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현 벤타코리아 대표와 그가 사랑한 작가들

‘또 다른 가족’ 혹은 ‘식구’. “우리 아이들보다 더 자주 함께 밥을 먹는 것 같다”는 김대현 벤타코리아 대표의 말처럼 ‘같이 밥 먹는 사이’의 특별한 무언가가 그들 사이엔 존재했다. 벤타코리아의 네 번째 사회공헌인 작가 레지던스 ‘갤러리 퍼플 스튜디오’와 전시 공간 후원 프로그램의 후원자와 입주 작가로 만난 김 대표와 6인의 작가들을 한자리에 모은 건 삶을 관통하는 예술과 그 예술을 향한 열정이었다.
[CEO & FRIENDS] “우리를 엮은 건 예술과 열정의 코드”
세상에는 수많은 형태의 가족이 존재한다. 어쩌면 지금 시대에는 혈연으로 묶인 가족보다 혈연 그 이상의 무언가로 ‘엮인’ 가족이 더 끈끈할지도 모른다. 여기 피보다 진한(적어도 그들에게는) 예술이라는 교집합으로 모인 가족이 있으니, 탄생한 지 두 달 남짓한 ‘갤러리 퍼플 스튜디오’가 그들의 주거지다.

먼저 갤러리 퍼플 스튜디오(Gallery Purple Studio·이하 G.P.S)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터다. 갤러리 퍼플은 독일 벤타사의 벤타에어워셔와 공기 순환기 보네이도(Vornado) 등 세계적 브랜드 상품의 국내 독점 공식 수입 업체인 벤타코리아가 운영하는 갤러리로, 벤타코리아는 지난 7월부터 잠재력이 풍부한 신진 작가 9명에게 전시 및 작업 공간을 제공하는 ‘갤러리 퍼플 스튜디오’ 후원을 시작했다.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고양창작스튜디오, 장흥아트파크 등과 같은 작가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한 기업과 그 기업의 대표가 운영하는 사례인 것. 그동안 사단법인 제주올레와 농수산물 회원제 프로그램인 무릉 외갓집 후원, 남양주시 희망케어센터와 함께 하는 장학 사업, 그리고 서울 색소폰콰르텟(SSQ) 정기공연 후원 등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실천해온 벤타코리아는 이로써 네 번째 사회공헌 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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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개인 기업이 작가들을 후원한다는 사실도 의미가 있지만 여기까지였더라면 다른 레지던스와 별반 다를 게 없었을 터. G.P.S가 여느 레지던스와 다른 ‘한끗 차’가 있으니 바로 ‘아트 내비게이터(Art Navigator)’다. 기업 혹은 개인이 G.P.S 입주 작가 중 후원할 작가를 선정해 매월 기부 약정 금액을 경기문화재단을 통해 후원하는 새로운 기부 프로그램이다. 신진 작가들에게 매월 고정적인 후원금을 ‘보장’해 줌으로써 창작 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한 이 획기적 아이디어 역시 김 대표의 머릿속에서 나왔다. 예술을 사랑하고 작가를 아끼는 그만이 생각해낼 수 있는 아이디어인 셈이다.

자, 그렇게 해서 김 대표와 입주 작가 9인(남양주 스튜디오 7인·파주 스튜디오 2인)의 ‘관계’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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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지향점을 가진 특별한 공동체

경기도 남양주에 위치한 G.P.S. ‘젊은 작가들이 들어오면 그 지역이 달라진다’더니 과연 뭔가 다른 분위기가 감지되는 듯했다. 벤타코리아의 폐공장 건물을 개조해 만든 갤러리와 스튜디오 건물 앞에는 ‘태권브이(V)’로 유명한 김택기 작가의 작품이 서 있고, 외벽에는 나비들이 날아갈 듯 춤을 추고 있었다.


