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 레스토랑 원조, 민가다헌(閔家茶軒)

올 한 해 치열하게 달려왔다면 가을은 한 박자 쉬어가도 좋은 계절이다. 높은 하늘과 소슬한 바람, 붉게 물든 단풍은 단언컨대, 완벽한 힐링의 조건이 아니던가. 굳이 먼 곳으로 떠나지 않아도 좋다. 도심 속 고풍스런 고택에서 제철 요리를 맛보며 한껏 여유를 부려보는 것으로 충분하니. 이 계절에 어울리는 원조 한옥 레스토랑 민가다헌으로 ‘가을 마실’ 다녀왔다.
[GOURMET REPORT] 고택에서 만나는 ‘늦가을의 맛’
새로울 것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익숙했다. 늘 그곳에 있어 푸근하고 정감 가는 레스토랑이 있지 않나. 서울 인사동 길모퉁이에 아담하게 자리 잡은 한옥 레스토랑 ‘민가다헌’은 곁에 두고 계속 읽고 싶은 스테디셀러와 같은 매력으로 13년 동안 꾸준히 사랑받는 퓨전 레스토랑이다. 테라스에 가만히 앉아 담 너머 익어가는 단감도 보고 빨갛게 물든 단풍으로 눈요기하며 제철 요리를 먹을 수 있으니, 감성지수 올라가는 가을이 되면 생각나는 장소 중 한 곳임에 틀림없다.
전통 가구와 유럽풍 샹들리에가 공존해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민가다헌의 실내.
전통 가구와 유럽풍 샹들리에가 공존해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민가다헌의 실내.
경적소리 울리는 번잡한 대로에서 한 블록 안으로 들어가면 조용하면서도 평온한 분위기의 고택이 나온다. 1936년에 지어진 민가다헌은 명성황후 조카 민익두 대감의 집으로, 건물의 외관과 담장은 전통 양식을 유지하면서 서양의 주거 양식을 도입한 국내 최초의 건물이다. 민속자료 15호로 지정될 만큼 유서 깊은 계량 한옥이니 한번쯤 들러볼 법한 서울의 명소다. 실내는 크게 네 공간으로 나뉜다. 한옥의 안채 개념을 도입해 아늑한 공간으로 꾸민 카페는 10~14명을 수용할 수 있고, 탁 트인 높은 천장의 메인 다이닝룸에는 최대 30명까지 들어갈 수 있어 만찬을 즐기기에 제격이다. 따스한 햇살이 스며드는 테라스나 구한말 외국 대사관 클럽을 연상시키는 도서관도 운치 있는 장소다. 대청마루에는 기품 넘치는 전통 가구와 유럽풍 화려한 샹들리에가 공존해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 레스토랑의 콘셉트인 ‘동서양의 조화’는 건물뿐만 아니라 음식, 조리 과정, 서비스 등 곳곳에 녹아 있다. 100년 된 고택에서 맛보는 퓨전 유러피언 퀴진을 진두지휘하는 이는 국내 최초 퓨전 레스토랑 ‘시안’ 출신 송경섭 셰프.
가을에 어울리는 메뉴‘새송이 버섯 샐러드’. 콩피한 표고버섯과 구운 버섯을 각종 채소, 파마산치즈와 곁들여 먹는다.
가을에 어울리는 메뉴‘새송이 버섯 샐러드’. 콩피한 표고버섯과 구운 버섯을 각종 채소, 파마산치즈와 곁들여 먹는다.
그는 대표 한식인 너비아니를 스테이크 형태로 제공한다든가 돼지고기와 새우를 곁들인 쉬림프 포크에 부추 오일을 베이스로 하는 식으로 한식과 양식을 접목한다. 사이드로 감자전 같은 토속적인 메뉴를 내놓기도 하고, 요리 과정에 와인 대신 막걸리나 안동소주 등을 많이 사용한다. 국수 메뉴에 젓가락이 아닌 포크를 내놓는 것도 그가 말하는 ‘퓨전’이다.

이런 이유로 ‘민가다헌’의 손님은 60% 이상이 외국인이다. 각국 주한 대사 및 대기업 주재원들이 다녀가 ‘대사 레스토랑’으로 불리며, 기업에서 중요한 계약을 앞두고 민가다헌을 예약하는 경우가 많아 ‘비즈니스 명당’으로도 통한다. 송 셰프는 “민익두 대감이 유명 건축가 박길용 씨에게 집 설계를 의뢰했는데, 당시 풍수지리를 감안해 집터를 선정했다”며 “터가 좋아 계약이 잘 성사된다고 입소문이 나 기업가들이 일부러 찾는다”고 귀띔했다.
바닷가재와 감자크림, 고추와 대파 크러스트의 조화가 일품인 '바닷가재 그라탕' .
바닷가재와 감자크림, 고추와 대파 크러스트의 조화가 일품인 '바닷가재 그라탕' .
‘새송이 버섯 샐러드’는 지금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요리다. 말린 버섯을 곱게 간 파우더를 깔고, 콩피(소금에 절였다가 물기를 제거한 다음 오일에 담가 저장하는 조리법)한 표고버섯과 구운 버섯을 각종 채소, 파마산치즈와 함께 올렸다. 향긋한 송이버섯이 부드러운 치즈와 생각보다 잘 어우러졌다. 아니나 다를까, 치즈가 버섯의 풍미를 제대로 살려준다고 송 셰프가 설명했다.

‘바닷가재 그라탕’ 역시 퓨전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는 메뉴다. 바닷가재를 살짝 데친 뒤 감자크림을 얹고 그 위에 고추와 대파를 크러스트(가루)로 만들어 솔솔 뿌리니 양식인 그라탕에 제법 친숙한 향이 났다. 고추의 매콤한 맛이 치즈와 감자크림의 느끼함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셈이다. 여기에 드라이한 화이트 와인 소비뇽 블랑을 곁들이니 늦가을의 풍요로움이 몸과 마음에 가득 차는 느낌이다.

민가다헌에 두어 시간 머물렀을까. 고택을 빠져나오는 마음이 차분해졌다. 도심으로 떠나온 마실은 기분 좋은 여운을 남겼다. 그리고 바랐다. 언제나 거기에 그렇게 있으면서 우리에게 위안을 안겨주기를. 이탈리아의 150년 된 고성(高城) 레스토랑처럼 가꾸어가고 싶다는 민가다헌 측의 말에 괜스레 마음이 설레었다.



Info. 민가다헌
[GOURMET REPORT] 고택에서 만나는 ‘늦가을의 맛’
위치 서울 종로구 경운동 66-7

영업시간 점심 낮 12시~오후 3시, 저녁 오후 6~10시, 가격대 점심 세트 메뉴 2만9700부터, 저녁 세트 메뉴 A 7만5000원부터, 세트 메뉴 B 8만5000원부터(부가세 10% 포함)

문의 02-733-2966, www.minsclub.co.kr


이윤경 기자 ramji@hankyung.com│사진 김기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