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80년대 경제성장기에 창업한 수많은 경영자들이 은퇴를 앞두고 있어 가업승계가 초미의 관심사로 부상했다.

하지만 가업승계에 성공하는 기업은 실제 그리 많지 않다. 4대까지 생존율은 4%에 불과하다. 가업승계가 초미의 관심사로 대두된 지금, 홍콩 회사 이금기(李錦記)가 4대째 성공적인 가업승계를 이룬 비결은 뭘까.
[FAMILY BUSINESS CONSULTING] 4대째 가업승계에 성공한 홍콩 회사 이금기의 특별한 노하우
한 조사 결과를 보면 가업승계를 통해 기업이 2대까지 생존하는 비율은 30%밖에 안 된다. 3대까지의 생존율은 15%, 4대까지는 4%로 세대가 지날수록 그 비율은 점점 줄어든다. 이렇게 생존율이 낮은 이유는 뭘까. 연구에 따르면 후계자 문제나 가족 분쟁이 장기적으로 기업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가장 중요한 요인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므로 가족기업의 장기 생존을 위해서는 기업 못지않게 가족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자신이 죽은 뒤에도 자녀들이 싸우지 않고 협력해서 기업을 잘 이끌어 나가기를 바라지 않는 부모는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자녀들이 함께 일하며 발생할 수 있는 분쟁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기업을 한 자녀에게 승계하거나, 분할해서 자녀들에게 승계하기도 한다. 또는 자녀들 간의 형평성을 고려해 지분을 공정하게 나누어 주고 형제 경영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경영자들이 자녀들 간의 갈등이나 분쟁을 사전에 예방하고자 하는 생각이 반영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승계를 전후해서 경영권 분쟁이나 상속 분쟁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100년 장수 기업의 비밀
사실 가족 분쟁에는 오래된 감정 문제나 이해관계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기 때문에 단지 기업을 분리하거나 지분을 나누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갈등을 예방하고 서로 협력할 수 있는 내부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러한 가족 시스템을 가족지배구조라고 한다. 이는 가족회의를 통해 가족의 주요 의사결정 방식이나 가족 규정을 수립하고 명문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주 생소하지만, 해외의 100년 이상 장수하는 가족기업들은 거의 대부분 이러한 가족 내부의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그러면 가족 간의 갈등을 극복하고 120년간 4대에 걸쳐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중국의 한 기업 사례를 살펴보자.

굴소스로 널리 알려진 이금기는 중국요리에 사용하는 다양한 소스를 제조하는 회사다. 1888년 리금셩(李錦裳)에 의해 설립돼 이제는 “전 세계 어느 곳이든 중국인이 있는 곳에는 이금기가 있다”고 할 만큼 세계적으로 알려졌다. 그들은 2004년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브랜드로 뽑혔고, 홍콩에서 밀레니엄 톱 10 기업으로 선정되는 성과를 내며 4대째 이어오고 있다. 물론 120년 이상 기업을 경영하며 형제 간 갈등과 분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창업자는 중국의 전통에 따라 자신의 세 아들에게 기업을 똑같이 나누어 주고 형제 경영을 하도록 했다. 그런데 세 형제 간 회사의 미래 전략 방향에 대한 견해가 크게 달랐기 때문에 분쟁이 생겼다. 이 때문에 장남이 동생들의 지분을 매입해서 단독으로 경영을 하며 가족관계가 깨지고 평생 동생들로부터 배척을 당했다. 2세 경영자는 두 아들을 두었는데 이 둘도 회사에 대한 생각이 달랐다. 형은 미래에 대한 원대한 비전을 가지고 있었던 데 반해, 동생은 현상 유지를 하자는 쪽이었다. 이런 의견 차이로 형제 간 분쟁이 일었고 급기야 경영권을 놓고 소송을 벌이기도 했다. 결국 형제 간의 분쟁은 형이 동생의 지분을 가져오는 것으로 일단락이 났다. 이런 결론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엄청난 경제적, 감정적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그러나 그 덕분에 큰 교훈도 얻었다. 가족기업의 핵심 문제는 가족의 화목에 있다는 것이다. 두 세대에 걸쳐 형제 간의 분쟁을 겪고 난 후 3세 경영자인 이만탓은 일관성 있게 가족의 문제들을 해결하고 가족의 화합을 위해 공식적인 가족총회를 운영하고 가족규정을 제정했다.