예전부터 김 대표님이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졌던 작가들이었나요.
“입주 작가를 선정할 때 최종 결정은 이경임 갤러리 퍼플 대표(김 대표의 아내다)가 했지만, 제가 주말마다 열심히 전시회 보러 다니고 작가들 만나면서 많은 작가들을 추천했죠. 이미 후원하고 있었던 황선태 작가를 빼고는 모두 그렇게 만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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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 사이에 G.P.S가 레지던스 중에 제일 좋다는 소문이 파다하다면서요.(웃음) 실제로 어떤가요.
정직성 “G.P.S는 시설도 시설이지만 대표님의 열정이 대단해요. 특히 경기문화재단과 함께 하는 ‘아트 내비게이터’ 후원 프로그램은 정말 획기적인 것 같아요. 작가들이 용기를 가질 수 있게 하는 부분이죠.”

신기운 “정 작가 말에 전적으로 동감해요. 단순히 작가들 이름을 하나하나 아는 정도가 아니라 각각의 사연을 꿰고 있고 작품에 대해서도 두루두루 깊게 알고 있으니, 작가들이 뭔가 필요하다고 하면 즉각 반응을 하실 수밖에 없는 거죠. 이건 소통의 문제 그 이상이에요.”

김세중 “‘방장’의 입장에서 보면, 다른 레지던스와 다른 게 작가들끼리 가족적인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는 점이에요. 솔직히 레지던스 입주 작가라고 해도 몇몇끼리만 친하고 또 일부는 서로 경쟁자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이 부분에도 김 대표님의 배려가 보이지 않나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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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작가들은 좀 개인적인 성향이 있는 걸로 아는데, 여기 작가들은 정말 돈독해 보이네요. 공동체 생활의 장점이 있겠죠.
장원영 “저는 여기가 첫 레지던스라서 사실 다른 곳과 비교가 안돼요. 원래 작가 레지던스가 이렇게 좋은 거 아닌가요.(웃음) 같은 이유로 당연히 공동체 경험도 처음인데 너무 많은 걸 배우고 있어요. 첫 모임 때 선배 작가들과 대화를 하면서 느낀 게 ‘아, 이분들에게 많은 걸 얻겠구나’라는 점이었어요. 이분들은 제가 지금 하는 고민을 이미 10년 전에 하신 분들이니까요. 그러다 보니 요샌 저도 모르게 그냥 문을 두드리고 들어가요.”

황선태 “작가들의 다양한 경험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게 공동체 생활의 장점인 것 같아요. 전시를 하더라도 갤러리와의 관계, 또 갤러리 관장의 성격 등 ‘참고’해야 할 것들이 많은데 그걸 누군가에게 물어보기가 쉽지 않거든요. 작가들이 굉장히 개인적이라 잘 가르쳐 주지도 않고요. 헌데 이렇게 모여 있으면 모두의 경험과 정보를 나눌 수 있으니 대단한 경쟁력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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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효과로 ‘대중의 미술화’를 이룰 것

김 대표가 아트에 관심을 갖게 된 건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3년 전 장흥아트파크의 작가를 후원할 당시만 해도 ‘백치’ 상태였다. 관심을 갖게 된 데는 아내인 이경임 대표의 영향이 컸다. 문화포럼, 조찬포럼 등을 찾아다니며 미술 분야에 대해 ‘공부’를 했고, 직접 몸으로 부딪치고 체험하며 단기간에 많은 걸 터득했다.


