 있는 견고한 실용을 갖추었다. ‘도쿄 팝’은 1948년 찰스 임스와 레이 임스 부부가 뉴욕현대미술관(MoMA)에 출품하기 위해 만든 ‘라 셰이즈’ 의자처럼 안거나 기대거나 발을 들어 걸치거나 어떻게 해도 몸이 부드럽게 의자에 감긴다. 디자인이 무엇인지, 왜 중요한지 온몸으로 느껴진다. ‘허니 팝’은 MoMA에 영구 소장됐다.
그의 또 다른 걸작 ‘레인보 처치(Rainbow Church)’는 크리스털 프리즘 설치 작업이다. 그는 20대에 남프랑스 여행 도중에 생 폴 드 방스의 작은 언덕에 세운 로제르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를 보게 된다. 로제르 성당은 일명 마티스 성당이라고도 하는데 화가 앙리 마티스가 1951년 4년에 걸쳐 성당의 벽화와 스테인드글라스를 완성했다. 요시오카는 그곳에서 초록과 노랑, 파랑 세 가지 색으로 이루어진 ‘생명의 나무’ 연작 스테인드글라스를 보고 깊은 감동을 받는다. 그는 말한다. “프로방스의 태양빛에 휩싸여 스테인드글라스는 예배당을 온통 색으로 물들였고, 나는 마치 그의 작품 앞에 서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그림은 아주 독특한 색을 머금고 있었다. 그때 이후로 나는 그런 작품을 디자인하는 꿈을 꾸어 왔고 시간을 초월하는 이미지를 발전시켜 왔다.” ‘레인보 처치’는 대략 500개의 크리스털 프리즘을 9.2m 높이로 쌓아올려 구성한 일종의 스테인드글라스다. 햇빛이 비치면 공간 내부에 무지개로 색깔을 채운다. 전통적으로 교회에서 신의 영광은 빛과 소리와 그림으로 찬양하는데 그 가운데 빛은 하늘의 복음이다. 중세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는 단순히 교회를 장식하는 장식물이 아니라 신의 계시를 인간에게 보여주는 도구다. ‘레인보 처치’는 크리스털 프리즘이라는 재료가 가져다주는 순진한 감동뿐 아니라 프리즘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공간을 디자인하고 완전하게 변화시킨다. 관객은 감동의 숨결을 뿜어내고 공간의 형태는 완전히 빛 속으로 사라진다.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어떤 디자인이 아름다운가. 디자인의 가치는 어떻게 결정되는가. 끊임없는 물음이다. 아무것도 정답은 없다. 다만 디자인은 현재진행형이고 미래지향적이며 살아 있다는 사실이다. 눈으로 보이는 사물의 디자인만 디자인이 아니라 생각과 마음도 모두 디자인이다. 생각을 어떻게 두느냐에 따라 행동이 결정되고 그것은 곧 나의 흔적으로 남는다. 요시오카는 바람을 디자인했다. 2002년 도쿄의 에르메스 매장 설치 작업에서 90×90cm 크기의 에르메스 스카프 수십 장을 천장에 걸고 맞은편 벽에는 눈을 감고 입으로 ‘후’ 하고 바람을 부는 여인의 대형 사진을 걸었다. 인공으로 바람을 만들어 스카프를 흔들어 주자 자연스럽게 바람이 디자인한 공간을 흔든다. 보이지 않은 무형의 에너지를 보이는 유형의 공간으로 환원한 디자인은 요시오카의 생각이다. 생각을 디자인하는 힘은 만들어낼 수 있다는 무한한 도전 정신이고 그것이야말로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는 지름길이다.
![[DESIGN ODYSSEY] 사라짐과 없음의 디자인, 요시오카 도쿠진](https://img.hankyung.com/photo/202101/AD.25095925.1.jpg)
서울대 미술대학 회화과 동 대학원, 뉴욕대 대학원 졸업.
국립현대미술관, 삼성미술관 리움, 시카고 스마트뮤지움,
버밍햄 뮤지움 등 작품 소장. 현재 전업 화가.
저서 ‘한국의 미 산책’(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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