가족총회에는 3세대부터 5세대 자녀들까지 26명의 가족이 참여한다. 여기에서는 가족의 주요한 의사 결정과 가족 화합을 위한 모든 종류의 활동을 조직한다. 가족회의는 분기별로 열리는데 주식을 소유한 7명의 핵심 인원이 돌아가며 회의를 주최하고 의제를 결정한다. 일반적으로 회의 첫날에는 부인들도 함께 참여해 가족에 대한 정보를 나누고 가족관계를 돈독히 한다. 둘째 날에는 패밀리오피스, 가족재단, 가족투자, 가족헌장, 가족훈련센터 등 5가지 핵심 문제를 상의한다. 가족모임은 많은 가족들이 참여하도록 최대한 재미있게 구성하기 때문에 가족들은 모임이 끝나면 다음 모임을 기다릴 정도다. 가족회의는 가족들 사이의 갈등이나 분쟁을 해결하고 가족관계를 강화할 뿐 아니라 가족, 특히 젊은 세대의 정서를 깊게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이러한 노력으로 가족회의는 가족들이 가장 좋아하는 커뮤니케이션의 장이 되고 있다.


가족회의 합의 사항은 가족헌장에 기록
가족회의에서 합의되거나 결정된 주요 사항은 가족헌장에 기록되는데, 이는 장기적으로 가족 모두의 이익을 보장하는 주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가족헌장에는 가족의 경영 참여, 가족의 역할, 주주의 의무와 책임 등을 명시하고 있다. 그래서 만일 가족 갈등이 생긴다면 가족헌장에 따라 문제를 해결한다.

이 규정에 따르면, 가족이 회사에 참여하려면 다음의 몇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첫째, 대학 교육을 마쳐야 하고, 회사에 참여하기 전 최소한 3년간 다른 회사에서 경험을 쌓아야 한다. 둘째, 일반 직원들과 마찬가지로 가족들도 입사 시험에 합격해야 입사가 가능하다. 그리고 회사에 들어오면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셋째, 만일 직무 능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판명되는 경우에는 다른 직무를 맡을 기회를 한 번 더 준다. 그러나 새로운 일에서도 직무 능력이 향상되지 않는다면 그는 회사를 떠나야 한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두 가지 조항을 따라야 한다. 하나는 누구든 한 명의 부인과 한 가정만 가져야 한다. 만일 누군가 혼외 가족이 생기면 그는 이사회에서 제외된다. 다른 하나는 이혼하는 경우에도 이사회에서 제외되며 다시는 회사에 합류하지 못한다. 이 경우 자신의 주식은 소유할 수 있지만, 어떠한 의사 결정에도 참여할 수 없다. 이러한 규정들은 전체 가족들의 합의로 만들어졌다. 모든 가족들이 동의하고 서명해 가족헌장에 포함시켰으며 후세들에게도 계속 유효하게 적용되고 있다. 또한 자손들에게 선조들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고 교육한다. 그 일환으로 창업자인 1, 2세대를 기념하기 위해 매년 홍콩에서 기념 행사를 여는 가족 전통도 만들었다. 이 기념 행사에는 회사의 주요 판매권을 가진 사람, 전 세계의 우수한 직원들, 그리고 전체 가족이 함께 참석해서 선조들에게 감사함을 표시하고 이를 기념한다. 그들은 세기를 이어온 선조들의 전통과 가치를 소중히 여기고, 한 시대의 개척자로서 선조들이 사회에 기여했던 점을 강조한다.

이와 같이 견고한 가족지배구조를 구축한 덕분에 이금기 가족들은 3세대부터 5세대까지 모두 화목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를 처음 시행한 3세 이만탓의 네 아들들은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유수한 기업에서 일하고 있었지만, 아버지의 요청으로 모두 회사에 들어와 다양한 직책을 맡아 서로 원활하게 협력하고 있다. 첫째는 소스그룹, 둘째는 미국·라틴아메리카·유럽 지사, 셋째는 중국, 넷째는 그룹 다각화와 건강식품그룹을 맡고 있다. 이금기가 지속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가족의 협력 시스템을 갖추고 대를 이어 창업자의 경영철학과 가치관을 이어왔기 때문이다.

이금기 사례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가업승계를 준비하는 경영자들은 무엇보다 가족 간의 화합과 결속에 초점을 맞추고 갈등을 예방하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연구에 따르면, 세계적인 장수 가족기업들은 가족 간의 갈등 해결 능력이 뛰어난 기업들이다. 아니, 그들은 가족 갈등을 관리하는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장수 기업이 될 수 있었다.


김선화 ㈜에프비솔루션즈 대표
[FAMILY BUSINESS CONSULTING] 4대째 가업승계에 성공한 홍콩 회사 이금기의 특별한 노하우
국제공인재무설계사(FP)로 핀란드
헬싱키대 경영학 석사, 서울 과학종합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가족기업협회 정회원으로 한국인 최초로 패밀리 비즈니스와 패밀리 웰스 컨설턴트 인증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