‘아트 내비게이터’ 후원 프로그램은 정말 획기적인 것 같아요. 아이디어의 탄생 계기가 있나요.
“처음에 회사 차원에서 황 작가를 후원하면서 뭔가 빠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하나, 4~5년 전부터 장학 프로그램을 해오고 있는데 그게 매월 생활 장학금을 주는 방식이었어요. 제 경험에 비춰 보면 등록금을 후원해 주는 곳은 더러 있는데 막상 생활비가 문제였던 거예요. 제가 대학 다닐 때 한 달 7만 원으로 생활해 본 경험이 있기도 하고요. 작가들을 만나면서 같은 생각을 하게 됐어요. 작가들은 그림이 팔려야 수입이 생기는데 그러다 보니 규칙적인 생활비가 꼭 필요하겠다 싶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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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 성과가 좀 있나요.
“마지막 작가 한 명이 후원자가 나타나지 않아 고민이 많았는데 어제 낮에 어떤 모임에 가서 소개를 했더니 한 분이 나서 주시더라고요. 그 덕분에 어제 오후 모두가 행복한 메시지를 공유했죠. 최소 한 구좌가 한 달 50만 원 후원인데, 이번에 참여한 어떤 개인 후원자는 특별히 반 구좌를 해드렸어요. 모 기업의 차장인가 부장인데 빠듯한 샐러리맨 월급에도 후원을 하고 싶다고 해서 정말 감동했어요. 어제까지 모두 12구좌가 매칭됐고 다음달까지 20구좌를 달성하는 게 제 목푭니다.”


모르긴 해도 후원자들에게도 어떤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기대하게 되는군요.
“물론입니다. 사람들이 ‘미술의 대중화’라고 하지만 사실 ‘대중의 미술화’가 맞는 표현이죠. 서울옥션의 프린트 베이커리가 ‘대중의 미술화’의 좋은 사례가 되고 있는 것 같아요. 기업이나 개인이 후원을 통해 작가를 만나게 되고, 또 작가가 후원자에게 감사의 선물로 작품을 선물하기도 하는데 그런 교류를 통해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자극과 영향을 주게 되겠죠. 그러다 보면 극히 일부는 저와 같은 지경에 이를 수도 있고요.(웃음)”


G.P.S가 들어서면서 남양주시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면서요.
“며칠 전 남양주시로부터 감사패도 받았는데, 그간 벤타코리아에서 남양주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해 온 것도 있고 또 얼마 전 저희 회사가 후원하는 서울 색소폰콰르텟도 와서 공연을 했거든요. 조만간 남양주 입주 작가 일곱 분과 미술에 관심 많은 저소득 차상위 계층 아이들의 일대일 멘토·멘티 결연식을 하려고 해요. 아직 밑그림 단계지만 1년 후에는 G.P.S에서 멘토·멘티 전시회도 할 계획입니다.”


김 대표님의 아이디어가 정말 무궁무진한 것 같은데 작가 분들이 보기엔 어떤가요.
황선태 “저는 컬렉터들과 정말 많은 대화를 해봤는데 김 대표님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왜 이렇게 많은 걸 알고 있지’라고 느끼게 한 분이었어요. 대화를 하다 보면 오히려 제가 작품 외적인 영역에서 정말 많은 걸 배우게 되죠. 특히 사업가 입장에서 해주는 말씀은 저에게 새롭게 들리는 면이 많아요.”

신건우 “멤버 구성에 있어서도 김 대표님의 센스가 대단히 작용했죠. 솔직히 처음에 작가들 면면을 보고 잘 맞을까 걱정도 했는데 기우였더라고요. 아주 편안한 모임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도 김 대표님의 아이디어 아니었나 싶어요.”


실제로 입주 작가들을 선정할 때 각각의 성향을 고려하셨나요.
“솔직히 그런 부분이 있어요. 물론 작가는 작품이 당연히 좋아야겠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 앞으로 더 훌륭한 작가가 되기 위해선 인성이나 품성이 좋아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전에는 괴팍한 성질의 기인이 작품에서는 천재성을 드러냈는지 몰라도 현재는 소통을 누가 더 잘하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공동생활이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검증을 한 부분도 없지 않고요.”


