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으로 꺼지지 않는 뇌

마음과 몸의 힐링 전략인 수면, 그러나 잠자기가 어려워도 너무 어렵다. 세상일은 열심히 하면 해결할 수 있는데 불면은 어찌된 게 노력할수록 더 심해진다. 노력은 이성의 영역이지만, 수면 스위치는 감성 시스템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완이 필요한데, 가을 하늘의 청명함을 즐기는 것이 도움이 된다.
계절을 즐긴다는 것은 내 몸의 이완 시스템이 잘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니까.
[HEALING MESSAGE] 잠 못 드는 밤, 가을 하늘을 즐기세요!
필자의 외래는 불면증 환자로 가득하다. 아무리 노력해도 잠이 오지 않는다며 고통을 호소한다. 눕자마자 그냥 잠드는 경우라면 정말 복 받은 것이다. 잠 잘 자는 이들은 불면증의 괴로움을 이해할 수 없다. 70대 부부가 필자의 클리닉에서 언성을 높이며 싸웠는데 사연인즉, 할머니는 불면증이 너무 심해 “밤을 꼴딱 지새웠다”며 괴롭다고 의사에게 이야기하는데 할아버지가 “어제 코 골면서 잘만 자던데 무슨 불면이야”라고 핀잔을 준 것이다. 섭섭하고 억울한 할머니는 울면서 화를 낸다. 급기야 30년 전 것까지 다 꺼내어서 이야기한다. 할아버지 얼굴이 편치 않다. 얼마 후 할아버지마저 불면증으로 찾아왔다.

코를 곤다고 해서 잠을 푹 잔 것은 아니다. 양질의 수면은 일단 누우면 금방 잠이 들어야 하고, 깊은 수면을 이루어 중간에 깨지 않고 푹 잘 때 이루어진다. 그래야 자고 일어나서 피로가 풀리고 개운하다. 코도 골고, 긴 시간 잠자리에 있어도 깊은 수면을 이루지 못하면 수면의 질은 엉망이 된다.


불면은 ‘노력’이 아닌 ‘내려놓음’이 약이다
조물주는 왜 하루 일정 시간 수면을 취하도록 인간을 설계했을까. 24시간 가동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면 불면증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기술적 한계에 의한 것인지 어쩐지 모르겠으나 하여튼 우리는 하루에 한 번 잠을 자야 건강하게 살 수 있다.

“요즘 안 꾸던 꿈을 꿔요”, “악몽 때문에 수면의 질이 나빠진 것 같아요” 등 꿈에 대해 걱정하는 분들이 많다. 꿈을 안 꾸는 사람은 없다. 내 기억 여부와 상관없이 하루 30~40분 정도 모든 사람은 꿈을 꾼다. 꿈을 꾸다 깨면 그 꿈이 잘 기억날 뿐이다.

우리가 꾸는 꿈의 대부분은 부정적이다. 꿈은 논리적 언어가 아닌 비논리적인, 상징과 압축의 이미지로 이루어져 있다. 이성이 아닌 감성 시스템이 꿈을 만들기 때문이다. 꿈은 나의 좌절된 욕구와 소망을 애매한 내용으로 재구성해 상영함으로써 나도 모르는 사이 위로가 일어나게 한다. 미워하는 상사가 모르는 사람으로 대치돼 나오니 욕하고 때려도 죄책감 드는 일 없이 후련해진다.

꿈이 현실의 분노와 좌절을 자동으로 위로해 주니 미워했던 감정도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면 줄어들고, 어제 열 받아 그만두리라 마음먹었던 회사도 10년 넘게 다니게 된다. 수면 시스템은 우리에게 신체적 휴식도 주지만 리얼한 상황에서 고통받은 삶의 내용들을 잠자는 동안 부드럽게 처리해 준다. 그러니 잠이 없었다면 사람들의 분노는 식지 않고 세상의 인간관계는 엉망이 됐을 것이다.

마음과 몸의 힐링 전략인 수면, 그러나 잠자기가 어려워도 너무 어렵다. 세상일은 열심히 하면 해결할 수 있는데 불면은 어찌된 게 노력할수록 더 심해진다. 불면증으로 고생하는 이들의 노력은 눈물겨운 수준이다. “선생님, 저는 저녁 먹으면 자리에 눕습니다. 그 시간을 놓치면 말똥말똥해지거든요. 그런데 12시면 깨니 그다음부턴 밤을 새는 거예요”, “몸이 지칠 때까지 운동합니다. 그러나 피곤만 하고 잠은 오지 않아 오히려 더 괴로울 때도 많아요” 등 숙면 실패담을 듣다 보면 내가 불면증이 올 것 같다.