G.P.S 후원 등이 사업에는 어떤 시너지 효과를 내나요.
“예전에도 임옥상 작가와 아트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해본 적이 있고 김용관, 남경민 작가와 제품 박스도 재밌게 만들어 보고 했어요. 올해는 31명의 작가를 선정해 각 제품에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하고 영등포 롯데백화점과 부산에서 전시·판매를 해 수익금을 후원하기도 했어요.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저희 회사 직원들도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됐고 저도 개인적으로 작가들을 만나면서 돈이나 매출 등에 대해 부드러워진 부분이 분명 있어요. 소비자들에게도 그저 수입 제품을 파는 회사를 넘어 국내에서 뭔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게 됐으니 효과가 너무 많죠.”
[CEO & FRIENDS] “우리를 엮은 건 예술과 열정의 코드”
이제 G.P.S가 막 출발을 했는데요, 앞으로 각자의 계획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정직성 “사람을 알기 위해선 가장 좋은 방법이 공간을 공유하는 것이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여기에 와서 다른 작가들의 공간을 보는 게 많은 도움이 돼요. 함께 있는 기간만큼 서로 많이 교류하고 보고 배우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어요.”

신건우 “작가들에게 동료란 생각보다 훨씬 더 큰 의미예요. 저는 영국에서 계속 혼자 작업을 하다 스스로 고독해진 상황에서 이곳에 왔는데 ‘같이 밥 먹는 사람들’이 생겨 정말 좋더라고요. 지금 이때에 이곳에 있었다는 건 훗날 더 큰 행복이 될 것 같아요.”

장원영 “저 또한 선배 작가들의 나이가 됐을 때 지금을 돌아보면 ‘성장의 시기’로 기억되지 않을까 싶어요. 함께 지낸 한 달 보름 만에 벌써 많은 공부를 했거든요. 문제는 첫 레지던스로 G.P.S에 들어오는 바람에 눈높이가 높아졌다는 거죠.(웃음)”

김세중 “평생 함께 늙어가면서 술 한 잔 기울이고 서로의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좋은 친구들을 만났다는 데 정말 감사해요. 김 대표님과 이 대표님이 늘 하는 말씀도 ‘정보를 공유하라’는 것이거든요. 사실 저만 해도 ‘왜 내 사람을 소개시켜야 하나’라는 생각이 없지 않았는데 대표님이 그 필요성과 효과를 몸소 보여주시더라고요.”

황선태 “작가들은 지극히 개인적이에요. G.P.S 분위기가 좋은 건 정말 예외적인 경우예요. 서로 서로가 노력을 기울였다는 증거죠. 1기로 끝나는 게 아니라 2기, 3기 등 G.P.S가 작가들 간에 연결고리가 돼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가 됐으면 합니다.”

신기운 “저는 제 개인적 얘기보다 현대미술에 대한 한국 사회의 색안경에 대해 말하고 싶어요. 얼마 전 한 공중파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과 그 일가가 컬렉션한 미술품에 대해 ‘이건 얼마, 저건 얼마’라며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내릴 소재로 던져주는 걸 봤어요. 순수미술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보는 시선이 참으로 안타까워요.”


끝으로 김 대표님도 한 말씀 하시죠.
“스튜디오 건물 외벽에 있는 나비 보셨죠. 김택기 작가의 작품인데 ‘나비효과’를 표현한 거예요. G.P.S가 이제 막 시작했지만 앞으로 계속 좋은 영향력을 주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작가들과 헤어지기 싫을까 봐 벌써부터 걱정이에요. 그래서 매일 이별 연습을 하고 있다니까요.”


그러고 보니 갤러리 퍼플 스튜디오의 약자인 G.P.S는 글로벌 포지셔닝 시스템(Global Positioning System)의 약자이기도 하지 않나. 미술에 대한 애정과 열정 하나로 많은 일들을 이뤄내고 꾸려가고 있는 김 대표와 그가 사랑해마지 않는 작가들로 이뤄진 ‘공동체’가 미술계의 새로운 ‘모델’이 되며 방향 제시를 하고 있으니 참으로 기막힌 명칭이란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박진영 기자 bluepjy@hankyung.com│사진 이승재 기자