왜 잠이 오지 않을까. 황당하게도 ‘잠들면 죽지 않을까’라는 공포 때문이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잠들려고 죽도록 노력하는데 죽을까 봐 잠이 오지 않는다니. 노력은 이성의 영역이다. 그런데 수면 스위치는 감성 시스템에 존재한다. 불면증은 불안 증상이다. 불안은 각성을 일으킨다. 우리 뇌에는 수면 스위치가 두 군데 있다. 하나는 생체 시계에 존재한다. 빛의 양, 호르몬 변화 등을 인식해 생체 시계는 밤이 되면 각성 정도를 낮추고 잠 잘 준비를 한다.

그러나 감성 시스템이 불안을 느껴서 각성 스위치를 끄지 않으면 아무리 생체 시계가 잠을 자라고 신호를 보내도 우리 뇌는 켜져 있는 것이다. “각성 스위치, 어서 꺼”라는 말로 외쳐도 절대 꺼지지 않는다. 감성 시스템은 논리적 언어를 사용하지 않아 말로 조절할 수 없다. “심장아, 멈춰 봐”라고 아무리 말해도 심장이 계속 뛰는 것과 의학적으로 같다.

불면 치료는 마음을 다스려야 하니 도(道)의 수준이다. 낮에 하는 일은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한다. 그러나 밤의 수면은 열심의 반대말, 즉 ‘내려놓음’을 연습해야 한다. ‘오늘 나는 잠을 자지 않겠어. 나의 소중한 하루를 잠에 대한 걱정 따위로 망치지 않을 거야’, ‘오늘 12시까지 잠들지 않을 거야’란 생각이 오히려 수면 유도에 도움이 되니 이를 역설적 접근이라 한다. 잠을 자기 위해 일찍부터 잠자리에 누워서 끙끙대며 잠과 싸우는 것은 불면을 악화시킨다. 잠자리에 누우면 편하게 이완돼야 하는데 잠자리가 전쟁터가 되니 누우면 뇌가 더 각성된다.


불면 치료는 마음을 다스려야 하니 도(道)의 수준이다.
밤의 수면은 열심의 반대말, 즉 ‘내려놓음’을 연습해야 한다.



20분 이상 잠자리에 누워 있어서는 안 된다. 잠이 오지 않으면 일어나 책이나 음악 감상을 하는 것이 좋다. TV 시청은 오히려 각성을 유발할 수 있으니 그보다는 몸의 나른함을 유도할 수 있는 콘텐트가 효과적이다. 이는 사람마다 다르므로 자기에게 맞는 것을 찾아야 한다. 한 번 실패한 잠자리에는 다시 들어가지 않는 것이 좋다. 마루나 남는 방이 있다면 그곳에 잠자리를 만들어 자는 것이 효과적이다. 자동차 뒷자리 등 전혀 잘 생각이 없었던 곳에서 짧지만 깊이 잠든 경험을 했을 것이다. 잘 생각이 없었기에 이완이 돼 잠이 든 것이다.

가을 하늘의 청명함을 즐기는 것도 도움이 된다. 계절을 즐긴다는 것은 내 몸의 이완 시스템이 잘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다. 불면의 주범인 불안은 나쁜 것이 절대 아니다. 불안은 생존과 성취의 시그널이다. 불안 시그널이 잘 작동돼야 성공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성공의 부작용으로 불면이 찾아온다. 뇌가 꺼지지 않는 것이다. 불면은 그 자체가 불안 신호가 돼 그다음 날 또 잠이 오지 않게 하는 악순환을 일으킨다.

성공을 즐기고 누리게 하는 것이 이완 시스템이다. 아무리 사회경제적 성취를 높이 이루었어도 높은 가을 하늘을 즐길 수 없다면 서글픈 성공일 뿐이다. 하루에 10분만이라도 가을이라는 계절의 변화를 내 눈, 코, 그리고 피부의 촉감으로 느껴보자. 계절을 느끼는 여유는 평화의 신호이고 이를 뇌가 감지해 전투 상황인 뇌에 평화가 왔음을 알린다. “이제 그만 깨어있고 쉬도록 하세요”라고.


글·사진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